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Restaurant 124. 조련하는 설탕이
베네핏 배틀이 끝나고 쉬는 시간.
김두찬이 천막을 둘러 임시로 마련한 공간에 들어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노영철 피디는 카메라에 담긴 그의 얼굴을 보며 감탄했다.
“카메라 앵글이 김 작가님 미모를 다 담지 못하네요.”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편하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다들 입 발린 말 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럼 인터뷰 시작할게요.”
“네.”
“우선 배틀 셰프에 방문하신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대단했어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멋진 경험이었고,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 같아요.”
“멋진 표현이네요. 그럼 오늘 시식한 음식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무엇이었죠?”
“아무래도…… 개인적인 취향을 생각하자면 도근한 씨의 스테이크가 최고였어요. 한데 그런 취향을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봤을 땐 강지한 씨의 음식이 최고였어요.”
이건 노영철이 예측하지 못했던 답변이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강지한의 음식이 최고였다는 건, 취향을 압도했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강지한의 실력에 김두찬은 깊이 감탄하고 있었다.
이어 김두찬은 예언 같은 이야기를 내놓았다.
“아마 강지한 씨는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것도 빠르게. 지금보다 나중이 더 기대되는 분이에요. 춘천 갈 일이 많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 * *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김두찬은 스텝과 출연자들 한 명 한 명 모두와 정중히 인사를 나눴다.
그는 함께 사진을 찍자거나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을 모두 들어주었다.
그렇게 팬서비스 시간을 가진 이후에야 배틀 셰프 키친을 떠났다.
이후 출연자들과 심사위원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그 시간이 배틀 셰프를 촬영하는 동안 모두가 유일하게 오래 쉴 수 있는 때였다.
인터뷰를 일찍이 마친 강지한이 세트장 한 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 그의 곁으로 한돈선이 슬쩍 다가왔다.
“깊은 사색에 잠겨 있군요.”
“아, 대가님.”
강지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그를 한돈선이 다시 앉혔다.
“편하게 앉아요. 나도 앉을 테니까.”
그러면서 강지한의 옆 의자에 엉덩이를 깔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별거 아니었어요. 그냥…… 다음 라운드 과제가 무얼까. 베네핏은 또 어떤 것이 주어질까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네요. 제가 방해하고 있는 거라면 피해드리도록 할게요.”
“아뇨. 막상 이렇게 생각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항상 생각지도 못했던 과제들이 나오거든요.”
“호호호. 그건 그렇지요.”
“네. 하하. 근데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꼭 할 말이 있어야 말을 붙일 수 있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할 말이 없는데 굳이 다가와 말을 붙이는 것도 이상했다.
그런 강지한의 내심을 들여다본 듯 한돈선이 이렇게 물었다.
“이상하죠? 다른 지원자들에겐 별 관심도 없는 것 같은 사람이 유독 강지한 씨에게만 툭툭 말을 붙이며 다가오니까요.”
“그게…… 조금은요.”
강지한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한돈선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럴 겁니다. 나도 내가 이상하니까.”
“네?”
“모르겠어요. 이상하게 지한 씨한테는 묘한 끌림 같은 걸 느껴요. 왜일까요?”
강지한에게 물어봤자 답이 나올 리 없었다.
강지한이 한돈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그 끌린다는 것이 사람 대 사람을 뜻하는 것이겠죠?”
“응? 오호호호호! 제가 말투나 행동은 이렇지만 일반적인 이성 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얘기에 어안이 벙벙해서 실례를 저질렀어요.”
“괜찮아요. 나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에요. 지극히 인간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단 얘기니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감이 앞으로의 경합에서 영향을 끼칠 일은 절대 없다는 거 잘 아시죠?”
“그럼요.”
대답하는 부드럽게 미소 짓는 강지한의 얼굴이 한돈선은 참으로 정감 있게 다가왔다.
대체 이유가 무얼까.
단순히 그의 범상치 않은 실력 때문에 그런 걸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정체에 대해서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요. 시간 뺏어서 미안했어요. 페일 배틀에서도 최선을 다해 임하도록 해요.”
“감사합니다.”
한돈선이 미소로 한 번 더 격려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모든 지원자와 심사위원들의 개별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촬영이 시작됐다.
단상 위엔 늘 그렇듯 세 명의 심사위원이 올라섰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최현식이었다.
“본선 5라운드 베네핏 배틀에서 우승한 사람은 강지한 씨입니다. 따라서 강지한 씨에게는 페일 배틀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베네핏이 주어집니다. 강지한 씨.”
“네.”
“어떤 베네핏이 주어질 것 같습니까?”
“음……. 머리 굴려서 말해봤자 어차피 틀릴 것 같으니 묵비권 행사하겠습니다.”
