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8화 (8/330)

# 8

Restaurant 7. 퍼지는 소문

“바닥, 이불, TV 전부 레벨 업.”

[바닥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바깥의 온도에 반응하여 따뜻해지거나 시원해집니다. 그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이불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수면을 취하면 평소보다 피로를 조금 더 풀어줍니다.]

[TV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시청할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가 조금씩 해소됩니다.]

“끝내준다.”

강지한이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보일러를 틀지도 않았는데 미열이 느껴졌다.

냉골이었던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외풍을 조금 막은 데다가 바닥까지 미지근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아울러 이불은 육신의 피로를 풀어주고 텔레비전은 정신의 피로를 풀어준다.

이보다 완벽한 휴식처가 또 있을까?

강지한은 나머지 포인트를 더 투자하려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여기서 지내다가 이사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다른 사람이 들어와도 지금처럼 투자한 상태로 혜택이 지속되는 건가?”

딱히 듣는 대상 없이 홀로 던진 물음이었는데 그에 대한 해답이 메시지로 나타났다.

[거주지를 옮길 경우 투자했던 포인트는 회수됩니다.]

“그렇구나.”

옥탑방에 투자한 포인트는 이사 가도 버려지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투자한 포인트가 아깝지 않았다.

“음……. 집에다가는 여유 봐서 3레벨까지만 투자하자.”

그 정도면 더 투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늑할 것 같았다.

각각 3레벨씩 올린다고 해도 80포인트밖에 되지 않으니 큰 부담은 없었다.

이후부터는 돈을 모아 더 좋은 집으로 가서 벌어들이는 포인트를 전부 매장에만 투자하고자 하는 것이 강지한의 생각이었다.

한데 지금은 그것보다 더 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걸 강지한은 떠올렸다.

“우선 한 달 치 월세부터 해결하자.”

어머니처럼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주인집 아주머니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돈이 들어올 구멍이 생겼으면 바로 갚는 게 강지한의 마음도 편했다.

강지한이 그런 생각을 하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누적된 포인트를 돈으로 환전하시겠습니까?]

“150포인트를 환전하겠어.”

[150포인트 받았습니다. 환전 금액을 보내드립니다.]

허공에서 다시 5만 원짜리 현금 세 장이 나타났다.

그것으로 포인트는 9가 남았고, 25만 원을 쥐게 되었다.

강지한이 들어온 옥탑방의 월세는 보증금 없이 15만 원이었다.

“월세 드리면서 선물도 하나 안겨드려야지.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겠다. 그럼 슬슬 축배를 들어볼까.”

강지한이 불고기 도시락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기분이 좋으니 소주도 달게 느껴졌다.

혼자서 술 마시기엔 적적해서 텔레비전을 틀었다.

마침 그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가 나오는 중이었다.

“하하하. 아하하하.”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술을 마시는데 평소보다 웃음이 더 나왔다.

별것 아닌 장면에서도 빵 터졌다.

그러다 보니 퀘스트 때문에 쌓인 정신의 피로가 조금 씻겨 나갔다.

그렇게 술로 목을 축이며 도시락을 반쯤 비웠을 때였다.

“음, 이 불고기 맛은 집에서도 충분히 낼 수 있겠는데.”

만들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떡볶이와 어묵 국물밖에 없는 강지한이었다.

그런데 불고기를 몇 번 집어 먹으니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대충 감이 왔다.

혀의 레벨이 올라가며 생긴 능력이었다.

술과 도시락을 모두 해치운 강지한은 오래된 낡은 이불을 덮고 누웠다.

“따뜻하다, 따뜻해.”

오늘은 어제보다 옷 한 겹을 덜 껴입었다.

그런데도 춥지 않았다.

“좋다, 우리 집.”

강지한은 그날 웃는 얼굴로 잠이 들었다.

* * *

탕탕!

“오빠! 월세 언제 줄……!”

이향숙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옥탑방 문이 열렸다.

열린 문 너머로 싱글벙글 웃고 있는 강지한이 나타났다.

“좋은 아침이야, 향숙아.”

인사를 받은 이향숙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그가 강지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원래 이렇게 훈남이었나?’

