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Restaurant 26. 이상한 손님
늦은 밤, 김숙자가 강지한을 집으로 불렀다.
-지한 총각! 향숙이랑 빈대떡 부쳐서 막걸리 한잔할 건데 안 자면 내려와요.
문자를 받은 강지한은 설탕이를 데리고 김숙자를 찾아갔다.
그러자 설탕이를 본 이향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너 누구니!”
이향숙은 설탕이를 보자마자 냅다 빼앗더니 품에 안고 데굴데굴 굴렀다.
김숙자가 그런 이향숙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누가 갠지 모르겠네. 그런데 지한 총각, 이 강아지는 뭐예요?”
“그게…… 제가 키우는 녀석이에요.”
“지한 총각 강아지 분양받았어?”
“그렇게 됐어요.”
“반려동물 품에 끼고 살면 좋지~ 애가 진짜 예쁘게 생겼네. 우쭈쭈.”
김숙자가 설탕이를 만져보려 했다.
그러자 이향숙이 설탕이를 품에 안은 채 빠르게 굴러 멀리 떨어졌다.
“내가 만지면 닳니? 이 계집애야.”
“오빠, 설탕이 나한테 넘겨.”
“까불지 말고 얼른 지한 총각한테 돌려줘.”
“싫은데.”
“오늘 등가죽 벗겨질 때까지 타작 당해볼래?”
김숙자의 협박에 이향숙이 모가지가 부러질 듯 고개를 휘휘 젓고는 설탕이를 돌려주었다.
그러자 설탕이가 강지한의 무릎에 턱을 얹고 엎드렸다.
김숙자가 그런 설탕이를 살살 만지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장사는 갈수록 괜찮아요?”
“신경 써주신 덕분에요.”
“돈은 좀 모이고 있어?”
“네, 첫 달부터 적자가 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잘됐네. 적당히 돈 모이면 빨리 옥탑방 생활 벗어날 생각 해. 방을 내어주고도 미안한 마음이 여간 가시질 않았어. 어딜 가든 여기보다는 나아. 수중에 보증금 기백 쥐게 되면 바로 방부터 알아봐요. 맘 같아선 우리 원룸이라도 내주고 싶은데 가장 빨리 계약 끝나는 세입자도 반년은 더 있어야 되거든.”
김숙자는 아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그리 말했다.
“내가 잘 아는 부동산 사장님이 있는데, 그분한테 알아보면 좋은 집 얻을 수 있을 거야. 이왕이면 마당 있는 집으로 가야겠다.”
춘천은 눈만 크게 뜨고 찾으면 마당 딸린 옛 저택의 경우 보증금 500에 월 20만 원으로 충분히 세를 살 수 있는 곳이 많았다.
“강아지 키우면서 살기엔 그런 곳이 원룸보다 훨씬 나을걸.”
“아무래도 그렇겠죠?”
강지한 역시 이사를 간다면 그런 곳으로 가야지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수중에 돈 좀 모이면 언제 날 잡고서 같이 부동산 사장님 보러 가자고. 알았죠?”
“네, 감사합니다, 어머니.”
“자~ 그럼 복잡한 얘기도 끝났겠다. 건배!”
* * *
소문이라는 건 참 무섭게 퍼져 나갔다.
이리나가 알바로 들어온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한 분식에 그녀를 보러 오는 남자 손님들이 부쩍 늘어났다.
예전에는 강지한으로 인해 여자 손님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데 지금은 남녀의 비율이 비슷했다.
물론 두 사람의 인기는 손님들이 식당을 찾는 부수적 이유였다.
손님의 발길을 계속 끌어당기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맛이었다.
식당에 들어와 처음엔 강지한과 이리나를 흘깃거리던 사람들도 음식이 나오면 그 맛에 빠져 다른 것들을 일체 잊고 말았다.
오늘도 점심은 만석이었고 손님들의 웨이팅이 이어졌다.
이리나는 일을 한 지 사흘 만에 회전율을 높일 수 있는 요령 하나를 터득했다.
모든 손님들에게 음식이 나간 후, 그녀가 메뉴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총 7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2명, 2명 3명씩 세 팀이었다.
이리나는 그들에게 메뉴판을 돌리며 말했다.
“보시고 드실 음식 미리 말씀해 주시면 더 빨리 준비해 드릴 수 있어요~!”
방긋방긋 웃으며 친절하게 웃는 이리나의 응대에 손님들은 매우 흡족해했다.
어차피 메뉴가 많은 것도 아닌지라 손님들은 빠르게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해 알려주었다.
이리나는 앞치마에 달린 주머니에 펜과 종이를 꺼내 그것들을 받아 적었다.
그녀가 쌩하니 매장 안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웨이팅 손님들의 관심은 전부 식당 앞에 묶여 있는 리어카로 향했다.
“이 리어카가 분식집 마스코트잖아.”
“데코인가? 특이하긴 하다.”
“야야, 우리 여기서 인증샷 하나 박자.”
“리어카에서?”
“정식이랑 용호도 어제 와서 찍었대. 싫으면 나 혼자 찍고.”
“그래, 찍자. 재밌겠네.”
그렇게 지한 분식을 찾는 손님들은 리어카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러한 인증샷은 지한 분식을 찾는 손님들 사이에서 서서히 유행처럼 퍼져 나가고 있었다.
몇몇 손님들은 리어카의 사연에 대해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럼 강지한은 바쁜 와중에도 친절히 답해주곤 했다.
한데 어제부터는 이리나가 강지한 대신 리어카의 사연 이야기를 읊어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강지한은 더더욱 요리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
* * *
지한 분식은 이제 식사 때가 아니더라도 편히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석사동의 수많은 주민들이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때문에 피크 타임이 아닐 땐 테이블이 많이 비긴 해도 전부 비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후 4시.
