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Restaurant 37. 갑자기 나타난 훈남은 누구?
‘영진이.’
강지한이 진심으로 친구라 여기는 유일한 녀석 최영진.
몇 달을 연락 안 하다가 한 번 만나도 어색함 없는 사이.
일 년을 소식 모르고 살다가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은 그런 친구.
관리가 필요 없는 진짜 불알친구가 바로 최영진이었다.
“영진아!”
강지한이 전화를 받자마자 최영진의 이름을 반갑게 불렀다.
그러자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지한아~ 살아 있냐?
“그럼 저승에서 전화 받았을까?”
-흐흐, 맞네. 근데 너 잊어버린 거 아니지?
“응? 뭘?”
-이 새끼, 잊고 있었네. 어떻게 그걸 잊어, 자식아. 넌 왜 매년 까먹냐.
최영진의 답답한 음성이 강지한의 귀를 찔렀다.
그제야 강지한은 친구가 무얼 말하려 하는지 눈치챘다.
“동창회 잡혔어?”
-그래. 이번에는 나올 거지? 작년에 너 안 와서 사린이가 많이 아쉬워했다.
허사린.
최영진과 마찬가지로 강지한의 손에 꼽는 여자 사람 친구였다.
세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에 살며 초중고를 함께 나와 죽마고우가 된 케이스였다.
게다가 운 좋게도 대부분 같은 반에 배정을 받았었다.
그러니 사이가 멀어지려야 멀어질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강지한이 부모님을 잃었을 때에도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었다.
“사린이랑은 연락 자주 하고 지내?”
-알잖아. 걔 무신경한 거. 내가 먼저 하지 않으면 연락 오는 법이 없다.
“여전하네.”
허사린은 만나면 시끄럽고 정신없는데, 떨어져 있을 땐 쥐 죽은 것처럼 연락을 안 하는 스타일이었다.
-아무튼 허사도 온다고 했으니까 너도 이번엔 꼭 와라.
“흐음.”
어떻게 할까, 강지한은 고민했다.
최영진과 허사린은 간만에 참 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강지한이 그리운 건 딱 그 두 사람뿐이었다.
다른 동창들은 떠올려도 무덤덤했다.
강지한은 친구들 사이에서 그다지 인기 있는 편이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그는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런 타입이었다.
때문에 딱히 친한 친구가 없었다.
오히려 보기 껄끄러운 동창이라고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혹시 도근한도 온대?”
강지한이 넌지시 물었다.
그 안에 숨은 뜻을 최영진은 바로 알아챘다.
-그 새끼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지?
“좋지는 않지.”
도근한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이유도 없이 강지한을 괴롭혔다.
집안이 좀 잘사는지라 늘 노는 애들 몇을 끼고 다녔었다.
그러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학생이 있으면 괜히 시비를 걸곤 했다.
그 시비의 주대상 중 한 명이 바로 강지한이었다.
직접적인 폭력을 당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숱한 언어폭력과 무시하는 행동에 여간 시달린 게 아니었다.
그런 작태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변한 게 없었다.
첫 동창회가 열렸을 때, 도근한은 강지한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게 싫었던 강지한은 동창회를 거의 나가지 않았다.
어차피 최영진과 허사린을 빼면 친한 친구도 없는 데다 도근한의 얼굴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모이는 장소가 도근한이가 오픈한 스테이크집이야.
“그래?”
-그래도 그냥 와. 설마 이 나이 먹고서도 그러겠냐. 이번에도 너 무시하면 내가 지랄할 테니까. 그리고 우리 서로 바빠서 이런 날 뭉치지 않으면 통 얼굴 못 보잖아.
최영진도 허사린도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린 몸이었다.
이제 예전처럼 아무 때나 얼굴을 보기는 힘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강지한이 입을 열었다.
“언젠데?”
-24일.
24일이면 8일 후, 토요일이었다.
아직 식당이 오픈하기 전이었으니 부담은 없었다.
“알았어, 갈게.”
-오케이. 허사한테 너 온다고 못박아둔다. 장소랑 시간 톡 보낼게.
“그래. 내일 보자.”
통화를 끝내자마자 최영진에게서 톡 한 통이 날아왔다.
-합정역 서교 어린이공원 근처 ONE스테이크. 6시 반까지.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강지한은 한시도 쉬지 않고 여러 종류의 김치를 담그는 데 열중했다.
김치의 숙련도를 올리자는 목적도 있었지만, 김치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손에 빠르게 익게끔 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식당의 내부 공사와 인테리어가 끝나서 확 바뀐 주방에 적응하기 위한 연습과 동선을 편히 잡기 위한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편 집의 바닥, 벽, 이불, TV의 레벨 역시 전부 5까지 일괄적으로 업그레이드해 두었다.
