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
Restaurant 319. 몰랐던 이야기들
2021년 2월 중순.
대한민국의 요리계가 발칵 뒤집혔다.
시작은 1월 말 밝혀진 한남선의 청부살인 건에서부터였다.
그리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 홍정학에 의해서 충격적인 사건 하나가 더 공개되었다.
홍정학은 언론과 접촉해 지금껏 가슴 속에 품고만 있었던 진실의 상자를 내놓았다.
그가 고백한 것은 16년 전 있었던 청부 살인에 관한 건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려 먹고 살기가 힘든 상황에서 빚만 계속 불어나던 트럭운전수였던 홍정학.
그런 그에게 누군가 은밀한 제안을 해왔다.
빚을 모두 탕감하고도 남을 만큼의 돈을 줄 테니 사람을 죽여 달라는 것이었다.
대상은 바로 강지한의 어머니인 설윤진.
그리고 이를 사주한 이는 다름 아닌 한돈선이었다.
홍정학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설윤진과 그의 남편 강민태가 타고 있던 차를 트럭으로 들이받아 사고사로 위장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한돈선은 설윤진의 차가 무엇인지 알려주었고, 몇 시경에 어디쯤을 지나게 될지 또한 전달했다.
한돈선은 설윤진이 자신과 만나기로 한 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임신 6개월 차인 만큼 조심을 해야 하니 필시 자가용을 타고 올 것이라 확신한 것.
한돈선의 예상대로 설윤진은 강민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움직였다.
홍정학은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적당한 위치에서 이를 기다리다가 그대로 들이받았다.
차는 완전히 구겨져서 전복되었고 설윤진과 강민태는 그 안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이후 홍정학은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라 자백했다.
실제로 그의 혈중알콜농도는 상당했다.
맨정신으로 그런 일을 벌이기 힘드니 술을 마신 것도 있었고, 애초에 한돈선이 그리하라 이르기도 했었다.
결국 홍정학은 7년 동안 수감되었다가 다시 세상 빛을 보게 됐다.
하지만 여태 살아오면서 단 한순간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봉사활동 차 찾았던 고아원에서 강지한을 만났다. 그의 과거사를 듣다 보니 자신이 죽인 부부의 아들이 바로 그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렴풋이 어린 시절의 얼굴도 겹쳐 보였다.
자신에게 달려들어 왜 우리 부모님을 죽였냐고 울부짖던 그 아이의 모습이 가시처럼 머릿속에 걸려 지워지질 않았다.
그래서 홍정학은 1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양심고백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언론에서 전한 모든 내용이었다.
* * *
늦은 밤이었다.
지한 정식의 영업이 끝난 시간.
강지한은 불 꺼진 홀에 홀로 남아 스마트폰 액정만 바라봤다.
이런 식으로 진실을 알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오늘 저녁부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한돈선에 관한 기사를 몇 번이나 곱씹어 읽었다.
결국 의심했던 모든 것이 진실로 드러났다.
하경춘의 기억과 진상명의 눈, 홍정학의 고백이 모두 한돈선을 향해 있었다.
이제 본인의 자백만이 남은 상황.
하나, 강지한은 언론이 아닌 한돈선 본인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정말 본인이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 맞는지.
어째서 그런 것인지.
그가 한돈선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 동안 이어지다가 피로에 쩌들은 음성이 들려왔다.
-지한이구나.
“……대가님.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어디십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나는 지금 춘천이란다. 기사를 보자마자 춘천에 왔는데 차마 널 볼 면목이 없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시간만 죽이고 있었단다.
“저는 지금 지한 정식에 있습니다.”
-거기로 가도록 하마.
통화가 끊어졌다.
이제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었다.
* * *
지한 정식 건물의 정문 앞 공터.
그곳의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사이엔 한동안 오가는 말이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한돈선이었다.
“밤바람이 제법 날카롭구나.”
“그렇네요.”
“날 원망하고 있겠지?”
“……많이 원망스럽습니다.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한돈선이 고개를 돌려 강지한을 바라봤다.
