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06화 (206/330)

# 206

Restaurant 205. 독고진과 오만석의 일자리

요즘 독고진은 하루하루가 조금 무료했다.

그는 춘천의 지한 김치 매장에서 문정연과 김치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장 안에서 크게 할 일이 없었다.

강지한의 집에서 김치를 만들어 팔던 초반에는 김치를 담그고, 트럭으로 나르기도 하며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김치를 받아서 판매하는 게 전부다.

김치를 많이 사가는 사람들에게는 배달도 해준다.

하지만 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1인 구매량에 제한이 걸리며 그조차도 사라졌다.

매일 한정된 양만 들어오는 김치이기에 빠르게 매진이 되곤 한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너무 많은 양을 구입하게 되면 그만큼 구입을 못하는 손님들이 생기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정해놓은 규칙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손님들은 이를 이해해 주었다.

그 바람에 독고진은 이제 배달 업무와도 멀어졌다.

아침에 출근해서 매장을 열고 청소하고, 들여온 김치를 진열하고, 판매하고, 끝나면 다시 청소한 뒤 문을 닫는 것으로 끝.

모든 일들이 너무나 단조롭고 재미가 없었다.

그나마 손님들 상대하는 재미가 있긴 했으나 들여온 물건들이 워낙 빨리 매진되다 보니 그 재미도 금방 사라지곤 했다.

‘아, 무료하다.’

독고진은 요즘 매일같이 무료함과 싸우고 있었다.

* * *

“어머나? 너 실력이 갈수록 는다? 진짜 맛있네.”

11월 10일, 토요일.

간만에 춘천 집으로 내려온 조미옥은 아들 독고진이 차려준 밥상을 받으며 감탄했다.

“요리라는 게 할수록 늘더라고.”

“뭐든 할수록 안 늘겠냐.”

조미옥이 놀란 건 늘어도 너무 빨리 늘었다는 것.

자신의 아들은 애초에 요리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인간이라고 못 박아 두었었다.

별로 관심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주방 일을 거들어준 역사가 없었으니까.

그녀가 치킨집 일을 할 때도 독고진의 역할은 늘 배달이었다.

닭 한 번을 튀겨보질 않았다.

해서 요리 재능도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그녀의 판단이 틀렸다.

‘요리 쪽은 날 닮았네.’

독고진의 음식이 입에 아주 딱 맞았다.

그건 손맛이 닮았다는 말이었다.

“너 할 줄 아는 요리 뭐 있어?”

“한식, 중식, 양식, 일식, 타이 음식 뭐, 다 해. 모르는 음식도 레시피 보면 바로 만들 수 있어. 어지간한 음식들은 이제 먹어보면 어떻게 만드는 건지 알겠더라.”

“좀 띄워주니까 바로 허풍 떠는 거 봐라. 그런 건 어째 네 아빠를 꼭 닮았니?”

“허풍 아니야. 많이 먹고 많이 만들고 하다 보면은 그런 게 생기더라고.”

‘그건 또 맞는 말인데.’

정말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다.

조미옥의 그런 낌새를 눈치챈 독고진이 짜증을 냈다.

“아, 좀 믿어봐. 엄마 횡성가고 나서 줄곧 나 혼자 밥 챙겨 먹었잖아. 그동안 안 해먹어 본 요리가 없어요. 처음에는 그냥 맛있는 것 좀 만들어 먹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하다 보니까 재미가 붙어서 진짜 열심히 만들었어. 그러다 확 늘었다니까?”

그러고는 요리에 자신이 붙자 얼마 전부터 조미옥이 집에 오면 밥상을 직접 차려주기 시작한 것.

아무튼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허풍은 아닌 듯했다.

“너도 이러다가 우리 강 대표님 루트 타는 거 아니냐?”

“안 그래도 나 요새 포지션을 좀 바꾸고 싶어. 판매가 아니라 조리 쪽으로.”

“진심이야?”

“응.”

“정말 요리가 하고 싶어?”

“응.”

독고진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확고한 아들의 모습에 갑자기 조미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너, 네 입으로 대답한 거야. 칼 잡고 까불다가 힘들다고 나중에 딴소리하면 어쩔 거야?”

“그럼 아예 요식업계를 떠나겠습니다, 오마니.”

