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9
Restaurant 278. 압도적인 승리
삼영식품의 신제품은 소비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터지며 판매량이 지속적인 청신호를 보였다.
공치산 과장은 기쁜 마음으로 한정국을 만나 자축의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룸에서 낯선 여인을 품에 안은 두 사람은 고가의 양주를 나눠 마시며 잔뜩 신이 났다.
“한 잔 받으시죠, 한 대가님!”
“좋습니다.”
공치산이 한정국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한 대가님 덕에 우리 삼영식품 사무실에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사실이었다.
공치산은 요즘 삼영식품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아 기분이 좋으니 전과 달리 얼굴에서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상사의 마음이 평화로우니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숨통이 트였다.
그러니 사무실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신제품의 평가가 대부분 호의적입니다.”
“그런가요?”
“열에 하나 꼴로 안 좋은 리뷰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부분 신푸드에서 사람을 사서 뒷공작을 벌인 것일 테니까요.”
“치졸하게 그런 짓을 다 한답니까?”
“그만큼 한 대가님의 작품이 그들에겐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있었다면 그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겠지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신푸드에서는 아무런 공작도 하지를 않았다.
“곧 신푸드에서도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하니, 우리는 그때 제대로 샴페인을 터뜨리면 됩니다.”
“좋습니다.”
“한데 한 대가님. 물론 그럴 일은 없겠으나 만에 하나라도 경쟁사의 신제품이 우리 회사의 신제품보다 많은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면…… 그 원인이 순수하게 맛과 질에 있다고 한다면…….”
공치산이 한정국의 눈치를 살피며 뒷말을 흐렸다.
여태 겪어본 한정국은 자존심을 조금만 긁으면 알아서 제 무덤을 제가 파고 들어가는 타입이었다.
술이 들어가면 그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공 부장님, 지금 제 실력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의심하다니요. 다만 저는 회사의 녹을 먹는 사람이다 보니 늘 마음 한편에 불안함을 달고 다닐 뿐입니다. 이건 떨쳐낼 수가 없어요.”
“그럼 그 불안한 마음 내가 떨쳐내 드려야겠네.”
공치산이 속으로 웃었다.
역시나 그는 다루기가 참 쉬운 사람이었다.
“아니, 어떻게 말입니까?”
공치산은 속내를 전부 감춘 채, 짐작도 못 하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만약 강지한의 신제품이 내가 만든 음식들보다 높은 판매고를 보인다면 삼영식품에서 받았던 모든 돈을 토해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왜? 또 각서라도 써드릴까?”
“아이고…….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괜히 장담했다가 혹시라도 일 잘못되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괜찮습니다.”
“아니아니. 내가 안 괜찮아요. 공 부장님 불안한 마음 싹 씻어 드리겠다니까? 펜이랑 종이 꺼내봐요.”
“이것 참. 안 그러셔도 되는데.”
공치산은 난감한 얼굴로 종이와 펜을 꺼내 건네주었다.
한정국이 거기에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 가더니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사인까지 했다.
“지장도 찍어 드려야지?”
그러더니 카운터에다 인주를 가져오라 일렀다.
꾸욱!
지장까지 찍은 각서를 그가 공치산에게 넘겨주었다.
“이제 좀 불안하지 않으신가?”
“이렇게까지 해주셨는데 불안하다고 하면 제가 환자 아니겠습니까?”
“그럼 온전히 술에만 집중하실 수 있으시겠네?”
“그럼요.”
“마십시다.”
“네, 한 대가님. 오늘 제가 끝까지 잘 모시겠습니다.”
공치산의 사탕 발린 말이 한정국은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집에서는 아버지에게도 형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그였다.
그런데 공치산은 자신을 인정해 주고 이렇게 귀한 대접을 해준다.
비단 공치산뿐만이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아무도 한정국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한데 누구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줘야 할 가족들은 정작 그러지 않으니 한정국의 자아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크게 비뚤어져 있었다.
“코가 비뚤어지게 마셔봅시다.”
“좋습니다, 한 대가님! 하하하.”
두 사람은 쉬지 않고 술잔을 부딪쳤다.
* * *
우유나는 신푸드의 즉석식품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근처 대형 마트로 향했다.
신푸드의 제품은 늘 들여오는 시간에 가지 않으면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신푸드의 제품이 예전보다 좀 더디게 팔리는 것 같았다.
구매 경쟁이 많이 느슨해졌다.
원인이 무얼까 생각하는 우유나의 시야에 신푸드 전용 매대 옆에 설치된 삼영식품의 레토르트 식품 신제품 기획 매대가 들어왔다.
매대 앞에 세워진 커다란 입간판에는 한정국의 모습과 함께 ‘신선정의 맛!’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게 보였다.
“어? 오빠다. 요새 연락이 잘 안 되더니 이것 때문이었구나.”
우유나는 근 한 달간 한정국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전화 통화도 거의 되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연결이 되어도 한정국은 바쁘다는 말만 하고는 끊어버렸다.
