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312화 (312/330)

# 312

Restaurant 311. 봉사활동에서 만난 사람

강지한은 요즘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다니느라 바빴다.

12월.

칼바람이 몰아치는 시기에도 그는 꾸준히 봉사활동을 나갔다.

그가 주로 다니는 곳은 보육원이나 노인요양원이었다.

가족이 없거나,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이들의 외로움을 강지한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언젠가 스스로 여유가 생긴다면 꼭 봉사활동을 다니며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리라 다짐했었다.

사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그는 꾸준히 여러 곳에 기부를 해왔었다.

최근에는 기부금이 다달이 천만 원씩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기부를 하면서도 생각지 못한 목돈이 들어온다 싶으면 그것까지도 기부를 했다.

기부 금액이 상당한데도 벌어들이는 돈은 더욱 어마어마한지라 재산이 차곡차곡 늘어나고 있었다.

강지한은 통장 관리를 예소린에게 전부 맡겼다.

예소린은 처음에 이를 거부했다.

지한 씨가 피땀 흘려 번 돈인데 자신이 관리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며 스스로 관리하라 일렀다.

하지만 강지한은 사실 돈을 쓸 줄도, 투자하거나 불릴 줄도 몰랐다.

그런 면에서는 예소린의 머리가 더 나았다.

결국 같이 살면서 강지한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예소린이 어쩔 수 없이 통장을 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는 돈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대해서만 책임지기로 했다.

그 외의 돈은 강지한이 어떻게 사용하던 예소린은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만약 강지한이 못 믿을 사람이었다면 예소린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돈을 허튼 데 사용하는 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편하게 놔둘 수 있었다.

12월 27일 일요일.

오늘도 강지한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봉사활동을 나갈 준비로 분주했다.

그가 샤워를 하는 동안 같이 일어난 예소린이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씻고 나온 강지한의 앞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가득 차려진 상이 놓여 있었다.

“지한 씨, 밥 먹자.”

“맛있겠다.”

강지한이 헤벌쭉 미소 지으며 식탁 앞에 앉았다.

요리는 누가 뭐라 해도 강지한이 예소린보다 더 잘한다. 그럼에도 예소린은 아침만큼은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 주고 싶어 했다.

강지한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큰아빠의 집에 얹혀 살면서 눈칫밥을 먹었다.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상이었지만 거기엔 정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먹는 동안은 불편했고 먹고 나면 바로 배가 꺼졌다.

그러다 춘천으로 독립하고 나서는 거의 매 끼니 홀로 밥을 차려 먹었다.

때문에 누군가가 정을 담아 차려주는 밥상을 받을 일이 거의 없었다.

예소린은 그게 안타까웠다.

아침상에 가득한 아내의 마음을 강지한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강지한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주는 음식’이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밖에서 거금을 주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사먹는다고 해도, 정이 담긴 집밥보다는 못했다.

강지한은 앉은 자리에서 밥 다섯 공기를 해치우고 일어났다.

부부는 닮는다고, 예소린의 음식 솜씨는 강지한에게 못미칠 뿐 이미 평범한 주부의 수준을 넘어섰다.

뽀삐의 하루에서 파는 식사가 맛있다는 소문이 카페 손님들 사이에서 파다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그럼 갔다올게.”

양치를 하고 나온 강지한이 집을 나섰다.

그런 그를 예소린과 설탕이가 마중해 주었다.

“나도 같이 가면 좋은데.”

예소린은 강지한과 봉사활동을 같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집에서 강아지들을 돌봐주어야 하니 그러기가 힘들었다.

강지한이 떠나고 난 뒤, 예소린은 별채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스무 마리가 넘는 강아지들이 소떼처럼 뛰쳐 나왔다.

“왁.”

놀란 예소린이 얼른 옆으로 피했다.

밤을 보내고 주인과 재회한 강아지들이 예소린에게 달라붙고 바닥에 드러누우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강지한이 떠나 허전한 마음을 예소린은 강아지들을 돌보며 달랬다.

* * *

사실 강지한이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조용히 봉사활동을 다닐 뿐이었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소문이 슬슬 퍼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여러 매체에서 기사를 써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지한 푸드의 홍보업체는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더더욱 기삿거리를 부추겼다.

