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the Futu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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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넌 뭐가 되려고 그러니?”
“왜 또 그래?”
“왜는 무슨 왜야? 너 지금 방학한 지 얼마나 지났는데 여태 책 한 번을 안 펼쳐? 너 그래 가지고 고등학교는 어떻게 가려고 그래?”
“수능 보고 고등학교 가는 거 아니거든?”
“이년아, 정신 좀 차려. 너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단유한테 시험공부 해달라고 할 거야?”
“왜 안 돼?”
“아이고, 머리야.”
어머니는 머리를 감싸 쥐었고, 상미도 머리를 쥐며 외쳤다.
“악! 죽었어!”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 너 정말 뭐가 되려고 그래? 너도 꿈이라는게 있니?”
“꿈이 없는 사람이 어딨어?”
“도대체 그 꿈이 뭐니?”
“스트리머.”
“뭐?”
어머니는 자신이 뭘 들었는지 헷갈려했다.
“너 미쳤니?”
“왜?”
“어디 기집애가 할 게 없어서···.”
“그게 뭐 어때서? 요즘 많이들 해.”
“뭐?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니? 세상에···. 너 지금 그게 엄마 앞에서 할 소리니?”
“뭐가 어때서?”
“야!”
어머니의 고함 소리에 상미는 움찔하며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엄마가 너 옷 벗고 다니라고 비싼 돈 주고 학교 보내니? 응?”
“옷을 왜 벗어?”
“많고 많은 일 중에 스트리퍼가 뭐야!”
“스트리퍼라니?”
눈이 동그래진 상미, 그리고 딸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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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은 아니네요.”
단유의 대답에 심 대표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건 지난번에도 들었는데···. 그렇게 연예인을 하기 싫은 이유가 있나?”
“남들 앞에 나서는 게 그렇게 편하진 않아서요.”
“지금까지는 잘 했잖아?”
“지금까지는 그럴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하기도 했었고, ···또 그냥 돕기 위해서였어요.”
처음 초등학교 시절 도서관 모델을 했었던 것은 책을 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고, 그 다음은 갤럭시즈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엔 돈이 필요해서였거나 혹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몇 번의 경험으로 단유가 느낀 것은 평생 직업으로 삼기에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확신이었다.
“그렇다치고. 그럼 지금 다른 꿈은 없나?”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지금은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어요.”
“그래?”
“네.”
“궁금한데? 자네같이 뛰어난 친구는 과연 어떤 꿈을 꾸는지?”
“저는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요.”
단유의 대답에 심 대표는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그건 너무 모호하지 않은가? 법조계에 들어가서 법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돕는다거나, 의사가 되어서 아픈 사람을 돕는다는 등의 이야기라거나 그런 구체적인 꿈은 아직인 건가?”
단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 그런 직업을 가지기 어려워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심 대표.
“어렵다고? 듣기로는 공부도 잘한다고 했는데?”
옆에 앉은 매니저에게 동의를 구하니, 매니저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 시험 성적의 문제가 아니라, 저 개인의 문제에요.”
“혹시···고아라는 점이 그런 직업을 고르는 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요. 하지만 비슷합니다.”
단유는 자신의 출신이 직업 선택에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했다. 심 대표는 물론이고 다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지만, ‘고아’라는 출신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출신 때문이었다. 비록 현재는 감추고 있지만, 자신은 ‘이세계’ 사람이다.
단유는 늘 무언가를 감춰야 하고, 속여야만 한다. 악의가 없을지라도 그것은 타인과 함께 하는 조직적인 생활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낳을 것이라 보았다. 학교에서도 그렇듯이, 사회에 나가서도 그것은 마찬가지.
그래서 단유는 생각했다.
“조직 생활이 저한테 맞지 않아요.”
심 대표는 단유의 생각을 어린 애들이 흔히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자유롭고 싶고, 어딘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거. 남한테 허리 숙이기 싫고, 딱딱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게 마치 감옥 같다고 생각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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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 아래에서 명수는 오랜만에 운동장을 뛰었다.
“더 빨리!”
“으아악!”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명수와 함께 달리는 중학교 축구부 아이들은 전부 붉은 얼굴로 비 오듯 땀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녀석들아! 고작 이런 거로 벌써 헉헉대? 그래 가지고 90분 잘도 뛰겠다!”