얼굴은 어제 봤던 그 얼굴이었는데 뭔가가 묘하게 달랐다.

우거지상이었던 인상이 확 펴져 있었다.

게다가 미소가 정말 예뻤다.

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좋은 울림을 담아 귀를 간질였다.

잠시 멍해 있던 이향숙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강지한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요? 뭐 좋은 일 있어요?”

“드디어 사람 구실 할 것 같아서.”

강지한이 흰 봉투를 내밀었다.

“여기 한 달 치 월세.”

이향숙이 봉투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갑자기 월세를 어떻게 마련했어요?”

“어떻게 마련하긴. 떡볶이랑 어묵 팔아서 마련했지.”

“정말로? 뭐 어디서 불법적으로 마련한 돈 아니죠? 도박을 했다거나.”

“절대 아니야.”

“당장 힘들다고 그런 쪽으로 눈 돌리면 그걸로 인생 쫑나는 거라구요. 알죠?”

“알았다, 알았어. 그 봉투나 어머니한테 잘 전해드려.”

“엄마 새벽에 돌아오셨어요. 직접 전해줘요.”

“아, 그래? 잘됐다.”

“근데…….”

이향숙이 방 안을 힐끗 거렸다.

“오늘은 떡볶이 볶음밥 안 해먹어요?”

“어제는 남은 게 없었어.”

“맛있었는데. ……상 위에 저거 뭐예요? 편의점 도시락?”

“응.”

이향숙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저런 거 자주 먹으면 건강에 안 좋은데.’

편의점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우는 게 맘에 안 든 이향숙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냥 우리 집 내려와서 같이 밥 먹을래요? 엄마가 아침 준비 하던데.”

“아니야. 남의 집 아침 먹는데 염치없이 끼면 되겠니.”

“월세도 줘야 한다면서요. 인사도 드리고 겸사겸사 왔다고 해요. 어서 가요.”

이향숙이 다짜고짜 강지한을 잡아끌었다.

“어어. 알았어, 갈게, 갈게. 넘어져!”

* * *

뭔가 오면 안 될 자리를 온 것 같았다.

“어머나, 지한 총각?”

김숙자가 반가운 얼굴로 강지한을 바라봤다.

그녀는 이향숙이 나중에 늙는다면 저렇게 되겠구나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곱고 예쁜 얼굴에 주름도 거의 없는 데다 몸매 관리까지 잘해서 애엄마로 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누구야?”

“응. 우리 옥탑방 세 들어 사는 총각.”

“어머나~ 인상이 참 좋네~”

“몇 살이에요? 한 스물 초중반 되는 것 같은데, 맞죠?”

“우리 총각 너무 훈내 난다. 주변에 여자도 많겠어.”

“아…… 하하.”

김숙자의 집엔 아침부터 또래 아주머니들도 바글바글했다.

다 김숙자와 친하게 지내는 동네 친구들이었다.

이향숙이 말하길 이번에 같이 여행 갔던 친구들인데 그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여기서 하룻밤을 더 잔 거라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로 왔어, 지한 총각?”

“아, 그게…….”

친구들이 다들 있는 자리에서 밀린 월세를, 그것도 한 달 치만 내러왔다고 하는 게 좀 창피했다.

강지한이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이향숙이 그의 손에서 돈 봉투를 낚아채 김숙자에게 내밀었다.

“이번 달 월세 주러 왔대. 선물도 준비했다 그래서 내가 끌고 왔어.”

이향숙은 대수롭잖게 말하며 아줌마들 사이 빈자리에 끼어 앉았다.

그러자 아줌마들이 이향숙을 쓰다듬고 뺨을 꼬집으며 귀여워했다.

“어쩜 우리 향숙이는 말도 잘하네?”

“그러게. 예쁘게 생긴 게 말까지 똑 부러지게 하고!”

“어쩜 이리 잘 컸대?”

아줌마들이 호들갑을 떨든 말든 이향숙은 밥부터 입에 넣었다.

“어머, 지한 총각. 월세 직접 주러 온 거야? 매번 고맙네.”

