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7화 (17/296)

17화 운영의 마술사 04

코너가 손끝으로 담배를 털며 말했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가을 리그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군.”

브라이언은 놀라서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릴 뻔했다.

“가을 리그라고요?”

애리조나 가을 리그는 마이너리그 유망주들의 잔치였다.

그곳에 초대받았다는 것은 팀에서 주목하는 유망주라는 뜻이었다.

“트리플에서 둘, 더블에서 넷, 그리고 싱글에서 하나.”

“가을 리그 쿼터입니까?”

“맞아. 우리 팀이 가을 리그로 보낼 유망주 숫자야.”

트리플A보다 더블A가 많은 것은 더블A 유망주들의 잠재력이 더 높기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준 유망주 중에는 트리플A를 거치지 않거나 짧게 경험한 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킴이 이 성적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하킴을 누르고 애리조나 리그에 참여할 수 있을 거야.”

하킴은 포수이면서 클린업을 치는 유망주였다. 그는 이번 시즌 더블A에 콜업되었으나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채 싱글A로 다시 내려가야만 했다.

브라이언이 힘을 주어 말했다.

“킴이라면 할 수 있을 겁니다.”

코너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친구가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군. 공만 빠른 유망주는 이제 지겨워.”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 * *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한 달.

김민은 팀의 7승 중 3승을 책임졌다.

팀의 에이스가 누구인지 성적으로 증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눈부신 투구군.”

넬슨 감독은 화려한 기록지에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나 투수 코치 샘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스터프가 나빠졌습니다.”

“구속은 그대로 아닌가?”

“팔의 각도가 내려갔습니다. 이대로는 위력적인 공을 던질 수 없습니다.”

김민의 폼은 오버핸드에서 쓰리쿼터에 가깝게 내려온 상태였다.

샘은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닝 수가 최근 많았어. 피로 때문에 팔이 내려갔을 수도 있지.”

“그렇다면 체력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자네가 한 번 체크해 보겠나?”

“실은 어제 이미 미팅을 가졌습니다.”

넬슨 감독이 턱을 쓰다듬었다.

“흠, 결과는?”

“바꿀 의도가 없어 보였습니다.”

“스스로 팔을 내렸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메이저리그는 정통 오버핸드 투수를 선호했다. 덕분에 많은 유망주들이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지 못한 채 오버핸드 투구를 강요받았다.

김민도 그런 유망주 중 하나였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도 오버핸드 투구를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김민은 볼튼과 훈련하며 자신의 약점을 깨달았다.

‘내 키로 정통 오버핸드는 어울리지 않는다. 공의 무브먼트를 생각할 때 사이드암이나 쓰리쿼터가 낫다.’

그는 다시는 오버핸드 투구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넬슨 감독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경기를 더 지켜보도록 하지. 쓰리쿼터라고 해도 성적만 좋다면 오케이 아닌가?”

“팀을 지탱하는 에이스가 되려면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팀을 지탱하는 에이스라. 로켓맨인가?”

2000년대 초반 이상적인 에이스는 강력한 패스트볼을 가진 오버핸드 투수였다.

이것은 전설적인 투수 로저 클레멘스의 영향 덕분이었다.

이 시기 로저 클레멘스는 현역 넘버원은 물론 메이저리그 130년 역사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마이너리그 투수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넬슨 감독은 투수 코치 샘에 비해 개방적인 입장이었다.

“샘, 모두 로켓맨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감독님.”

“자네가 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볼 때 킴은 오버핸드에 강점이 있는 투수가 아니야. 일단 키가 작지 않은가?”

김민은 프로야구 기준으로는 키가 작은 투수가 아니었다.

하나 메이저리그에서는 달랐다. 김민의 키는 평균보다 아래였다.

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확실히 킴은 로켓맨처럼 좋은 체격을 타고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시도도 하지 않고 마이너리그에서 투구폼을 바꾼다는 것은…….”

넬슨 감독이 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가 투구폼을 바꾼 것은 아마 구속 때문일 거야.”

“구속이라고요?”

“우리 팀은 강속구 투수를 선호하지 않나? 오버핸드로 던지는 것보다 쓰리쿼터가 구속은 더 나올 걸세. 익숙해지면 1, 2마일 정도 나오겠지. 킴이 92마일(148km)을 던질 수 있다면 그레이도 관심을 보이지 않겠나?”

샘이 쓴 약을 마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투구폼을 바꾼 게 프런트에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정말 아쉬운 결정이군요.”

“선수 입장에서는 메이저리그 콜업이 가장 우선이겠지. 코칭 스탭인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누가 이해해 주겠나?”

샘은 스카우트 팀장 그레이가 구속에 집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브라이언이 킴에게 뭔가 말했어. 그래서 투구폼이 바뀐 거야.’

그는 프런트의 입김이 닿았다면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쉬운 일입니다. 더 높이 날 수 있는 선수였는데…….”

크랩스 코칭 스탭은 김민이 메이저리그에 가기 위해 투구폼을 고쳤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김민이 노리고 있는 것은 메이저리그 콜업 그 이상이었다.

* * *

“93마일(150km).”

“빠른데?”

스피드건을 쥔 스카우트와 노트에 뭔가를 옮겨 적는 파트너.

두 사람은 플로리다 말린스 소속 스카우트로 말린스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 쥬피터 해머헤드스의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포트 샬로트를 찾았다.

“저 친구 말이야. 오버핸드라고 하지 않았어?”

두 사람이 주목하고 있는 선수는 바로 김민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여기 스카우트 리포트에 분명 오버핸드라고 되어 있는데 말이야. 오늘 보니 쓰리쿼터에 구속도 완전히 달라.”

