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313화 (313/330)

# 313

Restaurant 312. 결전의 날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신정에는 다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은사님을 보러 가기에 바빴다.

하지만 강지한은 지한 정식의 주방을 비워둘 수가 없어서 오늘도 일을 해야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밤이 늦은 시각.

귀가를 위해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탔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연락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친척들에게도 짐짝 취급을 받은 강지한이었다.

때문에 이런 날 어디 연락드릴 어른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강지한이 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한돈선에게 짤막한 문안인사를 보냈다.

한돈선은 강지한의 어머니와 돈독한 사이였으며, 자신을 제자로 삼았으니 은사님이라고 할 법한 분이었다.

메시지를 전송한 뒤,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띠리리리리-

전화가 왔다. 한돈선이었다. 강지한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대가님, 안녕하세요.”

강지한의 인사에 스마트폰 너머에서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지한아, 새해 복 많이 받거라.

“감사합니다, 대가님. 주무실 줄 알았어요.”

-아직 자기에는 이르지~ 호호호.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주방 꾸려 나가느라 정신없을 텐데 인사는 무슨. 나야말로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춘천 한 번 들르지 못해 미안하지.

“아닙니다. 말 나온 김에 이번 주말에 봉사 활동 끝나고 바로 찾아뵙도록 할게요.”

-내가 가도록 하마. 간만에 춘천 맑은 공기도 마실 겸, 우리 지한이 얼굴도 볼 겸. 그리고 이제…… 경합이 코앞으로 다가온 걸 알고 있겠지?

“늘 신경 쓰고 있어요.”

-아마 곧 경합날짜를 통보해 줄 거야. 내 예상으로는 1월 말경이 되지 않을까 싶구나.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많이 긴장되니?

“조금요.”

강지한은 한민국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동생 한정국과는 결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

한민국은 언제나 진지하게 요리를 대했다.

세간에서는 이미 그의 아버지인 한남선과 엇비슷한 실력을 자랑한다 평가될 정도다.

한남선이 운영해 나가는 신선정은 미슐랭 3스타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번에 강지한의 식당도 3스타를 받았다.

그러니 얼핏 대등하다 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강지한에게 부족한 것은 경험이었다.

레벨 업 시스템이 최종적으로 진화된 이후 더 이상 요리 대가들의 지식을 레벨 업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때문에 강지한은 그때부터 순수하게 본인의 힘으로 실력을 키워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트라우마가 완벽히 치료되며 어머니에게 전수받았던 요리의 비법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강지한의 어머니가 작정하고 한식을 만들 때는 화려하고 특별한 음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투박함과 절제 속에 대단히 깊은 한국 고유의 맛이 담겨 있는 음식들을 주로 만들어왔다.

그야말로 요리가 담긴 그릇그릇마다 한국의 얼과 정서가 들어 있었다.

강지한은 그 기억들을 토대로 공부하고 연구해 나갔다.

어머니의 지식과 자신의 지식을 잘 버무려 한국 고유의 것을 지켜나가면서도 변화된 사람들의 입맛을 외면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지한아, 넌 잘할 수 있을 게다. 윤진이의 핏줄이잖니. 게다가 실제로 잘하고 있기도 하지 않니. 미슐랭 3스타라니. 너는 이제 내 형님은 물론이고 나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란다.

한돈선이 운영하고 있는 한정식당 아띠도 미슐랭 3스타를 받은 곳이었다.

은사님의 칭찬에 강지한은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경험의 차이가 어마어마한데요. 아직 한참 멀었죠.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호호호. 겸손은. 아무튼 일요일 저녁 즈음에 봤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겠니?

“네. 봉사 활동은 오후 3시경이면 끝납니다.”

강지한은 이번에 춘천에 있는 양로원으로 봉사를 나간다.

해서 저녁에는 시간이 충분했다.

-그래. 그럼 출발할 때 연락 주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대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오냐. 호호호.

한돈선과의 전화가 끝난 후 강지한의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다.

이제 자신에게도 마음 한편을 의지할 어른이 생겼으니.

* * *

지한 정식의 브레이크 타임.

강지한은 식사를 미루어 두고 춘천에 있는 지한 식당을 전부 둘러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하는 일이었다.

