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말리고 싶네요.
태성인력은 한남동 인근에 위치한 사무소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인력 사무실처럼 보일지라도 내부는 그러하질 않았다.
일반적인 인력 사무실처럼 일용직을 파견해주는 사무실이 아닌, 실제 인근 대저택과 기업을 상대로 하는 전문 인력을 파견해주는 회사였다.
정주임과 함께 이력서를 작성한 뒤 태성인력을 방문했다.
그녀는 집안의 메이드로서, 나는 운전기사로서 면접을 볼 예정이었다.
면접 대기자들이 꽤 있었다.
유독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제각기 한 손에 들린 이력서가 눈에 밟혔다.
"긴장 되냐?"
"전혀요."
면접 대기실에 앉은 정주임의 눈빛이 흔들렸다.
"왜 그래? 너답지 않게. 발도 떨고 손은 가만히 내버려 두질 못하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데"
"괜히 저희가 어르신들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1년에 조현정 수행비서만 20명이 갈린다잖아."
"…"
"그걸 일자리라고 볼 수 있을까?"
"아뇨."
때마침 한 여비서가 나의 이름과 정주임, 그리고 다른 어르신들 성함을 불렀다.
이력서를 건네고 총 다섯 명이 면접실로 향했다.
대표로 보이는 한 사내가 책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꽤나 젊어 보였다.
나이는 30대 초반.
얼굴도 온순하고 착하게만 보였다.
그가 여비서에게 이력서를 전달받자마자 한 장씩 살폈다.
그리고 한 어르신의 성함을 부르며 말했다.
"삼군? 삼군 어르신?"
"네."
삼군이라 불리는 어르신이 손을 들었고, 그는 정중한 말투로 말했다.
"흡연을 30년 동안 하셨다고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체력도 아직 팔팔하고 일에는 지장 없습니다."
"지장 많아요. 나가세요."
"…"
"나가시라니까."
"네."
어르신이 헛기침 몇 번을 하더니 조용히 쌍욕을 하며 나갔다.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에는 60대로 보이는 한 할머니의 성함을 불렀다.
"바퀴벌레 잘 잡아요?"
"네?"
대표는 별안간 이상한 질문을 해댔다.
"벌레 잘 잡냐고요. 손바닥으로."
"보이면 잡습니다."
그러자 조태성 대표는 책상 위에 있는 유리컵을 가리켰다.
유리컵 안에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갇혀있었고,
"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겠어요?"
유리컵 내부를 기어 다니는 모습에 할머니가 그만 질겁하고 말았다.
조태성 대표의 면접 방식이 굉장히 독특하고 특이했다.
뭔 이런 면접이 있어?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실제 업무와 연관된 일이겠거니 했다.
그가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가세요. 벌레 정도는 때려잡을 수 있어야 일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면접실을 빠져나간 뒤 이제 한 어르신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어르신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위에 있는 유리컵을 들춰내며 손바닥으로 바퀴벌레를 때려잡았다.
-쾅!
그리곤 손바닥에 묻은 바퀴벌레를 옷으로 대충 털어낸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본 조태성 대표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질문했다.
"음주, 흡연도 안 하시고, 벌레도 잘 때려잡으시고 운전 경력도 많고…"
"시켜만 주신다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습니다."
조태성 대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저도 그러고 싶은데요. 한 가지 결격사유가 있어요."
"뭐죠?"
"방금 제게 다가오셨을 때, 몸에서 냄새가 났거든요."
"…!"
"알죠? 아무리 씻어도 벗겨지지 않는 그 특유의 진득한 어르신 냄새, 누군가는 향기롭다곤 하지만 우리 회장님은 아주 질색하거든요. 꼭 본인 아버지 냄새 같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세상에 이딴 면접이 어디 있습니까!"
"나가주시죠."
"언론에 제보할 겁니다!"
"하세요. 법적으로 문제 될 것 없으니까 얼마든지 하셔도 됩니다."
어르신이 온갖 쌍욕을 하며 면접실을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건 정주임과 나.
조태성 대표는 이력서를 호기심 짙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경을 올려 쓴 그가 입맛을 다시며 정주임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력서와 정주임을 번갈아보던 그가 아니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다른데…"
"네?"