“이름을 잘못 적은 게 아니라면 2년 동안 뭔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군.”

그들이 가진 데이터는 김민이 마이너리그에 막 발을 들여놓았을 때 작성된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제구력이 좋은데?”

“코너를 노리는 공도 많고, 맞아도 땅볼이 많아.”

김민은 말린스 스카우트를 앞에 두고 인상적인 피칭을 선보이고 있었다.

‘확실히 쓰리쿼터가 답이었어.’

향상된 제구력은 그의 운영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해머헤드스 선수들은 김민의 다양한 구질과 완급조절에 헛스윙으로 일관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오늘 경기 5번째 삼진.

김민은 매회 삼진을 잡아내며 팀의 리드를 지켰다.

“나이스 피칭!”

“킴! 좋았어!”

관중석에는 그의 팬들이 플래카드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제 포트 샬로트의 어엿한 스타였다.

넬슨 감독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라고, 킴은 잘 해내고 있어.”

샘은 김민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소를 짓지 못했다.

“확실히 구속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공을 놓는 지점이 낮아진 건 상위 리그에 올라갔을 때 악재가 될 수 있습니다.”

김민도 샘이 지적한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투구폼 변화를 선택한 것은 투구폼 변화로 얻는 강점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말린스 스카우트들은 김민이 여섯 번째 삼진을 잡은 순간 미간을 좁혔다.

“이런 식으로 끌려가면 보고서에 적을 게 없겠는걸.”

“그러게 말이야. 보고서에 원석 없음. 이라고 적을 수도 없잖아.”

“그렇게 적으면 보스가 자네 목을 날려 버리겠지.”

두 사람은 김민의 압도적인 투구에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구종이 상당히 다양하군.”

“동양에서 온 투수들은 대부분 다양하지 않아?”

“그렇진 않아. 노모도 포크볼이 유명해서 그렇지. 구종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립튼은 김민의 구종을 빠르게 체크하곤 혀를 찼다.

“오늘 던진 구종이 여섯 개야.”

그의 파트너 해밀턴이 스피드건을 내리며 물었다.

“정말?”

“포심 패스트볼, 커브, 슬라이더, 스플리터, 그리고 체인지업과 커터.”

“커터 맞는 거야? 슬라이더를 잘못 본 거 아니고?”

“자네가 불러준 구속에 따르면 88마일(142km)라고. 93마일(150km)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선수가 어떻게 슬라이더를 88마일까지 던지겠어.”

메이저리그에는 간혹 패스트볼처럼 빠른 슬라이더를 던지는 선수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포심 패스트볼과 스피드 차이가 확연했다.

김민은 최선을 다해 공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4회부터는 다양한 구종을 테스트하며 상대 반응을 살폈다.

‘싱글A는 단순히 성적을 내서 더블A로 올라가기 위한 곳이 아니야. 더블A 그 이상의 리그에 맞설 무기를 만드는 곳이지.’

그는 그립을 고쳐 잡고 빠르게 승부했다.

탁!

먹힌 타구가 2루수 머리 위에 떠올랐다.

“2루수!”

“오케이!”

팡!

글러브에 들어간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김민은 2루수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5이닝 무실점 6삼진 2피안타 2사사구.

립튼이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김민을 보며 말했다.

“해밀턴, 저 친구가 이번 해 드래프트라면 몇 라운드에 지명을 받았을까?”

해밀턴이 스피드건을 옆에 놓으며 대답했다.

“2라운드 끝번이나 3라운드 초반? 어느 쪽이든 나쁜 순위는 아닐 거야.”

“1라운드는 무리겠지?”

“구속이 아무래도 덜 나오니까.”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투수를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구속이었다.

그다음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과 체격, 즉 피지컬을 보았다.

김민은 앞에 두 가지 모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계약금 역시 다른 미국 진출 선수보다 낮았다.

그가 샌디에이고로부터 받은 계약금은 30만 달러(3억8천만 원).

그래도 김민은 미국행을 선택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피칭은 80점 정도 줄 수 있겠어. 슬라이더와 스플리터가 전반적으로 잘 들어갔고, 커브도 좋았어. 아쉬운 게 있다면 밸런스와 제구력. 안타 2개 모두 실투였어.’

투구폼이 바뀌면 변화구의 궤적도 바뀌기 마련이었다.

김민은 지난 몇 경기 동안 바뀐 궤적을 유심히 관찰했다.

“킴, 오늘 스플리터는 포구가 상당히 힘들던데. 그립을 바꾼 거야?”

김민이 스미스의 물음에 답했다.

“그립을 바꾼 건 아니고 공을 놓는 시점을 살짝 바꿔 봤어.”

스미스는 실연의 아픔을 훈련으로 승화하고 있었다. 그의 훈련량은 크랩스 타자 중 제일이었다.

“나보다는 오늘 스미스가 좋던데? 플레이밍이 아주 좋아.”

“매 경기 신경 쓰고 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과 블로킹 정도니까.”

스미스는 무미건조한 선수를 벗어나기 위해 수비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킴 말대로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손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스미스의 발전된 수비력은 말린스 스카우트의 눈에도 들어왔다.

“포수 쪽도 괜찮아. 2회 스플리터 블로킹 2번도 아주 좋았고.”

“포구도 안정적이더라고. 프레이밍이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말이야.”

해밀턴은 프레이밍의 가치를 낮게 보는 스카우트 중 하나였다.

반면 립튼은 조금 더 높게 가치를 두었다.

“프레이밍은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다고. 한 경기에 1, 2개만 성공해도 어디야.”

“그 1, 2개 때문에 포구가 불안해질 수 있다고.”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은 다음 순간 크랩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번 회 첫 타자는 지명타자 하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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