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Restaurant 67. 떡볶이의 비밀
강지한이 디쉬 커버를 열자 유기 접시에 담긴 붉고 걸쭉한 국물의 요리가 나타났다.
비주얼만 봐서는 무언지 모르겠으나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는 떡볶이가 분명했다.
하지만 국물 속 어디에도 떡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길쭉한 면만 가득했다.
국물에 충분히 익혀 야들야들 불어버린 파도 함께였다.
“이게 무엇이죠?”
천명옥이 물었다.
“떡볶이입니다.”
강지한의 대답에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떡이 보이지 않는 떡볶이라. 흥미롭군요. 그럼 이 면들이 떡을 대신하는 건가요?”
요즘 유행하는 떡볶이 중 이런 류의 떡볶이가 있었다.
떡을 면처럼 얇게 뽑아 조리하는 것으로 마치 우동면을 말아 넣은 것 같은 비주얼과 쫀득한 식감으로 젊은 층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었다.
한데 여기 들어간 면은 그보다 훨씬 가늘었다.
그리고 동글동글하지 않았다.
우동보다는 칼국수 면에 가까웠다.
천명옥은 강지한에게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다.
만약 그녀의 예상대로 떡볶이 대신 떡을 면처럼 길게 뽑아 넣은 것이라면 무조건 탈락이다.
그런 뻔한 발상의 전환은 달갑지 않았다.
무엇보다 떡볶이를 가지고 나왔다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맛과, 차별성. 이 두 가지를 확실히 잡아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흔한 메뉴의 특성상 반드시 떨어진다.
“그 면은 떡이 아닙니다.”
강지한은 다행히 천명옥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떡이 아니라? 그럼 떡은 들어가지 않았나요?”
“들어갔습니다.”
“재미있네요.”
천명옥은 강지한을 알고 있지만, 강지한은 그녀를 기억 못했다.
그녀가 지한 분식에 몇 번 다녀가긴 했지만 당시의 이미지와 지금의 이미지는 하늘과 땅 차이라 할 만큼 갭이 컸다.
화장기 전혀 없는 얼굴에 소소한 동네 아주머니처럼 꾸미고 왔던 천명옥은 눈앞의 여인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반면 강지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천명옥은 그의 요리에 큰 호기심이 일었다.
이미 얼마 전 그가 만든 김밥을 먹고 적잖이 놀랐던 터였다.
과연 이번 음식은 어떨지.
“따로 먹는 법이 있나요?”
“드시고 싶은 대로 드시면 됩니다.”
천명옥이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올렸다.
그러자 붉은 소스 속에서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있던 면의 정체가 살짝 드러났다.
‘이건 혹시……?’
천명옥이 면을 맛보았다.
호록.
그리고 천천히 면을 씹었다. 그러자 입속에서 아주 익숙한 풍미가 확 하고 퍼졌다.
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어묵이었다.
하지만 시중에서 파는 그런 어묵은 아니었다.
“수제 어묵을 만들어 면처럼 길고 가늘게 썰었군요.”
“맞습니다.”
강지한이 직접 만든 얇은 수제 어묵이 면의 정체였다.
그가 공부한 요리 지식에 미야타케 카즈타카의 지식을 가져와 양념에 가장 어울리면서도 면대용으로 적합한 식감을 가진 어묵을 만들어냈다.
“발상이 재미있네요. 한데 그게 다가 아니군요.”
천명옥이 면을 한 번 더 먹었다.
순간 서프 피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 어떤 음식도 한 입 이상 시식하지 않았었다.
그런 천명옥이 두 번이나 음식을 맛봤다는 건 이미 강지한의 요리가 기대치를 충족시켰다는 뜻이었다.
‘발상을 전환한 떡볶이로 천명옥을 흔들었어. 그림 나오겠다.’
서브 피디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사이 천명옥은 입안에 들어온 어묵면과 양념,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정체 모를 무언가를 음미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신중히 혀를 움직이면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개안했다.
“떡이 어디에 들어갔나 했더니, 양념에 잘 숨겨놓았었네요.”
“맞습니다.”
천명옥은 숟가락을 들어 양념을 퍼 올렸다.
이를 카메라 한 대가 클로즈업해서 바짝 당겨 잡았다.
그러자 양념 안에 뭉글뭉글한 하얀색 작은 덩어리들이 보였다.
‘저게 뭐지?’
