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8화 (18/296)

18화 에이전트 01

- 애리조나 가을 리그 -

“이적 후 11게임 평균자책점 2.48, 7승 2패 탈삼진은 66개.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다음 시즌은 무조건 더블A입니다.”

코너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킴이 이 정도까지 좋은 성적을 낼 줄은 몰랐어. 이번에는 그레이도 반박하지 못할 테지.’

그러나 스카우트 팀장 그레이는 여전히 김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피지컬이 부족합니다. 우리가 찾는 투수는 팀의 기둥이 될 그런 투수가 아닙니까? 킴은 잘해야 3, 4선발입니다.”

홀먼 단장은 두 팀장의 말을 번갈아 듣곤 고개를 이반 감독에게 돌렸다.

“이반 감독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시즌 탬파베이의 성적은 꼴찌였다.

다른 팀에서 이와 같은 성적을 낸다면 시즌 중 경질이었다.

하지만 탬파베이는 사정이 달랐다.

신생팀인 데다가 마켓도 작아서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없었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감독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반 감독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적이 좋은 투수는 일단 키워 봐야겠죠. 운영이 좋다고 했으니, 어느 리그에 올려놔도 안정감이 있을 겁니다.”

홀먼 단장은 이반 감독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킴은 다음 시즌 더블A에서 시작할 거야.”

9월 초.

메이저리그는 시즌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는 이미 시즌을 종료, 다음 시즌 대비에 들어갔다.

오늘 열린 회의는 다음 시즌 더블A 로스터에 관한 것이었다.

“다음 선수는 하킴.”

단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지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되든 안 되든 하킴은 더블A에 올려놔야겠죠.”

“하킴과 브래들리는 꼭 키워야 하는 자원입니다.”

“타자가 부족한 팀 사정상 일단 40인 로스터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홀먼 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킴도 더블A에 올려놓았다.

“이것으로 7명의 선수가 모두 결정되었네.”

7명의 새로운 더블A 선수가 탄생했다는 것은 더블A 팀에서 7명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뜻했다.

누군가는 트리플A로 누군가는 메이저리그로 누군가는 방출의 길을 걸어야 했다.

더블A로 승격한 크랩스 선수는 다음과 같았다.

하킴, 브래들리, 김민, 스나이더, 제임스, 모건, 오티스W.

김민과 제임스를 제외하곤 모두 타자였다.

“다음은 애리조나 가을 리그 로스터인데. 더블A에서 출전할 선수는 정해졌나?”

그레이가 단장의 물음에 대답했다.

“보니아, 카를로스, 케니, 록튼입니다.”

“싱글A에서는 누가 나가나?”

“하킴을 보내고 싶은데. 이미 더블A에서 출전하는 록튼의 포지션이 포수라서…….”

운영팀장 코너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싱글A에서까지 타자를 보내면 가을 리그 팀 로스터가 엉킬 겁니다. 싱글A에서는 투수인 킴을 보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홀먼 단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른 의견 있나?”

“없습니다.”

“킴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홀먼 단장이 오른손 검지를 들며 말했다.

“그럼 킴으로 하지.”

그레이는 코너에게 또다시 밀린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시즌 잇달아 트레이드에 실패한 터라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할 수 없었다.

* * *

크랩스는 김민의 활약에 힘입어 시즌을 2위로 마쳤다.

하지만 싱글A팀에게 성적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방출의 칼바람이 몰아쳤다.

“다섯 명이나 떠났어.”

“다섯 명이면 다행이지. 지난해는 아홉 명이나 나갔다고.”

스미스와 볼튼은 더블A 승격에는 실패했지만, 싱글A 잔류에는 성공했다.

“킴은 더블A라지?”

“다음 시즌부터.”

“하긴 킴이 올라가지 않으면 누가 올라가겠어.”

“볼튼은 어떻게 할 거야? 고향으로 돌아갈 건가?”

볼튼이 스미스에게 되물었다.

“넌?”

“난 여기 남아서 킴과 함께 하기로 했어.”

“킴과?”

“내년이면 25세잖아. 이번 겨울에 어떻게든 해 봐야 해.”

볼튼은 22세로 스미스에 비하면 여유가 있었다.

“다들 여기서 뭐 해?”

고개를 돌리니 김민이 서 있었다.

“러닝 끝난 건가?”

“오늘은 조금만 돌았어.”

“시즌이 끝나도 쉬질 않는구나.”

“남이 쉴 때가 바로 기회 아니겠어?”

메이저리그, 아니 프로야구는 경쟁이었다.

