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Restaurant 66. 배틀 셰프 개막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거실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 도그앤라이프 4월호부터 꺼내 들었다.
잡지를 펼치자마자 설탕이가 같이 보겠다는 양 토다다다 달려왔다.
“강아지는 본인의 모습을 인지 못한다고 하던데 이 녀석은 뭐…….”
하는 짓을 보면 자기가 잡지에 실렸다는 걸 전부 아는 눈치다.
오늘 브레이크 타임에 잠시 설탕이를 보려고 애견 카페를 찾았었다.
혹여라도 강아지 털이 묻을까 봐 카페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밖에서 창 너머로 설탕이의 모습을 살폈다.
녀석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여전한 인기를 자랑했다.
그러다 손님 한 분이 잡지를 펴서 설탕이에게 보여주었다. 이에 설탕이가 잡지 안에서 본인이 지었던 포즈를 그대로 따라했고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그 지경까지 가니 저기가 애견 카페인지 설탕이 팬미팅 장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강지한은 잡지를 접어두고 단골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오늘로써 20단골 포인트도 또 모였다.
그가 모든 포인트를 투자해서 고급 수저를 구입했다.
이것으로 레벨 2의 모든 항목을 사들였다.
그러자 메뉴판에 적힌 인테리어의 레벨이 3으로 바뀌며 구입 가능한 새로운 항목이 나타났다.
[단골 포인트 상점 메뉴]
<음식 LV3>
서양 요리 장인의 지식?50단골 포인트.
<인테리어 LV3>
간판 디자인?50단골 포인트.
<잠김-음식과 인테리어의 레벨을 3까지 올릴 경우 해금>
거기서 메시지가 나타났다.
[음식과 인테리어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잠겼던 항목이 해금됩니다.]
이윽고 잠겨 있던 맨 마지막 항목이 베일을 벗었다.
[단골 포인트 상점 메뉴]
<음식 LV3 MAX>
서양 요리 장인의 지식?50단골 포인트.
<인테리어 LV3 MAX>
간판 디자인?50단골 포인트.
<도박 LV1 MAX>
랜덤 박스-100단골 포인트.
새로 생긴 항목은 도박이었다.
아이템은 랜덤 박스.
강지한은 메뉴판을 한 장 넘겨 새로 생긴 아이템들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메뉴 설명]
서양 요리 장인의 지식-서양 요리 장인 고(故) 제이미 램지의 지식을 흡수합니다.
간판 디자인-손님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간판 디자인을 제공합니다. 바뀐 디자인의 간판을 적용할 경우 인지도가 올라갑니다.
랜덤 박스-도박입니다. 구입할 경우 100단골 포인트에 한참 못 미치는 아이템이 나올 수도, 그 값어치 이상의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도박은…… 어지간하면 하지 말자.”
나중에 단골 포인트가 남아돌면 모를까, 지금 살 건 아니었다.
아무튼 각 항목의 레벨 옆에 MAX라는 글이 뜨는 걸 보니 단골 포인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저게 전부인 모양이었다.
“그럼 저기 있는 것들을 전부 구입하면 단골 포인트는 앞으로 더 모이지 않는 건가?”
단골 포인트 상점 의외에 다른 곳에는 사용할 일이 없는 것이 단골 포인트였다.
강지한은 고민하다가 단골 포인트 상점을 닫았다.
그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오늘은 아침에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거르고 식당에 나갔더니 하루 종일 한 끼밖에 챙기지 못했다.
“뭣 좀 먹어야지.”
그가 냉장고에서 불고기용 돼지고기 전지와 양파, 쪽파, 계란 한 알, 쯔유를 꺼냈다.
쯔유는 그가 일본 요리 장인 미야타케 카즈타카의 지식에서 배운 대로 미리 만들어 둔 것이었다.
“밥이 있나?”
밥솥을 열어보니 딱 한 공기 정도의 밥이 남아 있었다.
어제 지어놓은 것이니 먹을 만했다.
“간단하게 먹자.”
강지한이 양파를 채 썰고 쪽파를 다졌다.
타타타타타타탁!
그의 손에 들린 부엌칼이 신나게 도마 위에서 춤을 추었다.
한데 잘린 양파와 쪽파의 면이 반듯하지 않고 조금씩 짓이겨져 있었다.
부엌칼의 날이 무뎠기 때문이다.
한데 그때 반가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날이 무딘 부엌칼-진화형’의 숙련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레벨 업 조건이 열립니다.]
“오, 좋아.”
[날이 무딘 부엌칼-진화형]
LV2: 숙련도 100/100
-날을 갈아도 날이 서지 않습니다.
-만족도 포인트 1000을 투자할 경우 레벨 업 가능.
레벨 1에서 2로 올라갈 땐 500을 투자했는데 지금은 투자금이 두 배로 뛰었다.
강지한은 바로 1,000포인트를 투자했다.