레벨 업 시스템이 사라지고 난 이후 강지한이 가장 궁금했던 건 직원들의 상태였다.

강지한은 자신이 모아두었던 직원 레벨업권 아이템을 여기저기 나누어 투자했던 터였다.

물론 아무에게나 그런 혜택을 베풀지는 않았다.

오래 지켜봤을 때 한가족이라는 믿음이 생길 만한 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적어도 인품이 확실한 이들에게만 레벨 업 아이템을 투자했다.

이제 강지한에게 그 정도의 사람 보는 안목은 있었다.

이후 지금까지 관찰한 결과 투자한 아이템의 효과는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것은 그대로 직원의 능력이 되어 녹아들었다.

강지한이 춘천의 식당들을 둘러볼 때마다 점주를 비롯, 직원들은 하나같이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그를 맞아주었다.

거기엔 가식이 전혀 없었다.

지한 푸드 계열의 월급과 복지는 동종업계 최고라 할 정도로 좋았다.

때문에 직원들은 강지한에게 마냥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강지한은 자신이 버는 만큼 직원들과 사회에 베풀자는 마인드를 가진 대표였다.

지한 푸드의 직원들은 그런 대표 밑에서 일하는 것을 뿌듯하게 여겼다.

강지한이라는 사람은 이제 안팎으로 존중받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 * *

일요일.

약속대로 한돈선이 찾아왔다.

강지한은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거실에는 미리 준비해 놓은 한식요리들이 상 위에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이를 본 한돈선이 대번에 알아채고 물었다.

“경합에 낼 음식 후보들이구나?”

“맞습니다, 대가님.”

“어디 보자.”

상 위에는 고급스러운 방짜 유기그릇에 음식이 담겨 있었다.

밥 위에 갖가지 비빔 고명들이 가지각색으로 예쁘게 올라간 골동반부터 장국죽, 어만두, 깻국국수, 약산적, 해삼전, 연포국, 열구자탕, 게찜, 가지선, 뭉치구이, 북어무침, 홍합초, 탄평채, 매작과, 인삼정과, 보리수단까지.

음식들을 죽 훑어본 한돈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의전서에 나오는 음식들을 재현했구나.”

“그렇습니다.”

시의전서는 조선 말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저자 미상의 조리서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요리들이 자세한 조리법과 함께 열거되어 있었다.

강지한은 시의전서에 등장하는 요리에 한정신과 설윤진의 지식, 그리고 본인의 지식까지 모두 눌러 담아 약간씩 변화를 주어 만들어냈다.

“맛을 보도록 할까.”

한돈선이 기대하는 얼굴로 수저를 들었다.

가장 먼저 숟가락이 간 곳은 장국죽이었다.

장국죽은 다진 쇠고기를 넣고 양념하여 장국을 끓인 뒤에, 불린 쌀을 넣고 한 번 더 끓인 죽이다.

상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그것을 맛본 한돈선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구나.”

그는 바로 다음 음식을 음미했다.

이후부터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포근한 웃음을 달고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맛을 볼 뿐이었다.

모든 음식들을 한 입씩 먹고 난 뒤에서야 한돈선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지한아, 정말 놀랍도록 성장했구나. 음식을 맛보는 내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단다.”

“감사합니다, 대가님.”

긍정적인 평가에 강지한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한돈선의 얼굴엔 확신이 없었다.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하나 한민국을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그렇습니까?”

“아무리 신선정이 문을 열 당시의 본질이 흐려졌다고 하나 백 년이나 이어져 내려온 역사와 그 안에 집대성된 경험치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한민국은 제 아비와 달리 요리에만 인생을 바친 학구파란다. 다른 비열한 술수로 남을 밟고 일어서려 않으면서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칼을 잡았지. 때문에 한민국은 이번 경합에서 만만치 않은 음식들을 들고나올 것이야.”

강지한은 답답했다.

한민국의 음식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대응하고 판단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얼마 전, 신선정에 직접 가서 음식을 먹어볼까도 생각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 주방을 총괄하는 사람은 한민국이 아닌 한남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을 사주해서 자신의 요리사 인생까지 위협했던 그였다.