코치의 일갈에 몇몇 아이들은 이를 악물고 신음을 냈다. 또 몇몇 아이들은 악을 쓰며 꿈틀거리는 허벅지를 억지로 움직여 앞으로 걷듯이 뛰었다. 하지만 명수는 비록 지치긴 했어도 호흡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은 채, 가장 선두에서 달렸다.
“하여튼 난 놈이야.”
감독의 시선이 무리의 선두를 훑고 있음을 확인한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놈이 한 명만 더 있었으면, 우승기를 지키는 것도 무리는 아닐겁니다.”
“그렇겠지.”
“···프로 가겠죠?”
“쟤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니면 부상을 당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체격도 꾸준히 자라고 있으니, 이대로면 분명 국대 스트라이커도···.”
“너무 앞서가지 마. 아직 중 3이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감독도 명수의 미래를 무척이나 기대했다. 자신의 축구경력과 이제껏 지도해온 아이들 중에서도 명수는 발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딴 애들은 너무 떨어지는데요.”
“눈높이가 달라서 그럴지도.”
명수랑 다른 아이들을 비교하면 저도 모르게 시선이 올라간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2바퀴만 더 돌리고 다음으로 넘어가지.”
“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인지도 모르고, 명수는 그저 호흡만 신경 쓰며 달렸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나중에는 몸을 쓰면서도 이 호흡을 계속해야 돼. 그럼 힘의 낭비도 줄고, 몸의 움직임도 네가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을 거야.”
단유에게 배운 호흡법은 익히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간 꾸준히 했더니 이제는 나름 몸에 익어서 이렇게 달리면서도 호흡이 절로 되었다. 그뿐 아니라 이렇게 오래 달리면서도 숨이 달리지 않고, 다리에서 사용되는 힘의 정도도 자기 의지로 조정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계속 익히다 보면, 90분 내내 전력 질주를 해도 힘이 남을 정도가 될 거야.”
“그건 너무 오버 아니야?”
“조금 과장이긴 해도, 네 체력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건 확실해.”
하지만 지금 이렇게 달리고 있다 보니 과연 단유의 말처럼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고맙다, 단유야.’
그간 단유에게 얼마나 도움을 받았던가. 단유는 그 고마움의 대가를 미래로 유예시켜 주었지만, 명수는 그걸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걸 다 갚을 수 있을지도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장 단유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있었다. 그건 바로 이렇게 달리는 것.
‘그리고 반드시 축구 선수로 성공하는 것.’
단유는 자신의 친구이자, 가족이다. 형이며, 아버지이다. 친혈육 이상이며, 이 세상 유일한 자신의 편이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것이 자신의 성공임을 알기에, 자신은 결코 한 눈 팔 수 없었다.
물론 게임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긴 해도, 운동을 소홀히 한 적은 없었다.
‘공부를 소홀히 하긴 했지만.’
순간 명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남들은 힘들어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와중인데 자신은 여유롭게 딴생각이나 하면서도 뜀박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서였다.
“쟤, 웃는데요?”
“···축구 선수가 아니라 장거리 달리기 선수를 시켜야 하나?”
감독은 까칠한 턱을 긁으며 명수를 보다 뒤의 선수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중학교 축구부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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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로 내리쬐는 보랏빛 조명 아래에 선 도연은 스탠드 마이크를 붙잡았다.
“난 자유롭죠, 그날 이후로. 다만 그냥 당신이 궁금할 뿐이죠.”
마이크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음 세상에서라도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마요.”
연주가 멎고 관중들의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고개를 숙인 채 감정을 수습하던 도연이 고개를 들었다. 옆을 돌아보니 이마에 땀이 송글 맺힌 멤버들이 미소를 지으며 도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마무리했어.’
라고 응원해주는 눈빛이 한순간 교차한 뒤, 세 멤버는 관객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무대를 내려오는 멤버들을 향해 매니저는 엄지를 들었다. 전략은 나름 통했다.
“웃을 수 없다면, 차라리 웃지 않는 노래를 부르라고 그래.”
심 대표는 그렇게 지시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애들이 라이브도 잘하는 가수라는 걸 알리면 되지.”
