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
Restaurant 284. 언빌리버블
[5만 만족도 포인트로 퀘스트 해결을 위한 힌트 한 가지를 오픈할 수 있습니다. 힌트는 총 세 개까지 볼 수 있습니다.]
[5만 만족도 포인트를 사용해 힌트 중 하나를 오픈하시겠습니까?]
퀘스트에 힌트가 존재한다는 걸 강지한은 오늘 처음 알았다.
그동안은 힌트를 볼 필요도 없을 만큼 강지한이 퀘스트를 잘 처리해 왔었다.
한데 이번 퀘스트는 워낙 막막해서 답답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힌트에 관한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지한은 5만 만족도 포인트를 투자해서 힌트 하나를 오픈했다.
[첫 번째 힌트를 오픈합니다.]
[해고해야 할 직원은 춘천에 있습니다.]
‘해고해야 할 직원이 춘천에 있다고?’
레벨 업 시스템은 분명 강지한과 지한 푸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꼭 해고해야 할 직원이 춘천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춘천의 직원들은 상호간의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개인적 문제 또한 존재치 않았다.
혹시 자신이 뭔가 놓친 것이 있나 싶어 각 식당의 점주들에게 요즘 직원들 간 문제는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들려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힌트 하나를 더 봐야겠어.’
강지한이 다시 5만 만족도 포인트를 사용했다.
[두 번째 힌트를 오픈합니다.]
[해고해야 할 직원은 지한 식당 분점에 있습니다.]
‘지한 식당 분점이라고?’
강지영이 점주로 있으면서 오픈 이후 지금껏 작은 잡음 하나 없이 잘 이끌어가고 있는 곳이었다.
얼마 전 확인해 본 바로 직원들 사이의 관계가 모든 식당들 중 가장 좋은 곳이기도 했다.
그런 지한 식당 분점에 해고해야 할 직원이 있다니?
강지한은 이왕 시작한 김에 마지막 힌트까지 확인했다.
[세 번째 힌트를 오픈합니다.]
[눈부실 만큼 화려한 빛은 그 안에 감추고 있는 추악함마저 볼 수 없게 만듭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뜻.
그것은 정보의 눈을 비롯하여, 레벨 업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점점 떨어뜨리고 있는 강지한이 늘 경계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한 객잔에서 단물만 빼먹으려고 했던 황태규의 일도 그렇고 이번 퀘스트도 그렇고, 하나같이 강지한이 시스템에게서 독립하기 위한 길을 제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일단 그런 건 뒤로 제쳐두고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했다.
‘눈부실 만큼 화려한 빛.’
지한 식당 분점에서 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하면 단연 점주인 강지영이었다.
그녀는 우선 아름다웠다.
미스춘향 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여전히 자기관리를 잘하고 있었다.
게다가 요리 실력도 좋았고, 성격 또한 모난 곳이 없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했다.
‘지영 누나가 겉모습 이면에 감추고 있는 추악함이라. 그런 것이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강지영은 아닌 것 같았다.
만약 그녀가 다른 마음을 먹고 있었다면 벌써 강지한이 알아챘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 버리면 어떤 식으로든 티가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강지영은 여전히 한결같았다.
그럼에도 강지한은 그녀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일단 내일 분점부터 가봐야겠다.’
이럴 때는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눠보는 게 상책이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만나보고 싶었지만 가정이 있는 여인을 오밤중에 불러낼 수는 없는 일.
게다가 그녀는 경기도 가평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집에 있을 때는 한 시간이라도 더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할 대표가 자기 맘 급하다고 업무가 끝난 시간에도 연락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강지한은 이 밤이 빨리 가기를 바라며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하지만 오늘따라 수마(睡魔)는 그를 쉽게 유혹하지 않았다.
* * *
늦은 새벽.
불야성을 이루는 서울, 종로의 먹자골목.
