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그늘 아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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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행사 끝나고 바로 올라오는 거예요?”
리더, 주현이 물었다.
“그건 왜 물어?”
“모처럼 부산에 가는 건데 바다도 좀 보면 좋지 않아요?”
“무대가 바다 앞이니까, 그때 구경해.”
“회 같은 것도 먹으면 좋은데.”
“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희들 그렇게 먹는 것만 밝혀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 1년만 활동하고 그만두려고?”
“겨우 회 한 접신데.”
“겨우는 무슨. 그리고 니들 이제 겨우 1년 차야. 아직 성공한 거 아니라고. 원 히트 원더 몰라? 반짝 하고 사라지고 싶어? 응?”
매섭게 다그치는 매니저의 말에 리더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여튼 한 번 풀어주면 계속 풀어지려 한다니깐. 물론 아직 어린 아이들이고 한참 먹을 때, 라는 걸 모르진 않지만 이들은 보통의 여자 아이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말이 나온 김에 매니저의 폭풍 설교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해? 너희 노래? 춤? 그것만 잘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 아냐. 너희 팬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너희의 모든 것이야. 패션, 헤어스타일 뿐만 아니라 말, 행동, 몸짓, 표정,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모두 지켜보길 원한다고. 그 모든 걸 사람들에게 모두 보여줘야 하는 게 아이돌이고.”
일요일이라 그런지 차가 조금 막히는 듯, 차량의 속도가 슬쩍 느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바로 이미지야. 그리고 너희들은 사람들에게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서 보여줄 의무가 있는 아이들이고. 사소한 이미지의 흠결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실망을 안겨주는지 몰라? 몸매 관리가 되지 않아 배가 나오면 어떨 거 같아? 그때부터 너희들은 아이돌이 아니라 그냥 놀림감이 되는 거야. 사람들이 선망해야 할 대상이 될 수 없게 된다고. 그럼 끝이야. 말 한마디 잘못해서 공분을 사면 어떻게 될 거 같아? 그럼 끝이야. 거기서 다시 원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어. 가능하다 해도 수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걸 너희가 견딜 수 있을 거 같애?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애들이? 그러니까 애초에 그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거야.”
시계를 슬쩍 보니 그렇게 촉박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여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양 차선에 차가 밀리니까 속도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다. 조수석에서 주변을 훑는 매니저의 시선을 느꼈는지, 희숙이 ‘다음 IC까지 가면 좀 풀릴 거예요’라고 조용히 말했다.
“지금 톱클래스라고 불리는 애들이 잘하는 게 뭔지 알아? 자기 관리야, 자기 관리. 노래, 춤? 그건 기본이고 평소의 이미지를 잘 구축하고 유지하는 일을 잘한다고. 니들 눈에는 그 아이들이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 같지? 벌어놓은 돈이 많으니까 펑펑 쓰면서 여유롭게 지내는 것 같지? 그 아이들은 말이야, 지금도 먹는 거, 입는 거 전부 신경 쓰면서 살아. 카메라가 없을 때도,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에 있어도, 행동, 표정, 말 전부 조심하면서 산다고. 왜? 그런 사소한 것 하나가 꼬투리가 돼서 돌아온다는 걸 아니까.”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룸미러로 슬쩍 본 희숙이 피식 웃었다가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요즘 리얼이 대세라지만, 진짜 리얼은 없어. 너흰 리얼처럼 보이는 리얼을 만들어내야 하는 거야. 알겠어?”
이 바닥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처절한 리얼’. 그것은 현실의 가혹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리얼이 대세가 되는 요즘, 더욱 리얼리티 있게 만들어야 하는 이미지 전쟁을 일컫는 단어다. 감정마저 ‘리얼’하게 꾸며야 하는 시대다.
“괜찮겠지?”
매니저가 희숙에게 물었고, 희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강 휴게소만 지나면 풀릴 거예요. 그런데 잠깐 들려야 하지 않을까요?”
“거긴 사람들 너무 많아서 안 돼. 그다음은 어디야?”
“옥천 휴게소요.”
“그럼 거기 가자.”
“네.”
매니저가 다시 고개를 뒤로 슬쩍 기울이며 말했다.
“휴게소에서 화장실만 잠깐 들렀다가 간다. 알았지?”
“네.”
30분은 더 가야 할 거리다.