어두운 와중에도 자신에게 향해있는 서른 초반 사내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돈선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헛헛한 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다 내 욕심과 시기심에서 비롯된 일이었지.”
“제 어머니를 시기했었습니까?”
“그랬었단다. 아직 몸만 컸지 생각이 덜 자랐던 나는 항상 윤진이의 재능을 질투했었지. 내 형님 또한 마찬가지였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그게 가장 눈엣가시였단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신선정이 윤진이의 손에는 넘어가지 않도록 하자고 서로 다짐했었지.”
그토록 인자한 모습만 보여주었던 사람의 추악한 속내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었다.
강지한의 안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거리며 솟구쳐 올랐지만, 꾹 참았다.
지금은 한돈선의 얘기를 전부 들어봐야 했다.
“아버지께서는 윤진이를 한씨 가문에 입양시켜서 제3대 신선숙수의 후계자로서 경합을 붙일 생각이셨어. 요리 앞에서는 자식이고 남이고 할 것 없이 무조건 공명정대하신 분이었으니, 신선정을 이끌 사람은 그 무엇보다 실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방침이었지. 그게 싫었던 우리 형제는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렸단다. 윤진이를 절대 양녀로 들여선 안 된다고. 아들들에게 약했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이혼이라는 무기까지 들이밀며 윤진이의 입양을 반대했지.”
지금까지 강지한은 한돈선의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설윤진의 입양을 반대할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 그 뒤엔 한씨 형제의 공작이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윤진이가 입양 되지는 않았지만 한씨 가문에 한 발을 걸치고 살게 되는 기묘한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단다. 덕분에 제 3대 신선숙수 경합에는 참가할 수가 없었지. 난 그쯤에서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경합에 임했어야 했었어.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버리고 말았지.”
“설마…….”
한돈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형님은 내 식재료에 아무런 장난도 치지 않으셨다. 다 내가 꾸며낸 이야기였지. 아마 아버지께서는 내가 신선숙수가 되었더라도 김치의 비법을 알려주려 하지 않으셨을 거야. 우리 형제의 마음속에 자라난 비뚤어진 욕망을 일찍부터 알아채고 계셨을 테니.”
“그럼 한남선이 대가님을 모함해 신선정에서 쫓아냈다는 것 또한 거짓입니까?”
“모함까지는 아니지만 내 주변 관계를 어지럽게 해서 스스로 나가게끔 만든 건 맞단다. 경합에서 자신이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고 떠벌리는 내가 미웠을 테니까. 곁에 두기 싫었겠지. 나 같아도 그랬을 테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계속해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내가 신선정에서 나오고 난 뒤, 윤진이도 당시 신선정의 주방에서 일하던 민태와 함께 신선정을 떠났다고 하더구나. 나는 잘됐다 싶었다. 이 기회에 윤진이와 신선정의 연결고리를 아주 끊어 놓아야겠다 생각했지. 그래서 앞으로 내게도 연락 말고 편히 살라는 말로 연을 끊었단다. 그런데 십몇 년이 지나서 윤진이는 날 다시 찾아왔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설윤진이 한돈선을 찾아온 시기에 대해서는 강지한도 알고 있다.
중학생이던 강지한이 어머니를 졸라 신선정에 들러 음식을 먹은 이후였다.
전과 너무도 달라진 신선정의 모습에 설윤진은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돈선과 손을 잡고 신선정의 본래 모습을 찾고자 마음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온 설윤진을 한돈선은 경계부터 했다.
“윤진이는 고집스러운 아이였지. 한 번 한다고 하면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단다. 나는 내 것을 천천히 되찾을 생각이었어. 신선정에서 독립해 나와 아띠를 만들어 성공시킨 나는 서서히 방송에 얼굴을 알리던 즈음이었고 대중적 인지도 역시 점차 높아져 가고 있었지.”
한돈선이 원했던 것은 언론의 힘을 등에 업는 것이었다.
