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
Restaurant 256. 중식과 연태고량
요즘 각종 여행 커뮤니티에서는 한에어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화제에 올랐다.
이유는 기내식 때문.
한에어의 기내식 수준이 갑자기 올라가는 바람에 이를 접한 승객들은 너도나도 여행 커뮤니티 및 개인 SNS에 자랑하기 바빴다.
당연한 일이었다.
승객들이 비행기를 평가할 때 빠지지 않는 여러 서비스 항목 중 하나가 바로 이 기내식의 수준이었으니까.
오죽하면 각 항공사별의 기내식 수준을 비교해 놓은 게시물들도 수시로 올라오겠는가.
근 2년 간 한국에서 기내식의 왕좌를 놓치지 않고 있는 건 민국항공이었다.
한에어의 기내식은 늘 민국항공에 밀려 2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기내식을 전면 개편한 뒤 한 달 간 이용 승객들이 작성하는 글을 보면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한에어의 기내식 수준이 말도 못할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이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한 달 동안 민국항공과 한에어를 모두 이용해 본 승객의 경우 두 회사의 기내식을 놓고 냉정한 비교글을 올려두기도 했다.
물론 한에어가 더 맛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다 보니 기내식 맛이 궁금해서 한에어를 이용해야겠다는 여론이 빠르게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실제로 이를 행동에 옮긴이들도 수두룩했다.
그 바람에 한에어는 한 달 만에 이용객이 2%나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가격과 서비스라면 기내식이 더 맛있는 항공을 이용하는 것이 승객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2년간 동일한 이유로 한에어는 민국항공에게 항공사 고객유치 1위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으니까.
한편 이러한 소식은 한정국의 귀에도 들어갔다.
인사차 전화했던 민국항공의 조인철 이사가 현 상황에 대해 가감 없이 전해준 것.
절대 한에어가 자신의 기내식을 이길 수 없을 거라 자신하던 한정국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가 조인철에게 한에어의 기내식을 손본 셰프가 누구냐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알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민국항공이 그랬던 것처럼 한에어 역시 기내식 레시피를 연구한 셰프의 존재를 완벽하게 감추고 있었다.
통화를 끝낸 한정국은 한에어의 기내식 관련 최근 글들을 검색했다.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다.
노골적으로 민국항공의 기내식과 비교하며 더 맛있다고 단정 짓는 글들도 많았다.
‘비주얼은 별게 없는데.’
승객들이 찍어 올린 사진만 봐서는 크게 대단할 것이 없어 보였다.
메뉴도 특별하지는 않았다.
일반적이었다.
아무래도 직접 먹어봐야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경기도 가평의 고급 풀빌라에서 한 이불을 덮은 채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우유나가 물었다.
“응?”
“표정 되게 안 좋은데? 조 이사님인가 하는 분이 이상한 말 했어?”
“아니야.”
“그럼 표정 풀어. 같이 여행 와서 왜 그러고 있엉~ 응? 응?”
우유나가 한정국의 뺨에 입을 쪽쪽 맞추며 애교를 부렸다.
그에 한정국의 얼굴이 사르르 풀렸다.
“유나야.”
“응?”
“우리 이번에는 해외여행 한번 가볼까?”
“해외? 어디?”
“어디 가고 싶은데?”
“나 발리.”
“발리? 그래, 가자 발리.”
시원하게 그러자고 하는 한정국의 말에 우유나가 신이 났다.
“애인이랑 해외여행 가는 거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경비는 반반씩?”
“됐어. 내가 낼게.”
“싫어.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반반씩 해. 안 그럼 안 가.”
“하하하. 그래. 반반씩 하자.”
우유나는 한정국과 함께 발리에 갈 생각으로 들떴다.
반면 한정국은 관심은 오로지 한에어의 기내식에만 꽂혀 있었다.
“오빠, 우리 저녁 먹자.”
“그럴까? 유나야. 그거 가져왔지?”
“뭐?”
“너희 어머니 김치. 오빠가 조금 가져오라 그랬잖아.”
“어? 어~ 그럼. 가져왔지!”
