소설리스트

리멤버 더 네임-530화 (530/956)

보리수 그늘 아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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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단유인데요.

“어, 그래. 웬일이냐? 네가 전화를 다 주고?”

―실은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단유는 매니저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아픈 동생이 있는데, 그 동생이 리본 소녀를 좋아하더라, 그래서 리본 소녀의 사인 시디를 얻어서 주면 그 동생에게 힘이 될 거 같더라.

―어려운 부탁이겠지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단유는 이런 부탁을 처음 하는 것이지만, 매니저는 수도 없이 들었던 부탁이었다. 그래서 그냥 적당히 핑계를 대서 거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유는, 비록 큰 도움은 안 됐지만―매니저는 그렇게 생각했다―도연을 도와주러 와주기도 했었던 이였기에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적어도 기브 앤 테이크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매니저였다.

“알았다.”

―그런데 도연 누나는 좀 괜찮나요?

“그래,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이야.”

실제로는 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낫고 있으리라 매니저는 믿었다. 그리고 비록 도연의 실제 심리 상태는 그대로라 하더라도, 여론은 변했다.

이틀 전, 도연은 매니저와 동행하여 연예 전문 매체의 기자를 만났다. 그리고 매니저가 이야기해준 것과 같은 방향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럼 지금 병원에 다니고 계신단 말이군요.”

“네.”

“얼마나 되셨죠?”

“2주 정도 되었어요.”

“물론 본인이 제일 힘드시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그 사실을 이렇게 알리는 이유는 뭔가요? 사람들이 알면 본인의 이미지에 많은 타격이 있을 것 같은데요.”

도연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 기자의 카메라가 후레쉬를 터뜨리며 그 장면을 담았다.

“그렇죠. 전 아이돌이에요. 아이돌이라면 개인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팀의 이미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래서 이런 고백이 저희 그룹, 저희 멤버 언니들에게 좋지 않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제 상황을 팬들에게 알려서 팬들의 오해를 풀어주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은 현재 항간에 떠돌고 있는 리본 소녀 불화설은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요?”

“네. 저희 멤버들은 여전히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고 있고요. 그뿐 아니라 저로 인해서 저희 그룹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와중에도 제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해서 매일 다독여주고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다시 도연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라면, 혹시 공황 장애 같은 건가요?”

“아니요.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런 경향도 있긴 하지만, 주로 저의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때문이라더군요.”

“자신감이요? 그건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군요. 리본 소녀는 현재 아이돌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그룹이고 데뷔와 후속곡이 모두 차트 상위권에 오른 팀입니다. 자신감이 넘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주위에서 봐주시는 모습이죠. 사실 저도 연예인이 되기 전까지, 톱스타에 오른 이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며 연예인을 꿈꿨으니까요. 하지만 이 자리에 있고 보니, 전 하루하루를 매일 공포와 불안에 떨어야 했어요.”

“공포요?”

“만약 차근차근 올랐다면, 그래서 제 노력이 빛을 받아 대중의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흰, 아니 저는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빠른 시간에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죠. 그래서 불안했어요. 언제 이 사랑으로부터 외면받게 될지, 갑자기 어느 날 사람들이 절 무관심하게 쳐다보게 되면 어떡하나 두려워하기 시작했어요.”

“이해가 갈 듯 하네요.”

“사랑이 그렇잖아요? 갑자기 그 사람이 좋아졌다가도 갑자기 그 사람이 싫어지듯이요.”

“사랑, 해 보셨나요?”

“다른 사람이 하는 그런 정도예요. 짝사랑. 고백도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는, 그런 거요.”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건가요?”