그로 인해 지한 푸드의 이미지가 좋아지며 인지도 또한 높이 올라가게 되었다.

강지한은 그런 줄도 모르고서 오늘도 사랑의 밥차에 음식을 한가득 싣고 춘천의 한 보육원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음식들을 준비해서 점심시간에 딱 맞춰 도착할 수가 있었다.

보육원에는 자원봉사자들 열다섯 명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지한이 밥차를 끌고 오는 것까지는 할 수 있지만, 그 많은 음식들을 아이들에게 배식해 주고 돌봐주려면 사람이 더 필요했다.

거기에 필요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는 것은 보육원의 몫이었다.

봉사지원자들은 보육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봉사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맞는 시간대에 봉사를 하면 되는 것.

강지한이 밥차에서 내려 짐칸을 오픈하고 음식들을 세팅했다.

그것을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주었다.

한데 그중 세 여인의 얼굴이 대단히 닮아 있었다.

“혹시 세 분 자매세요?”

강지한이 물었다.

그러자 세 사람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강 셰프님 온다고 해서 우리 정말 들떠 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봉사 신청 한거거든요.”

“저희 지한 김치 전골 단골이에요. 거기 매운 음식들 진짜 좋아해요.”

“저도 언니들 따라 가봤었는데 최고였어요.”

세 자매가 한마디씩 했다.

그중 두 명은 강림대 학생으로 춘천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박혜령, 박혜미 자매였다. 박 자매는 지한 김치 전골의 매운 음식에 푹 빠져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들이 끌고 온 손님이 제법 됐다.

박 자매는 시간이 날 때마다 봉사활동을 다니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강지한을 만났으니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박 자매의 사이에 서 있는 아직 앳된 얼굴의 막내는 올해 고1 인 박혜란은 겨울 방학을 맞아 언니들 자취방에 놀러 와서 며칠 묵고 있던 중 함께 봉사활동을 나온 것.

“오늘 잘 좀 부탁드릴게요. 일단 아이들 다 케어하고 난 뒤에 배식받아서 음식 좀 드세요. 봉사자분들도 드시라고 넉넉하게 준비해 왔어요.”

“대박! 감사합니다, 강 셰프님!”

“진짜 배려심 장난 아니시다. 갑자기 힘이 팍팍 나는데요?”

“저도 열심히 할게요!”

그렇게 박자매를 비롯한 다른 자원봉사자들의 사기가 부쩍 올라갔다.

한데 한 명의 자원봉사자가 강지한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은데…….’

강지한을 주시하는 이는 깡마른 체구에 키가 작은 오십 대 남성 홍정학이었다.

한데 외모는 그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원체 잇몸이 좋지 않아 이가 일찍부터 많이 빠져 틀니를 하게 된 탓이었다.

홍정학은 실내 테이블을 다른 자원봉사자와 함께 부지런히 야외로 나르는 동안 계속 강지한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어디서 봤더라?’

생각이 날 것 같으면서도 나지 않았다.

사실 그는 먹을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어렸을 적부터 식도락을 즐길 만큼의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팍팍한 삶을 살아왔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미식의 즐거움을 멀리하게 된 것.

지금도 먹을 것에 쓸 돈이 있다면 차라리 저축을 하곤 했다.

때문에 당연히 강지한이 누군지 몰랐다.

해서, 강지한을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는 자원봉사자들의 반응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에 많이 나온 요리사인가?’

그렇다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납득이 됐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몇 번 눈에 걸렸었겠지.

홍정학은 그렇게 납득하고서 넘어갔다.

* * *

강지한의 음식을 먹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머리가 좀 큰 아이들은 그래도 점잖게 식사를 해나갔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음식을 먹으며 느껴지는 기쁨을 큰 목소리로 표현하기 바빴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어요!”

“저녁에도 또 먹으면 안 돼요?”

“선생님! 유민 오빠가 내 반찬 뺏어 먹어요! 씨이!”

“지수야, 진짜 엄청 맛있지?”

“응! 강지한 셰프님이 우리 주려고 아침부터 만들었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우리한테 만들어 주신 거 보면 강지한 셰프님은 분명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일 거야.”

