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Restaurant 61. 부진의 원인
로버트 정의 가족은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때문에 가족 외식 때마다 늘 외할머니도 함께였다.
신지윤의 기억 속 가족과의 마지막 외식은 분식집이었다.
그 분식집 떡볶이는 정말 맛이 있었다.
태어나서 그녀가 먹어본 떡볶이 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병환을 앓고 있어 입이 짧은 외할머니도 그날만큼은 일 인분을 너끈히 비웠다.
신지윤은 그런 엄마의 모습이 좋았다.
이대로 갑자기 건강해지는 건 아닌가 싶은 희망까지 일었다.
하지만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 추억이 될 줄은 몰랐다.
다음 날.
외할머니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이후로 신지윤은 실어증을 얻었고 가족 외식도 끝이 났다.
병원을 다니며 실어증을 치료해 보려 해도 도통 진척이 없었다.
괴로운 시간들이 흘러가던 와중 로버트 정은 혹시나 싶어 그 떡볶이 집을 재방문했다.
그런데 이 무슨 신의 장난인가.
떡볶이 집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전을 한 것도 아니었다.
충분히 맛이 있고 장사도 잘되는 곳이었는데 무슨 개인 사정이 있었던 건지 다급히 가게를 접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외할머니와의 마지막 추억의 맛에서 희망을 얻으려 했는데 그게 불가능해졌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로버트 정은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라도 꾸준히 포장해서 신지윤에게 갖다 주었다.
하나, 결과는 늘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강지한의 떡볶이를 맛보는 순간 뇌리에 번개가 쳤다.
‘비슷한 맛이다.’
마지막 외식을 하며 먹었던 그 떡볶이와 비슷한 맛이 났다.
그러면서도 더욱 맛있었다.
로버트 정은 이거라면 되겠다 싶어 떡볶이를 포장해 갔고, 그것을 먹은 신지윤에게 미미한 변화가 인 것을 포착했다.
오늘은 무리를 해서 나가기 싫다는 신지윤을 강제로 지한 분식까지 데려왔다.
결과적으로 그의 생각은 맞았다.
신지윤은 지한 분식의 떡볶이를 가족과 함께 먹으며 외할머니와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떡볶이를 맛있게 먹던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늘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행복한 게 내 행복이야.’
그 한마디가 환청처럼 머릿속에 울려 퍼졌고, 불행에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됐다.
이대로라면 하늘에 계신 엄마도 편치 않으시겠지.
내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으시겠지.
나 때문에 가시는 길 맘 아프면 그게 정말 불효하는 것이겠지.
그녀의 마음에 커다란 파도가 쳤다.
그것은 눈물로, 그리고 목소리로 터져 나왔다.
“이번엔 진짜로 큰 신세 졌네요.”
로버트 정이 퉁퉁 부어버린 눈으로 순박하게 웃었다.
“그냥 요리해 드린 것밖에 없는걸요. 부모님을 여기까지 모시고 오신 디렉터님이 다 하신 거죠.”
강지한은 로버트 정에게 그간의 사정을 전부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창 너머로 향했다.
정찬우와 신지윤은 문 앞에 놓인 리어카를 신기하게 관찰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강지한과 눈이 마주치자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강지한도 덩달아 허리를 숙이며 농담을 던졌다.
“이러다 허리 나가겠네요. 하하.”
이미 두 사람은 홀에서 강지한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건넨 터였다.
그대로 두면 절이라도 할 기세였기에 로버트 정이 강지한과 할 말이 있다는 핑계로 두 사람을 내보냈다.
“강 사장님의 음식이 아니었으면 엄마가 이렇게 빨리 나을 순 없었을 겁니다. 대체 어디서 요리를 배우셨어요?”
“딱히… 배운 적은 없어요.”
“천재시네.”
로버트 정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더니 양쪽 검지로 강지한을 가리키며 윙크했다.
“겟츄!”
“겟…… 뭐라고요?”