“까불지 말고 할 거면 제대로 마음잡고 뛰어들어. 퍽 진지한 거 같으니까 내가 강 대표님한테 넌지시 말 한 번 꺼내볼게.”

“정말? 고마워, 엄마!”

독고진은 은근히 강지한을 어려워한다.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는 것도 아닌데, 강지한은 어쩐지 자신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조미옥이 자신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 * *

“강 대표님~ 늘 감사드려요.”

“언제나 지금처럼만 인자해 주세요. 히힛.”

“사랑해요, 대표님!”

11월 11일은 막대과자 데이다.

강지한은 식당으로 출근하는 여직원들 모두에게 막대과자를 받았다.

물론 도근한도 막대과자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강지한이 받은 것보다는 퀄리티가 많이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내가 이런 걸 다 받아보고.’

11월 11일은 강지한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동안 못 받았던 막대과자를 한 번에 다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기분 좋게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예소린이 들어섰다.

그녀의 품에는 거대한 막대과자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카운터 위에 탁 올려놓은 예소린이 강지한을 보며 빙긋 웃었다.

“내가 직접 만들어왔어. 직원분들이랑 맛있게 나눠 먹어, 지한 씨.”

“올~”

“무려 수제 막대과자! 부럽다.”

“나도 연애하고 싶어지네요.”

“대표님 얼굴 빨개졌대요!”

직원들이 한 마음으로 강지한을 놀려댔다.

“고마워, 소린 씨. 이런 걸 직접 만들어 올 줄은 몰랐는데. 맛있게 먹을게.”

“내일 소주 한잔해. 자기. 그럼 나도 오픈하러 가볼게. 다들 고생하세요.”

사실 예소린은 오늘 강지한과 함께 있고 싶었으나 예경천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딸은 끔찍하게 아끼는 예경천은 발렌타인데이나 막대과자 데이 같은 기념일 날에는 어지간하면 딸과 함께 보내고 싶어 했다.

강지한도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이해해 주었다.

예소린이 막대과자 바구니와 미소를 남기고서 식당을 나섰다.

“진짜 예쁘다.”

“신이 빚은 최고의 피조물이셔.”

예소린이 떠나자마자 그녀에 대한 감탄이 직원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한편 도근한의 미간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오래전, 도근한은 그녀를 어딘가에서 봤다.

한데 그게 어디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 * *

“이게 뭐예요?”

모처럼 설탕이의 촬영이 비는 날.

춘천으로 돌아온 이향숙은 설탕이를 애견 카페에 맡기고서 바로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리고 밀린 업무들을 해결해 나가던 와중 독고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잠깐 얼굴 좀 볼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이향숙은 딱 5분만 시간을 할애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회사 앞에서 독고진을 만나게 됐다.

독고진은 그녀에게 다짜고짜 바구니부터 내밀었다.

“제가 직접 만든 막대과자랑 도시락인데요. ……드세요.”

“저한테 이걸 왜 줘요?”

“그냥 제 마음의 표시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럼 갑니다!”

독고진은 짧고 굵게 치고 빠졌다.

그가 준 도시락을 사무실로 들고 온 이향숙이 뚜껑을 열어보았다.

4단 도시락이었는데, 첫째칸은 해물필라프, 둘째칸은 동그랑땡, 김치, 계란말이, 찹스테이크 등의 반찬, 셋째칸은 과일, 그리고 넷째 칸에는 수제 막대과자가 들어 있었다.

꼬르륵.

마침 배가 고팠던 이향숙은 별 기대 없이 해물필라프부터 한 술 떠 먹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당히 맛이 있었다.

동그랑땡과 계란말이, 찹스테이크도 수준급이었다.

‘제법인데?’

독고진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 이향숙이었다.

* * *

서울, 여의도 공원.

그 안에서는 몇 달 전 분식집 막내아들을 성공리에 마무리 지은 송만대 감독의 신작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었다.

이번에도 드라마의 주연 자리는 전작의 주연이었던 좌경우가 꿰찼다.

그리고 여주 역에는 윤선아가 낙점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카메라를 돌리다가 점심나절이 되어서야 식사를 할 겸 잠시 쉬어가게 되었다.

오늘은 제작사 측에서 밥차를 제공해 주었다.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기쁨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실 바쁜 촬영장에서 잠깐 짬을 내 먹는 음식은 뭐든 다 맛있다.

김밥 한 줄도 꿀맛이다.