다른 선수가 쉴 때 같이 쉰다면 딱 그만큼밖에 할 수 없었다.

김민이 볼튼에게 물었다.

“볼튼은 어떻게 할 거야?”

“오프 시즌?”

“그래.”

“나도 여기서 같이 훈련할까?”

“결정되면 토니에게 알려 줘. 남은 선수가 몇 명인지 알아야 한다고 하더라.”

김민이 가볍게 몸을 풀면서 스미스에게 말했다.

“오늘은 캐치볼 위주로 할 거야.”

“몸만 푸는 건가?”

“첫날부터 뜨겁게 갈 필요는 없겠지. 오프 시즌은 생각보다 길다고.”

볼튼은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곳에 남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넬슨 감독은 훈련장에 남아 있는 세 선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시즌에는 더블A로 올라가는 선수가 늘겠군.”

그의 곁에는 타격 코치 후안이 서 있었다.

“스미스는 배트가 조금만 도와줘도 상위 리그가 가능할 겁니다. 다만, 빨리 좋아져야겠죠. 나이가 나이니까요.”

“수비형 포수는 어떤가?”

“수비형 포수란 배트가 좋지 않은 포수를 말하는 것뿐입니다.”

후안은 수비가 되지 않는 포수는 포수가 아니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좋아. 그럼 자네가 여기 남아서 스미스의 배트를 좀 봐 주게.”

후안은 넬슨 감독의 말에 눈이 커졌다.

“네?”

“계약 기간이 보름 남아 있잖아. 보름 동안 뭐할 건가?”

후안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보름 정도 봐 주는 걸로 크게 달라질까요?”

“1대1로 봐 준다면 도움이 될 걸세. 보름이 힘들다면 일주일도 좋아.”

후안은 일주일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주일로 하죠. 그다음 주에는 가족 여행이 있어서…….”

“후안, 스미스를 부탁하네. 나는 킴을 좀 만나 봐야겠어.”

그는 말을 마친 뒤 감독실을 향했다.

* * *

김민은 넬슨 감독의 호출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일까? 더블A 승격 때문은 아닌 것 같고 말이야.’

툭툭.

노크를 하자 안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시즌을 2위로 마쳤기 때문일까?

넬슨 감독의 표정은 밝았다.

“앉게.”

김민이 의자에 앉자 넬슨 감독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더블A에 올라가게 된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야구는 더블A가 끝이 아니지. 샘은 자네가 구속에 집착한다고 걱정하고 있어.”

김민은 넬슨 감독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쓰리쿼터 투구폼 때문이군.’

“투구폼을 바꾼 건 스피드 때문이 아닙니다.”

넬슨 감독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흠, 스피드가 아니면 무엇 때문인가?”

“제구력과 무브먼트 때문입니다.”

넬슨 감독은 김민의 대답에 속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허, 제구력과 무브먼트라. 우리 생각이 너무 짧았군. 이 두 가지는 생각도 못했어.’

그는 꽤 놀랐지만, 무덤덤한 척 말했다.

“그래서 제구력과 무브먼트는 좋아졌나?”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습니다.”

“기록을 보면 투구폼을 바꾼 이후에도 1회가 좋지 않았어. 여전히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하는 건가?”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1회 주심의 존을 확인하는 건 경기를 풀어나가는 과정 중 하나입니다.”

“톰 글래빈이 모델인가?”

톰 글래빈은 애틀란타의 에이스로 34세 시즌인 2000년 시즌도 20승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는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로 김민처럼 1회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하곤 했다.

“톰 글래빈과 같은 선수가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겁니다.”

넬슨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걸세. 그리고…… 자네의 가을 리그 참가가 결정되었네.”

가을 리그에 참가한다는 것은 팀이 주목하는 유망주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제가 가을 리그에 나간다는 말씀이십니까?”

“사실은 어제 연락이 왔는데. 자네에게 전달하는 게 늦었군.”

김민은 과거 7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뛰었지만 단 한 번도 가을 리그에 참가한 적이 없었다.

‘첫해부터 기회가 왔어.’

가을 리그에 참가한 유망주들은 높은 확률로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었다.

한국인 메이저리그 중 가을 리그에 참가한 선수로는 박찬호, 추신수 등이 유명했다.

“크랩스를 대표해서 좋은 성적을 내 주길 바라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넬슨 감독은 김민을 내보낸 뒤 낮게 중얼거렸다.

“1회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체크하는 것도 모자라 스스로 투구폼까지 바꿨어. 마이너리그 생활 10년 동안 처음 보는 타입이야.”

그는 김민이 가장 인상적인 유망주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