강지한이 신선정의 음식 수준을 파악하려고 찾아왔다면 평소에 파는 음식들을 순순히 내줄리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한돈선과 한 차례 상의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돈선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놓았었다.

해서 신선정에 직접 가는 것은 포기한 상황이었다.

대체 한민국과 자신의 실력을 어찌 가늠해야 하나 고민하던 강지한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한돈선에게 물었다.

“대가님. 혹시…… 최근 신선정의 음식을 접해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내가 직접 가지는 않았고 친분이 있는 미각의 고수가 가서 나 대신 먹어보았단다. 20년이 넘도록 신선정에 걸음을 하고 있는 단골이기도 하신 분이시지.”

한돈선은 강지한이 신선정에 들러 음식 맛을 보기가 어려워지자 미각이 뛰어난 지인을 보내 그곳의 맛을 물었다.

“그분께서 20년 전과 지금, 신선정에서 내오는 음식의 질이 많이 차이가 난다 하셨습니까?”

한돈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보다 조금 더 나아졌다더구나. 내가 예상하기에 민국이가 형님을 도와 주방에 서게 되면서부터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말에 강지한은 16년 전 2월의 일을 떠올렸다.

요리사를 꿈으로 삼고서 열심히 노력하던 강지한은 당시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신선정에 음식을 먹으러 갔었다.

당시의 감상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신선정의 요리들은 대단했다.

과연 대한민국 제일가는 한정식당답게 감히 함부로 따라올 수 없는 퀄리티의 음식들을 선보였다.

맛은 확실히 설윤진의 음식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러나 강지한은 신선정의 음식들이 따듯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정이 없는, 차가운 느낌.

화려한 모양으로 시각을 자극한 뒤, 그보다 더 화려한 맛으로 미각을 자극해 혼을 쏙 빼놓았지만 정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오로지 기술로 시작되어 기술로만 끝나는 음식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최고로 쳤지만 어린 강지한은 그렇게 느끼기 힘들었다.

‘그때의 음식들, 무엇이 나왔었는지, 어떤 맛이었는지 전부 기억이 나.’

신기한 일이었다.

강지한은 16년 전의 맛을 고스란히 떠올리고 있었다.

‘엄마의 음식은 신선정의 음식에 비해 맛이 조금 떨어졌어. 그러나 신선정의 음식에는 없는 따듯함이 있었지. 그것은 엄마의 음식이 먹는 사람의 건강을 더욱 신경 썼기 때문이야.’

그렇다고 신선정의 음식이 건강에 해가 된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맛을 내는 것에 더욱 치중되어 있었던 것뿐.

‘어머니는 한정신 명인에게 요리를 배웠어. 그러니 어머니의 손맛은 신선정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봐도 되겠지. 한남선이 신선숙수로 앉으면서 급격히 변화해 버린 신선정의 음식 또한 그 전까지의 음식 맛에서 파생된 것이지.’

그런 사실을 상기해 보던 강지한은 한 가지 해답을 찾아냈다.

‘그때 내가 먹어보았던 신선정의 음식과 어머니의 손맛을 하나로 잡아낼 수 있다면…… 신선정이 추구했던 맛의 본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지한의 표정을 지켜보던 한돈선이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알아낸 모양이구나.”

“네. 어머니의 음식과 16년 전 제가 맛보았던 신선정의 음식 맛을 떠올려 하나로 뭉칠 수 있다면 더 확실한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내가 원하던 대답이었어.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다면 도움이라도 줄까 싶어 왔던 것인데, 그럴 필요가 없었구나. 호호호.”

“감사합니다, 대가님.”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당시 신선정의 음식을 재현해서 주고 싶지만…… 따로 독립해 나와 아띠를 끌고 간 지도 참 오랜 세월이 지났지. 그렇다 보니 이제 내 음식은 신선정의 근원과는 많이 멀어져 독립된 스타일을 완성해 냈단다. 부디 네 기억과 혀를 믿고 나아가도록 하거라.”

“그러도록 할게요.”

한돈선이 기특함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강지한을 바라보았다.

그의 투박한 손이 제자의 어깨를 살갑게 두들겼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2021년 1월 31일 일요일.

드디어 신선숙수 제4대 후계자를 가리는 경합의 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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