그러자 칼에서 빛이 일더니 그 형태가 변했다.
전체적으로 전의 부엌칼보다 훨씬 고급스러워 보였으며 조금 더 긴 날이 바짝 서 있었다.
[날이 선 부엌칼-진화형]
LV3: 숙련도 0/100
-날카롭습니다. 날이 무뎌지지 않습니다.
-숙련도를 가득 채울 경우 레벨 업 조건이 열립니다.
날이 무뎌지지 않는다는 설명이 강지한을 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이거 좋다. 1,000포인트 투자할 가치가 있네.”
강지한은 희희낙락하며 전지에 소금과 후추, 맛술로 밑간을 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고기를 30분 정도 재어놓아야 하지만 오늘은 바로 구웠다.
치이이익-
프라이팬 위에서 전지가 구워지며 좋은 향이 올라왔다.
고기가 하얗게 익어갈 때쯤 접시에 덜어놓고 프라이팬을 한 번 닦았다.
거기에 양파를 넣어 볶다가 물에 조금 희석한 쯔유를 자작하게 부었다.
보글보글.
쯔유가 끓을 때, 빼놓았던 전지살을 넣어 함께 끓여 졸였다.
쯔유가 양파와 돼지고기에 적절히 스며들 때 쯤, 불을 끄고 넓은 공기에 밥을 담았다.
그 위에 프라이팬의 내용물을 덮어준 뒤, 다져놓은 쪽파를 살살 뿌렸다.
마지막으로 계란을 노른자만 분리해서 위에 토핑했다.
그것으로 완성.
강지한의 오늘 야식은 간단한 부타동이었다.
일본식 돼지고기 덮밥으로 얼마나 맛있고 좋은 쯔유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맛의 등급이 달라진다.
다행스럽게도 강지한이 만든 쯔유는 상당히 좋은 편에 속했다.
“먹자.”
부타동을 상 위로 가져온 강지한이 텔레비전을 틀었다.
그리고 바로 노른자를 터뜨려 크게 한 숟갈을 떠서 입에 넣었다.
밥 위에 가득 얹은 돼지고기가 머금고 있던 양념을 뿜어냈고, 양파는 열에 많이 노출되지 않아 아삭하게 씹혔다.
그 밑에 숨어 있던 밥 알갱이는 부타동의 쯔유 소스와 사르르 녹아든 달걀노른자를 입어 고소, 달콤, 짭잘의 삼중주를 기막히게 연주해냈다.
입안에서 모든 식감과 재료의 맛들이 한데 섞이며 강지한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다.
“으음~”
비록 음식의 레벨은 4에 그쳤지만 강지한에게 너무나 만족스런 한 끼였다.
한참 부타동의 맛에 감탄하던 강지한은 텔레비전에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어? 저 사람…….’
텔레비전에서는 연예가의 소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는 중이었다.
드라마 제작 발표회가 진행되는 현장이 브라운관에 잡혔고, 감독과 주조연 배우 몇몇이 주르륵 앉아서 문답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중 강지한이 아는 얼굴이 있었다.
바로 좌경우였다.
그때 좌경우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며 여성 MC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좌경우 씨는 이번 송만대 감독의 주말 드라마 ‘분식집 막내아들’의 주연 자리를 꿰차며 8년 무명 배우라는 설움을 털어버리게 되었는데요, 그 감동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여성 MC의 말이 끝나자 좌경우의 인터뷰 장면이 이어졌다.
-정말…… 절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이끌어준 모든 상황과 사람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제가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게 도와준 우리 선아한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고요. 그리고 제가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신 춘천의 어느 분식점 사장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맛이라는 걸 전혀 몰랐던 제가 식도락을 알게 됐습니다. 꼭 다시 찾아뵙고 은혜 갚겠습니다. 혹여라도 장사에 누가 될까 싶어 분식집 상호명은 말씀 못 드리겠네요. 지금도 워낙 잘되는 곳이라서요. 하하.
좌경우의 인터뷰 내용을 듣고 난 강지한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지금…… 나한테 하는 얘기 맞지?”
왕! 헥헥헥.
설탕이가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도 짖었다.
“어이구, 네가 뭘 알고 짖었니?”
강지한이 설탕이의 뺨을 조물딱거리며 주물렀다.
아무튼 누군가에게 자신이 도움이 되었다니 가슴 속 한 편이 뿌듯해지는 강지한이었다.
* * *
4월 17일 화요일.
아침 일찍부터 노영철 피디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 막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하는 시간.
강지한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서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강 사장님! 그때 우리 얘기 잘됐던 것 맞요?
노영철은 별 영양가 없는 인사로 겉치레를 하기보단 대뜸 그런 질문부터 던졌다.
“네, 맞아요.”
-근데 참가 신청서를 왜 계속 안 내고 있어요?
“아, 깜빡했네요. 오늘 중으로 접수할게요.”