이제 한 시간 정도만 더 있으면 다시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숨 좀 쉬고 잡담이라도 나누는 게 가능했다.
이리나가 조금 전 들어온 손님이 주문한 라면을 서빙하고서 주방 쪽으로 다가갔다.
강지한은 후다닥 모자를 고쳐 쓰며 머리카락을 다시 단정하게 안으로 집어넣는 중이었다.
요리의 기본은 청결이었다.
때문에 그는 항상 주방에 서기 전, 모자부터 단단히 동여맸다.
“사장님~ 이러다가 진짜 떼돈 버시겠어요?”
“이제 시작이지. 잘될수록 더 집중해서 잘해야 돼. 괜히 들떠서 까불다가 실수하는 법이잖아.”
“와아, 정말 바른생활 사나이의 표본이십니다.”
이리나가 방긋 웃는 얼굴로 박수를 치며 놀려댔다.
“일 년이나 리어카로 장사했는데 바른생활은 무슨.”
강지한은 아직도 불법으로 장사를 했던 지난 일 년이 부끄러웠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래도 최대한 법에 입각해서 해나가고 싶었다.
이리나와 강지한이 한참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사장님!”
방금 라면을 먹던 손님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네?”
이리나가 후다닥 손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뿔테 안경을 쓴 이십 대 중반 정도의 여자였다.
“그쪽이 사장님이세요? 사장님 불렀잖아요, 지금.”
여자의 언성이 더 높아지자 옆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연인이 그를 흘끔거렸다.
강지한이 바로 주방에서 달려나와 여자의 테이블에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자가 라면 그릇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보이시죠, 머리카락.”
강지한이 라면 그릇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국물에 살짝 떠 있는 검은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이게 라면 국물에서 나왔나요?”
강지한은 늘 위생모로 머리를 철저히 동여매고 요리를 하기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해서 저도 모르게 물어봤는데, 그것이 여자의 심기를 더 건드렸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라면에서 머리카락이 나왔으면 사과부터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혹시 지금 그쪽 머리카락 아니라고 잡아떼시려는 거 아니죠?”
따지고 드는 여자는 장발인데다 갈색으로 염색을 한 상태였다.
반면, 라면 국물에 떠 있는 머리카락은 단모에 검은색이었다.
강지한이 바로 라면 그릇을 회수했다.
“죄송합니다. 바로 다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됐구요! 저 비위 상하고 기분 나빠서 못 먹겠어요. 뭐 주변에서 하도 난리길래 한 번 와봤더니 맛도 서비스도 엉망이네요. 그냥 갈게요.”
여자는 벌떡 일어나서 신경질적으로 식당을 나섰다.
한데 그녀의 머리 위에 뜬 만족도는 48이었다.
게다가 단골 수치는 2/10이었다.
‘왜 거짓말을…….’
딸랑.
여인이 나간 문을 강지한과 이리나는 물론이고 식사 중이던 커플까지 멍하니 쳐다봤다.
이리나가 라면 그릇을 주방으로 가져와 머리카락을 건져내서 살폈다.
“이거 오빠 머리카락 아닌 것 같은데.”
* * *
송유리는 지한 분식을 나서자마자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와 하늘 분식의 강석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오늘 중으로 글 올릴 테니 잔금 부탁해요.”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은밀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부탁한 대로 했어요?
“네, 어제 미리 가서 탐방하고 국물에 머리카락 넣었어요.”
송유리는 어제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전부 가리고 지한 분식을 찾았다.
음식은 대충 아무거나 시켜놓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강지한을 살폈다.
위생모 밑으로 드러난 구레나룻이 검은색이었고, 파마기는 없었으며 기장을 보아하니 단모였다.
그래서 오늘 그와 비슷한 머리카락을 미리 준비해 간 것이다.
-근데, 지금 드는 걱정이 하나 있네. 그 머리카락, 만에 하나 지한 분식 사장이 자기 게 아니라는 걸 밝혀내면 어쩝니까?
“나도 모른다고 잡아떼야죠. 그 머리카락이 사장 게 맞는지 아닌지 알게 뭐예요. 어쨌든 라면 속에서 나왔다고 우기면 끝나니까 쫄보처럼 걱정 그만해요.”
-하하하! 아가씨가 참 시원시원하네. 알겠어요. 블로그에 올리는 글도 잘 뽑아주셔야 합니다.
“예쁘게 포장하는 게 어렵지, 까는 건 쉬워요.”
-기대할게요.
강석호와의 통화를 끝낸 송유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천명옥이 강석호에게 송유리를 소개시켜 줬던 건, 그녀가 춘천에 특화된 파워블로거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은 작성되어 올라오는 즉시 춘천의 대표 맛집 카페를 시작으로 여러 사이트에 퍼져 나간다.
전국적으로 보면 별것 아닌 파워블로거였지만 적어도 춘천에서는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주부들을 선동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녀의 블로그에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자식을 둔 주부들이었다.
그런 이들과 댓글을 주고받으며 사람을 묘하게 현혹시키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그런데,
타타탁…… 탁.
글을 써내려 가던 그녀의 손이 일순 멎었다.
‘진짜 맛있었는데…….’
장담컨대 그 집 분식들은 춘천에서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극강의 맛이었다.
워낙 맛있었기 때문일까?
전에 없던 양심이라는 것이 그녀의 손을 멈춰 세웠다.
하나 돈을 받은 게 있으니 머뭇거릴 수는 없는 법.
송유리의 손이 다시 타자를 두들겨 나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손가락이 멈추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