그 이상의 레벨로는 올릴 수가 없었다. 집과 관련 된 것들은 레벨 5가 최고치였다.
바닥은 레벨 4까지 업그레이드했을 땐 바깥의 온도에 반응하여 따뜻해지거나 시원해지는 효과를 가졌었다.
한데 레벨 5가 되며 강지한의 생각에 반응해 온도를 조절하게 됐다.
한마디로 강지한이 바닥이 차갑다고 느끼면 온도를 높이고, 덮다고 느끼면 낮추게 되는 것이다.
벽은 외풍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한편, 강지한의 마음에 따라 소음 차단의 강도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게 해주었다.
강지한이 바깥의 소리를 듣고 싶을 땐 차단의 강도가 약해지지만 반대의 경우는 강도가 높아졌다.
즉, 강지한이 한밤중에 집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으면 소음 차단 강도를 높이면 되는 일이었다.
이불은 덮는 것만으로 무조건 숙면이 가능하게 해주며 세 시간만 자고 일어나도 모든 육체적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게 됐다.
TV 역시 한 시간만 시청하면 정신적 피로를 전부 없애주었다.
이 모든 것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총 1,000포인트가 들었다.
돈으로 치면 고작 100만 원이었다.
그 100만 원으로 인해 강지한은 남들보다 더 쾌적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강지한은 설탕이 밥부터 챙겨주고 주방에 섰다.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며 싱크대 서랍을 연 강지한의 눈에 소면이 들어왔다.
“열무가…… 익었지?”
얼마 전, 강지한은 열무김치를 담갔었다.
팔 건 아니고 자신이 먹기 위해 소량을 만들었다.
김치 냉장고를 열어 보관통 하나를 꺼냈다.
통의 뚜껑을 여니 잘 익은 열무 특유의 시원하고 톡 쏘는 향이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열무 줄기 하나를 톡 뜯어서 바로 입에 넣는 강지한.
아작. 아작. 꿀꺽.
“굿.”
열무가 아주 맛있게 익었다.
아삭한 줄기를 씹을 때마다 청량감이 입안 곳곳으로 퍼져 나가며 혀를 즐겁게 해줬다.
강지한이 열무를 접시에 따로 조금 담아냈다.
그리고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아침은 열무비빔국수다.”
그 역시 강지한의 엄마가 자주 해주던 메뉴였다.
강지한은 추억 속의 맛에 집중하며 그 안에 들어간 재료들이 무엇무엇인지 알아냈다.
타타탁!
가스레인지에 불이 붙었다.
물이 끓을 동안 강지한은 양념장을 만들었다.
작은 그릇에 고추장, 물엿, 설탕, 참기름, 식초와 잘 빻은 참깨를 넣고 섞었다.
그 사이 물이 끓자 소면 한 줌을 투하했다.
강지한은 소면을 한 번 풀어주고서는 냄비를 지켜봤다.
물이 보글보글 끓다가 확! 하고 거품이 일어나 넘치려 할 때, 찬물 반 컵을 넣었다.
그러자 거품이 전부 사라지고 다시 물이 천천히 끓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거품이 확 일어났고 찬물 반 컵이 더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거품이 일어 냄비에서 넘치려 할 때 비로소 불을 껐다.
‘이렇게 하면 시간 잴 필요 없이 가장 소면이 잘 익은 상태라고 했었지.’
소면을 잘 삶는 팁을 엄마에게 들었던 적이 있었다.
삶아진 소면을 찬물에 힘껏 빨아서 얼음물에 한 번 더 씻어냈다.
탱글탱글하게 잘 익은 소면을 소스와 섞어 스테인레스 그릇에 담은 뒤 열무김치를 올리는 것으로 열무비빔국수가 완성됐다.
“잘 먹겠습니다.”
그릇을 식탁으로 가져온 강지한이 국수 한 젓갈을 크게 집어 들어 올리는데 벌써 고소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침이 가득 고인 입에 국수를 한가득 넣고 씹었다.
우물우물.
달콤, 새콤, 매콤한 비빔 소스의 맛과 시원하고 쫄깃 탱탱한 면이 끝내주는 조화를 이루었다.
거기에 고소한 참기름 향은 비강을 자극했고, 나중에 들어온 열무가 아삭하게 씹히며 기분 좋은 치감을 안겨주었다.
꿀꺽!
그야말로 완벽한 한 젓갈이었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엄마가 해줬던 비빔국수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맛이었다.
강지한의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식사를 시작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릇이 텅 비었다.
강지한은 마지막 면 한 올까지 놓치지 않고 집어 먹었다.
“흐아, 맛있었다.”
간만에 정말 만족스러운 아침이었다.
“여름에는 이런 메뉴도 참 좋을 것 같은데.”
이제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들이 전부 식당으로 귀결되는 강지한이었다.
식사를 끝낸 그가 바로 설거지를 마친 뒤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아침 열시도 되지 않았다.