“그럼요. 하지만 제 나이 대의 사랑이 그렇잖아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풋사랑. 저도 그랬어요. 그냥 멀리서 보고, 저 사람 멋지다, 라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가슴을 태우다, 갑자기 식어버리죠. 그리고 생각해요. 내가 왜 저 사람을 좋아했을까?”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그럼 지금 팬들이 도연씨에게 보내는 감정이 그런 감정 같다는 이야긴가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뜨겁게 타오르는만큼 금방 식을 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저를 불안하게 했죠. 무엇보다 제 노력 이상의 결과로 인해 얻은 영광이잖아요. 그래서 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고, 그런 불안과 공포가 무대에서 절 얼어붙게 만들었다, 고 의사 선생님이 진단해주셨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들어보니, 어쩌면 다른 정상에 오른 아이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럴 거라고 봐요. 하지만 그 분들은 소위 멘탈이라는 게 강한 분들이라 매일매일 자신을 다잡고 끊임없이 노력하시는 분들이겠지만, 전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약했던 거죠.”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중요한 질문은 아마도 계속 활동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겠는데요.”

“네. 사실은 속으로 많이 생각했어요. 저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희 멤버들에게도, 회사에게도, 그리고 저희 그룹을 사랑해주시는 팬들에게도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빠지는 게 옳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멤버들과 회사에서는 그런 절 꾸짖어 주었죠. 그렇게 나약한 생각 하는 게 아니라고.”

도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빠지는 건 도망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요. 사실 도망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방법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누구요?”

“팬들이요. 만약 지금까지의 제 모습이 부족했는데도 좋아해주셨다면 전 더 나은 모습으로 팬들에게 보답을 해야 옳은 거죠. 아까 짝사랑 이야기를 한 것처럼, 혼자 한 사랑이라도 그 사랑이 끝난 뒤 그 시간을 되돌아보잖아요? 그때, 그 사랑이 어땠던가, 하고요. 전 그 시간이 후회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 그 시간에 그 사람을 좋아했던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며 품었던 마음과 행복, 그 아름다움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팬들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요? 나중에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 저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더라도 그 마음이 따뜻했던 한 때의 추억처럼 간직될 수 있기를. 그러려면 제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도망가기만 할 게 아니라, 지금껏 받은 사랑 때문에라도 남은 시간, 제가 리본 소녀로 있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팬들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팬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행복해 하겠네요.”

“팬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기도 하고, 제 마음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도연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역시 곁에 있던 사진 기자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나요?”

“사실 아직 어떤 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어요. 과연 팀에 남는 게 옳을지, 아니면 떠나는 게 옳을지. 그래서 방금 한 이야기도 어쩌면 저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변명일지도 모르겠고, 어떤 분들은 핑계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저희 팬과, 멤버들을 믿고 싶어요. 그리고 그 믿음에 최대한 부응하려고 최선을 다할 거고요. 병원 치료도 꾸준히 받으면서 빨리 나을 수 있도록 할 거예요. 그때까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연의 인터뷰는 다음 날 포탈 사이트에 공개 되었고, 여론은 양분되었다. 도연에게 동정심을 품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기적이라고 욕하는 이도 생겼다.

-결국 연예인 계속 해먹겠다는 소리?

-아프면 집에 가서 쉬어야지, 계속 뽑아먹겠단 말을 돌려 말한 거 아님?

험담과 비난은 있을지언정, 유언비어는 없었다. 그리고 이 인터뷰로 인해 팬덤은 더욱 강해지는 효과를 나았다. 리본 소녀의 팬덤은 도연을 지키자는 의견으로 몰렸고, 특히 도연이 팬들을 위해 애쓰는 마음이 애달프다며 힘내라는 응원이 편지와 선물 등으로 회사에 보내졌다.

“팬덤을 지켰다는 게 중요한 거지.”

심 대표는 보고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함께 동석한 매니저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연이는?”

“반응이 썩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럼, 그럼.”

“그런데, 도연이가 인터뷰 중에 예로 들었던 ‘짝사랑’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는지, 도연이의 과거를 캐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팬 카페에서?”

“네.”

“하여튼, 쓰잘데기 없는 일에 힘 쏟는 일은 제일 잘해.”

심 대표는 혀를 찼다.

“문제 없잖아?”

“네. 사실, 모태 솔로인데요, 뭐.”

쌓인 결제 서류 철들을 소리나게 덮은 심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옷걸이에 걸린 재킷을 걸치며 말했다.

“그럼 난, 대전엘 다녀오지.”

“대전이요?”