“저저번 주까지만 해도 강지한 씨의 입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었던 멘트네요. 이제 방송인이 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평소 농담이라고는 하지 않는 두 사람의 대화에 지원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었다.
최현식도 본인답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살짝 부끄러웠는지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으흠. 그럼 강지한 씨에게 주어질 베네핏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베네핏은 바로 이겁니다.”
최현식이 주머니에서 카드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의 카드엔 ‘PASS’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고 다른 한 장엔 ‘CHALLENGE’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보시다시피 한쪽 카드는 통과를 뜻하는 패스, 다른 카드는 도전을 뜻하는 챌린지라는 글자가 박혀 있습니다. 패스 카드를 선택할 경우. 강지한 씨는 이번 페일 배틀을 치루지 않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됩니다.”
최현식의 말에 부러움 가득한 지원자들의 시선이 강지한에게 향했다.
“하지만 챌린지 카드를 선택할 경우. 강지한 씨는 다른 지원자들과 똑같이 페일 배틀을 치러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4라운드에서는 아무도 탈락 면제권을 얻지 못했습니다.”
4라운드에서는 베네핏 배틀로 단체 경합을 치렀다. 거기에서 승리한 팀은 페일 베틀에서 제외되었다. 패배한 팀은 페일 배틀에서 30분간 디저트를 만들어 경합했다. 여기서는 우승자를 뽑지 않고 탈락자만 가려냈다.
때문에 이번 라운드 진출자 20명은 그 누구도 탈락 면제권을 획득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즉, 강지한이 굳이 페일 배틀에 참여할 경우 탈락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지원자들이 웅성거렸다.
이런 선택지를 내어주면 누구라도 패스 카드를 선택할 터였다.
한데 최현식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단, 강지한 씨께서 챌린지 카드를 선택해 페일 배틀에 참가할 경우, 다른 지원자들에게 없는 한 가지 혜택이 주어집니다.”
최현식은 잠깐 말을 끊었다.
그 부분에서 장내의 긴장감을 고조시켜 달라는 노영철 피디의 사전 요청 때문이었다.
그의 의도대로 지원자들이 궁금함에 애달픈 시선을 보낼 때 최현식의 입이 열렸다.
“그 특별한 혜택이란 바로 본선 5라운드 페일 배틀 한정, 우승 상금 이천만 원입니다.”
“이, 이천만 원?”
“헉!”
여기저기서 지원자들의 놀란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습니다. 강지한 씨께서 페일 배틀에 참가해 우승자가 될 경우 다음 라운드 탈락면제권과 더불어 이천만 원이라는 상금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우승하지 못하게 된다면 탈락을 면한다 해도 상금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택은 강지한 씨의 몫입니다.”
최현식이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앞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두 장의 카드를 놓았다.
“강지한 씨, 앞으로 나오세요.”
최현식의 부름에 강지한이 앞으로 나왔다.
“선택하세요. 패스입니까. 챌린지입니까.”
그 물음에 다른 지원자들은 본인이 선택권이라도 받은 양 갈등했다.
자신이라면 과연 어떤 카드를 집을 것인가?
2000만 원이 탐나긴 하지만, 거기에 눈이 멀어 도전했다가 괜히 탈락이라도 하면 3억이 날아간다.
게다가 도전한다고 해서 우승할 거란 보장 또한 없었다.
이건 그럴듯한 미끼로 눈을 현혹시키려는 낚시다.
괜히 휘말리지 말고 안전하게 패스하는 게 나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강지한이라면 또 모르는 일이었다.
여태 쉬운 길보단 어려운 길을 택해서 실력으로 눌러버린 그가 아니던가.
때문에 패스 카드를 잡는다면 그건 강지한답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았다.
‘과연 어느 쪽일까?’
도근한도 강지한의 선택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때 강지한의 손이 움직였고, 카드 한 장을 집었다.
그런 강지한의 선택에 다들 놀람을 금치 못했다.
* * *
이젠 강지한의 마당에서 김치를 담그지 않는다.
때문에 설탕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했다.
이번에도 이향숙에게 맡길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예소린이 먼저 자신이 맡아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해서 설탕이는 오늘 예소린의 집에서 머무는 중이었다.
예소린의 집은 2층 단독주택으로 넓은 마당엔 텃밭까지 있었다. 지금은 개들이 하도 밟고 다녀서 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본래는 설탕이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오늘.
예소린의 강아지들은 난데없이 등장한 설탕이로 인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설탕이는 자신을 반겨주는 십수 마리의 강아지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며 신나게 놀았다.
소심해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금이도 서운하지 않게 줄곧 챙겨줬다.