김숙자가 그리 말하며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매번 고맙다니.

월세를 직접 주러 온 건 처음이고 대부분 이체를 시켰었다.

셋째 달부터 월세를 밀리기 시작해서 김숙자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김숙자는 강지한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렇게 말해줬다.

“오빠, 뭐해요. 빨리 선물도 드려요.”

“아……. 저기, 이거 받으세요.”

강지한이 또 다른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김숙자가 뭔지 모를 봉투를 열어봤다. 그 안에는 문화 상품권 5만 원 권이 두 장 들어 있었다.

“어머니 문화생활 좋아하셔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시라고 넣었어요. 하하.”

“어머나, 문화상품권이네. 5만 원권을 두 장이나?”

“젊은 사람이 통도 크지.”

“나도 이런 세입자 좀 받아봤으면 좋겠다. 향숙이 엄마는 복도 많아.”

강지한을 보는 아줌마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김숙자는 한참 동안 문화상품권을 보다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우리 숙자 감동했나보다! 박수!”

짝짝짝짝!

그런 김숙자를 아주머니들이 놀려댔다.

“지한 총각, 어서 앉아요. 밥 퍼줄게.”

강지한이 괜찮다고 하려 했으나 아줌마들은 그를 강제로 앉혔고, 식사가 시작됐다.

‘맛있다.’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집밥인지 모르겠다.

생판 모르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밥을 먹자니 낯설긴 했지만 그래도 집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편의점 도시락과는 비교도 안 되는 따듯함이 상위에 놓인 모든 음식에 담겨 있었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아줌마들의 수다는 끊이지를 않았다.

가만 보면 서로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듣지를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소통이 되는 건지 신기했다.

그러다 가장 덩치 좋은 한 아줌마가 밥을 두 공기나 비우고서 아쉬운 듯 말했다.

“후식 있으면 딱 좋겠다. 어제 우리 딸이 밖에서 떡볶이를 사먹었나 봐. 근데 그렇게 맛있더래.”

그러자 옆에 있는 아줌마가 물었다.

“우리 동네에 떡볶이 맛있는 곳 없는데?”

“아니, 이 동네 와서 먹었대. 학원 끝나고 버스 정류장 가던 길에 리어카에서 팔고 있다던데? 우리 딸이 혀가 까탈스러워서 뭐 먹고 맛있다는 소리 잘 안 하는데 그 떡볶이는 아주 극찬을 하더라고.”

“위치가 정확히 어딘데?”

“그 농협 있는 곳 조금 지나서 주택가로 들어가면 사거리 나오는데, 거기 모퉁이라던가. 나도 사먹어 보려고 자세히 물어봤지. 호호.”

그 말에 강지한의 숟가락질이 딱 멈췄다.

‘거기 내가 장사하는 곳인데?’

강지한이 멍하니 있을 때 이향숙이 젓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그 리어카 이 오빠가 하는 거예요.”

“뭐? 총각, 정말이에요?”

“아……. 네. 제가 거기서 떡볶이랑 어묵 팔아요.”

“혹시 우리 딸 기억나요? 이름이 유정미라고. 맛있다고 했더니 다음에 오면 어묵 서비스 주겠다고 했다던데?”

“아!”

강지한은 리어카를 찾아왔던 세 명의 여고생을 기억해냈다.

“기억납니다. 여학생 세 명이서 먹고 갔었어요.”

“맞아요. 걔네 꼭 셋이 어울려다녀. 아유~ 이렇게 반가울 데가. 오늘도 장사하죠?”

“네네. 해요.”

“이따 집 가기 전에 꼭 들를게요. 맛있으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소문 내줄게~ 서비스 어묵 줄 거죠?”

“그럼요.”

“얼마나 맛있길래 그래? 나도 가봐야겠다.”

“나도 포장 좀 해야겠네.”

“다 같이 가서 작살내자, 그냥.”

“그거 좋다! 호호호호!”

아줌마들이 신이 나서 떠들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강지한은 자신의 떡볶이가 맛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에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환희에 차 있는 강지한을 보며 김숙자가 미소 지었다.

그녀의 눈에 애정이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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