"사진하고 실물하고 너무 다르다고요. 평소에 화장을 진하게 하는 편이세요?"
"아뇨."
정주임이 다소 기분이 나쁜 투로 대답했다.
"변장 수준이라서 물어봤어요."
"…"
"손톱 좀 보죠."
정주임이 조태성 대표에게 손을 펼쳐 보여줬다.
"손톱이 기네. 전부 깎아야 일할 수 있어요."
"손톱을 왜요?"
"아니면 일 못해."
"하…"
"머리도 단발로 정리하고 절대 화장하지 말고."
"화장도 하지 말라고요?"
"남한테 잘 보일 일 있어?"
"그건 아니지만…"
"괜히 예뻐 보였다간 회장님 심기만 건드리는 일이니까 민낯으로 다녀요"
"네"
정주임이 화를 꾹 눌러 참는 모습이었다.
"벌레는 잡을 수 있나?"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왜 벌레를 잡아야 하는 거죠? 제가 방역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요."
"살충제를 못 쓰거든."
"…"
"우리 회장님 피부가 민감하시니까 살충제를 못 써요. 그런데 딸린 정원이 수백 평인데 벌레들이 득실득실 하거든, 특히 이런 여름에는 그게 더 심해. 그래서 직접 손으로 때려잡아야 돼. 이제 이해가 됐어요?"
"네."
"그래서 벌레는 잡을 줄 알고?"
분한 듯 손발을 심하게 떨던 정주임이 이내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자리에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조태성 대표 앞으로 향하더니 책상에 있는 바퀴벌레를 쾅 하며 내려쳤다.
"제가 할아버지랑 옛날에 시골에서 오래 살아서 이런 거 많이 해봤거든요. 이 정도면 만족스럽죠?"
그녀가 해죽 웃었다.
"연락드릴 테니까 나가 계세요."
정주임이 면접 실을 빠져나가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게 윙크를 한 그녀의 눈은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의 손에 묻은 바퀴벌레 사체가 눈에 밟혔다.
나는…
벌레를 못 잡는데,
큰일이다.
* * *
조태성 대표가 내 이력서를 살피며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 있었다.
수행 비서를 뽑는 자리였기 때문에 스펙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이…해봐요"
"네?"
"이빨 좀 보자고"
"아…네."
조태성 대표 앞에서 허연 이를 보여줬더니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치 잘하시고 우리 회장님은 입에서 냄새나는 거 싫어하시니까. 담배는 안 피우죠?"
"네."
"김도일씨?"
"네."
"굉장히 특이한 이력이 있네요.…"
"…?"
"산재 받은 이력까지 있으면 어려운데…"
"왜요?"
"하…우리 회사는 산재 안 되는 거 알죠?"
"개의치 않습니다."
"나중에 가서 딴말하기 없기에요? 차후에 4대보험 포기 확약서하고 산재 보상 포기서도 작성해주셔야 돼요."
하, 참나.
산재 및 4대 보험 포기 확약서?
세상에 처음 들어보는 확약서였다.
물론 법적 효력 따위는 없다.
"아…알겠습니다."
"나가보세요."
"벌레는…"
"운전기사가 벌레 잡을 일은 없을 겁니다. 나가보세요."
"혹시 면접 결과는 언제까지 나오는 거죠?"
"오늘까지 개별 연락드립니다."
"네."
대기실을 나가자 로비에는 정주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잘 끝난 것 같은데?"
그때, 한 사내가 로비로 문을 발칵 열고 들어왔다.
조태성 대표도 모든 면접을 끝낸 뒤라 면접실 문을 열고 나왔고, 그들이 서로의 눈을 마주치자 조태성 대표가 도망치듯 면접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사내는 면접실 문을 쾅쾅 두드렸다.
"씨발 문 열라니까!"
-쾅!
-쾅!
그는 울분이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고, 면접실 내부에서 조태성 대표가 맞받아쳤다.
"합의금 받아 놓고선 이제 와서 합의를 취소하겠다고?"
"합의금 꼴랑 오백만 원? 너 때문에 내 동생 인생이 아작 났다고 개새끼야! 문 열어!"
그가 한참을 문을 두들기며 소란을 피웠다. 이내 여비서가 경찰을 부른 듯 로비에는 경찰관들이 다가왔다.
