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Restaurant 188. 잃어버린 기억
‘맞아, 이번 스테이지의 보상은 내 잃어버린 기억 한 조각이었어.’
강지한이 목표 완수 시 주어지는 보상을 곱씹어 보는 순간 갑작스런 기억의 파도가 그의 머릿속을 확 덮쳤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모든 것들이 멈춰 버렸다.
강지한은 시공간이 무의미한 세상 속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잊혀진 기억들 몇 가지가 마구잡이로 나타났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살아생전 또렷한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영정사진은 가지고 있었기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얼굴을 잊지는 없었다.
그러나 사진 속 이미지와 실제의 이미지는 분명히 달랐다.
오래간만에 접하게 된 두 분의 모습에 강지한은 울컥 목이 멨다.
하지만 그것은 레벨 업 시스템이 보상으로 보여주는 허상이었다. 죽었던 부모님이 살아 돌아온 것도 아니기에, 눈물까지 흘리지는 않았다.
부모님들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는 어린 강지한이 요리대회에서 수상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그는 하얀색의 조리사 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모자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그의 품에는 우승 트로피가 들려 있었다.
‘이건…….’
강지한이 꿈속에서 자주 봤던 상황이었다.
그의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의 이런 모습이 종종 꿈에 나오고는 했었다.
시상직장에 모인 사람들이 어린 강지한을 축하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자~ 강지한 군! 여기 보고 활짝 웃어봐요~”
찰칵! 찰칵!
이십 대 초중반의 청년 기자는 강지한의 모습을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멀리서는 그 모습을 엄마가 흐뭇하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게 꿈이 아니었다고?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강지한은 그것이 천상 꿈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건 보상으로 받은 ‘잊힌 기억의 조각’이었다.
말인즉, 결코 꿈이 아니란 얘기였다.
‘내가 어렸을 때 요리대회에서 우승을 했었단 말이야?’
믿을 수가 없었다.
저렴한 미각에 요리에는 소질도 없는 똥손이라 떡볶이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그였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그는 요리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이렇게 큰 사건이 기억에서 지워졌다니.’
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지워진 건 아니었다.
꿈속에서나마 몇 번이나 봤었으니까.
하지만 강지한은 그 광경 자체가 너무나 현실성이 없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눈앞의 장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세 가족이 사는 단란한 가정집의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의 곁에는 어린 시절의 강지한이 딱 달라붙어 있었다.
어린 강지한은 엄마가 무슨 요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신중하게 살피는 중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엄마는 물었다.
“우리 지한이 커서 뭐 될 거야?”
“요리사! 무조건 요리사 될 거야! 그래서 엄마처럼 맛있는 요리 많이 만들 거야!”
“우리 아들 실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서로를 보며 활짝 미소 지은 엄마와 아들은 하이파이브를 맞췄다.
이를 지켜보던 강지한의 몸이 한차례 파르르 떨렸다.
‘내 꿈이 요리사였어?’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리어카를 끌며 분식을 팔았던 것도 그저 먹고살기 위해 택했던 일일 뿐이었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과거의 사진이라도 남아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앨범들은 강지한이 중학교 3학년 때 집이 홍수 피해를 심하게 입으면서 전부 못쓰게 되고 말았다.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새벽녘.
어린 강지한은 안방에서 누워 자다가 살짝 잠이 깼다.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출장을 나간 모양이었다.
엄마는 장롱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라보며 숨죽여 울고 있었다.
엄마가 들고 있는 물건은 창문에서 넘어온 달빛에 예기를 흘렸다.
그것은 식칼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흔한 식칼은 아니었고, 어떤 깊은 사연이 있는 것만 같았다.
강지한이 그 식칼을 자세히 보려고 할 때 다른 기억이 나타났다.
어린 그가 아빠와 함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없으니까 밥맛이 안 난다.”
어린 강지한의 말에 아빠가 코웃음을 쳤다.
“거의 다 먹어놓고 그렇게 말하면 설득력이 있겠어?”
“엄마가 저녁상에 없던 건 처음이잖아.”
“그렇지.”