-인터넷으로 하면 되니까 간단해요. 이번 주 일요일에 바로 촬영 들어갑니다. 오늘까지 참가자 컷트니까 무조건 접수해 주셔야 돼요.
“그래요? 알겠어요.”
대답은 담담하게 했지만 사실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는 강지한이었다.
‘이번 주 일요일 촬영이라니……. 촉박하네.’
사실 강지한은 배틀 셰프에 큰 뜻을 두고 있는 게 아닌지라 따로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았다.
우승을 노리는 이들은 계속해서 비장의 요리를 만들어내는데 여념이 없었겠지만, 강지한은 그저 편하게 즐기자는 생각이었다.
한데 막상 촬영이 코앞에 닥치니 긴장이 됐다.
요리사들끼리 모여 경합한다는 사실과 방송을 탄다는 사실이 긴장의 이유였다.
신기한 건 그 와중에 조금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또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따로 뭐 준비해야 할 게 있나요? 직접 만든 요리라던가, 재료라던가.”
-심사위원들한테 선보일 요리 하나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요리 재료 챙겨오세요. 조리 도구들은 다 마련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챙겨오고 싶으시면 그래도 되고요. 아, 지역 예선부터 치른 다음에 서울로 오게 되는 건 알고 계시죠?
“아니요.”
-……관심 조금만 더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강 사장님. 현재 강원 지역 지원자가 500명 정도예요. 심사 장소와 시간 등 자세한 건 홈페이지에 나와 있어요.
“알겠어요.”
-이번 주 촬영 끝나고 다음 주에도 촬영 있으니 꼭 숙지하시고요.
“그럴게요.”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노영철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바쁜 모양이었다.
사실 메인 피디가 출연자 개개인에게 이렇게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다.
전부 그 밑의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만큼 노영철은 강지한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통화를 끝낸 강지한이 식당으로 들어가려고 뒤를 돌았다.
그런데 활짝 열린 문 너머로 고중만과 용성우가 고개를 내민 채 씩 웃고 있었다.
“사장님! 배틀 셰프 나가세요?”
“우리 강 사장 스타 되겠네! 으하하!”
“제 깜냥에 스타는 무슨.”
“근데 왜 그걸 숨겼어? 전화도 은밀하게 받고.”
“숨겼다기보다는 어차피 초반에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굳이 유난 안 떤 거죠.”
“하이고, 강 사장 실력에 초반 탈락?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고중만의 말에 용성우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지한이 그런 두 사람을 다시 안으로 떠밀었다.
“자자, 오픈 준비 합시다.”
* * *
4월 22일 일요일.
드디어 배틀 셰프의 첫 촬영, 지역 예선이 시작됐다.
전국에서 총 8천여 명의 지원자가 도전할 만큼 배틀 셰프의 화제성은 대단했다.
강지한이 속한 강원 지역 지원자들의 예선 심사 지역은 춘천이었다.
다른 여러 지역들도 많은데 춘천이 선택된 이유는 천명옥 때문이었다.
그녀의 명성은 이미 춘천을 넘어서서 강원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강원도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를 꼽으라 하면 누구라도 주저 없이 그녀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그런 천명옥이 지원자들을 위한 예선 무대로 명옥정의 넓은 건물을 내어주었다.
스타 셰프에 로케이션 장소까지 해결되니 방송국 입장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굳이 다른 곳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예선을 명옥정에서만 치를 수는 없었다.
다른 장소도 로케이션하고 셰프들을 넷이나 더 구해서 각각 100명씩의 도전자들을 시험하게 했다.
천명옥은 오늘 이른 점심 무렵부터 강원 지역 지원자들의 음식을 맛보고 있는 중이었다.
워낙 프라이드가 강한 그녀였기에 합격의 문턱이 너무 높았다.
지금까지 13명이 심사를 받았는데 그중 통과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합격자가 나오지 않자 방송관계자들도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천명옥의 커트라인이 다른 셰프들에 비해 유독 높았다.
슬슬 천명옥의 표정도 심드렁해졌다.
조금은 수준 높은 요리들을 기대했는데 하나같이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에 따라 방송의 분위기도 루즈해져 가고 있었다.
뭔가 전환이 필요했다.
“다음 참가자 모시겠습니다.”
진행 스탭의 말에 시험장 문이 열리며 14번째 참가자가 서빙카트를 밀며 등장했다.
참가자의 얼굴을 확인한 천명옥의 눈에 지루함이 사라지고 이채가 어렸다.
음식을 실은 서빙카트와 함께 천명옥의 앞에 선 참가자가 인사했다.
“참가번호 414번. 강지한입니다.”
천명옥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어떤 요리를 준비하셨나요?”
지금껏 무미건조하기만 했던 그녀였다.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천명옥의 태도에 촬영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서브 피디는 무언가 괜찮은 그림이 나와주기를 기대하며 숨죽였다.
강지한은 음식을 덮은 디쉬 커버를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드러난 음식에 천명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