서브 피디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하얀 덩어리의 정체를 유추하려 할 때 천명옥의 입이 열렸다.
“밀가루를 아주 작은 덩어리 형태로 뭉쳐 한 번 데친 뒤에 양념에 넣었죠?”
“네.”
그것은 밀가루로 만든 작은 덩어리, 즉 밀떡 입자 같은 것이었다.
작고 찰진 밀떡 입자는 어묵면을 먹을 때 진득한 소스와 함께 달라붙어 자연스레 입속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가늘고 탄력 있는 어묵면과 쫀득쫀득한 밀면 입자가 양념과 잘 어우러져 입안에서 참 재미있는 식감을 선사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양념의 맛이나 수제 어묵의 맛 또한 일품.
천명옥이 요리에 두었던 시선을 강지한에게 돌렸다.
“새로운 발상이 참 좋았어요. 맛도 있었고요. 단순히 맛있는 떡볶이를 가져왔다면 바로 탈락시켰을 테지만…… 잘 비틀어서 익숙한 음식을 낯선 식감으로 재해석했으니 다음 요리를 기대해 봐야겠죠.”
천명옥이 옆에 한 가득 쌓여 있는 검은색 앞치마 하나를 들어 내밀었다.
“합격했어요. 축하드려요.”
처음으로 천명옥이 내미는 앞치마였다.
그에 스탭들은 안도했고 서브 피디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무수한 지원자들을 탈락 열차에 태운 뒤 첫 합격의 영광을 건네준 자의 음식이 재해석한 떡볶이라니.
충분히 드라마가 될 만한 영상이 뽑혔다.
게다가 합격자 강지한의 비주얼 또한 상당했다.
아마 이 프로가 방송을 타면 여성 시청자들의 지지를 제법 받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강지한은 자신을 담고 있는 카메라 앞에서 잔뜩 긴장해 경직된 모습으로 앞치마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서빙카트를 남겨둔 채 시험장을 나섰다.
“10분만 쉬었다 가도 될까요?”
잠시 휴식이 필요했던 천명옥의 제안에 서브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쉬었다 갑니다!”
천명옥은 카메라가 멈추자 자리를 비웠다.
그러자 서브 피디는 스탭들에게 천명옥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천 선생님, 방송을 아는 분이야. 괜히 강원TV에서 아끼는 게 아니라니까.”
“무슨 말이에요?”
곁에 있던 막내 피디가 조심스레 물었다.
“솔까 저깟 떡볶이가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냐. 그냥 좀 특이하게 만든 게 전부지.”
“그렇겠죠.”
“근데 어마어마하게 칭찬을 하시잖아. 일부러 드라마 만들어내시려고 그런 거 아니겠어?”
“아……!”
그제야 막내 피디는 깊은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방금 그 지원자 마스크가 반반했지?”
“네.”
“그런 지원자 한 명 있으면 팬덤 같은 게 형성되면서 시청률에 약간 도움이 되거든. 그러니까 일부러 MSG 쳐서 드라마 한 편 쫙 찍어주신 거야.”
“와, 멋지네요. 천 선생님.”
“아우 배고파. 야야, 그거 잠깐 놔둬.”
서브 피디는 서빙카트를 치우려는 스탭들을 말리고서 다가갔다.
“허기 좀 채워야겠다.”
안 그래도 떡볶이를 좋아하는 그였다.
한데 마침 떡볶이가 나온 시점에서 촬영이 끊겼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서브 피디가 젓가락을 들어 떡볶이를 먹었다.
“쩝쩝.”
한 젓갈.
“오물오물.”
두 젓갈.
“꿀꺽. 후루룩.”
세 젓갈.
“꿀꺽! 캬아!”
네 젓갈, 다섯 젓갈.
한 번 시작된 서브 피디의 젓가락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는 지금 무아지경에 빠져 떡볶이를 흡입하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맛있어?’
떡볶이가 다 똑같잖냐는 스스로의 발언이 멍청하게 여겨질 정도로 맛있었다.
서브 피디의 반응에 다른 스탭들이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간절한 눈빛을 서브 피디에게 보냈다.
하나같이 식사를 못한 입장이다.
미안해진 서브 피디가 그만 젓가락을 놓았다.
그러자 촬영장 넘버 투가 젓가락을 이어받아 떡볶이를 흡입했다.
“호로록.”
다음으로 이어진 반응은 서브 피디와 똑같았다.