아빠가 빙긋 웃었다.
그 대화를 듣고 보니 강지한도 저녁상엔 항상 엄마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엄마가 저녁을 거르거나 저녁상에 함께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기억의 조각을 보니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지한아, 넌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모르지?”
“응? 나 알고 있는데?”
“진짜? 엄마 맨날 집에만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니까 대단한 사람이지. 항상 나랑 같이 있어 주잖아.”
“하하, 네 말이 맞다. 우문현답이네.”
아빠가 피식 웃고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씁쓸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정말 큰 사람이 됐을 텐데.”
거기에서 눈앞에 펼쳐지던 환상이 연기처럼 흩어지며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흘러갔다.
“지한쓰~ 괜찮아?”
멍하게 서 있는 강지한에게 강지영이 물었다.
“응? 아……. 응, 괜찮아.”
“너 진짜 강심장이다. 나는 사지가 떨려서 죽겠는데, 넌 멍 때릴 여유까지 있냐. 그 여유 나 좀 나눠줘라.”
강지영이 농을 던졌지만 지금 강지한의 귀엔 그녀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 내가 본 것들은 뭐였지? 그게 정말 잊고 있던 기억이라고? 내가…… 요리를 좋아했었다고?’
만약 정말 그랬다면 대체 왜 요리와 관련된 기억들은 싹 잊어버린 것인지. 요리대회에서 우승까지 할 정도의 뛰어난 실력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의문점만 늘어나는 강지한이었다.
* * *
지한 식당 분점의 오픈식은 무사히 끝났다.
오픈 발로 인해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정신없이 바빴지만 큰 사고 한 번 없이 영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강지영도 제법 자신감을 얻었다.
내일부터는 강지한이 없어도 혼자서 식당을 잘 운영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분점은 본점처럼 어떠한 목표가 주어진다거나 퀘스트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또한 본점의 레벨 업 시스템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식당이었다.
강지한은 본점의 레벨 업 된 부분들이 일부는 적용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아무튼 분점의 성공적 오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는 낮에 보았던 잊힌 기억들을 곱씹는 중이었다.
‘하나같이 요리에 관련된 기억들이었어.’
요리대회 수상. 요리사가 꿈인 어린 강지한. 범상치 않은 식칼을 보며 흐느끼던 엄마. 엄마가 없는 저녁상을 함께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던 아빠.
‘왜 하필이면 요리에 관련된 기억들만 싹 사라진 걸까.’
강지한은 끙끙대며 고민했지만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다.
“휴.”
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에 곁에 있던 설탕이가 강지한의 무릎 위로 올라오더니 앞발로 그의 가슴을 집고 일어서서 입을 핥아주었다.
할짝. 할짝.
“아빠 걱정해 주는 거야, 아들? 아빠 괜찮아.”
강지한이 설탕이의 목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갑자기 허공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간판의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간판의 레벨 업 조건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를 해금하기 위해서는 소기의 미션을 완수해야 합니다.]
[해금 미션: 지한 식당의 긍정적인 리뷰글 100개 채우기. 100/100]
[미션 클리어. 간판의 레벨 업 조건이 해금됩니다.]
[간판의 레벨 업 조건: 20,000만족도 포인트.]
“어? 이게 이런 타이밍에 해금되네.”
강지한은 바로 2만 만족도 포인트를 투자했다.
[간판을 레벨 업 했습니다.]
[간판의 레벨이 최대치입니다.]
[간판이 강화되어 기능이 향상됩니다.]
[지한 식당의 인지도가 조금 더 빠르게 오릅니다.]
간판의 레벨 업이 가져다 준 혜택은 인지도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인지도 가속이라……. 나쁘지 않지.’
분점이 오픈한 상황에서 인지도가 더 빨리 오르면 그만큼 손님의 유입이 많아질 테니 적절한 시기에 좋은 효과를 얻은 셈이었다.
“그건 그렇고…….”
진짜 그 기억들은 뭘까. 내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건가.
강지한의 심경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혼자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자 강지한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다음 주에 정신과라도 가봐?’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갑자기 울적해졌다.