그런 설탕이가 예소린은 마냥 예뻤다.
그러다 오후 1시경.
주말도 없이 부동산에 나가 있던 예경천이 점심을 먹으려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자 강아지 한 마리가 사정없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왕! 왕왕!
짖는 녀석은 올해 네 살 난 치와와 까미였다.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네.”
“까미야, 안 돼.”
예소린이 그런 까미를 다그쳤다.
까미는 예소린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았다.
“까미. 왜 자꾸 아빠한테 그래.”
“나랑 전생에 웬수라도 졌나 보지. 어휴. 저 녀석 짖어대는 통에 요새 없던 편두통까지 생겼다, 소린아. 아, 멀쩡하던 놈이 일주일 전부터 왜 저러는 거야?”
“그러게요.”
두 사람은 까미가 예경천만 보면 짖어대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까미는 이유 없이 짖는 게 아니었다. 나름의 원인이 있었다.
일주일 전, 예소린이 강지한과 속초로 여행을 갔을 때 까미는 예경천과 함께 잤다.
까미는 언제나 예소린의 품 안에서 잠들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예소린이 집에 없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예경천의 품에서 잠이 든 것이다.
예경천도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까미의 행동을 이해하고 보듬어줬다.
그런데 그날 새벽에 사고가 일어났다.
예경천이 뒤척이다가 까미를 짓눌러 버린 것이다.
까미는 죽겠다고 소리를 질렀으나 한 번 잠들면 시체가 되어 버리는 예경천인지라 세상모르고 계속 잠만 잤다.
그렇게 까미는 1분이 넘게 악을 쓰다가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고, 이후로 이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 예경천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됐다.
“우리 까미 문제가 뭘까. 응?”
예소린이 까미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런 까미의 모습을 설탕이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린아, 밥 먹자.”
“그래요. 아침에 만든 김치찌개 남았는데 어때요?”
“그거 맛있더라. 계란 프라이 네 개만 해서 김하고 먹자.”
예소린은 주방으로 들어갔고 예경천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그런 예경천을 까미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를 드러냈다.
으르르르.
심통이 난 예경천이 까미를 슬쩍 보고서는 혀를 메롱 내밀고 다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왕왕!
그러자 까미가 또 짖기 시작했다.
“짖어라, 짖어. 네가 먹는 사료 값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나 아냐? 배은망덕한 놈.”
예경천은 예경천대로 저리 짖어대는 까미가 서운했다.
그래서인지 눈만 마주치면 짖는다는 걸 알면서도 텔레비전을 보다 가끔 까미를 바라보곤 했다.
물론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왕왕!
개 짖는 소리뿐이었다.
설탕이는 그때까지도 까미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갑자기 주방으로 가더니 한쪽에 놓여 있는 간식 바구니를 앞발로 툭툭 쳤다.
이를 본 예소린이 피식 웃었다.
“거기 간식 들어 있는 건 어떻게 알고? 하나 줄까?”
헥헥!
설탕이가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
예소린은 간식 바구니에서 닭가슴살 육포를 꺼내 잘게 잘라 설탕이에게 주었다.
설탕이는 그것을 한 입에 담더니 후다닥 거실로 나갔다.
그러고는 까미의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그때 예경천이 또 까미를 슬쩍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까미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입을 벌렸다.
바로 그때,
톡.
설탕이가 물고 있던 육포 한 조각을 까미의 발 앞에 뱉어 주었다. 육포의 고소한 냄새에 정신이 팔린 까미가 짖으려다 말고 얼른 그것을 집어 먹었다.
당연히 까미가 짖을 거라 생각했던 예경천이 그 광경에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저도 모르고 또 까미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까미가 짖으려 했고, 설탕이는 또 육포 한 조각을 발 앞에 뱉어주었다.
그 바람에 이번에도 까미는 짖지 못했다.
이런 일은 다섯 번이나 반복됐다.
그러자 여섯 번째 눈이 마주쳤을 때는 설탕이가 육포를 주지 않았는데도 까미는 짖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설탕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경천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좋은 일이 생기니, 그가 공포의 대상에서 행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인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뒤늦게 설탕이가 무엇을 한 건지 알게 된 예경천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허어!”
그때 부엌에서 예소린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빠~ 밥 드세요.”
“어? 어, 어어.”
예경천이 설탕이와 까미를 번갈아 살피며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까미는 이제 예경천을 보면서 꼬리까지 흔들고 있었다.
“와아, 진짜 너 강아지 맞냐? 무슨 개가 개를 조련해?”
설탕이가 애견 카페에서 천재견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은 예소린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한데 직접 겪어보니 이건 천재견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저놈 저거 견신(犬神)이네, 견신.”
괜히 갓설탕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