“에이, 천사는 좀 더 잘생겼을걸?”

“방금 어떤 새끼야?”

아이들의 왁자한 대화를 듣는 강지한과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이 뿌듯해졌다.

보육원의 선생님들도 자신이 케어하는 반 아이들과 함께 자리해서 식사를 했다.

“어머나. 왜 강지한 셰프님의 인지도가 나날이 높아지는지 알겠어요.”

“쉬는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외출 자체를 안 했는데 이제 강 셰프님 식당으로 찾아가게 생겼네요.”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식사를 마치고 난 다음, 드디어 자원봉사자들의 허기를 채울 시간이 돌아왔다.

한참 전부터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군침만 삼키던 자원봉사자들이 남은 음식을 푸짐하게 배식받아 빈 자리에 모여 앉았다.

강지한도 그 사이에 껴서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강지한을 포함한 16명의 사람들은 오늘 서로 처음 본 사이였지만 함께 봉사활동을 했다는 유대감 때문인지 쉽게 말이 트였다.

“강 셰프님, 진짜 감동적인 맛이에요. 제 인생에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봐요.”

“우리는 춘천에 있는 강 셰프님 식당 전부 다 가봤어요.”

“지난주에 부모님 모시고 지한 정식 갔었는데 진짜 저 예쁨 받았습니다.”

“밥차 클래스가 진짜 장난 아니네요. 와.”

“제가 여태 해왔던 봉사활동 중에 오늘이 가장 즐겁습니다. 하하하.”

강지한은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개중에서도 박혜령, 박혜미, 박혜란 세 자매가 가장 음식을 복스럽게 먹고 있었다.

특히 박혜령과 박혜미는 막내인 박혜란에게 맛있는 건 더 건네주며 끔찍이도 챙겨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강지한은 문득 자신이 앞으로 낳고 키우게 될 아이들도 나중에 커서 저렇게 우애 좋은 모습으로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 자매의 행복한 광경이 평생 사진처럼 그의 머릿속에 기억될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식사를 이어가는 와중 홍정학만 조용했다.

그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이따금씩 미소만 짓고 말았다.

그렇게 식사가 다 끝나갈 때쯤, 누군가 강지한에게 이런 질문을 건넸다.

“근데 강 셰프님, 언제부터 요리사가 되려고 하신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음……. 그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래요.”

“어머, 궁금해. 말씀해 주세요.”

“이야기하자면 조금 길어서요, 하하.”

“그래도 듣고 싶어요.”

“저두요.”

사람들의 열정적인 반응에 강지한은 결국 과거사에 대해 최대한 짤막히 요약해서 말을 해주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들은 담담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은 결코 담담할 수 없었다.

강지한은 부모님의 비극과 이후로 어찌 살아왔으며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올라오게 되었는지를 압축하고 압축해서 15분 만에 전부 들려주었다.

다들 드라마와도 같은 강지한의 지난 세월에 놀라 쉽게 무슨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데 그때 여태 한마디도 안 하고 있던 홍정학이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혹시…… 어릴 적엔 경기도에 살고 있었습니까?”

“네? 아, 네.”

“부모님께서 변을 당하신 장소가…….”

“구리시내 먹자골목 사거리 근처였어요.”

“그, 그 사고가 15년 전 일이라고 하셨지요?”

“네. 2월이었어요.”

“……!”

홍정학은 뭔가에 놀란 표정이 되어 입을 닫았다.

그에 자원봉사자들이 그런 홍정학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강지한 본인에게는 아픈 기억일 텐데 거기에 대해 계속 파고드는 홍정학의 태도가 무례하게 느껴졌기 때문.

“저기, 아저씨. 이제 그만 물어보시는게…….”

보다 못한 자원봉사자 한 명이 그를 제지하려 했다.

한데 홍정학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강지한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게 아닌가.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고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식판을 정리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뭐야? 뒷정리까지 같이 도와주고 가야지.”

“이상한 아저씨네.”

사람들은 그런 홍정학의 태도를 두고 수군거렸다.

‘누구지?’

한편 강지한은 그의 눈이 어쩐지 낯설지 않은 것 같아 기억 속 서랍들을 바쁘게 뒤졌다.

하지만 그를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이 끝내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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