“제가 이래 봬도 인맥이 괜찮아요. 강 사장님 곧 제법 괜찮은 잡지에 인터뷰 하나 실리도록 해드릴게요. 열과 성을 다해서 지한 분식이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열정을 가지고 버닝해 볼게요. 그것 말곤…… 딱히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죄송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꼭 그러지 않으셔도 상관없고요.”
로버트 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은혜를 받고도 갚지 않는 건 뭐다? 짐승이다. 저는 짐승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설탕이도 내가 간식을 주면 보답으로 재롱 하나를 보여주는 마당에 제가 설탕이보다 못한 인간이 되면 되겠어요?”
설탕이 까지 끌어들여 은혜를 갚겠다고 하니 강지한도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겠어요. 잘 부탁드릴게요.”
“바로 그겁니다.”
로버트 정은 강지한에게 겨누고 있던 검지 한 쌍을 총알 쏘듯 위로 한 번 튕겼다.
“근데 디렉터님. 빨리 가보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저 시간 많습니다.”
“그게 아니라 저기.”
강지한이 창 밖을 가리켰다.
로버트 정이 ‘응?’ 하며 고개를 돌렸다.
창 밖에서 로버트를 기다리고 있는 정찬우와 신지윤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몸은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4월 초라고 하지만 아직 밤바람은 제법 추웠다.
그런데 두 사람은 차에서 내릴 때 외투를 걸치지 않고 바로 식당으로 들어왔다.
차 키는 로버트 정이 가지고 있었다.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한 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아이고 오마니! 저, 저 그럼 가보겠습니다. 연락드릴게요!”
“네.”
로버트 정이 유리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정찬우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억!”
한 대 시원하게 얻어맞으면서도 얼른 차문을 열고 부모님을 태웠다.
로버트 정은 창 너머에서 다시 한 번 강지한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떠났다.
부아아앙-
강지한은 멀어지는 자동차를 보며 식당을 마무리했다.
* * *
“응?”
집에 오자마자 설탕이가 안방으로 후다닥 달려 들어가더니 바닥에 굴러다니는 장난감 공을 물고 거실로 나왔다.
그것을 강지한의 앞에 내려놓는 설탕이.
“공 던져 달라고?”
물어보며 공을 들자 신난 설탕이의 엉덩이가 씰룩씰룩 댔다.
“카페에서 손님들이랑 이러고 노나 보지? 자~”
강지한이 공을 지척에다 던졌다.
톡. 데구르.
공은 힘없이 땅에 떨어져 조금만 구르다 말았다.
설탕이가 아직 어려서 팔다리가 짧으니 그에 맞춰 살짝 던진 것이다.
한데 공을 쫓아갈 줄 알았던 설탕이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몇 발자국 앞에 떨어진 공을 지켜봤다.
씰룩거리던 엉덩이와 팽팽 돌던 꼬리가 우뚝 멈춰 섰다.
“응? 왜 그래, 설탕아?”
킁!
콧숨을 내뿜은 설탕이가 공으로 다가가더니 앞발로 툭 쳤다.
그러자 공이 저 멀리 까지 도르르 굴러갔다.
설탕이는 봤냐는 듯 강지한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저기까지 던져 달라고? 다리도 짧은 게.”
이제는 어려운 의사표현까지 조금씩 하는 설탕이였다.
강지한이 공을 주워 와서 멀리 던질 포즈를 위하니 설탕이가 펄쩍펄쩍 뛰었다.
헥헥헥!
“얍.”
쥐고 있던 공을 가볍게 던졌다.
허공에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거실의 끝에서 끝으로 날아가는 작은 공.
설탕이가 신이 나서 공을 쫓았다.
녀석은 바람을 가르며 번개처럼 달렸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토다다다다다다다.
짧은 발 네 개로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우스꽝스럽게 뛰고 있었다.
공은 이미 한참 전에 거실 바닥에 떨어졌다.
설탕이가 그것을 물려고 입을 쩍 벌렸다.
그런데 달리던 속도를 주체 못해 그대로 거실 벽에 머리를 찧었다.