연애하던 내내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우유나는 자신이 차인 걸까? 생각도 했다.
한데 상대방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이별 통보가 나온 것이 아니니 그렇게 단정 짓기가 애매했다.
실상 한정국이 우유나를 피한 건 바빠서라기보다 화가 나서였다.
우유나는 한정국을 두 번 속였다.
그게 괘씸했다.
하지만 우유나는 신푸드의 레토르트 식품을 자신이 만든 것이라 속였던 일이 들켜 버린 줄 꿈에도 몰랐다. 그가 정말로 바빠서 자신을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만 믿었다.
삼영식품의 매대에는 제품들이 거의 다 빠지고 제육볶음 하나만 남아 있었다.
‘우리 오빠가 레시피 작업에 참여했다고?’
제육볶음을 들고 표지에 적힌 광고문구를 읽어가던 우유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삼영식품의 신제품은 대부분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신푸드보다 맛이 더 좋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우유나는 레토르트 식품을 먹으면서 이건 무조건 직접 만든 게 틀림없다고 하는 한정국의 요리 실력을 의심했다.
‘정말 그렇게 맛있나?’
우유나는 한 번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제육볶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 * *
“맛있다.”
제육볶음을 밥 한 공기와 싹 비운 우유나가 시원한 얼음물 한 잔까지 클리어하고서는 뿌듯해했다.
“그런데 천 원 정도나 비쌀 맛은 아닌데.”
뭔가 거품이 끼어 있는 가격이라고 우유나는 생각했다.
* * *
9월 말.
드디어 신푸드의 신제품이 출시되었다.
이번 신제품들은 한식이 아닌 중식과 양식이 될 것이라는 점을 신푸드는 사전에 공지했다.
그에 레토르트 식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과연 신푸드의 새로운 도전이 전과 같은 성공을 거두게 될지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신푸드에서 내놓은 중식 요리는 짜장면, 짬뽕, 깐풍기였고, 양식 요리는 함박스테이크, 크림파스타, 라자냐였다.
그 여섯 가지 음식 중에서도 소비자가 기대하는 건 바로 짜장면이었다.
레토르트 식품의 경우 짜장면은 아무리 노력해도 중식당에서 먹는 그 깊은 감칠맛과 특유의 풍미를 재현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들 익숙한 3분 즉석요리나 짜장라면에서 느껴지던 인스턴트 특유의 맛과 향을 완벽히 지우지는 못했다.
그런데,
“대박.”
누구보다 간절히 신푸드의 신제품을 기다려왔던 우유나는 짜장면을 한입 맛보는 순간 들고 있던 젓가락을 놓칠 뻔했다.
이건 중식당에 가야만 맛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순식간에 짜장면을 먹어치운 우유나는 이제 짬뽕의 맛도 궁금했다.
짜장면이 이토록 큰 만족감을 주었으니 당연한 일.
대식가는 아닌지라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우유나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짬뽕까지 먹기로 했다.
짬뽕은 면과 국물이 꽝꽝 얼은 상태로 판매되고 있었다.
조리법은 해동시킨 국물을 끓여서 면을 넣고 30초간 더 끓이는 것으로 끝.
애초에 면도 잘 익은 것을 급속 냉동시킨 상태라 익히는 것이 아니고 얼어 있던 면을 녹이는 개념이었다.
순식간에 짬뽕을 완성한 우유나는 냄새를 맡아보고서 감탄했다.
“와 불향 장난 아니다. 어떻게 불향을 잡았지?”
우유나가 우선 국물부터 한술 맛봤다.
그러자 그녀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일 년 전 대구에서의 기억이 깨어났다.
작년 이맘때쯤.
그녀는 대구로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때 대구에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유명한 중식당이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 찾아갔다가 1시간 20분을 기다려 겨우 짬뽕 한 그릇을 먹었었다.
한데 그 맛이 잊혀지질 않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먹어봤던 짬뽕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깊고 진한 고기 육수의 국물 맛이라고 해야 할까?
바로 그 비슷한 맛이 이 짬뽕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미쳤어. 말도 안 돼.”
이건 레토르트 식품의 혁명이었다.
* * *
신푸드의 신제품이 출시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요리 관련 게시판에는 연일 신푸드의 신제품과 관련된 이야기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님들 신푸드 신제품 드셔보셨나요? 대박입니다.
-인생 짜장, 짬뽕 만났습니다.
-신푸드 양식 인증해영~^^*
-신푸드 함박스테이크 진짜 퀄리티 작살이네여. 한입 물자마자 육즙이 입안에서 팍!
-신푸드 깐풍기 하나면 고량주 세 병 그냥 사라집니다.
-기존에 있던 메뉴들도 맛이 더 업그레이드됐던데요.
-200원 비싸진 신푸드 기존 메뉴들 먹어봤음? 환장의 맛. 먹다가 정줄 놓고 지릴지도 모름. 강지한은 계속 발전 중. 신푸드도 발전하는 중.
