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Restaurant 13. 전세역전
고중만의 리어카는 손님들로 인산인해였다.
“그제 주희가 말했던 떡볶이집이 여기 맞지?”
“응, 농협 근처 사거리.”
“나 지금 완전 기대 중.”
“승현이가 눈 돌아갔다는 떡볶이집이잖아, 여기가.”
“그리 맛있어?”
“나도 오늘 처음 와본 거라 몰라. 사실 어제도 왔었는데, 그날은 영업 안 하는 것 같더라고.”
리어카를 찾은 손님들의 반은 거기가 강지한의 리어카인 줄 잘못 알고 있었다.
“어? 주인분 바뀌셨네? 떡볶이는 그대로예요?”
“음……. 이 맛이 아닌데.”
“원래 주인분 어디 갔어요?”
“아저씨는 원래 여기 아니고 저쪽에서 장사하셨잖아요?”
그나마 반은 기존에 오던 고객들인지라 주인이 바뀌었음을 알았다.
“아이고, 파는 사람이 중요합니까? 오시는 분들이 중요하지. 어허, 여기 열에 여덟은 원래 우리 리어카 단골들이셨잖아. 내가 서비스도 자주 드리고 그랬었는데 이렇게 쉽게 맘 변해도 되는 거예요?”
“아니 그게 저기…… 어쩌다 보니까, 하하.”
“다시 우리 리어카 좀 찾아줘요. 길거리 음식에서 무슨 어마어마한 맛을 기대해요? 싼 맛에 먹고, 정으로 먹고 그러는 거잖아요. 하하하. 자자, 오뎅 국물도 퍼 드시고. 오늘은 오시는 분들 모두 제가 오뎅 서비스 드릴 테니까, 부담 없이 드세요.”
고중만은 강지한의 자리에서 손님들을 받으며 영업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아무리 장사를 해봤자 손님이 오질 않으니 최후의 방법을 쓴 것이다.
‘아예 날 안 보면 몰라도 이렇게 얼굴 보고 나면 미안해서라도 다시 오지.’
그렇게 다시 왔을 때 말로 구워삶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려는 게 고중만의 속셈이었다.
파는 음식의 질이 떨어지면 말재간으로라도 손님을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였다.
그때 훤칠한 키의 남자 손님 한 명이 다가왔다.
“어서 옵셔!”
“아저씨, 여기서 뭐하세요?”
“응? 아니, 지한이 너야말로 웬일이냐?”
고중만은 강지한을 보고서도 태연하게 받아쳤다.
“제가 할 말 같은데요. 여기 제자리잖아요.”
“아니, 어제 안 나왔잖아. 여태 한 번도 일을 쉰 적 없는 양반이 갑자기 안 나오니까 장사 접었거나 다른 곳으로 옮긴 줄 알았지. 아니, 그리고 우리 같은 떠돌이들이 무슨 자릿세 내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따지나 그래?”
강지한은 속이 끓었지만 딱히 따질 수도 없는 처지인지라 그냥 한숨만 푹 내쉬었다.
“알았어요, 그럼. 거기서 계속 장사하세요.”
어차피 그 자리는 강지한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거기가 명당이라 장사가 잘되었던 것 또한 아니었다.
그는 어디를 가든 장사를 공쳤다.
파는 음식의 맛과 질이 레벨 업 하며 손님맛을 보게 된 것이다.
강지한은 미련 없이 리어카를 끌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에 고중만의 리어카에 있던 손님 중 반 이상이 우르르 떨어져 나갔다.
“어어? 어디 가세요? 아니 손님! 손님은 서비스 오뎅만 드셨잖아요! 뭘 사먹어야 서비스가 나가지! 오백 원!”
대부분의 손님이 나가 버리니 다른 손님들도 서로 눈치를 살피며 빠질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여고생 세 명이 소란을 떨며 리어카로 다가왔다.
“앗! 지한 오빠~ 오늘 문 열었어요?”
“어제 안 나왔던데 무슨 일 있었어요?”
“드디어 먹겠다!”
맑은 미소를 매달고 다가온 여고생들의 얼굴은 고중만을 보자마자 굳어졌다.
“……아저씨가 왜 거기서 나와요?”
“서운하게, 왜 그래~ 아저씨네 떡볶이도 맛있잖아, 응? 너 이름도 기억해. 정미지? 정미.”
“지한 오빠, 어디 갔어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자자, 오뎅 서비스 줄 테니까 먹고 가.”
“싫어요!”
