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Restaurant 16. 오픈하는 날, 왜 첫사랑이 거기서 나와?
다음 날.
강지한은 아침 일찍부터 식당에 나왔다.
전날 밤엔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었다.
식당에서의 첫 개업 날이라고 생각하니 소풍가기 전 날 어린아이처럼 설렜다.
눈을 뜨자마자 새로운 메뉴들의 레벨을 5까지 올리고 바로 집에서 나왔다.
강지한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메시지가 그를 반겼다.
[Stage 2. 인기 없는 매장]
[목표: 매장의 인지도를 80 이상 올려주세요. 0/100]
[성공 보상: 빈 메뉴 슬롯 세 개]
[오픈했습니다.]
[만족도는 20일 동안만 습득 가능합니다.]
[매장의 레벨 업이 가능해졌습니다.]
[얼굴, 혀, 목소리, 손과 메뉴들을 6레벨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업그레이드 조건은 레벨 업 현황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눈앞에서 정신없이 나타난 메시지들을 전부 읽어본 강지한이 레벨 업 현황 창을 띄웠다.
<레벨 업 현황>
[강지한]
얼굴 LV5 만족도+4 (NEXT 숙련도 10/100)
혀 LV5 미각+4 (NEXT 숙련도 4/100)
목소리 LV5 (NEXT 숙련도 5/100)
손 LV5 (NEXT 숙련도 13/100)
잠겨 있는 능력 (하나의 숙련도가 100이 되면 열립니다)
[음식]
떡볶이 LV5 (NEXT 숙련도 12/100)
오뎅 LV5 (NEXT 숙련도 9/100)
떡볶이 볶음밥 LV5 (NEXT 숙련도 0/100)
라면 LV5 (NEXT 숙련도 0/100)
김밥 LV5 (NEXT 숙련도 0/100)
[식당]
주걱 LV4 만족도+3 (NEXT 200P)
국자 LV4 만족도+3 (NEXT 200P)
종이컵 LV4 만족도+3 (NEXT 200P)
의자, 테이블 LV1 (NEXT 5P)
바닥 LV1 (NEXT 5P)
[옥탑방]
.
.
.
레벨 업 현황의 배치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강지한의 레벨 업 가능 목록에 잠겨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추가되었다.
해금의 조건은 하나의 숙련도가 100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에 강지한은 다른 항목들의 레벨 업 조건을 살폈다.
전부 숙련도를 100까지 채우라고 되어 있었다.
“포인트 투자가 아니라 숙련도를 보는구나.”
한데 어떻게 해야 숙련도가 오르는지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대충 감은 잡을 수 있었다.
얼굴은 미소를 많이 지으면 될 것이고, 혀는 맛을 자주 보고, 목소리는 말을 많이 하고, 손으로는 음식을 많이 만들면 될 터였다.
때문에 어느 정도씩의 숙련도 경험치가 올라가 있는 듯했다.
“음식들은 많이 만들면 올라가겠지.”
레벨 5가 되고 나서 한 번도 만들어 보지 않았던 신메뉴 세 가지의 숙련도가 0인 것을 보고 그리 유추 가능했다.
“그럼 여기는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바닥이 추가로 레벨 업 가능하다 이거지.”
강지한은 식당에서 붉은 빛을 띈 곳들을 두루 살폈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 레벨 업이 가능할 때 모든 항목들을 전부 레벨 업 하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그는 포인트를 굳이 현금으로 꼬박꼬박 환전하지 않았다.
환전이야 언제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가 지금처럼 투자할 곳이 생기면 투자하고, 환전은 필요할 때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일단 주걱, 국자, 컵을 한 단계 레벨 업!”
강지한이 총 600포인트를 들이려 했다.
그로 인해 각각의 물품 사용 시 손님의 만족도 보너스가 4점씩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그 이상은 레벨 업이 불가능했다.
세 가지 물품에 LOCK이 걸린 것이다.
[주걱, 국자, 컵의 LV6은 다음 스테이지에서 해금됩니다.]
메시지를 본 강지한이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바닥을 한 단계씩 레벨 업 했다.
그러자 전에 보지 못했던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강지한이 구비해 놓았던 싸구려 나무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바닥에서 환한 빛이 일었다.
번쩍!
“윽.”
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엔 전보다 더 고급스러운 의자와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디자인은 변하지 않고 원목 자체만 바뀐 것이기에 얼핏 보면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울러 바닥 역시 바뀌었다.
여기저기 기스 난 부분에 사라졌고, 드문드문 빠지지 않던 묵은 때가 말끔하게 지워졌다.
마치 마술을 보는 것 같았다.
[의자와 테이블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손님들이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의자에 앉는 손님들의 여유도가 올라갑니다. 음식이 조금 늦게 나와도 불평을 덜 하게 됩니다.]