그곳의 어느 허름한 술집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중년의 아저씨 셋과 당장 내 옆집 이웃 같은 아주머니 둘이 한자리에 모여 술을 즐기고 있었다.
“역시 식당의 외관은 중요치가 않아.”
다섯 명의 사람 중 머리가 훤히 까진 남자가 말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2:8 가르마에 정장을 걸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손맛. 그거 하나면 된 것 아니겠어.”
두 사람의 대화에 뽀글머리를 한 여인이 끼어들었다.
“그런 우리들만의 기준이 만인의 기준에 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지들?”
말투가 상당히 톡 쏘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옆에 앉아서 안주발을 세우는 푸짐한 외모의 여인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냥 편하게 먹자. 깐깐하기는.”
여태 상황을 지켜보던 배불뚝이 남성이 뽀글머리 여인에게 한마디를 했다.
“자자, 술이나 더 마시자고.”
다 같이 술잔을 나눈 뒤, 대머리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지한 식당 말이야. 나는 갈수록 놀라. 어떻게 그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건지.”
배불뚝이 남자가 동의했다.
“솔직히 벽에 부딪혀 한참 동안 헤맬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의 대화에 뽀글머리 여인이 눈을 반짝 빛내며 혀를 놀렸다.
“내가 뭐라 그랬어. 계속 나아질 거라고 했잖아. 거기 지금까지 평균 몇 점이지?”
“여덟 번 방문해서 총 94.7점.”
정장 남자가 대답했다.
“식당 문 닫지 않는 이상은 무조건 통과네.”
푸짐한 여인이 여전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주를 집어 먹었다.
“근데 나는 사실 내년이 걱정돼.”
배불뚝이 남자의 말이었다.
“빠른 성장이 당장은 심사에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그럴수록 내년 심사의 장벽이 높아질 뿐이야.”
“그렇지. 1년 안에 피부로 와닿을 정도의 발전이 있어야 하니까. 솔직히 지금의 성장 속도는 비정상적이긴 하지.”
“정체기가 올 텐데 그게 1년이 갈 수도 있고 2년이 갈 수도 있단 말이지. 벽에 부딪혀서 내년에 발전이 없으면 탈락이잖아.”
“그렇게 되면 그 역시 본인의 운인 거야. 애초부터 신선정의 주인 될 재목은 아니었던 거지.”
“너무 많이 떠든다, 다들. 그 얘기는 그만하자.”
“그래.”
이후부터 다섯 사람의 주제는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신선정의 비밀 잠행단이었다.
* * *
오전 10시.
아직 지한 식당 분점이 오픈 준비로 분주한 상황.
정문이 열리며 강지한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를 확인한 전직원들이 잠시 손을 멈추고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대표님, 오늘도 미모가 열일 하십니다.”
“어머, 아침부터 어쩐 일이세요?”
강지한은 직원들의 인사에 화답하며 주방으로 다가갔다.
“지한~ 왔어?”
“응.”
“요새 자주 오네?”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런가 봐. 너무 민폐지?”
“네가 네 식당 오가는데 뭐가 민폐야? 여기에 그런 생각 하는 직원 아무도 없을걸.”
강지영의 말에서는 늘 진심이 느껴졌다.
아울러 강지한을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실제로 이런 강지영의 눈빛을 오해한 몇몇 직원들이 대표님에게 이상한 마음 먹으면 안 된다고 당부한 적도 있었다.
강지영은 이성으로서의 호감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존경이라고 못 박아두는 것으로 사태를 일단락 지었다.
자신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강지한은 충분히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강지한이 매장에 찾아오는 것이 번거롭기는커녕 즐거울 수밖에.
‘그래. 이런 사람이 뒤로 이상한 마음을 먹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생각한 강지한에게 허이숙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오셨어요?”
“네, 이숙 아주머니.”
허이숙은 지한 식당 분점을 오픈할 때부터 함께해 온 직원으로 올해 마흔여섯이다.