유정미가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아니 먹기 싫으면 싫은 거지, 그렇게 무안 줄 것까지 있어?”
고중만도 장사꾼이전에 사람이었다.
짧은 순간 연달아 수모를 당하니 심사가 뒤틀려 억양이 거세졌다.
하지만 유정미는 기도 죽지 않고 오히려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저씨! 제가 왜 아저씨네 리어카에 안 오는 줄 알아요? 모르죠?”
“지한이 놈이 파는 것 먹느냐고 그런 거 아니냐.”
“아니요! 더러워서 안 먹어요!”
“뭐, 뭐? 그게 지금 어른한테 할 소리야?”
“예전에 여기 지나가다가 아저씨가 지한 오빠한테 뭐라고 하는 거 들었어요. 오뎅은 하루 더 놔뒀다가 팔고 남은 떡볶이도 다음 날 섞어서 팔라고 했었잖아요! 장사치는 그래야 한다고!”
고중만의 얼굴이 누렇게 떴다.
그건 그가 강지한에게 툭하면 내뱉었던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아니, 그걸 언제 들은 거야?’
고중만은 당황을 감추고서 되레 역정을 냈다.
“예, 예끼! 이놈아! 그런 식으로 유언비어 퍼뜨리는 거 아니야!”
“저 거짓말 안 하거든요. 제가 아저씨네 음식 안 먹는 건 그때부터였어요. 그러다 지한 오빠 떡볶이 먹어봤더니 너무 맛있어서 거기 단골된 거구요.”
“어허, 이 녀석이 그래도 계속!”
유정미의 말에 떡볶이와 오뎅을 먹던 손님들은 똥 씹은 얼굴이 됐다.
그러고 보니 떡도 중간중간 너무 물러 터진 게 있었고, 오뎅도 색이 갈변해 퉁퉁 분 것이 영 상태가 이상했다.
“계산할게요.”
“자기야, 가자.”
“욱……. 비위 상해.”
그나마 남아 있던 손님들도 우르르 리어카를 떠나갔다.
“진짜 그런 식으로 장사하지 마세요, 아저씨!”
유정미가 친구들과 함께 휙 뒤돌아서 멀어져 갔다.
결국 고중만의 리어카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고중만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난리냐.”
* * *
강지한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음식을 파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건 맛과 청결이었다.
서비스와 친절은 기본이 지켜진 다음에 당연히 따라붙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고중만에게 밀려나 다른 곳에다 리어카를 오픈하자마자 손님들은 어떻게 알고서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울러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Stage 1. 리어카]
[Stage Clear! 목표를 완수했습니다.]
[5일 후 보름이 되어 만족도 시스템의 동기화가 해제됩니다. 동기화 해제 이후부터는 만족도를 얻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스테이지1의 목표는 1000만 원을 모으는 것이었다.
강지한은 그 목표를 달성한 이후 처음으로 리어카 장사를 나왔다.
‘목표를 완수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그럼에도 5일 동안 더 만족도를 얻을 수 있는 건 아직 시스템 동기화 이후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5일이면 매장을 준비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포인트를 환전해서 돈도 천 가까이 쥘 수 있을 터였다.
강지한의 리어카 안에 D-5라는 문자가 나타났다.
* * *
레벨 5떡볶이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우리 떡볶이 이거 먹고 3인분 더 포장해 갈게요.”
“오빠! 우리도요! 집에 가면 또 생각날 것 같아!”
“강 사장! 벌써 매진 아니지? 아 10분 기다렸어!”
사람들의 아우성에 강지한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네네~ 차례차례 드릴게요!”
강지한에게 돈을 지불하고 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30 이상의 만족도가 우르르 나타났다.
그것들은 강지한의 몸속으로 족족 흡수되었다.
포장을 해 간 손님들의 만족도는 대부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흡수되곤 했다.
떡볶이는 만드는 족족 팔려 나가 두 번을 더 새로 만들어야 했다.
어묵 역시 불티나게 손을 탔다.
손님들의 줄은 릴레이를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마치 어제 먹지 못한 한을 지금 다 푸는 것만 같았다.
그날 강지한은 결국 오후 5시 만에 준비해 온 양을 전부 소진했다.
하루 동안 벌어들인 돈은 2,000원짜리 떡볶이 70인분에 500원짜리 오뎅 100개까지 해서 19만 원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돈이 되는 것이 있었으니 누적된 만족도 포인트였다.
레벨 5 떡볶이는 사람들의 만족도 평균을 부쩍 높여주었다.