[바닥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종업원의 안정도가 올라갑니다. 새것같이 깔끔한 타일은 서빙을 하다 미끄러지거나 넘어질 위험을 줄여줍니다.]
“이런 식이구나. 좋다. 전부 레벨 5까지 올릴게.”
강지한이 시원하게 포인트를 투자하려 했다.
음식은 하루에 한 번씩만 레벨 업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었으나 매장의 물품들은 그런 제약이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메시지가 그의 투자를 막았다.
[작은 규모의 식당에서 레벨 업 가능한 의자, 테이블, 바닥의 최대치는 3입니다.]
“아……. 그럼 전부 한 단계 레벨 업.”
강지한이 살짝 민망해하며 말했다.
바닥과 의자, 테이블의 레벨이 오르며 다음 레벨에 LOCK이 걸렸다.
더 이상 이 작은 식당에서 포인트를 투자할 수 있는 물건이나 능력치는 없었다.
레벨 업과 함께 빛이 번쩍이는가 싶던 그때.
딸랑-
갑자기 식당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강지한은 당황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식당과 테이블이 갑자기 변하는 광경을 목격하면 놀랄 게 분명했으니.
한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식당에 들어온 사람은 유리문 너머에서 번쩍이던 빛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외부인이 들어왔습니다. 레벨 업으로 인한 외형의 변경은 외부인이 나간 이후 적용됩니다.]
[의자와 테이블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손님들이 안락함을 느낍니다. 의자에 앉는 손님들의 여유도가 올라갑니다. 직원들의 실수에도 너그러워집니다.]
[바닥의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타일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아무리 바빠도 서빙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종업원의 안정도가 올라갑니다.]
‘후아, 다행이다.’
남들이 보는 곳에서는 외형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선 이는 식재료 상인이었다.
이제 강지한도 엄연히 식당을 갖게 되었으니 많이 사용할 것 같은 재료들은 도매상과 거래를 튼 것이다.
식재료 상인이 나가자마자 바로 변화가 일었다.
우우우우우웅- 번쩍!
레벨 업 한 의자와 테이블의 원목이 한층 더 고급스러운 것으로 바뀌었다.
바닥의 타일은 외형적 변화가 없었다.
다만 레벨 업으로 인한 효과만 적용될 뿐이었다.
이것으로 모든 레벨 업이 완료되었다.
앞으로는 벌어들이는 만족도 포인트는 그대로 모으면 되는 일이다.
“부지런히 준비하자.”
식재료를 받은 강지한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려면 갖가지 재료들이 필요했다.
주방 한편에 놓인 재료들이 필요한 모양새로 다듬어졌다.
파는 얇게 어슷 썰고, 양파는 채 썰어 함께 담았다.
김밥에 들어갈 재료들은 길게 썰어서는 햄과 당근, 어묵은 간장과 설탕으로 간을 해서 볶고 시금치는 데쳤다.
김밥용 밥은 고슬고슬하게 지어서 참기름과 천연소금, 표고버섯 가루를 넣고 섞었다.
김은 완도 1등급품으로 미리 구매해 둔 걸 꺼냈다.
어묵을 꼬치에 꿰는 건 이제 수준급이었다.
그의 손에 잡힌 오뎅이 세 번 접혀 긴 직사각형 모양이 되면 꼬치가 지그재그로 꿰차고 들어오는데 그 동작이 눈 깜짝할 새 이뤄졌다.
꼬치에 꿰어지지 않은 오뎅들은 슥슥 잘려 떡볶이 재료로 통에 담겼다.
쫀득한 밀떡은 미리 물에 담가놨다가 꺼내 하나하나 손으로 떼어냈다.
떡볶이 소스는 이미 식당 냉장고에 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레벨 5 라면에 들어갈 특제 소스를 만들어야 했다.
레벨 5 라면은 그냥 스프만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따로 만든 소스를 넣어주어야 깊은 맛을 내는 특별한 라면이 완성된다.
다행스럽게도 그에 필요한 재료들은 전부 식당에 구비되어 있었다.
지체없이 특제 소스를 만드는 것으로 강지한은 밑재료 준비를 끝냈다.
반찬은 김밥 속 재료를 만들 때 볶았던 햄과 어묵이 나간다.
김밥에 넣으면 김밥 재료지만 그대로 나가면 그냥 일반 반찬이었다.
더불어 업체에서 김치와 단무지를 돈 주고 사서 사용했다.
“준비 완료.”
나름 부지런하게 움직였는데도 벌써 1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식당 문을 열어야 한다.
강지한이 문 앞에 걸어두었던 문패를 Close에서 Open으로 바꿨다.
그러자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손님이 들어왔다.
딸랑.