그녀는 강지영과 마찬가지로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마흔 중반이 넘어간 나이에도 허리에 군살 하나가 없었으며 얼굴에 주름 또한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주방일이 그렇게 바쁜데도 어지간해서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얼굴도 웃는 상인 데다가 성격이 유해서 직원들 간의 사이 또한 좋았다.
지금도 그녀와 가까이 닿아 있는 직원들 사이에 연결된 선이 대부분 무지갯빛으로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잠깐만.’
이를 보는 순간 강지한은 퀘스트의 세 번째 힌트가 떠올랐다.
[눈부실 만큼 화려한 빛은 그 안에 감추고 있는 추악함마저 볼 수 없게 만듭니다.]
강지한의 의심이 강지영에게서 허이숙에게로 옮겨갔다.
지한 식당 분점은 작년 9월 27일에 오픈했다.
지금이 10월 말이니 오픈한 지도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허이숙도 강지영과 함께한 지 그만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만약 허이숙이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동안 강지영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그럴 수도 있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강지한은 허이숙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 * *
같은 시각 인천 공항에는 미국에서 날아온 한에어가 승객들을 내려주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11시간을 보내고 다시 밟은 땅의 감각이 에이사는 기분 좋았다.
“후웁~ 하아.”
공항을 나선 그가 양팔을 쫙 펴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런 그의 옆에서 앤드류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 말했다.
“한국은 정말 오래간만이군.”
“응? 처음이 아니에요?”
“10년 전쯤인가 한 번 왔었지. 여행이 아니라 일 때문이었지만. 렌트카를 대여했다고 했나?”
“네. 공항 배차라서 약속장소에 가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운전은 좀 해?”
“제 꿈이 원래 레이서였다는 건 말하지 않았었나 보네요?”
에이사의 넉살에 앤드류가 푸흐흐 웃었다.
두 사람은 약속 장소에서 렌트카를 인수받았다.
운전석에 앉은 에이사가 시동을 걸더니 능숙하게 차를 몰아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두 사람의 첫 번째 목적지는 춘천의 지한 분식이었다.
“기대되는군. 기내식보다 맛있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앤드류의 혼잣말에 에이사가 픽 웃었다.
“욕심 좀 더 내셔도 될 것 같은데요.”
* * *
오후 1시.
에이사와 앤드류는 쉼 없이 차를 몰아 드디어 춘천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목적지인 지한 분식에 도착했다.
“맙소사. 대단하군.”
앤드류는 지한 분식 앞에 죽 늘어선 줄을 보고 기함했다.
자신들의 앞에 적어도 20팀은 있는 것 같았다.
“기다리기 힘들 것 같아요?”
에이사가 슬쩍 물었다.
“아니. 맛만 있다면 하루 온종일 기다리는 것도 가능하지.”
하지만 두 사람은 1시간이 채 안 되어서 홀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지한 분식의 회전률이 상당히 빨랐기 때문.
테이블에 앉자마자 앤드류가 메뉴판을 살펴봤다.
여러 가지 메뉴들이 있었는데 각각의 메뉴엔 사진과 함께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된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지한 푸드에서 관리하는 식당에 외국인 손님들이 늘어나며 메뉴판도 친절하게 바뀐 것.
덕분에 두 사람 다 메뉴를 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앤드류는 제육덮밥을, 에이사는 비빔밥을 주문했다. 그리고 같이 먹을 음식으로 떡볶이와 김밥, 어묵을 추가했다.
주문이 들어가고 7분 정도 지났을 때, 모든 음식들이 서빙되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비주얼은 대단할 것이 없었다.
지한 분식에 오기 전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이 기내식의 퍼스트클래스 음식이라 더더욱 비교가 되었다.
‘웨이팅이 길다고 무조건 맛있는 경우는 없는 법이지.’
앤드류는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서 워밍업으로 어묵 국물부터 한입 떠먹었다.
그리고,
“언빌리버블.”
그 한마디를 내뱉고서 돌처럼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