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Restaurant 60. 기적을 안겨주다
유들거리는 웃음을 물고 지원자가 맞다 대답한 이는 다름 아닌 고중만이었다.
강지한이 고중만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래간만입니다, 강 사장님.”
고중만의 존대에 강지한은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하던 대로 하세요.”
“장난 좀 쳐봤다. 정색하기는.”
고중만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죽 빨아 마시고서 미간을 구겼다.
“아으 써. 아니 이런 걸 왜 마시는 거야? 괜히 폼 잡겠다고 시켰다가 입맛만 버렸네.”
“중만 아저씨 진심이세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힘든 인생인데, 이런 일로 장난칠 시간이 있겠냐고.”
“우리 분식집 주방에 지원하시면 막내로 들어오는 건데요.”
“누가 그러더라. 돈 많으면 형님이라고. 돈 없으니 막내 해야지.”
“정말 제 밑에서 일할 수 있겠어요?”
“후우, 강 사장.”
고중만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싹 사라졌다. 그 자리를 착잡함이 대신했다.
“실은 우리 딸이 많이 아파.”
“그런 얘기 없으셨잖아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데 뭐 좋은 일이라고 말을 하겠어.”
그러고 보니 강지한은 고중만의 딸을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집사람도 얼굴을 못 봤다.
일 년이나 같은 동네에서 일을 했으면 한 번 쯤 얼굴을 볼 법도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고중만을 마중 나오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딸 역시 마찬가지였다.
“팔로 4징증.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건데 태어날 때부터 그 병을 달고 났지. 아내가 임신 초기에 양수가 적어서 걱정이 심했었는데 우환이 현실로 들이닥쳤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그 위험하다는 수술을 하고 2차, 3차 수술까지 거쳤지. 염병. 여린 몸뚱이 어디에 칼 댈 곳이 있다고.”
말하다가 열이 오른 고중만은 커피에 있는 얼음을 꺼내 와그작 씹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비가 많은 건 아니었어. 문제는 그 돈조차 낼 여유가 없었다는 거야. 결국 여기저기 빌려서 마련은 했는데 이 빚이라는 게 한 번 지기 시작하면 끝까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 놈이더라고.”
“……준희는 지금 괜찮아요?”
고준희.
고중만의 딸 이름이다.
“다른 애들처럼 건강하지는 않지만 사는 데 지장은 없대. 수술도 잘됐고. 내가 강 사장한테 구질구질 대했던 것도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랬던 거야.”
“됐어요, 그 얘긴. 이미 사과하셨잖아요.”
“그래, 각설하고. 아무튼 돈이 돈을 부르듯, 빚이 빚을 부르더라고. 알잖아, 강 사장. 나 나름대로 장사 잘하고 돈도 열심히 벌었어. 그런데 그놈의 빚이 줄어들지를 않아. 빚이 많은 것도 아니야. 그냥 사회초년생들보다 조금만 더 받으면 어떻게든 우리 가족 먹고살면서 빚도 야금야금 갚아 나가겠는데, 하루 종일 열심히 팔아도 돈푼 안 되는 리어카 장사로는 답이 안 나와.”
“아니, 제법 파시지 않으셨어요?”
고중만이 멋쩍게 뒷목을 주물렀다.
“강 사장한테는 어묵이고 떡볶이고 많이 준비해 와서 일찍 다 팔아버리는 것처럼 얘기했는데 그게…… 애초에 물량이 많지 않았어. 팔다가 남는 게 감당이 안 되더라고. 남으면 그대로 다 손해니까. 내가 하루에 얼마나 팔 수 있는지 가늠해서 딱 그만큼만 가지고 나간 거지.”
고중만이 다른 건 몰라도 장사 수완은 제법이었다.
그는 주변 상권과 스스로의 기량을 정확히 파악해서 팔릴 만큼의 물량만 준비하곤 했다.
“우리 식당에 취직하셔도 월급이 그리 많지 않아요. 더군다나 주방 막내면 당장은 월 200 이상 드리기 힘들고요.”
“허어.”
“생각하신 것보다 많이 적…….”
“200씩이나 줄 수 있어?”
“네?”
“그거면 감지덕지지. 그나저나 이거 참 격세지감 느껴지네. 지금 강 사장이 느끼는 200이랑 내가 느끼는 200의 무게가 참 다른 거 알아?”
고중만의 말에 강지한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그렇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0이란 돈은 고중만 보다 강지한에게 더욱 크게 다가오는 액수였다.
한데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근데 200으로 빚도 갚고 생활도 할 수가 있겠어요?”