우유나가 풀빌라 냉장고에 미리 넣어놨던 김치통을 꺼냈다.
큼지막한 통 안에는 김치 반 포기가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었다.
“크, 때깔 좋다.”
주방에서 김치를 확인한 한정국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가 지금 우유나 어머니의 김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지한 김치였다.
한정국이 우유나의 집에 놀러왔을 때, 그녀가 지한 김치를 자기 어머니가 담근 김치라고 속였기 때문이다.
모처럼 애인을 위해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그 공로가 전부 파는 김치로 돌아가는 건 억울해서 그랬다.
한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한정국은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가 김치를 죽 찢어 맛보았다.
시원하고 아삭하고 감칠맛이 확 도는 것이 끝내줬다.
“어머니 손맛이 진짜 장인급이야.”
“그래?”
“나도 김치는 이렇게 못 담가.”
“그 정도야?”
“그렇다니까.”
그 말을 들으며 우유나가 속으로 생각했다.
‘파는 김치가 장인급이래. 강지한이라는 요리사가 진짜 대단하긴 한가 보다.’
점점 더 강지한이 호감으로 느껴지는 우유나였다.
* * *
요즘 한에어의 승무원들은 전보다 일할 맛이 났다.
기내식 덕분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의식주다.
그중 식(食)이라는 것은 그저 먹고살기 위한 수단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유희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오죽하면 미식이나 식도락이라는 말이 다 있을까.
그만큼 맛있는 것을 먹는 행위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다.
때문에 갑자기 맛의 퀄리티가 높아진 기내식에 승객들은 물론이고 근무하는 승무원들까지 행복해졌다.
승무원들의 입에서 요즘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 주제도 바로 기내식이었다.
대체 어떤 마법을 부리면 기내식으로 그 정도의 맛까지 낼 수 있는지에 관한 토론이 계속되었다.
한에어의 회장 이항기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인터넷에서도 민국항공의 기내식 이야기가 줄어들고 자회사의 기내식 이야기만 늘어갔다.
그는 강지한에게 지불하기로 한 의뢰금 외에 따로 선물을 더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얼마 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고 오늘, 강지한을 보기 위해 춘천으로 향하게 되었다.
* * *
강지한은 요즘 중식당을 오픈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중식당은 고급화시키기보다는 서민적인 분위기로 많은 손님들이 부담 없이 다녀갈 수 있는 분위기로 꾸밀 생각이었다.
메뉴는 일반 중식당에서 볼 수 있는 기본적인 메뉴들.
자장면, 짬뽕, 볶음밥, 잡채밥, 탕수육 등을 메인으로 해서 일반 중식당에서 보기 힘든 요리들도 넣었다.
일전에 방송에서 선보인 꿔바로우.
닭고기를 땅콩, 고추, 채소들과 함께 매콤한 소스로 볶은 궁보계정.
춘장에 볶은 돼지고기를 여러 가지 채소에 곁들여 먹는 경장육사.
중국의 가정식으로 많이 먹으면서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딱 맞는 계란토마토볶음.
하얼빈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밥도둑 건두부볶음.
매콤 얼큰한 마라탕에 육즙만두 샤오롱빠오까지.
모두 레벨 6의 수준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아울러 중국집의 규모는 조금 크게 잡기로 했다.
지한 식당은 50평이었는데도 몰려드는 손님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분점을 차렸다.
지한 레스토랑 역시 지한 식당의 두 배가 넘는 규모로 2층 건물이었는데 늘 만석이다.
그래서 이번 중식당은 지한 레스토랑보다 큰 건물을 매입할 생각이었다.
물론 본점의 시작은 춘천이다.
지한 레스토랑 같은 경우 도근한의 건물을 살려야 한다는 특수성으로 인해 서울에 본점을 두게 되었지만, 강지한은 기본적으로 어떤 식당을 운영해 나가든 본점은 춘천에 두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분점들을 서울로, 그리고 전국으로 뻗어나가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미 지한 분식과 지한 김치찌개, 그리고 지한 만두의 프렌차이즈점은 서울에서 시작해 경기도 권까지 늘어나고 있었다.