-어떻게 200원 높였다고 이렇게 바뀝니까? 대박 조짐.
여기저기서 신푸드에 관련된 얘기들이 끊이지를 않았다.
한데 그만큼 삼영식품의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문제는 언급되는 내용에 있었다.
-신푸드는 200원 높여서 미친 퀄리티를 뽑아냈는데, 삼영식품은 타사의 제품들보다 1,000원이 비싼 제품을 내놓고도 값어치를 못하네.
-다 신선정 이름값이었지. 우리나라 사람들 대단한 브랜드 이름만 붙여버리면 그렇게 너그러워진다니까.
-진짜 내가 삼영식품이 제품들, 맛은 있지만 가격 값은 못한다고 했을 때 겁나 욕먹었었는데 ㅋㅋㅋㅋ 완전히 상황이 반전되어 버렸죠? 지려버렸죠? 오져버렸죠?
-저기요. 삼영식품 옹호하던 분들 다 어디 가셨나요?
-근데 200원 올린 신푸드에 완전 밟히는 거 보면 신선정도 별게 아닌 듯ㅎㅎㅎㅎㅎ
삼영식품과 신선정이 신푸드와 비교당하면서 싸잡아 욕을 먹고 있었다.
신푸드는 200원을 올린 것으로 전보다 높은 퀄리티의 맛을 만들어냈다. 삼영식품이 한정국과 손을 잡고 출시한 즉석식품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한데 삼영식품은 신선정의 이름까지 팔아 비싸게 제품을 내놓고 맛은 신푸드를 따라잡지 못했다.
결국 신선정 이름만 믿고 가격에 거품을 너무 많이 넣었다는 질타를 받아야 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신선정의 쾌속 행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와 반대로 잠시 주춤했던 신푸드의 판매고는 전보다 더욱 빠르게 치솟고 있었다.
* * *
삼영식품 마케팅 전략부 사무실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공치산 부장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으니 부하 직원들은 숨소리도 제대로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신하더니.’
결국 삼영식품은 신푸드에 완벽하게 밀리고 말았다.
자기만 믿으라고 했던 한정국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대로 찢어발기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한정국은 제품 단가를 1,000원이나 올려서 겨우 신푸드의 음식보다 조금 더 맛있는 레시피를 개발했다.
그런데 신푸드는 고작 200원을 올리는 것으로 한정국이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는 제품을 내놓았다.
완전히 짓밟혔다.
판매고에서 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삼영식품이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소비자를 우롱했다는 여론까지 들끓는 상황.
공치산이 한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받지를 않았다.
벌써 연락이 두절된 지 나흘째였다.
공치산은 이 일을 절대 그냥 넘길 마음이 없었다.
“한정국.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법정에서 보자.”
그가 이를 갈며 스마트폰에 저장된 법률사무소의 번호를 찾았다.
* * *
한남선의 사무실.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은 한남선은 자신의 앞에 선 장남 한민국을 피곤한 눈으로 바라봤다.
“정국이 이놈, 아직 연락 안 되냐.”
“네, 이틀 전부터 숨을 만한 곳은 전부 뒤지고 있습니다.”
“후우, 지금 그 자식 때문에 신선정의 이미지가 얼마나 추락했는지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알고 있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계속해서 찾아봐.”
“알겠습니다.”
한민국이 고개를 숙이고서 사무실을 나섰다.
한남선은 바로 개인비서 구민호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구민호가 다가와 인사를 건네자 한남선이 고함을 쳤다.
“한정국이! 이 망할 놈의 새끼 하루 빨리 찾아내서 내 앞에 끌고 와!”
“알겠습니다.”
한남선은 이번 일로 인해 한정국을 완전히 내칠 생각이었다.
그것만이 신선정의 실추된 이미지를 다시 끌어올리는 방법이었다.
* * *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방송을 준비하던 강지한은 갑작스레 걸려온 신장호의 전화에 그와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강 대표! 대박입니다, 대박!
신장호의 신난 음성에 강지한의 입에도 미소가 걸렸다.
“분위기가 괜찮은가 보네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에요. 신푸드의 브랜드 값어치가 확 오르게 생겼습니다. 전부 강 대표 덕분입니다.
“뭘요. 신 사장님께서 신경 써주시고 노력해 주신 덕분이죠.”
-내 조만간 춘천 한 번 갈 테니 시간 좀 내줘요.
“일요일 말고는 한밤중에나 시간이 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언제든 괜찮습니다.
“네. 저도 식당 나가는 시간 말고는 다 좋아요.”
-그럼 곧 연락드리리다! 하하하!
신장호가 끝까지 통쾌한 웃음을 흘리며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11시 5분 전.
슬슬 방송을 켜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이향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향숙아. 무슨 일이야?”
강지한의 물음에 이향숙이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듣고 놀라지 마.
“응. 안 놀랄게. 말해봐.”
-있지……. 할리우드에서 연락 왔어.
“뭐? 너한테?”
-아니. 설탕이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