“그쪽 아카데미에서 괜찮은 애가 있다고 하니까, 가서 좀 봐야겠어.”

심 대표는 벌써 다음 아이돌 그룹을 구상 중이었다. 심정적으로야 리본 소녀를 믿고 계속 지원해주겠지만, 이런 일도 벌어진 다음에야 언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얼른 후속 그룹을 준비해 놓는 게 좋다.

“그리고 이번 월말 평가 때는 나도 들어가서 봐야겠어.”

“대표님이 오시면 애들이 많이 긴장하겠는데요?”

“나 하나도 못 감당하는 애들이 몇 백, 몇 천 명 앞에서 긴장 안 할까?”

심 대표가 대표실을 나가고, 그 뒤를 매니저가 뒤따랐다.

“아, 대표님. 그리고 오늘 그, 단유라는 친구가 올 겁니다.”

“누구?”

“예전에 도연이랑 같이 교육부 홍보 영상 찍었던 아이 말입니다.”

“아, 그.”

심 대표가 자리에 멈춰 섰다.

“몇 시?”

“아마, 1시간 쯤 있다가 올 겁니다.”

심 대표는 손목 시계로 시간을 확인 후, 잠시 궁리하다 말했다.

“잠깐 보고 갈까?”

단유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저기, 윤제순 매니저님이랑 약속을 잡았는데요.”

로비에 있던 여 직원이 내선 전화를 들어 확인했다.

“3층 상담실로 가면 되요.”

“고맙습니다.”

단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향했다. 이전에 들러 도연과 이야기를 나눴던 장소였기에 헷갈릴 이유는 없었다. 문을 열자, 한참 수첩을 정리하고 있던 매니저가 단유를 보며 아는 척을 했다.

“왔어.”

“네, 안녕하세요.”

“밖이 덥지?”

“여름이니까요.”

“그런 것 치고는 땀을 많이 안 흘렸는데?”

“바람이 많이 불더라고요.”

“그래? 아까 내가 나갔을 때는 바람이 전혀 불지 않던데. 바람도 사람 차별하나?”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대화를 잇던 매니저는 그 사이 수첩을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 대표 이사님이 잠깐 보자고 하는데.”

“절요?”

“그래. 지난 번에 같이 식사했었던 대표님 있지?”

“네. 기억나요.”

“그래. 잠깐 시간 되겠냐?”

단유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왕에 부탁하러 온 입장이니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었다.

대표이사실에 들렀더니 한참 전화 통화중인 심 대표를 볼 수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경우가 없구나,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거기 잠깐 앉아 있어.”

핸드폰을 잠시 떼고 언질을 준 후, 다시 통화를 잇는 심 대표의 말대로 매니저와 단유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매니저는 미리 챙겨둔 작은 쇼핑백을 단유에게 건넸다.

“여기.”

“고맙습니다.”

잠깐 열어 확인해보니, 멤버 세 명의 사인이 모두 담긴 시디와 브로마이드 몇 장, 그리고 모자가 하나 있었다.

“이야기를 했더니 도연이가 자기가 쓰는 물건을 하나 주는 게 더 의미있을지도 모르겠다며 넣어줬어. 착한 애야, 그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단유는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매니저에게 말했다. 그때, 통화를 마친 심 대표가 단유 맞은 편에 앉았다.

“갑자기 보자고 해서 당황했지?”

“아니요. 별로.”

“그래?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자네는 참 대담한 성격인 것 같아. 보통 나랑 이야기하면 대부분 자네처럼 침착한 모습을 잘 못 보이거든. 이번 월평 때 이 친구같은 대담한 성격의 연습생이 나왔으면 좋겠어.”

마지막 말은 매니저를 향한 발언이었다. 매니저는 의례적인 웃음을 지으며 대표의 말에 동의했다.

“다름이 아니라, 자네랑 잠깐 이야기를 했으면 해서.”

“어떤 이야기를요?”

“그냥 요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나 궁금해서 말이야.”

단유 나이 또래 아이들이 이 회사에도 많이 있을 텐데 굳이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있을까?

“자넨 꿈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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