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24화 (124/330)

# 124

Restaurant 123. 김두찬이 좋아하는 음식

30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모든 지원자들이 음식에서 손을 떼자 한돈선이 진행을 해나갔다.

“그럼 지금부터 김두찬 작가님께서 맛보고 싶은 요리를 만든 지원자 다섯 분의 이름을 호명할 겁니다. 김 작가님?”

“네, 존함을 불러드리겠습니다. 도근한 님, 염동화 님, 이동영 님.”

세 사람 모두 그럴 듯한 고기 요리를 선보인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어 호명된 두 사람은 다른 지원자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왕소홍 님, 강지한 님.”

그들은 유일하게 야채가 주재료인 음식을 만들었다.

다섯 사람들은 완성된 요리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단상 아래 긴 테이블에는 다섯 사람의 요리가 가지런히 놓였다.

심사위원 셋과 김두찬은 단상을 내려왔다.

“작가님, 맛보고 싶은 음식부터 자유롭게 시식해 보세요.”

레이먼 박이 수저를 건네주며 말했다.

“네, 우선은…….”

김두찬이 다가선 건 왕소홍이 만든 어향가지볶음이었다.

한데 보통의 어향가지볶음에 으레 들어가는 돼지고기 다짐육이 빠져 있었다.

대신 다른 채소들이 돼지고기의 빈자를 채웠다.

김두찬이 어향가지볶음을 진지하게 음미했다. 그의 턱이 천천히 움직이고 목울대가 일렁이며 왕소홍의 음식이 식도를 넘어갔다.

김두찬은 잠시 말없이 어향가지볶음을 주시했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왕소홍은 침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숨 막히는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김두찬의 입이 열렸다.

“음……. 요리의 의도가 뭐죠?”

왕소홍은 그 물음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김 작가님께 야채만으로도 충분히 맛이 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말에 김두찬이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평을 내렸다.

“죄송해요. 역시 야채를 주재료로 한 요리는 제 입맛에 영 맞지 않네요. 반전이 있을까 싶어서 우승 후보로 모셨던 건데……. 아쉽게 됐습니다.”

왕소홍이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겨우 삼켰다.

한편, 김두찬의 평가에 많은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이 강지한에게로 향했다.

그 역시 고기 없이 요리를 했기 때문.

김두찬의 시식 이후 심사위원들도 왕소홍의 어향가지볶음을 시식했다.

“확실히 맛있는 음식입니다. 가지의 익힘 정도도 알맞고 다른 야채들 역시 식감이 살아 있어요. 간도 아주 잘 잡은 데다가 불맛을 제대로 살렸어요. 하지만 이번 베네핏 배틀의 심사위원은 김 작가님이기 때문에, 그분의 선택이 절대적이죠.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모험을 하셨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유감입니다.”

한돈선의 말에 다른 두 심사위원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두찬이 다음으로 맛을 본 건 염동화의 요리였다.

그는 산적 같은 비주얼의 화통한 사내로 육류를 상당히 잘 다뤘다.

“음, 제법 맛있어요.”

그의 요리를 맛본 김두찬의 시식평은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라 풍부한 표현력을 기대했으나 그의 평가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함 그 자체였다.

이동영은 맥적과 쌀밥을 만들어 냈다.

상당히 잘 구워진 맥적과 윤기가 자르르 돌만큼 잘 지어진 밥이었다.

한데 김두찬은 이번에도 대단히 맛있게 먹었다는 짤막한 평가를 건넬 뿐이었다.

다음으로 그의 손이 향한 것은 도근한의 스테이크였다.

도근한은 두툼한 안심스테이크를 미디움 레어로 구워냈다.

소스는 안심스테이크의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레드 와인 소소를 담백하게 만들어 데코로 약간 곁들였다.

가니쉬는 방울토마토와 양송이버섯을 버터에 볶아 시즈닝한 것이 전부.

안심스테이크 자체에 자신이 있었기에 다른 부재료의 화려함은 필요 없었다.

김두찬이 포크와 나이프로 안심을 한 조각 썰어냈다.

레스팅이 잘된 안심은 육즙이 고기에 고루 퍼져 칼로 써는 동안 거의 소실이 없었다.

잘린 단면은 아름다운 분홍빛으로 완벽한 미디움 레어였다.

김두찬이 걸쭉하게 졸여진 레드 와인 소스에 고기를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고기가 녹는다는 포현을 몸소 체험했다.