쿵.
끼잉- 낑.
아프다고 낑낑대는 와중에도 공을 물고 비실비실 주인에게 다가오는 설탕이.
강지한이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그 광경에 배를 잡고 웃었다.
“아하하하하하! 설탕아, 너 뭐하는 거야?”
설탕이가 공을 놓고 고개를 숙여 앞발로 닿지도 않는 이마를 자꾸 쓸어내리려 했다.
“아이구~ 그래그래. 거기가 아팠어? 쿵했어?”
강지한이 설탕이를 안고 머리를 문질러줬다.
설탕이가 주인의 품 안으로 마구 파고들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갠데. 그나저나 장사라는 것도 하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설탕아.”
강지한은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설마 실어증에 걸린 사람이 자신의 음식을 먹고 말문이 트일 줄이야.
‘음식이라는 건 그저 맛있게 먹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돌이켜 보면 음식에는 맛만 담겨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정과,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추억이 고로 담긴다.
강지한의 첫사랑이 음식에 잠긴 온정을 느꼈었고, 강지한 본인도 계란밥을 먹으며 엄마를 떠올렸었다.
그만큼 음식이라는 것은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맛 이상의 그 무언가를 전해주는 힘이 있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요리에 임하는 강지한의 자세가 더욱 진중해졌다.
* * *
다음 날.
10시 20분에 칼같이 식당으로 들어서던 이리나는 주방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비주얼에 멈칫했다.
“누구세요?”
“아, 리나야.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된 주방 직원 고중만 아저씨.”
“어! 기억났다. 그 친구분들 끌고 와서 우리 식당 음식 먹여주셨던 그분이셨죠?”
“이야. 아가씨가 눈썰미도 있고 기억력도 좋네.”
“근데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시게 됐다고요?”
“사정이 좀 있어서 그렇게 됐어요. 잘 부탁해.”
우악스러운 미소를 짓는 고중만.
이리나가 강지한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괜찮겠어요?’
강지한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용성우는 일을 하며 슬쩍슬쩍 고중만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러다 실수로 시선이 마주쳤다.
“뭐 시킬 일 있어?”
고중만이 물었다.
일순 용성우의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아직 그를 어찌 대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기 때문이다.
막내라고 주방에 들어왔는데 나이가 많으니 이게 참 애매했다.
잠시 고중만을 바라보던 용성우가 저도 모르게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양파를 좀 더 까놓으시겠습니까!”
“……그러지.”
고중만이 순순히 양파를 까기 시작했다.
원래는 용성우가 해야 했을 일이다.
얼떨떨해 하는 용성우에게 강지한이 귓속말을 건넸다.
“잘했어, 성우야. 앞으로도 그렇게 해.”
강지한은 고중만이 고생하길 원하는 게 아니었다.
이 식당에서 일을 하며 용성우처럼 요리 실력이 늘기를 바랐다.
손기술이라는 게 배워 놓으면 남 줄 일이 없었다.
두고두고 스스로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고중만의 나이 때문에 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면 그건 그를 위해주는 것이 아니라 독주를 먹이는 셈이다.
아무튼 용성우는 본의 아니게 고중만과의 관계 정리를 해버렸다.
다들 오픈 준비로 바쁜 와중 강지한은 개수대를 정리하며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 있었다.
‘요새 컨디션이 안 좋은가?’
요즘 들어 그가 만드는 음식이 항상 6레벨의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그는 똑같이 요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5레벨과 6레벨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는 했다.
‘문제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는 강지한의 귀로 고중만의 음성이 들려왔다.
“음식 맛이 좋길래 재료도 고급으로 사용하는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강지한이 고중만에게 물었다.
“이 양파 좀 봐봐. 껍질에 윤기가 없고 딴딴하지가 않잖아.”
그에 용성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정도면 딴딴한 거 아니에요?”
“더 딴딴해야 돼. 이것 봐봐.”
고중만이 양파를 반으로 썰었다.
그러자 양파의 가장 안쪽 살 약간이 살짝 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