“어서 오세요~”
종소리를 듣자마자 강지한이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매장에 그의 고운 음성이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그에 매장으로 들어서던 손님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강 사장님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좋은 줄 몰랐어요. 처음 만났을 땐 이 낭랑한 음성이 왜 거슬렸을까요?”
식당을 찾은 첫 손님은 다름 아닌 예소린이었다.
“아, 소린 씨, 식사하러 오셨어요?”
“그럼 식당에 영화 보러 왔으려구요?”
예소린의 농담에 강지한이 멋쩍게 웃었다.
“하하, 그렇죠.”
“깔끔하고 좋네요. 마음에 드세요?”
“정말 마음에 듭니다.”
“다행이네요.”
그리 말하며 식당 내부를 둘러보는 예소린의 얼굴에 약간의 불안이 어려 있었다.
“혹시 저도 망해서 나갈까 봐 걱정되세요?”
“네? 아……. 아무래도 전적이 많은 식당이니 조금은요.”
“걱정 말아요. 그럴 일 없을 테니까.”
“저도 열심히 홍보할게요.”
“그럼 감사하죠. 뭘로 드릴까요?”
예소린이 메뉴판을 살폈다.
<메뉴>
라면 2,500원
김밥 2,500원
떡볶이 2,000원
라볶이 2,000원
밥볶이 2,000원
어묵 500원
“파는 메뉴가 단출하시네요?”
“아직은 그렇지만 차차 늘어날 거예요.”
“밥볶이는 뭐예요?”
“아, 라볶이처럼 떡을 조금 넣고 밥을 넣어서 볶아 나오는 메뉴예요.”
“뭐가 가장 자신 있으세요? 추천해 주실 수 있어요?”
“다 맛있으니까 안 드셔 보셨던 걸 추천해 드릴게요. 라면에 김밥 한 줄 어때요?”
“네, 좋아요. 그걸로 부탁할게요.”
“주문 받았습니다!”
강지한이 주방에서 빠르게 음식들을 만들어 나갔다.
가스렌지 위에선 라면을 끓이며 도마 위에선 김밥을 말아 칼로 썰었다.
주방은 오픈형이라 그 모습이 예소린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
비록 라면과 김밥이었지만 그럼에도 오로지 음식에 집중해서 만들어 나가는 강지한의 모습이 제법 멋졌다.
순식간에 음식을 완성한 강지한은 그릇과 접시에 그것들을 옮겨 담아 반찬과 함께 내어주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잘 먹을게요.”
첫 손님의 첫 주문을 무사히 넘긴 강지한이 라면과 김밥의 숙련도를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0이었다.
한 번 만든 것으로는 1도 오르지가 않았다.
‘꾸준히 만들어야겠다.’
그리 다짐하며 라면을 먹는 예소린의 반응을 몰래 살폈다.
“후우우. 호로록. 어머.”
면 한 젓갈을 씹어 넘긴 예소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저 인스턴트 라면의 면일 뿐인데 탱글탱글 쫀득쫀득 탄력이 있는 게 입안에서 마구 춤을 춰댔다.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은 그녀가 이번엔 국물을 떠먹었다.
“호록. 와…….”
이건 기존에 그녀가 알던 라면의 국물이 아니었다.
훨씬 맛이 있는 건 당연했고 깊은 풍미와 진한 무게감이 인스턴트 라면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라면 국물에서 이런 맛이 나지?’
예소린은 이번엔 김밥을 하나 집어 먹었다.
김밥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입에 넣고 이빨로 씹는 순간 김 안에 들어가 있던 것들이 사르르 풀어지며 자신의 존재감을 마구 뽐냈다.
모든 재료들의 개성이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입안에서 축제가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단언컨대 그녀가 지금껏 먹어본 적 없는 김밥이었다.
인생 김밥을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어때요?”
라면과 김밥을 맛본 후 충격으로 정적에 빠진 예소린에게 강지한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너무 심하게 맛있어요. 둘 다요.”
“그래요?”
“네, 어떻게 하면 이런 맛이 날 수 있죠? 강 사장님……. 진짜 보통 분이 아니시네요.”
“하하.”
예소린의 칭찬에 강지한은 날아갈 듯 기뻤다.
새로 추가한 메뉴도 분명 손님들에게 잘 먹힐 거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강지한이 춤이라도 추고 싶은 걸 겨우 참아내고 있는 그때였다.
딸랑.
문이 열리며 남녀 한 쌍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강지한의 부드러운 음성이 귓전을 간질이자 저도 모르게 여성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을 본 강지한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 내리쳤다.
“어……? 지한이?”
“수, 수정이?”
양수정.
강지한의 첫사랑이었다.
식당을 오픈하는 첫날.
수정이 네가 왜 거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