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7화 (7/330)

# 7

Restaurant 6. 포인트 환전

“끝!”

9시 10분 전.

마지막 손님을 받은 강지한이 위를 쳐다봤다.

1…… 0.

숫자 1이 0으로 변했다.

퀘스트를 완료하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포인트 환전이 주어집니다.]

[퀘스트 튜토리얼이 종료됐습니다.]

[초심자의 배려 효과가 끝났습니다. 내일부터는 장사 중에 레벨 업이 불가합니다. 장사전이나, 후에만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음. 그렇군. 그나저나 보상은 대체 뭐 어떻게 되는 거야.”

보상이 주어졌다고는 하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강지한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냥 퇴근 준비를 했다.

“오늘은 거의 안 남았다.”

애초에 많은 양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바닥을 보인 게 얼마 만인지 모른다.

“남은 건 소주 안주로.”

옥탑방의 외풍을 견디려다 보니 자기 전 소주 한 두병은 습관처럼 굳어졌다.

강지한이 남은 음식들을 포장하는데 반갑지 않은 이가 찾아왔다.

“여~ 지한이.”

고중만이었다.

“안녕하세요.”

“어째~ 오늘도 남은 음식 포장… 응? 오늘은 거진 다 팔았네?”

“네. 하하. 다른 날보다 장사가 좀 됐거든요.”

“그래 뭐. 이런 날도 있어야 희망을 품고 살지. 그런데 말이야. 결국 그 희망이 자기 발목을 잡아끈다 이거지.”

“그런가요? 하하.”

강지한이 고중만의 말을 대충 받아 넘기며 웃었다.

그에 고중만이 고개를 갸웃거리고서는 강지한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윽! 뭐하세요?”

강지한의 고개가 번개처럼 뒤로 빠졌다.

“아니, 뭔가 얼굴이 좀 변한 것 같아서. 아닌가?”

어제까지만 해도 침울해 뵈던 인상이 한 결 밝아진 것 같았다.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목소리도 부드러워졌으며 여유가 느껴졌다.

‘오늘 장사가 잘돼서 기분이 좋은가? 그런 거겠지.’

고중만은 멋대로 그리 생각했다.

그가 위생 봉투에 담기는 떡볶이 하나를 얼른 집어 먹었다.

어차피 강지한은 똥손이다.

그의 손에서 탄생하는 떡볶이들은 어떻게 만들어도 그냥 그랬다.

“어디~ 오늘은 좀 나아졌나? 냠냠.”

어제랑 크게 차이 없는 맛이겠지 했던 고중만은 큰 충격을 받고 굳어버렸다.

그런 고중만을 보며 어묵을 싸던 강지한이 넌지시 물었다.

“왜…… 맛이 없어요?”

“어? 어어. 아니, 그 전보다 낫긴 한데 이 정도로는…….”

“중만 아저씨 따라가려면 멀었네요.”

“예끼, 이 사람아! 내가 이 바닥 짬이 자네보다 한참 위인데 그거야 당연하지. 아무튼 생각 잘해. 내 보기엔 하루 빨리 접고 다른 일 알아보는 게 맞아. 아무한테나 이런 충고 안 해준다고. 커흠. 그럼, 이만.”

고중만은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안색이 하얗게 변해 후다닥 자리를 떴다.

강지한에게서 처음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강지한의 입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저씨. 그렇게 사람 속이는 거 아니에요.”

* * *

“오빠 진짜 간 작살나요.”

편의점에 들러 한결같이 소주 두 병을 사가는 강지한이 이리나는 걱정스러웠다.

그가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고 난 이후부터 야간 알바를 하고 있는 이리나는 스물네 살 나이에 비해 앳된 얼굴과 밝고 씩씩한 성격이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한때는 강지한이 남 몰래 그녀를 흠모했던 적도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일하며 자주 보다 보니 절로 정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놈에게 연애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접었다.

지금은 아무 감정 없이 편하게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계산해 줘.”

