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72화 (272/330)

# 272

Restaurant 271. 중식 덕후 호중원

호중원은 올해 스물다섯 살의 춘천 토박이 남성이다.

중국에서 건너와 귀화한 성인 파릉 호씨(巴陵 胡氏) 가문의 사람으로 어마어마한 중식 덕후였다.

하루에 한 끼 이상은 무조건 중식을 섭취해야 했다. 만약 마음에 드는 중식집들이 전부 영업을 안 하는 날은 직접 만들어서라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먹는 걸 좋아했지만 따로 운동을 하지는 않는지라 몸은 호빵처럼 뚱뚱했다.

해서 몸놀림이 굼뜨고 느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좋아하는 중식 요리를 할 때만큼은 물 찬 제비처럼 날렵했다.

하루의 거의 온종일 텅 빈 듯 공허한 시선도 중식 요리를 만들 거나 먹을 때는 초롱초롱 빛이 났다.

그만큼 호중원의 인생에서 중식 요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갈수록 호중원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춘천에서는 그의 입맛을 백 퍼센트 만족시켜 줄 만한 중식집이 없었기 때문.

그가 중식에 처음 눈을 뜬 것이 스물세 살 무렵.

그 전까지 그는 중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한데 군 제대를 막 했을 무렵이었다.

맛집을 안다는 지인 따라 찾아간 서울의 중식당에서 짜장면과 볶음밥을 맛보고는 중식에 푹 빠져들었다.

호중원은 이후 전국 중식 맛집 탐방을 했고, 그 과정에서 또 하나 깨우친 것이 있었다.

‘짬뽕은 일반 중식당이 아닌 짬뽕 전문 중식당에서 맛을 봐야 한다.’

호중원은 짬뽕 전문점이라는 것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공주에 들렀을 때 유명하다는 짬뽕집을 호기심에 방문했었다.

그날 이후 짬뽕의 진정한 맛에 눈을 떴다.

여태 중식당에서 먹어왔던 짬뽕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깊은 맛과 끝내주는 불향이 확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음식을 잘한다는 중식집을 가도 짬뽕에서 이런 깊은 맛이 난 적은 없었다.

짬뽕에 눈뜬 호중원은 결국 한 달 동안 전국을 돌며 유명하다는 짬뽕집을 전부 찾아다녔다.

그 결과 사람들이 몰려드는 짬뽕집은 해물의 시원한 맛보다 고기육수의 진하고 깊은 맛을 내는 곳이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진한 육수를 내는 짬뽕집들의 경우 열에 아홉은 불향을 확실히 담았다.

일반적인 중식당에서는 대부분 이런 짬뽕을 만들지 않는다.

예외의 경우도 있다.

중식당이라고 오픈했는데, 유명 짬뽕 전문점과 비슷한 수준의 짬뽕을 만들어내서 후에는 짬뽕만 전문으로 파는 중식당의 루트를 밟는 것이다.

전국에 그런 집들이 간혹 보였다.

이런 사실들을 꿰고 있을 만큼 호중원은 중식을 사랑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만큼 만드는 실력도 상당했다.

짜장면, 볶음밥, 짬뽕, 탕수육을 어지간한 중식당의 레벨 정도로는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는 전문 요리사도 아니고, 요리를 제대로 배운 적 또한 없었다. 그저 독학을 한 것뿐.

그럼에도 이 정도 수준의 요리를 만들어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중식에 푹 빠져 산 지도 어언 3년.

100킬로그램의 육중한 몸을 자랑하는 호중원은 아직 무직이었다.

사실 그는 부지런하지 못한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게으르다고 할 수도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을 땐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서 하루 종일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누워 있을 정도였다.

그게 아니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즐겼다.

호중원의 심신이 부지런해질 때는 오로지 중식을 먹거나 만들 때밖에 없었다.

그런 호중원을 보는 부모님은 고민이 많았다.

호중원 역시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슬슬 일을 구하려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아무래 생각해 봐도 내가 걸어야 할 길은 중식 로드밖에 없어.’

그것이 호중원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다른 지역보다 춘천의 중식당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아직은 독립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

하나 춘천에서는 그의 눈에 차는 중식집이 없었다.

해서 두 달째, 새로 오픈했다는 중식집을 모두 찾아가 봐도 늘 실망만 가득했다.

대부분의 식당이 고만고만했다.

이왕 중식당에 청춘을 걸어보기로 한 거, 제대로 된 곳에서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는 중국집 주방에서 뼈를 묻을 각오도 되어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지한 객잔이라는 곳이 오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다른 곳들과 크게 다를 것이 있겠나?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픈 사흘 만에 지한 객잔을 극찬하는 글이 지인들 SNS에서 넘쳐나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생긴 호중원은 지한 객잔 오픈 나흘째인 오늘, 저녁에 걸음을 했다.