결국 떡볶이는 넘버 쓰리한테까지 가서 전부 동이 났다.
생전 처음 맛보는 떡볶이에 살짝 넋이 나간 서브 피디에게 막내 피디가 다가가 물었다.
“천 선생님께서 일부러 드라마 쓰신 거 맞습니까?”
서브 피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 지원자…… 진짜다.”
* * *
배틀 셰프 지역 예선을 마친 강지한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 마당에서는 조미옥과 독고진, 진경혜가 한창 김치를 담그는 중이었다.
김치는 만들어 가는 족족 매진이 되니 일이 고된 줄도 몰랐다.
설탕이는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김장을 하는 사람들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의 털이 김치에 섞이는 걸 경계하는 것처럼.
“고생들 많으세요. 보쌈 드시고 하세요.”
강지한은 식당에서 미리 삶아 놓은 보쌈을 들고 왔다.
그를 발견한 세 사람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사장님~ 오셨어요? 이리 주세요. 제가 깔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퉁명스런 독고진은 유독 강지한에게만 싹싹했다.
그에 조미옥이 한마디 했다.
“여자한테 좀 그렇게 해봐. 벌써 장가갔지.”
“아, 장가 얘기 좀 하지 말라니까. 내 나이 몇이나 됐다고. 그리고 사장님은 뭐가 돼?”
독고진의 일침에 조미옥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강 사장~ 내 말 그런 뜻 아닌 거 알지?”
“그럼요. 아주머니도 어서 오세요. 경혜 아주머니. 그만하고 일단 드세요.”
“네~ 강 사장님. 매번 죄송해요. 얻어먹기만 하고. 호호호.”
조미옥의 추천으로 김치 담그는 일만 함께하게 된 진경혜는 싹싹하고 밝았다.
사람들을 챙기는 강지한에게 설탕이가 마구 달려와 점프해서 안겼다.
왕!
“아이고, 내 새끼. 잘 놀고 있었어?”
왕! 헥헥헥.
“사장님도 같이 드실 거죠?”
독고진의 물음에 강지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까 긴장을 좀 많이 했더니 식욕이 영 없네요.”
“맞아! 우리 강 사장 오늘 배틀 셰프인가 뭐시기 지역 예선 나간다고 했었지? 어떻게 됐어? 통과 했어요?”
조미옥이 손뼉을 쳤다.
“네. 운 좋게 다음 라운드도 진출 가능하게 됐어요.”
“어머나~ 그럼 곧 텔레비전에서 강 사장님 볼 수 있는 거네요?”
진경혜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편집당할 수도 있어서 잘 몰라요. 일단 드세요. 그동안 제가 할게요.”
강지한이 집으로 들어가 깨끗이 씻은 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김장에 돌입하자 설탕이는 멀리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한데 가끔씩 보쌈 고기로 시선을 돌리며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강지한은 그런 설탕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너도 강아지가 맞긴 맞구나. 그치?”
그러면서 강지한이 절인 배추 하나에 속양념을 잘 버무렸다.
한데 그때였다.
[강지한의 대단한 배추김치]
요리 등급: LV5
-배추의 절인 정도가 알맞다. 버무려진 양념의 밸런스가 완벽하고 맛 또한 일품. 일반적인 배추 양념보다 더욱 많은 재료로 정성스레 만들어 김치의 맛과 질이 높아진다.
‘올랐다.’
계속해서 레벨 4에 그쳐 있던 배추김치의 레벨이 레벨 5로 올랐다.
강지한은 조미옥 일행이 담근 다른 김치들도 살폈다.
하나같이 레벨이 5로 통일되어 있었다.
‘먹혔구나.’
강지한은 분식일을 하면서 김치 연구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에서야 나타나게 된 것이다.
뿌듯한 마음에 쌓였던 피로가 싹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 * *
강지한의 동창이자 서울에서 스테이크 집을 운영하는 도근한은 배틀 셰프 서울 지역 예선을 통과했다.
기쁜 마음에 술까지 한 잔 거하게 걸치고 집으로 들어온 그가 침대에 누워 혀 꼬부라진 소리를 냈다.
“가아앙지하안! 봐라아. 내가…… 배틀 셰프에서 못해도 20위 안에는 들어갈 거다아. 그으래서 보란 듯이 너 찾아갈 거야아 인마아!”
강지한에게 당한 뒤로 죽자사자 요리에 매달려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던 도근한이었다.
그는 비로소 설욕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