마치, 오늘도 왔냐는 투로 그를 바라봤다.
"이제 그만하시죠. 개인 사업장에서 난동 부리시면 안 됩니다. 민사소송 진행해서 법대로 하시면 될 일이잖아요."
"대형 로펌을 제가 어떻게 이기냐고요. 해보나 마나 한 소송이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뭘 원하시는데요?"
"합의금 오백만 원이 아니라, 적어도 오천만 원 이상은 받아야 될 것 같거든요. 제 동생이 뭣도 모르고 그 돈 받아 왔는데, 애가 완전 반병신이 됐잖아요. 씨이발!"
"사장님 그건 나중에 사적으로 만나서 하시면 되고, 일단 개인 사업장에서 난동 부리시면 저희도 어쩔 수가 없어요. 나중에 말로 푸시죠."
"하…"
그가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에라이 씨이발!"
화가 난 듯 옆에 있는 화분을 들어 내치려는 것을 내가 겨우 그의 팔을 막았다.
"그만하죠. 그러다 잡혀가요."
"당신은 뭐야?"
그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 * *
한남동 인근 카페에서 그 형제를 만났다.
동생은 20대 중반이었고, 형은 30대 중반이었다.
나이 차이가 꽤 됐다.
동생은 며칠간 굶은 듯 얼굴이 꾀죄죄하여 피골이 상접해 있었고 옆에서 한숨만 푹푹 내쉬던 형이 찬물을 벌컥 들이켰다.
"벌레를 먹였다고요?"
"그렇다니까요. 제가 동생한테 이 얘기를 듣고 씨발 얼마나 화가 났던지, 찾아가서 다 부수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니까요."
조현정이 어느 날 동생에게 음식을 선물했는데, 음식물에는 벌레가 잔뜩 있었다고 한다.
조현정은 본인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먹어달라는 말에 동생은 하는 수 없이 한입을 베어 먹었는데, 그 자리에서 음식과 벌레를 먹어 치웠다고 한다.
"왜 드셨어요?"
정주임이 이해하지 못하는 투로 물었다.
"자…자…잘릴 까…바요."
동생은 말을 심하게 절었다.
"그…그래서 스….스트레스가 엄청 심…심해져서 말…말을 어눌…어눌하게…휴…"
20대 중반인 그는 조현정의 개인 운전기사였다.
내가 만약 면접에 합격한다면 조현정의 개인 운전기사로 채용될 예정이었다.
"벌…벌레 같은 새…새끼라고 욕을 많이 했어요."
그리곤 합의금을 받았다고 한다.
조현정이 직접 지갑에서 꺼낸 약 오백만 원. 그는 오백만 원에 모든 일을 넘어가 주기로 서면 합의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경…경황이 없어서요. 그 돈을 받는 게 아닌데요."
"참 벌레 같은 년이네요."
정주임이 말했다.
바퀴벌레를 찍어 누르던 기세가 풍겨 나왔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합의금 오천만 원이면 해결 될 거로 생각하시나요?"
"말이 오천만 원이지…저희는 단순히 사과 받고 싶은 것뿐입니다."
동생이 사과라는 단어에 눈물을 훔쳤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조태성 대표였다.
"잠시 만요. 전화 좀 받겠습니다."
그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김도일씨 내일부터 출근 가능하신가? 급하게 일을 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가능은 한데요. 몇 시부터 어디로 출근하면 될까요?"
-내일 새벽 네 시까지 우리 사무실로 와요.
"네."
전화를 끊은 뒤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내일 동생분이 일했던 운전기사로 취업할 것 같은데요."
"참…죽어도 말리고 싶네요."
"제가…몇…몇 가지 티…팁을 드리자면 절대 먼저 말…말…걸지 마세요."
그들과 긴 대화를 통해 조현정의 성질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마당에 딸린 정원을 사랑하지만, 풀벌레는 싫어했고,
거실의 통유리창 너머 탁 트인 전경을 사랑하지만, 햇빛은 싫어하는 여자
고구마를 좋아하며 자주 먹지만, 본인이 까서 먹는 건 싫어하는 여자.
성질은 상세히 열거하자면 이랬다.
누군가는 애교스럽게 봐줄 수 있겠지만,
옆에서 하나하나 뒤치다꺼리해주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피곤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