제법 두툼한 안심이었음에도 치아에 전해지는 저항감이 거의 없었다. 부드러운 살이 솜사탕처럼 찢어지면 그 안에 가득 담고 있던 육즙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김두찬의 입가에 여태 보지 못했던 진한 미소가 어렸다.

이전 음식들을 단 한 입씩만 먹었던 그가 도근한의 스테이크는 반 이상을 먹어치웠다.

도근한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승산이 있다.’

앞의 세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반응이었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사람은 강지한 한 명밖에 없었다.

한데 강지한은 왕소홍처럼 채소만을 가지고 요리해 도박을 걸었다.

그의 실력이 대단한 건 인정하겠으나 김두찬은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임을 왕소홍의 경우로 확인했다.

취향을 완전히 비껴갔으니 천하의 강지한도 좋은 소리를 듣진 못하리라.

도근한이 기분 좋은 상상에 빠져 있는 사이 시식을 마친 김두찬이 감상을 얘기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근래 먹어본 스테이크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퀄리티 높은 요리를 먹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제 선입견을 완전히 깨뜨려 주셨네요. 기분까지 좋아질 만큼 만족스런 맛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두찬의 입에서 아주 긴 칭찬이 흘러나왔다.

도근한은 어마어마한 환희에 휩싸여 입이 귀에 걸렸다.

심사위원들도 기특하다는 시선을 도근한에게 던졌다.

특히 그의 스승 레이먼 박의 얼굴엔 그 어떤 흐뭇함마저 담겨 있었다.

“감사합니다!”

도근한이 크게 인사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에 다른 지원자들이 크나큰 박수로 그를 격려했다.

다들 이번 베네핏 배틀의 우승자는 도근한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김두찬은 마지막으로 강지한의 요리 앞에 섰다. 그가 만든 건 브로콜리 감자 스프와 미역 냉국, 꼬마 김밥이었다.

“강지한 씨, 음식 설명 부탁드립니다.”

최현식의 요구에 강지한이 설명을 해나갔다.

“저는 브로콜리와 감자를 사용해 따뜻한 스프를 만들었고 발효 식초 제품을 사용해 시원한 미역 냉국을 만들었습니다.”

강지한이 방금 말한 발효 식초 제품은 배틀 셰프에 PPL이 들어온 상품 중 하나였다.

그것을 사용하고 나서 콕 짚어주는 강지한이 노영철 피디는 예뻐 죽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 꼬마 김밥은 현미로 밥을 지어 밥 간을 따로 한 뒤, 계란 지단, 데친 시금치만 넣어서 김으로 말았습니다.”

강지한의 음식 설명이 끝나자 김두찬의 물음이 이어졌다.

“제가 사전에 말씀 드리기를 고기를 좋아하고 야채나 채소류로 만든 음식은 기피한다고 했었는데, 굳이 고기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필요 이상의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오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김두찬의 말에 사람들이 웃었다.

그의 말투 자체가 강지한을 무시한다기보다는 가볍게 농담을 하는 듯한 어조였다.

실제로 김두찬도 강지한을 무시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혹시 왕소홍 씨처럼 제가 모르던 야채의 맛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나요?”

강지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다른 이유에서 이 요리들을 준비했습니다.”

“궁금하네요.”

김두찬이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 시선으로 강지한을 주시했다. 강지한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제 요리에 들어간 재료들은 브로콜리, 감자, 미역, 현미, 계란, 시금치, 김이 전부입니다.”

강지한이 느닷없이 요리에 사용한 재료들을 늘어놓았다.

이미 그가 만든 요리들을 보는 순간 의도를 짐작한 심사위원 셋은 터져 나오려는 감탄을 애써 참았다.

김두찬 역시 강지한이 무엇을 염두에 뒀는지 눈치채고 만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그에 자신의 뜻이 전해졌음을 안 강지한도 마주 미소 지었다.

김두찬은 더 다른 말 없이 강지한의 음식들을 먹어보았다.

우선 브로콜리 감자 스프를 음미했다.

적당히 따뜻한 스프는 그 맛이 진하고 부드러웠다. 입안 가득 아주 고소한 크림이 퍼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게 갈린 감자의 입자가 느껴지는 것이 제법 괜찮았다.

다음으로는 꼬마 김밥을 먹어보았다.

들어간 재료가 얼마 없는데도 간간한 것이 상당히 맛있었다.

시금치와 달걀지단만 부쳐서 어떻게 이런 깊은 맛을 김밥에 담을 수 있는지 의문이 일 정도였다.

그 비밀은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로 내 지은 육수밥에 있었다.

김두찬은 김밥을 그냥도 먹어보고 스프에 찍어 먹어 보기도 했다.