“빚이 많은 건 아니라니까. 생활비는 최대한 아껴 쓰면 되고. 그보다 더 적은 돈 만지면서도 살았었어. 버는 돈이 줄어들면 모를까, 늘어나는데 뭐가 문제겠어.”
고중만이 강지한에게 이토록 구구절절한 적이 있었던가?
그는 지금 간절했고, 그 마음은 강지한에게 깊이 와 닿았다.
“강 사장, 나 한 번만 믿어줘. 뭐든 시키는 대로 할 테니 한 번 만 믿고 써봐. 응?”
고중만이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강지한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나직이 숨을 내쉬었다.
“후우, 중만 아저씨.”
“응.”
“정말 제 밑에서 일할 수 있겠어요?”
“뭐든 못할까. 지옥불에라도 뛰어들 수 있어.”
“식당에서 트러블 일으키시거나 나이 앞세워서 다른 사람 기죽이려 하시면 안 돼요.”
“아무렴.”
“알겠어요.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출근 시간은 10시. 퇴근 시간은 9시로 하고요.”
강지한은 고중만에게 도움을 받은 일이 있었다.
게다가 그의 사정이 딱하기도 해서 도저히 모른 체할 수 가 없었다.
“고마워, 강 사장!”
고중만이 벌떡 일어나서 강지한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당황한 강지한이 덩달아 일어나 그런 고중만을 말렸다.
“어우, 아저씨 왜 이러세요? 그러지 말아요.”
“…….”
“아저씨?”
강지한이 고중만을 불렀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조아린 머리도 들지를 않았다.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인 고중만의 몸이 살짝 떨려왔다.
강지한은 더 이상 고중만을 말리지 않고 물러났다.
“그럼 내일 뵐게요.”
딸랑-.
조금은 급한 걸음으로 강지한이 카페를 나섰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고중만의 어깨가 격하게 들썩였다.
그의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고마워 강 사장……. 정말 고마워.”
오후 네 시를 향해 가는 시각.
한적한 카페 안에서 삶의 무게에 무릎 꿇은 마흔네 살의 가장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 * *
오후 9시.
지한 분식에 들어오는 손님보다 나가는 손님이 더 많아지며 하나둘 빈 테이블이 늘어갈 때였다.
“사장님~ 강녕하셨나요?”
생각지도 못했던 반가운 얼굴이 지한 분식을 찾았다.
로버트 정이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였다.
“어? 로버트 씨 오셨네요.”
이리나가 아는 체를 했다.
“디렉터님. 어쩐 일이세요? 함께 오신 분들은……?”
강지한의 물음에 로버트 정이 얼른 대답했다.
“부모님입니다. 저분이 제가 말씀드린 강지한 사장님이세요.”
“처음 뵙겠소. 정찬우라고 합니다.”
“…….”
자기소개를 시원시원하게 하는 정찬우와 달리 신지윤은 고개만 숙여 보였다.
‘어디 아프신가?’
강지한이 보기에 신지윤의 안색이 상당히 창백했다. 그리고 계속 불안한 표정으로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했다.
“식사되나요?”
“멀리서 오셨는데 문을 닫았어도 다시 열어서 해드려야죠. 아, 리나랑 성우는 퇴근해. 내가 마무리하고 갈게.”
“아녜요. 마감 같이하고 갈게요.”
“지금 다 드신 손님들 계산해 드리고 가. 성우도 그만하고 퇴근 준비해.”
“알겠습니다!”
“으휴, 알았어요.”
강지한의 고집을 익히 아는 그들이었기에 포기가 빨랐다.
이리나가 마지막 손님 세 팀의 계산을 마치는 동안 강지한은 로버트 정에게 주문을 받았다.
“사장님, 떡볶이 3인분 주세요.”
“더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 제가 서비스 드릴 테니 말씀하세요.”
“그럼 떡볶이에 사장님의 사랑을 곱빼기로 듬뿍 담아서 내어주세…… 컥!”
너스레 떠는 로버트 정의 정강이를 맞은편에 앉은 정찬우가 걷어찼다.
“아들놈이 정신없어서 죄송하오. 떡볶이 맛있게 만들어서 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때 퇴근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이 인사를 했다.
“사장님, 퇴근하겠습니다!”
“저도 가볼게요. 로버트 씨랑 아버님, 어머님,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직원들이 나가고 난 뒤 강지한은 조용해진 주방에서 떡볶이를 만들었다.
요리를 하는 와중 로버트 정의 가족을 힐끔 살폈다.