서울과 경기도를 합쳐 세 가지 상표의 프렌차이즈 점포는 10곳으로 늘어났다.
중식당도 그런 식으로 점포를 늘려 나갈 계획이었다.
집에서 한창 기분 좋은 청사진을 그리며 손님 맞을 요리들을 하나둘 거의 다 완성해 나가던 와중.
똑똑.
현관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항기였다.
강지한이 문을 열어 그를 맞이했다.
이항기의 뒤에는 개인비서 정해일도 함께였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회장님.”
“강 사장님 만나 뵐 생각에 전혀 고생스럽지 않았습니다.”
“들어오시죠.”
두 사람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한 상 위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고서 군침부터 꿀꺽 삼켰다.
오늘 강지한이 손님들을 위해 만든 요리는 각종 중식이었다.
열다섯 가지의 요리들이 조금씩 접시에 담겨 놓여 있었다.
가짓수는 많지만 양이 작아 셋이서 먹는 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이게 다 뭡니까?”
강지한이 권하는 자리에 앉으며 이항기가 물었다.
“제가 중식당에도 손을 좀 대볼까 해서요. 오픈하게 되면 개시할 메뉴들을 시험 삼아 만들어 봤습니다.”
“오? 그럼 이 음식을 먹는 첫 번째 손님이 되는 것이겠군요. 이거 영광입니다.”
이항기는 진심으로 기뻤다.
정해일 또한 마찬가지의 심정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말을 하며 상에 다가와 앉는 강지한의 손에 연태고량주가 들려 있었다.
* * *
이항기와 정해일은 강지한이 만든 중식 요리 하나하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퀄리티 높은 맛을 내는 중식당은 서울에서도 몇 군데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대부분 그런 식당들은 주방장이 어렸을 적부터 중식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강지한은 중식만 들고 판 사람이 아니다.
서른이면 나이도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막힌 중화요리를 선보일 줄이야.
‘이러니 기내식이 그렇게 터졌지.’
이항기가 내심 감탄했다.
강지한은 이코노미 기내식의 음식 레벨을 6까지 끌어올렸다.
민국항공의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서비스되는 기내식 레벨이 5.7이었으니 그보다 0.3이나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물론 퍼스트 클래스의 기내식 레벨은 6.3으로 그보다 더 높았다.
“강 대표님, 제가 강 대표님을 큰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 아십니까?”
“칭찬이 과하시네요. 하하.”
“칭찬이라니요. 진심입니다. 아무래도 말로만 이러고 넘어가면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아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이항기가 정해일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정해일이 옆에 두었던 작은 상자 하나를 강지한에게 건네주었다.
강지한은 그것을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평생 무료 항공권이라 적힌 비행기 티켓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말 그대로 평생 무료 항공권 티켓입니다. 티켓은 그냥 장식으로 드린 것이고 우리 한에어 전산에 강 대표님은 VVIP로 등록 되었습니다. 오늘 이후로 언제고 비행기를 타고 싶으시면 무료로 티케팅할 수 있게 마련해 놓았습니다. 물론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셔도 됩니다. 하하하.”
강지한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퍼스트 클래스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평생 무료 항공권이라니.
몇 년 전인가 인터넷 기사에서 비행기에서 우연히 출생한 아이에게 사측이 평생 무료 항공권을 제공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런 행운이 강지한에게 찾아온 것이다.
“제가 이걸 받아도 될까요?”
“강 대표님 덕분에 우리 한에어가 본 이득이 얼마인 줄 아시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지실 테니 그냥 받으세요.”
정해일도 그러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강지한이 받지 않겠다고 해도 고집을 무를 이항기 회장이 아니었다.
결국 강지한은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한에어 광고 많이 하고 다녀야겠네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지요. 하하하! 자, 건배하십시다!”
짠-
강지한과 이항기가 부딪히는 유리잔이 듣기 좋은 소리를 울렸다.
기름진 중식에는 도수가 높으면서 향이 좋고 깔끔한 연태고량주가 딱이었다.
“크으 좋다.”
“언제 먹어도 좋네요, 이 술은.”
운전을 해야 해서 술을 먹지 못하는 정해일이 부러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