“그리고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눈이라도 붙여. 시간 날 때 자는 것도 자기 관리야.”
쪽잠은 연예인의 필수 스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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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이고, 어린 학생이라고 들었는데 다들 덩치가 어마어마하네.”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편인 채윤만 수줍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어디 학교에요?”
“장계 중학교요.”
“장계 중학교?”
“장계동이요.”
“아, 그래요?”
잘 모르는 눈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청호 봉사단이라고 해요.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는 봉사모임이고요,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봉사활동을 다니죠.”
소개를 하고 있는 이는 청호 봉사단의 단장으로서 나이를 말하진 않았지만 겉보기에 50줄에 다다른 이로 보였다. 선입견인지 몰라도 환한 얼굴과 미소는 ‘착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학생들은 이번에만 봉사활동 온 건가요?”
“네, 저희는 조금 즉흥적으로 결정한 면이 있어서요.”
단유는 친구들끼리 기억에 남을 일을 함께 경험하기 위해 선택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어린 학생들이 대견한 생각을 했어요. 제가 학생 나이 때는 방학 때 어떻게 놀까만 궁리했던 것 같은데.”
“아저씨는 옛날부터 봉사 활동 많이 하셨을 거 같은데요?”
지태가 넉살 좋게 다가서니 단장이 크게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요. 저도 봉사 활동을 하기로 마음 먹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아요.”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너무 삶이 척박하다는 느낌이 들어 고민을 했고, 문득 대학 때 농활 갔었던 기억을 떠올려 봉사 활동을 해 볼까 생각했었다고 단장은 옛일을 털어놓았다.
“지금도 가끔 저희 봉사단에 들어오게 된 계기를 말씀하시는 분들 중에 저랑 비슷한 사람이 많아요. 봉사 활동을 하면, 몸은 조금 힘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져서 일주일 기분 좋게 지낼 수 있다고도 말씀들 하시죠.”
“그럼 단장님도 회사 생활하시면서 일주일에 한 번 활동하시는 건가요?”
“사실 회사를 그만뒀어요, 저는. 회사 생활을 계속 하다보니 돈을 버는 건 둘째치고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니까 도저히 계속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럼 봉사 활동만 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예전보다 봉사 활동을 많이 하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활도 있으니까, 조그만 자영업도 하고 있죠.”
부원장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자, 다들 여기서 인사만 계속 하실 거예요?”
“죄송합니다, 부원장님. 오랜만에 이런 어린 친구들을 만나니 어쩐지 흐뭇한 마음이 들어서요.”
“단장님, 그럼 저흰 뭐가 되요?”
“너희는 먹을 만큼 먹었잖아?”
“저희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안 했거든요?”
단장의 옆에서 재잘거리는 여고생 두 명의 말에 봉사단 사람들이 귀엽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만나서 반갑고, 그럼 오늘 우리랑 같이 할래요?”
“네, 저희가 방해만 안 된다면요.”
“봉사하는데 방해가 어딨어요? 다 조금씩 도우면서 작은 힘을 보태는 거죠.”
부원장이 웃으며 단장의 말을 거들었다.
청호 봉사단은 총 8명이었다. 가입된 이는 훨씬 많지만, 개인의 생활이 있는 이들이다 보니 다 같이 모여서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했다.
“너희가 얘들이랑 나이 차이가 적으니까, 너희들이 옆에서 좀 도와주고 그래. 선배니까. 아, 얘들은 아까 들었다시피 고등학생들이고 3학년? 맞나?”
“저희가 몇 살인지도 몰라요?”
“3학년 맞을 거야. 둘 다 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지망한다고 하는데, 어지간하면 당분간 봉사는 쉬고 수능 준비하라고 해도 그렇게 말을 안 듣네. 요즘 사회복지학과도 꽤 점수가 높아서 쉽게 들어가기 어려울 텐데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단장의 얼굴에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보였다. 새침한 표정으로 단장과 농담을 주고 받던 두 여고생은 단유네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박선하. 얘는 구지연. 효인여고 3학년이야.”
단유네도 짤막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일단 일부터 하자.”
“뭐부터 하면 되나요?”
“아까 들어보니까, 애들 옷이랑 기저귀 같은 거 빨래를 해야 한다는데, 옷은 세탁기가 해주니까 나중에 끝나고 말릴 때만 하면 돼. 그런데 기저귀는 손빨래를 해야 하거든. 그거 좀 도와줘.”