* * *

7월 25일.

지한 객잔이 오픈한 지 나흘째.

강지한은 어제 누적 만족도 포인트가 30만을 넘게 되어 지한 객잔의 창문, 식기구, 조명, 실내 공간, 수도 배관, 가스 배관, 간판을 전부 레벨 업 했다.

레벨 업 효과는 지한 식당, 지한 레스토랑의 것과 동일했다.

이제 남은 만족도 포인트는 12,457.

앞으로 만족도 포인트를 입수 가능한 날은 6일이다.

지한 객잔을 찾는 손님들은 첫날 오픈부터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주방에 직원이 열 명이나 있어도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현재 지한 객잔의 주방은 강지한과 하정운, 투 톱을 기반으로 나머지 여덟은 보조의 개념으로서 일을 하고 있었다.

‘메인을 잡아줄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

이미 황태규가 나가던 날, 지한 푸드의 홈페이지엔 구인 광고글이 올라온 상황이었다.

한데 지원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마나 지원한 이들도 지한 객잔 주방에서 메인으로 일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강지한은 이 인력난을 어찌 해결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 * *

늦은 저녁.

지한 객잔에는 여전히 웨이팅이 걸려 있었다.

긴 줄의 앞쪽에 살이 두둑하게 찐 사내가 보였다. 호중원이었다. 그가 두툼한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 웨이팅이 진실의 웨이팅인가?”

벌써 웨이팅을 한 지 10분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그의 앞에는 남녀 커플 한 팀만 서 있는 상황.

그나마 오후 8시의 늦은 저녁 시간에 와서 웨이팅이 짧았던 편이었다.

호중원이 살이 잔뜩 오른 얼굴에 겨우 끼워 넣은 것 같은 작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날카로운 눈으로 지한 객잔의 내부를 살폈다.

유리문 너머 보이는 홀의 전경은 한마디로 행복 그 자체였다.

식사를 하는 손님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때 직원 한 명이 나와 웨이팅하고 있는 팀의 수를 세어보더니 마침 줄을 서려 하는 손님 두 명을 만류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라스트 오더 8시 20분까지라 더 이상 웨이팅 불가합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직원은 웨이팅이 불가함을 알리는 안내판을 걸어놓은 뒤 기다리던 네 팀을 안으로 들였다.

식당의 홀로 들어와 2인용 테이블에 홀로 앉은 호중원이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부터 맡았다.

“킁킁. 과연 좋은 냄새야.”

그는 서빙된 물을 한 잔 마신 뒤 메뉴판을 펼쳤다.

“무릇 중식당의 기본은 짜장면과 짬뽕이지. 하지만 여긴 짬뽕전문점이 아니니…… 볶음밥으로 하겠어.”

혼잣말을 중얼거린 호중원은 테이블의 벨을 눌렀다.

그러자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여직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물었다.

“네~ 주문 도와드릴까요?”

“네. 짜장면 보통 하나. 볶음밥 보통 하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문받았습니다. 짜장면, 볶음밥 보통으로 하나씩 맞으시죠?”

“정확하십니다.”

호중원이 안경을 슥 치켜올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살짝 당황한 여직원이었지만 이를 드러내지 않고 물러나 주문을 주방에 넘겼다.

“후후. 기대되는군.”

호중원은 과연 지한 객잔의 음식이 그렇게 난리가 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제대로 판단하겠다 마음먹었다.

* * *

짧은 기다림 끝에 음식이 서빙되었다.

‘흠. 손님들이 상당한 데도 5분 컷이군. 속도는 만족스러워.’

호중원은 앞에 놓인 짜장면과 볶음밥의 비주얼을 살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짜장 소스로 하얀 면이 가득 덮인 짜장면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다.

옆에 놓인 볶음밥은 코를 가까이 갖다 대자마자 불향이 확 하고 들어왔다.

게다가 볶음밥의 필수요소인 짜장이 다른 그릇에 따로 담겨 나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이것은 볶음밥 자체에 엄청난 자신이 있다는 뜻.

‘이거…… 이거.’

호중원의 심장이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비주얼 합격, 향 합격, 이제 맛만 있으면 게임 끝이다.

그가 짜장면을 정성스럽게 비볐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짜장면은 젓가락을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쉽게 비벼졌다.

꿀꺽!

군침을 한 번 삼킨 호중원이 짜장면을 크게 한입 넣었다.

냠!

그는 면을 끊는 걸 싫어했다.

짜장면은 절대 가위로 잘라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빨로도 되도록 끊지 않으려 했다.

최대한 입에 넣을 수 있을 때까지 욱여넣고 턱을 움직였다.

우물우물. 꿀꺽!

“허억. 허억.”

짜장면 한입을 삼킨 그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이 맛은……!”