그래도 역시 밥차만 한 것이 없었다.

좌경우는 원래 식도락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분식집 막내아들의 먹방 연기를 위해 윤선아의 추천으로 지한 분식에서 식사를 하게 되며 식도락에 눈을 떴다.

지금도 좌경우와 윤선아는 식사를 하며 먹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밥차 음식들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

“맛이 비슷비슷하지, 오빠?”

“응. 근데 그 소식 들었니, 선아야. 설탕이 온다 촬영장에…….”

좌경우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윤선아가 그의 말을 잘랐다.

“강 사장님이 직접 밥차 끌고 왔던 거?”

“들었구나.”

“그 얘기 요새 방송가에 얼마나 핫한데.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왔는데 진짜 장난 아니었대. 다들 강 사장님 밥차 음식 먹고 나서 다른 밥차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던데.”

“엄청 궁금하네. 어땠는지.”

“하아……. 지한 분식 가고 싶다. 떡볶이랑 김밥이랑 진짜 예술인데.”

“난 거기 제육덮밥이랑 김치찌개가 그렇게 좋더라. 눈에 아른거린다.”

“강 사장님이 밥차 사업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네.”

“그러면 게임 끝이지. 이 바닥 순식간에 평정할거다, 아마.”

* * *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

노가다를 뛰고 돌아온 오만석이 애들 앞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장호야, 나라야. 아빠 죽겠다. 파스 좀 붙여주라.”

오장호는 오만석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미 파스를 뜯고 있었다.

늘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

탁탁!

“다 붙였어.”

이제는 파스를 어느 부위에 붙여야 하는지 말 안 해도 다 아는 오장호였다.

오만석이 끙끙 대며 이불 위에 드러눕자 오장호가 다가와 물었다.

“많이 힘들어?”

“못해먹겠다. 다른 일을 찾던가 해야지.”

근데 과연 가방끈도 짧고 제대로 회사를 다녀본 적도 없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오만석은 생각했다.

그나마 있는 자격증이라고는 대형면허 하나가 전부였다.

‘택배 일을 할까?’

택배 일은 그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

하루 동안 배달해야 하는 물량이 늘 많아서 잠을 제대로 못자고 바쁘게 도로를 달려야 하기에 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차라리 그게 매일같이 철근을 나르고 흙짐을 어깨에 지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근데 그건 집을 너무 비우게 될 텐데.’

그러자니 애들이 눈에 밟혔다.

결국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머리만 복잡해지는 오만석이었다.

* * *

늦은 밤.

강지한은 독고진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술을 한잔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안주는 독고진이 직접 만든 요리였다.

아울러 오늘 술자리엔 도근한과 조정호도 함께했다.

“어머님한테 들었어. 주방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독고진과 함께 일을 한 지도 오래됐다.

강지한은 몇 달 전부터 그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네.”

대답하는 독고진의 상태창을 강지한이 살폈다.

<독고진의 능력치>

직급: 지한 김치 매장 직원

등급: C

능력: 요리 LV 8, 서빙 LV 3, 청소 LV 3, 회계 LV 7(MAX), 설거지 LV 7(MAX), 화술 LV 8(MAX)

특수 능력: 레시피 엄수

정직도: 92/100

신뢰도: 100/100

종합 평가: 요리에 뒤늦게 눈을 떴다. 엄마의 손맛을 물려받아 실력이 제법이다. 대부분의 능력들은 잠재력이 낮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큼 요리의 잠재력이 뛰어나다. 특히 누군가 정확한 레시피와 재료를 내어주면 충실히 요리하여 90퍼센트 이상 비슷한 맛을 재현할 수 있다. 다만 창작요리에는 재능이 없어서 주방장 감은 아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재능이 괜찮은 편이었다.

그가 만들어 내온 음식들도 레벨3의 수준으로 맛이 제법 좋았다.

조금만 키워주면 오너까지는 아니더라도 훌륭한 보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데 문제는 당장 독고진에게 일을 줄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방법을 고심하던 강지한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가만. 꼭 식당 주방에서만 일을 시키지 않아도 되잖아.’

그가 보기에 독고진은 은근히 방랑벽이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레시피 엄수라는 특수 능력을 보고 나니 그에게 딱 맞는 일이 하나 떠올랐다.

강지한이 그에게 물었다.

“진아, 너 밥차 한 번 몰아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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