대략 100명 가까운 손님들을 받았고 누적 만족도는 2,417이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240만 원이 넘었다.
단 하루 만에 그만한 돈을 벌게 된 것이다.
게다가 장사가 끝난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만족도가 누적되고 있었다.
포장해간 손님들의 것이었다.
강지한이 리어카의 레벨 업 상황을 살폈다.
“여긴 더 이상 레벨 업 할 필요 없겠지.”
어차피 5일 후면 만족도 시스템이 사라지니 말이다.
“그럼 여기에 투자했던 포인트들은 다 어떻게 되는 거야? 옥탑방처럼 회수되나? 아니면 그냥 사라질까?”
강지한이 혼자 중얼거리며 리어카 정리를 거의 마무리해 갈 때였다.
“여~ 지한이.”
고중만이 리어카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그는 자신만만하던 평소와 달리 비굴한 웃음을 매달고서 강지한의 눈치를 살살 살피고 있었다.
“중만 아저씨, 장사 잘되셨어요?”
전 같았다면 ‘당연히 잘됐다’는 대답이 돌아왔겠으나 지금은 대답 대신 고개만 휘휘 저었다.
“이제 5시 조금 넘었는데 벌써 다 판 거야?”
“네.”
“하아. 이봐, 지한이.”
“또 충고하시려고요?”
“아니아니. 그럴 순 없지. 상황을 봐. 완전히 전세가 역전됐는데 어떻게 충고를 하겠나.”
“그럼 왜 오셨어요?”
“그…… 말이야. 내가 자네 장사 죽 쓰고 있을 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진심 어린 조언해 주고 그랬던 거 기억하지?”
“네, 감사했어요.”
“그래그래.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하는 게 도리잖아. 그리고 알다시피 나 말야. 한 가정의 가장이야. 올해 다섯 살 난 딸도 있고, 내가 돈 벌어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마누라도 있다고.”
“잘 알죠.”
강지한은 무심하게 대답하며 리어카 정리를 마쳤다.
“그러니까 우리…… 나눠먹자. 그 비법. 떡볶이 만드는 비법 좀 나한테 알려줘. 그럼 내가 어떻게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려줄게. 이 장사 기술만 알아두면 지금보다 매출이 더 뛸 거야. 내 장담해. 아아, 그리고 떡볶이 기술 알려주면 이 동네 뜬다. 다른 동네 가서 장사할 테니까 그렇게 하는 게 어떨까? 응?”
거기까지 듣고 있던 강지한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아저씨.”
“그래, 지한아.”
“진심으로 아저씨가 저한테 뼈와 살이 되는 충고를 해줬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아저씨가 한 건 제 상처에 흙을 뿌린 거였어요. 아파하는 절 보면서 우월감에 젖어 있던 아저씨의 속내를 제가 몰랐을까요?”
“아, 아니 그렇지 않아. 난 단지…….”
“그리고 가족 얘기 하셨었죠? 그래서요? 먹여 살려야 할 입이 있으니 책임이 막중하다고요?”
“그렇지.”
“저는 그런 책임 느낄 가족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족 잃고 혼자 됐다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그걸 알면서도 툭하면 자기 딸자식 자랑 사모님 자랑에…… 그럴 때마다 저는 돌아가신 부모님 추억 속에서 붙잡고 울다가 잠들었어요. 그런데…… 대체 아저씨가 저한테 뭘 해줬다고 이러십니까? 예?”
“아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 바로 말하지 왜 이제 와서 그래?”
“제가 힘이 없었으니까요! 아저씨보다 약자였으니까. 등신같이 비위 맞추면서 눈치 보는 것 말고 또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은 힘이 생겼다 이거야?!”
“네! 하지만 아저씨처럼 치사하게 힘든 사람 앞에서 상처 주고 우월감에 히죽이진 않았습니다! 저는 그냥 제 장사 꿋꿋하게 했어요! 근데 아저씨가 와서 벌집 건드린 거잖습니까!”
“너, 너 이 새끼! 지금 어른한테 말하는 꼬라지가 그게 뭐야!”
“필요할 때만 어른어른 찾지 마세요! 그딴 어른 누가 인정이나 해준다고 그럽니까! 나흘 후에 이 바닥 뜹니다. 그때까지 서로 더러운 꼴 보기 싫으면 조용히 장사하다가 돌아섭시다.”
강지한이 맹수처럼 씩씩대다가 리어카를 끌고 멀어져 갔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고중만의 속에서 열불이 터졌지만, 더 따라가서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그가 강지한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므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