고개를 휘휘 저어 잡념을 털어버린 강지한이 냉장고에서 참외를 꺼냈다.
그것의 껍질을 레벨 업 시스템으로 얻은 진화형 부엌칼로 깎았다.
“우울할수록 단 걸 먹어야 돼.”
참외 껍질을 깎으며 혼잣말을 하는 강지한의 눈에 부엌칼의 정보창이 보였다.
[정체를 감춘 명인의 미완성 강철칼?진화형]
LV4: 숙련도 99/100
-어떤 명인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완성 강철칼입니다. 진화를 거듭해 완성형 부엌칼이 되면 감추어진 명인의 이름이 드러납니다.
-숙련도를 가득 채울 경우 레벨 업 조건이 열립니다.
‘꾸준히 사용하다 보니 숙련도가 많이 올랐네.’
이제 1만 더 올리면 레벨 업 조건이 해금된다.
한데 마침 참외를 다 썰었을 때 숙련도가 100이 되며 레벨 업 조건이 열렸다.
[정체를 감춘 명인의 미완성 강철칼?진화형]
.
.
.
-만족도 포인트 100,000을 투자할 경우 레벨 업 가능.
“10만 포인트나 투자하라고?”
현재 강지한에게 누적되어 있는 만족도 포인트는 147,523이었다.
“포인트 안 쓰고 모아두기를 진짜 잘했다.”
만약 그가 포인트를 얻는 족족 돈으로 환전했으면 지한 식당의 기물들이나 진화형 칼을 레벨 업시키는 것이 불가능했을 터였다.
아껴두기를 천만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환전 시스템이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함정이었어.”
강지한은 투덜대면서 10만 만족도 포인트를 칼에 투자했다.
그러자 칼에서 빛이 일며 그 형태가 또다시 변했다.
칼날의 길이가 살짝 길어지고 옆 면적이 좁아져서 전체적으로 예리한 느낌이 강해졌다.
그리고 손잡이에 있던 밋밋한 물결무늬가 진해지며 더욱 정교하게 각인되었다.
자세히 살피니 그것은 물결무늬가 아니라 어떤 동물의 비늘 같은 형태였다.
강지한이 진화를 마친 칼의 정보를 다시 살폈다.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명인의 미숙한 강철칼?진화형]
LV5: 숙련도 0/100
-어떤 명인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숙한 강철칼입니다. 진화를 거듭해 완성형 부엌칼이 되면 감추어진 명인의 이름이 드러납니다.
-숙련도를 가득 채울 경우 레벨 업 조건이 열립니다.
“이건 최종 레벨이 몇이려나.”
혼잣말을 하며 강지한이 칼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런데 칼의 형태가 어째 낯설지 않았다.
“어? 이 칼…… 비슷하지 않나?”
강지한의 잊혀진 기억 속에서 엄마가 품에 안고 흐느꼈던 그 칼의 모양과 약간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아니겠지. 식칼이라는 게 대충 보면 생김새가 다 거기서 거기니까.’
강지한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기고는 깎아놓은 참외를 집어 먹었다.
설탕이가 그런 강지한의 곁에서 괜히 알짱거렸다.
밥상머리에서는 그러지 않지만 유독 과일을 먹을 때는 식탐을 드러내는 설탕이었다.
툭툭.
설탕이가 참외를 먹는 강지한의 무릎을 앞발로 툭툭 쳤다.
그러다가 반응이 없으니 강지한의 눈앞에서 엉덩이를 보이고 엎드렸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배를 까뒤집고 애교를 부렸다.
“크크큭. 졌다, 졌어.”
결국 강지한은 참외 몇 조각을 내어주었다.
설탕이가 반색하며 참외를 집어 먹었다.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었다.
“소린 씨가 자꾸 이러면 버릇 나빠진다 그랬는데.”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설탕이를 바라보는 눈은 애정으로 가득했다.
‘우리 엄마랑 아빠도 날 볼 때 이런 심정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또다시 낮에 보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대체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때 강지한의 머릿속에 번개가 번쩍했다.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땠었는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
강지한이 스마트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