오후에 있을 동창회 약속까지는 시간이 제법 많이 남았다.
“뭘 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하던 강지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얼마 전 자동차를 구입했던 최현택 부장이었다.
강지한이 전화를 받았다.
“네, 최 부장님.”
-강 사장님, 잘 지내셨어요? 전에 말씀드린 대로 구입하신 차 오늘 받아보실 수 있게 돼서 연락드렸어요. 예정보다 일주일이나 늦어져서 송구하네요.
원래는 저번 주에 나왔어야 할 것이 네비게이션에 문제가 생겨 그걸 잡느라 일주일이 지체되었다.
“그래요?”
-10시쯤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시간 괜찮으세요?
“완전히 괜찮습니다.”
* * *
강지한은 인수받은 소형차를 몰고 도로를 달렸다.
뒷좌석에는 설탕이가 들어간 이동장이 놓여 있었다.
“운전 오랜만이네.”
면허증을 땄던 그 시기엔 아버지 차를 자주 몰며 운전을 즐겨 했었다.
한데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로는 운전대를 잡지 못하고서 제법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감각은 남아 있었는지 운전이 어색하지 않았다.
한참 잊고 있던 운전의 재미에 푹 빠져들려는데 이향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지한은 차를 잠시 세워두고 전화를 받았다.
“일찍 일어났네, 향숙이.”
-오빠! 나 놀러가도 돼요?
“응? 갑자기?”
-언제는 예고하고 놀러갔나. 설탕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단 말이야. 가도 되죠?
“집이지?”
-네.
“그럼 집에 있어. 내가 설탕이 데리고 갈게.”
-아싸! 빨리 와요!
이향숙과의 통화를 끝낸 강지한이 다시 차를 몰며 설탕이에게 말했다.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다, 설탕아. 향숙이 누나 보러 가자.”
왕!
* * *
“설탕아~! 보고 싶었쪄~!”
헥헥헥!
이향숙은 강지한이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설탕이만 품에 안고 거실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주머니는 어디 가셨어?”
강지한이 물었다.
“엄마 친구들이랑 모임 나갔어요. 설탕아~ 우쭈쭈.”
“향숙아, 설탕이가 그리 좋아?”
“어지간한 사람보다 설탕이가 낫다고 하면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해될까요?”
“그 정도까지…… 대단하다.”
“설탕이는 언제 다 큰대? 얼른 커서 임신해 가지고 새끼 낳으면 나한테 한 마리 분양해 주는 거야, 설탕아?”
“……걔 수컷이다.”
“아, 맞다. 근데 오빠, 차는 언제 샀어요?”
이향숙은 강지한을 마중 나오며 그가 몰고 온 차를 봤다.
“오늘 받았어.”
“완전 새 차네요? 나 시승식 해줘요.”
“다음에. 오늘 어디 가야할 곳이 있어서 슬슬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아, 혹시 설탕이 좀 봐줄 수 있어? 어쩌면 내가 오늘 못 돌아올지도 모를 것 같은데.”
강지한의 물음에 이향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좋아요. 대박 좋아. 개 좋아.”
“그럼 이따 나가기 전에 들러서 사료하고 간식이랑 배변패드 갖다 줄게.”
“꺄항~ 설탕아! 누나랑 같이 뜨거운 밤 보내자! 아, 맞다. 근데 오빠 오늘 어디 가는데요?”
“서울.”
“춘천 밖으로는 통 나가질 않던 사람이 왜요?”
“동창회 있대서.”
그 말에 이향숙이 강지한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그렇게 입고 갈 건 아니죠?”
“응? 이거 외출복이야. 이렇게 입고 갈 건데.”
외출복은 맞다.
하지만 멋대가리가 하나도 없는 외출복이었다.
“헐. 오빠 동창회 나가서 패쓰 소리 듣고 싶어요?”
“패쓰가 뭔데?”
“패션 쓰레기.”
“……!”
“하여튼 오빠는 옛날부터 그게 문제야. 남들 시선은 전혀 신경 안 쓰고 자기 편한 것만 입…….”
말을 하던 이향숙이 미간을 구기며 입을 닫았다.
강지한을 저도 모르게 몇 년 전 죽은 오빠로 생각하고 말았다.
“기다려 봐요.”
그녀는 강지한이 뭐라 할 새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옷 세 벌을 들고 나왔다.
“이게 다 뭐야?”
“얼마 전에 남성의류 쇼핑몰 오픈했거든요. 내가 팔고 있는 옷 중에서 오빠한테 어울릴 만한 스타일로 가져왔어요. 블랙 슬렉스에 화이트 폴라 니트. 그리고 하운즈투스 오버핏 코트예요.”
이향숙이 뭐라고 하는 건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거.”
이향숙이 검은색 구두까지 내밀었다.