그의 지인들은 한남선이 경합 당시 더러운 수를 써서 한돈선을 이겼다고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한남선이 한돈선을 괴롭혀 신선정에서 쫓아낸 건 사실이었다.
중요한 건 같은 사실이라도 인지도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목소리에 담기는 힘이 다르다는 것.
한돈선은 그 힘을 얻기 위해 열심히 방송에 출연했다.
이른바 스타 셰프를 목표로 노력했으며 이제 바라던 것의 시작점에 온 상황이었는데 설윤진이 나타난 것이다.
그녀가 다시 일에 개입할 경우 상황은 어지러워질 것이 분명했다.
“당시의 난… 신선숙수의 자리가 윤진이에게 넘어갈 게 두려웠단다. 아니, 분명 그리될 거라 믿었지. 앞날은 알 수 없는 것이라 말하기엔 윤진이는 나보다 젊었고 실력은 그 이상으로 뛰어났으니까.”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난 강지한은 비로소 한돈선이 왜 자신의 어머니를 해하려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도 이해되는 부분은 없었다.
사람의 자존감이 어디까지 떨어져야 저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건지 소름이 끼칠 뿐이었다.
“이다지도 졸렬한 분이리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강지한의 입에서 처음으로 날 선 비난의 말이 튀어나왔다.
한돈선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이런 인간이라 미안하구나.”
말을 하는 한돈선이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
약국이나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비타민 드링크였다.
“목 좀 축이자꾸나.”
느닷없이 드링크를 꺼낸 한돈선이 뚜껑을 돌려 땄다.
그리고 안에 담긴 것을 마시려는 순간, 강지한이 그의 팔을 덥썩 잡았다.
한돈선이 그런 강지한을 바라봤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
한돈선이 비타민 드링크의 뚜껑을 따는데 별다른 소리도 없이 스르르 열렸다.
새것이 아니었다.
이미 한 번 뚜껑을 따 놓았던 드링크였다.
강지한이 드링크를 빼앗아 바닥에 뿌렸다.
순간 매캐한 냄새가 훅 들어오며 바닥에서 희미한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다 사라졌다.
염산이었다.
“지금 제 앞에서 이걸 마시려 했던 겁니까? 왜요? 죽을 생각이었다면 다른 곳에서 조용히 가셨어야지요.”
“…….”
“당신은… 죽을 용기조차 없는 사람이었군요. 그래서 굳이 제 앞에서 이런 쇼를 한 겁니까? 죽고 싶은 심정이지만 죽음이 두려우니 제가 말려줄 것을 알고!”
“지한아.”
“제 이름 부르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은 이렇게 죽어선 안 됩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잖습니까. 그렇게 편히 보낼 수는 없습니다. 살아서 세상의 심판을 받고 충분히 고통스러워하세요.”
증오를 가득 담아 자신을 바라보는 강지한을 보며 그와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오르는 한돈선이었다.
배틀 셰프에서 강지한과 마주했던 날, 왠지 모르게 그에게 마음이 끌렸다.
처음 볼 때부터 마냥 친근해서 더더욱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
강지한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는 딱 그 정도였다.
한데 그가 설윤진의 아들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나서는 더더욱 그가 좋아졌다.
본인이 휘두를 수 있는 칼이 나타났기에.
‘윤진아. 너한테 이토록 훌륭한 아들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한돈선은 강지한이 설윤진의 핏줄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리 생각했었다.
너무나 훌륭해서 자신이 계획했던 것보다 더욱 쉬운 길로 신선숙수의 자리를 꿰찰 수 있게끔 도와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일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 양심 고백을 한 홍정학으로 인해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말았다.
세상은 한돈선을 파렴치한 범죄자로 몰 것이고, 아띠는 더 이상 영업을 이어나가는 것이 불가능해질 터.
자신 또한 주방에 서는 일은 두 번 다시 생각할 수 없을 테니 이제 인생이 끝났다고 봐야 했다.
“당신은 죗값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저는 제 모든 것을 이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이 최고의 형량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미안하구나.”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
한때는 사제지간이었던 두 남자의 비틀어진 운명이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