호중원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서울의 맛집이라는 중식당에서 맛보았던 그 짜장면에 절대 밀리지 않는 맛이었다.

전국을 뒤져도 이 정도 수준으로 짜장면을 만들 수 있는 중식당은 그리 많지 않다.

“대단하다. 짜장 속에 부드럽게 녹아든 재료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면과 함께 춤을 추고 있어.”

호중원이 이번에는 볶음밥을 한술 크게 떴다.

“어디.”

한껏 흥분된 모습으로 볶음밥을 입에 넣는 그.

순간 그의 코평수가 쩍 확장되며 이마에 식은땀 한 방울이 맺혔다.

“이 넘치는 불향은 뭐지? 게다가 황금빛으로 코팅된 밥알들은 입안에서 제각기 흩어지며 감칠맛의 잔치를 벌이고 있잖아.”

호중원은 짜장면과 볶음밥의 맛에 감탄하며 연신 혼자 이런저런 말을 중얼거렸다.

자타공인 중식 덕후라고 불리는 그의 버릇이었다.

“역시 이 볶음밥은…… 같이 나온 짜장을 절대 곁들여서 먹으면 안 되는 맛이야.”

짜장으로 볶음밥 본연의 맛이 흐려지는 게 하는 건 죄악이었다.

호중원은 순식간에 짜장면과 볶음밥을 먹어치웠다.

“후우. 대단한 저녁이었다.”

냅킨으로 땀을 닦아내는 그의 눈에 손도 대지 않았던 짬뽕국물이 보였다.

볶음밥을 먹을 때 서비스로 내주었던 짬뽕국물이었다.

“너무 안 먹는 것도 조금 그런가?”

배가 제법 불러서 국물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그의 눈에 벽에 크게 붙여진 안내문이 보였다.

-지한 객잔의 짬뽕 국물은 만드는 데 많은 재료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제대로 된 요리입니다. 해서 볶음밥을 주문하셨을 때 서비스로 드릴 경우 단가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픈 이후 딱 한 달간은 볶음밥에 서비스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서비스는 9월 22일 종료되니 양해 바랍니다. 서비스가 끝나면 계란국으로 대체됩니다. 감사합니다.

“음? 저렇게까지 자신만만하다고?”

호중원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얼굴로 짬뽕 국물을 한술 맛보았다.

그런데,

“어? 이, 이 맛은!”

그의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며 맛의 향연이 벌어졌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맛보았던 유명 짬뽕 전문점들의 짬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어마어마한 맛이 입안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놀란 호중원이 국물을 그릇째로 들고 물처럼 들이켰다.

꿀꺽! 꿀꺽!

“크하아!”

짜장면과 볶음밥으로 적잖은 감탄을 한 그였으나 상상도 못 했던 짬뽕에서 제대로 한 방 먹었다.

그가 얼른 시간을 살폈다.

8시 18분.

지한 객잔의 라스트 오더는 8시 20분까지였다.

호중원이 얼른 벨을 눌러 다가온 직원에게 다급히 물었다.

“아직 주문되죠?”

“네. 괜찮습니다. 더 필요한 것 있으세요?‘

“짬뽕 곱빼기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 * *

호중원은 자신의 앞에 텅 빈 짬뽕 그릇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많이 먹어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여기다. 여기밖에 없다.’

그의 머릿속에 한참 전부터 맴돌던 생각이었다.

호중원이 근처를 지나가던 직원을 불러 대뜸 물었다.

“저기, 혹시 여기 주방에서 일할 사람 안 구합니까?”

그때였다.

호중원의 목소리를 조언의 귀가 캐치하여 강지한에게 전해주었다.

[식당의 개선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가 파악되었습니다.]

[조언의 귀가 손님의 얘기를 가져옵니다.]

[7번 테이블 남자 손님: 저기, 혹시 여기 주방에서 일할 사람 안 구합니까?]

조언의 귀는 무조건 식당에 도움될 수 있는 얘기만 가져온다.

그에 강지한의 시선은 절로 7번 테이블로 향했다.

거기엔 제법 살이 찐 사내가 직원을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강지한이 당장 정보의 눈을 사용해 그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호중원의 능력치>

직급: 지한 객잔 주방 근무 희망자

등급: A-(중식 관련 요리 한정)

능력: 요리 LV 12(중식 관련 요리 한정), 청소 LV 2, 회계 LV 7, 설거지 LV 5, 화술 LV 5

특수 능력: 중식 덕후

정직도: 100/100(중식 관련된 일 한정)

신뢰도: ?/100

종합 평가: 천성이 게으르고 태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중식에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인생의 목적이 맛있는 중식 요리를 만들고 먹는 것일 정도로 중식을 사랑한다. 특수 능력으로 인해 좋은 스승 밑에서 중식을 배울 경우 요리의 레벨이 무섭도록 빠르게 오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