“무조건 내가 코디해 준 대로만 입고 가요. 양말은 검은색 신고. 막 이상한 무늬 같은 거 있는 양말 절대 신지 마요! 오빠가 산 양말들 전부 촌스럽단 말예요.”
“아, 알았다.”
강지한은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자신을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향숙이가 참 많이 고마웠다.
“코디까지 해줬으니까 오늘 반드시 서울 나가서 일박까지 하고 들어와야 돼요. 귀찮다고 안 가거나 당일치기로 와서 설탕이 도로 데려가겠다고 하기 있기 없기?”
말은 저렇게 해도 이향숙은 속이 깊은 애였다.
괜히 그냥 챙겨주기 무안하니까 설탕이 핑계를 대는 것이었다.
그 마음을 잘 아는 강지한이 이향숙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향숙아.”
밝게 미소 짓는 강지한.
그런 그를 바라보는 이향숙의 눈동자에 그리움이 담겼다.
* * *
강지한은 이향숙이 코디해준 옷을 입고 남춘천역으로 향했다.
“잘못하면 늦겠다.”
늦장을 부린 건 아닌데 기차표 시간이 애매했다.
춘천에서 용산까지 가는 기차표였는데 용산에서 바쁘게 움직이면 겨우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콜택시를 불러 잡아탄 강지한이 남춘천역에서 내려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후우.”
칼바람에 아릿해진 귀를 손으로 녹이며 기차를 기다렸다.
한데 그런 강지한을 주변의 여자들이 곁눈질로 슬쩍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스타일 너무 좋다.’
‘저 오빠 훈내 진동하네. 이 추운 날 곁에 서 있기만 해도 훈훈해지겠다.’
‘피부 깨끗한 거 봐. 심지어 잘생겼어.’
여인들은 겉으로 내놓지 못할 말을 속으로만 되뇌었다.
* * *
여섯시 반.
늘 모이던 동창회 멤버 열한 명이 약속 장소에 모두 도착했다.
하지만 강지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찍이 모임 장소에 와서 강지한만 기다리던 허사린이 옆에 앉아 있던 최영진에게 물었다.
“야, 지한이 오는 거 맞아?”
“응. 올 거야.”
“근데 왜 안 와?”
“좀 늦나 보지.”
“확실히 대답해라, 쓸모없는 인간아!”
허사린이 최영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윽! 너는 예쁘게 생긴 애가 왜 이렇게 괴팍하냐. 진짜 네가 네 얼굴의 가치를 알고 살았어도 인생이 수백 배는 편해졌을 거다.”
최영진이 투덜거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경진이 맞장구를 쳤다.
“내 말이. 허사! 너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줘.”
“이 외모지상주의에 찌든 인간들 같으니라고.”
“네가 나로 태어나 보지 못해서 그런 건방진 말을 하는 거거든?”
그때, 이경진과 티격태격하는 허사린을 지그시 바라보던 도근한이 입을 열었다.
“너희 지한이 불렀어?”
“응. 왜?”
“아니…… 그냥.”
도근한의 입에서 강지한의 이름이 언급되자 동창생들이 제들끼리 수군거렸다.
“지한이? 강지한? 걔 동창회에 몇 번 안 나왔잖아.”
“두 번이나 나왔나. 난 걔 얼굴도 잘 기억 안 나.”
“워낙 조용했잖아. 존재감이 오죽 없었으면 별명이 그림자였게?”
친구들의 담화에 도근한이 끼어들었다.
“난 그림자 얼굴 기억한다. 딱히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었지, 아마?”
그에 허사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근한이 또 막말 터졌다. 누가 쟤 입 좀 막아.”
“나둬. 악의 없고 뒤끝 없는 막말이 쟤 매력이잖아.”
이경진이 도근한을 두둔했다.
“당하는 사람이 기분 나쁘면 악의가 있는 거야.”
허사린이 이경진의 말을 부정했다.
두 사람의 대립으로 인해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지려던 그때였다.
딸랑.
듣기 좋은 벨소리와 함께 식당의 정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섰다.
오늘 이 매장은 동창회를 위해 다른 손님은 일체 받지 않는 상황.
매장의 주인이 도근한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서 긴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는 동창회 11인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고개가 일제히 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훤칠한 키에 스타일리쉬한 패션 센스를 자랑하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사내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백옥같이 하얀 피부와 서글서글하면서도 제법 잘생긴 인상이 모든 이의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여자들의 심장 고동은 살짝 빨라지고 있을 정도였다.
“엑……? 야, 너…… 설마…….”
동창생 중 벌써 머리가 벗겨지고 있는 조성호가 설마설마하며 물었다.
“지한이?”
별로 친분이 없던 조성호를 보며 강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랜만이다.”
“미쳤다…….”
동창생들의 입에서 동시다발적인 탄성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