아무래도 이 가족, 뭔가 사정이 있어 보였다.
평소에는 팔푼이 같은 로버트 정에게서 가끔 보이던 어둠의 원인이 가족의 사정에 있는 것 같았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지한이 떡볶이 3인분과 서비스 어묵을 식탁에 놓아주었다.
“매번 민폐네요. 감사합니다.”
“맘 편히 드세요.”
떡볶이를 바라보는 로버트 정의 입에 군침이 돌았다.
그가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정찬우의 시선도 신지윤에게 향해 있었다.
과연 아내가 음식에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차피 똑같겠지 하는 회의감이 마음속에 공존했다.
“먹어요, 엄마. 아부지도.”
정찬우는 어제 로버트 정이 사온 떡볶이를 맛보지 않았다.
신지윤이 측은해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그냥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 탓이다.
‘이깟 떡볶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춘천까지 사람을 끌고 와서는……,’
겨우 떡볶이 하나에 사활을 걸고 이 먼 길을 왔다는 게 내심 짜증이 났던 터였다.
정찬우가 조금 과격하게 떡을 찍어 씹었다.
‘음?’
그의 얼굴에 살짝 배어있던 짜증은 턱관절이 움직임에 따라 차차 사라지고 있었다.
정찬우의 포크가 다시 움직였다.
‘이것 봐라?’
한 번 더 떡볶이를 맛보고 나니 아들이 굳이 이곳까지 오자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엄마도 빨리 먹어봐요.”
로버트 정의 재촉에 신지윤이 마지못해 포크를 들었다.
이미 한 번 먹어본 떡볶이였다.
당시에는 잠들었던 미각을 깨워주는 듯한 기분에 말이 나올 것도 같았으니 착각이었다.
차라리 희망이 없는 게 낫다.
잡힐 것 같다가 잡히지 않으면 더욱 마음이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아들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떡 하나를 찍었다.
떡이 입에 들어가는 그 순간 까지도 다 아는 맛이라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로버트 정이 포장해서 가져온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맛은 분명 비슷했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잔에 가득찬 물에 물방울 하나를 떨어뜨리면 확 넘치는 것처럼, 같은 맛임에도 무언가 작은 차이로 인해 풍미가 배가되는 것 같았다.
생기 없이 반쯤 감겨 있던 신지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가 열정적으로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실어증을 앓고 나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로버트 정은 희망을 가졌다.
“당신 잘 먹네?”
정찬우가 연신 떡볶이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신지윤은 그 말을 못 들었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녀의 모든 정신은 오직 떡볶이에만 꽂혀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행복을 느꼈던 게 아주 오래전의 일 같았다.
3인분의 떡볶이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로버트 정은 몇 개 먹지도 않았다.
그의 부모님이, 특히 신지윤이 2인분가량은 먹은 것 같았다.
“꿀꺽! 꿀꺽!”
물까지 시원하게 들이켠 신지윤을 보며 로버트 정이 물었다.
“엄마, 어때? 맛있었어?”
신지윤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려왔다.
“괜찮아. 말해봐. 맛있었어?”
로버트 정이 그런 엄마를 독려했다.
제발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기를 로버트 정은 바랐다.
드라마를 보면 현실에서 쉬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기적들이 벌어지곤 한다.
신지윤이 실어증에 걸린 이후부터 로버트 정은 자신의 가족에게도 드라마틱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했다.
그래서 습관처럼 일상의 모든 일들에 드라마틱함을 중요시했다.
강지한과의 만남이 평범하지 않게 연출하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찬우는 숨도 쉬지 않고 신지윤의 입을 바라봤다.
“후우우.”
신지윤이 가만히 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아.”
그러나 여전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기대에 차 있던 정찬우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때였다.
“……맛… 이 있… 어.”
“뭐라고?!”
정찬우가 기함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로버트 정은 혼자만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처럼 굳었다.
“맛있어…… 맛있었어……. 정말 맛있었어, 두식아.”
“엄마…….”
신지윤의 동그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걸 보는 로버트 정도 함께 울었다.
신지윤의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내 새끼가 맛있는 걸 먹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고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신지윤에게 항상 맛있는 것만 먹이려고 했었다. 때문에 신지윤은 맛있는 걸 먹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엄마의 사랑을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다.
“맛…… 있었어 두식아. 엄마, 정말, 맛있었어.”
로버트 정이 신지윤을 와락 끌어안았다.
동시에 정찬우가 강지한에게 다가와 두 손을 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제가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해가 저문 늦은 밤.
강지한의 음식이 한 가족에게 드라마틱한 기적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