의외로 김밥은 스프와도 아주 잘 어울렸다.

마지막으로 미역 냉국을 먹어보았다.

일반적인 미역 냉국보다는 시큼함이 덜 했다.

한데 이 요리들의 목적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덜 자극적인 이런 맛이 딱이었다.

한편 김두찬이 시식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도근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강지한의 음식을 종류별로 한두 입 정도만 먹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잘 먹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평가도 짧았다.

이로써 도근한의 우승이 확실시 되는 듯했다.

모든 요리의 시식을 끝낸 김두찬이 심사위원들과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천천히 전체적인 소감을 말했다.

“우선 저를 위해 소중한 요리를 만들어 주신 지원자 여러분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에 나오신 다섯 분의 음식도 전부 맛있었지만, 불러드리지 못한 다른 분들의 음식 역시 맛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룰이 있는지라 모든 분들에게 기회를 줄 수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 금치 못하겠네요. 그럼…… 베네핏 배틀의 우승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지원자들의 시선이 도근한에게 집중되었다.

이번 판은 보나마나였다.

도근한의 두 눈엔 김두찬의 입만 보였다. 그의 가슴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이윽고 드디어 우승자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배틀 셰프, 제 5라운드 베네핏 배틀의 우승자는…… 강지한 씨입니다. 축하드립니다.”

“……!”

예상 못한 김두찬의 말에 배틀 셰프 키친이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뭐라고……?’

우승자 발표에 가장 큰 충격을 먹은 것은 도근한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왔다.

다른 지원자들 역시 김두찬의 결정이 이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뒤늦게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이들이 탄성을 뱉었다.

“아……!”

그런 지원자들의 반응을 살피던 도근한이 입을 열었다.

“작가님, 강지한 씨를 우승자로 뽑은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고개를 끄덕인 김두찬의 설명이 이어졌다.

“배틀에 들어가기 전 최현식 대가님께서는 한돈선 대가님의 말을 귀담아 들으라 했었어요. 그리고 한돈선 대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여러분의 음식을 평가할 것이다. 그러니 제가 좋아할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요. 저 말을 곱씹어 보면 제가 음식을 맛으로만 평가한다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그냥 평가할 것이라고만 했어요. 아울러 ‘좋아할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맛은 있어야 하겠지만 그게 이번 배틀의 가장 큰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김두찬의 얘기에 지원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 이런 한돈선의 말 속에 이런 함정이 숨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도근한 님의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요. 만약 제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라는 것이 이번 배틀의 목표였다면 우승자는 도근한 씨였겠죠.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제가 가장 좋아할 음식은 임산부에게 좋은 음식입니다. 제 아내가 임신 중이기 때문이죠.”

그제야 모든 사람들이 알겠다는 듯 각기 다른 제스쳐를 취했다.

김두찬이 사용한 재료들은 전부 임산부에게 좋은 것들이었다.

한돈선은 김두찬과의 대화에서 그의 아내가 임신했다는 정보를 끌어냈었다.

즉, 강지한은 ‘김두찬이 좋아할 음식’과 ‘임신한 아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서 이번 배틀의 정답을 찾아낸 것이다.

“특별 심사위원으로 소설가를 모신 만큼 이번 배틀은 문제의 맥락의 이해와 주어진 상황의 파악에 중점을 뒀습니다. 그것을 강지한 씨가 제대로 캐치한 것이죠.”

레이먼 박의 말이었다.

비로소 상황을 이해한 강지영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지독한 방송국 놈들.’

이런 아이디어는 김두찬이나 심사위원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김두찬이라는 작가를 모셔놓고 거기에 맞게 문제를 만든 건 방송 관계자들이었다.

그로 인해 모든 지원자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때문에 강지한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더 대단하게 다가왔다.

제작자의 장난에 놀아나지 않고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답을 찾아낸 유일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대체 지한 씨는…….’

신일중이 속으로 뇌까렸다.

그렇잖아도 강지한을 우상처럼 바라보는 그였다. 한데 이번 배틀로 그의 존재가 더더욱 크게 다가왔다.

지원자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이 상황을 겨우 받아들이고 있을 때, 김두찬의 음성이 부드럽게 좌중을 감싸 안았다.

“강지한 씨, 축하드립니다. 이번 배틀의 우승자가 되셔서 베네핏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소중한 음식 만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두찬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강지한도 그런 김두찬에게 마주 허리를 숙여 보였다.

전 출연자의 놀라움 속에 강지한이 5라운드 베네핏 배틀의 우승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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