활동 마무리가 되는 시기에 갑자기 새 노래를 뽑아낼 순 없으니, 기존의 히트곡을 편곡해서 무대에 선보였다. 워낙 유명한 노래인데다 멤버들이 잘 소화해낼 수 있을지 의심은 갔지만, 그래도 도전해볼 가치는 있다 여겼다. 그리고 반응은 썩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축제 행사에서 부르는 무대라 방송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래서 더 부담 없이 시도해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대에서 부를 노래가 부족했는데 레퍼토리에 하나 추가하는 꼴이라 주최측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수고했다.”
“이제 진짜 끝이네요.”
“그래. 이제 당분간 스케줄 없다.”
“와!”
멤버들은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며 좋아했다. 그러다 리더가 매니저의 눈치를 보더니 한 마디 더했다.
“어쩐지 시원섭섭하네요.”
“방금 제일 기뻐하더라?”
“에이, 그건 그냥 쉰다고 하니까 좋아서 그랬던 거고요.”
“그래? 그럼 앞으로 쭉 쉴래?”
“그건 싫은데요?”
“그래. 당분간 쉬면서 에너지 좀 보충하고 하반기에 다시 열심히 뛰자.”
“예!”
차에 오른 뒤, 둘째가 매니저를 불렀다.
“그런데 나중에도 이 노래 또 부르나요?”
매니저는 도연을 곁눈질로 살피며 말했다.
“글쎄다.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또 할 수도 있지만, 그때는 네들 노래로 무대를 채우는 게 더 좋지 않겠어?”
정규 1집 앨범을 준비 중인 리본 소녀라서 하반기에는 무대 위에서 부를 노래가 부족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반응에 따라서는 레퍼토리에 끼워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미리 판단하는 건 섣부르다.
“고마워요.”
뒷자리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던 도연의 한 마디에 차 안이 조용해졌다.
“언니들, 매니저 오빠 다들 너무 고마워요.”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둘째가 얼른 도연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왜 그래? 사람 민망하게. 우리 팀이잖아.”
“그래. 우린 팀이야. 그리고 이게 그저 너 좋으라고 한 거니? 우리 모두에게 좋은 거니까 한 거잖아.”
“맞아.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매니저가 코웃음쳤다.
“야, 니들 그러는 게 더 이상해. 차라리 서로에게 고맙다고 하지 그래?”
“네? 어우, 닭살!”
터져 나온 웃음소리와 야유가 차 안을 가득 메울 때, 차는 도로 위를 힘차게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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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대표는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단유의 눈을 보다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말을 하려고 부른 건 아닌데, 어쩌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됐는지.”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주제넘은 말을 했구나.”
“조언으로 받아들일게요.”
어른을 대하는 태도가 건방지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눈앞에서 보는 단유는 건방지다기보다는 일찍 철이 든 녀석, 정도로 여겨졌다.
“어쩌면 연예인이란 직업도 네가 생각하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것 같은데, 연예인은 싫다고 하니···.”
심 대표는 다리를 꼬고 깍지낀 손을 허벅지 위에 올렸다.
“지난번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이야기는 아직 유효한 거지?”
만약 연예계 쪽으로 진출할 의향이 있다면 연락을 달라며 명함을 건넸던 심 대표. 단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더 기다려야 하는 모양이군. 사실 이번에 우리가 남자 아이돌 그룹을 준비하는데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거든.”
“괜찮습니다. 전 당분간 계속 공부를 할 생각이에요.”
“도연이처럼 학업과 연예계 생활을 같이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런 생활이 도연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단유는 대답을 피했다.
“말이 나온 김에, 도연이랑 정서적 교감을 나눠준 것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저도 도움이 많이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 그리고 소소하게 부탁을 하나 하자면 도연과의 일, 혹은 대화 내용에 대해 다른 곳에서는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물론이다. 아니, 애초에 그걸 다른 곳에 전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본론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유는 슬쩍 매니저를 쳐다보았다. 매니저는 방금의 대화에 대해 별로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단유가 보기에, 심 대표란 사람은 뭐든 자기 손으로 직접 해야 성이 풀리는 스타일인 것만 같았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직접 자신을 따로 만나 저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일 테다. 티 나지 않게.
“그럴게요.”
단유는 심 대표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