“네.”
그때 단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한 청년이 다가왔다.
“너희 둘은 우리랑 같이 가자.”
단유와 명수를 가리킨 청년은 ‘힘 좀 쓰게 생겼네’라고 덧붙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보니 다들 웃음이 많은 것 같다.
그리하여 지태와 채윤은 두 여고생과 함께 빨래를 하러 가고, 단유와 명수는 청년을 따라 건물의 뒤로 향했다.
“여기 철망을 수리해야 되거든?”
보육원 건물에 뒤에는 낮은 산이 하나 있는데, 가끔 너구리나 살쾡이 같은 야생동물들이 넘어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 펜스를 만들어 막았는데, 이 펜스가 부실해서 새로 설치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땅을 파고 여기에 기둥을 박은 다음에 철망을 여기서 여기까지 설치하는 일이야. 쉽지?”
청년은 웃으면서 두 사람에게 장갑을 건넸다.
“미리 이런 일 할 줄 알고 준비한 거 같은데?”
두 사람의 머리에 씌어진 밀짚모자를 가리키며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여러 사람이 붙어서 하는 작업이라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단유와 명수는 별로 한 것도 없이 힘 좋다고 칭찬을 듣기 일쑤였고, 그런 칭찬에 명수도 흥이 났는지 얼굴이 벌개지도록 땀을 흘리며 땅을 파고 기둥을 박았다. 단유도 명수의 곁에서 그 못지않게 열심히 삽을 움직여 작업을 도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유는 마법이라는 힘이 있고, 그 힘을 이용하면 지금 이런 불볕더위에 고생할 이유가 없다. 땅을 파는 것 정도야 손짓 한 번이면 끝날 일이고 기둥을 박고 흙을 덮는 것도 금방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런 힘을 사용하지 못하고 이렇게 땀을 흘리고 있으니, 힘이 있어도 무소용이다.
하지만 힘을 사용했다면, 지금 명수가 흘리는 땀도 보기 힘들 것이고, 지금 느끼는 이 충만한 감정도 쉽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덥지?”
단유의 물음에 명수는 삽질을 멈추고 허리를 피며 말했다.
“응. 조금. 그런데 바람이 부니까 괜찮네.”
손을 슬쩍 들어올려 불어오는 바람을 손바닥으로 느껴보는 명수였다. 단유가 고개를 돌려 바람이 불어오는 산을 보았다. 푸른 나무를 거쳐 불어오는 바람이라 그런지 싱그럽고 시원했다.
“오길 잘한 거 같다.”
다시 단유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명수가 히죽 웃으며 턱 끝에 맺힌 땀을 닦았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우리만 이렇게 편하게 지내도 되는 걸까?”
역시. 단유와 비슷한 생각을 먼저 떠올린 모양이었다.
“보육원이란 곳에 다시 간다는 거 자체가 마음에 걸렸어. 그냥, 겁이 난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뭐랄까. 그런 거 있잖아? 난 니가 얼마나 힘든지 안다, 면서 잘난 척하는 기분. 그런 기분이 들까봐 무섭기도 하고 그랬어.”
정리되지 않은 명수의 말이었지만 단유는 조금 이해가 갔다. 명수는 그런 아이였다. 늘 자기 기분 좋은 일만 하는 것처럼 보여도 남한테 피해를 끼치는 일은 극히 피하는 성격. 알게 모르게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쓰면서 그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눈치 보는 아이였다.
보육원 생활, 이라고 단순히 넘길 수만은 없는 게, 그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부모의 애정과 보살핌이 많이 필요한 나이에 그것으로부터 강제로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상처다. 그 상처를 가진 이들은 티가 나든 나지 않든 주위 사람들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단유와 명수는 분명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잊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가슴 속 깊이 그 상처와 트라우마를 품고 살아야 한다.
어떤 이는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자신감을 잃고 웃음까지 잃었다. 또 어떤 사람은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시작인데 너무 감상이 빠른 거 아냐?"
"그런가?"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이를 드러내는 명수였다.
“뭣들 해? 점심 시간 전까지 끝내야 돼!”
건너편에서 삽질을 하던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네, 하고 있어요.”
“후딱 끝내고 쉬자. 덥잖아.”
“네!”
명수도 덩달아 웃으며 삽을 들었다. 단유도 일단 생각을 뒤로 하고 삽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