“으휴, 맨날 한 귀로 흘리지.”

이리나가 툴툴대며 스캐너로 소주 두 병을 찍었다.

“안주는 오늘도 남은 분식?”

“응.”

“오늘은 얼마 안 남았네요? 장사 잘됐나 보다.”

“그렇지, 뭐.”

“마침 잘됐다. 오늘은 폐기 별로 먹기 싫었는데. 그거 줘요. 내가 먹게.”

이리나는 가끔씩 강지한이 남겨서 들고 온 분식을 달라고 해서 먹곤 했다.

여태 강지한은 이리나가 정말 자신의 떡볶이와 어묵이 맛있어서 달라는 줄 알았다.

하지만 레벨 업 된 혀로 맛을 보니 이건 도저히 먹어줄 수 있는 수준이 못됐다.

‘얘도 혀가 내 수준인가?’

강지한은 별 생각 없이 남은 떡볶이와 어묵을 넘겨주었다.

어쨌든 전보다 훨씬 맛있어졌으니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와아~ 고마워요. 보답으로 도시락 쏠게요.”

이리나가 자신이 먹으려 했던 폐기 도시락 두 개를 내밀었다.

유통기한이 겨우 한 시간 조금 넘은 것이었다.

게다가 강지한이 가장 좋아하는 불고기 도시락과 제육볶음 도시락이었다.

“하나는 오늘 먹고, 하나는 내일 아침으로 먹어요.”

“오, 땡큐. 잘 먹을게. 고생해, 리나야.”

“네. 들어가요, 오빠.”

강지한이 나가고 난 뒤, 이리나는 카운터에 놓인 봉지 두 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걸 또 어떻게 넘기냐.”

이리나는 강지한의 분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가다 이렇게 남겨 온 분식을 반기며 달라고 했다.

“지한이 오빠 힘낼 수 있으면 내가 조금 고생하지 뭐.”

이리나가 비장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봉지를 열었다.

한데 봉지 안에서 풍겨지는 매콤달콤한 떡볶이 냄새와 구수한 어묵국 냄새가 군침부터 돌게 만들었다.

“어라?”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냄새였다.

이리나가 얼른 떡볶이부터 한입 먹어보았다.

“쩝쩝. 꿀꺽. 와.”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진짜 맛있어.”

여태 먹어왔던 강지한의 떡볶이가 아니었다.

이건 완전히 다른 떡볶이였다.

“뭐야? 어디서 소스만 따로 구해다가 만드는 걸까?”

이리나가 어묵 국물을 떠먹었다.

“호록. 하아.”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숨도 쉬지 않고 어묵과 떡볶이를 싹 비웠다.

정신없이 먹고 나니 그제야 카운터 앞에 손님이 서 있다는 걸 알았다.

“앗! 어, 어서 오세요.”

삼십 대 초반의 남성 셋이 이리나를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물었다.

“아가씨 뭘 그렇게 맛있게 먹어요?”

“아, 떡볶이요.”

“떡볶이 우리도 좋아하는데. 엄청 맛있나 보네. 어디서 샀어요?”

“이거 어디서 파냐면요. 저기 사거리 더 가서…….”

이리나는 신이 나서 강지한의 리어카 위치를 알려주었다.

* * *

“후아! 도착했다.”

강지한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퀘스트 때문에 하루 종일 긴장을 해서 그런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만들어 놓은 음식을 거의 다 팔았다는 게 뿌듯했다.

“그럼 집을 레벨 업 해보자.”

누워 있던 것도 잠시, 몸을 벌떡 일으킨 강지한이 집 안 곳곳을 살폈다.

“벽은 어제 레벨 업 했으니까 바닥이랑 이불, 텔레비전까지 전부 레벨 업 해볼까?”

강지한이 장사를 끝낸 시점에 누적된 포인트는 274였다.

그는 그것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집으로 왔다.

집을 한 번에 많이 레벨 업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집이 아니라 옥탑방 월세이니만큼 이사 갈 때가 되면 포인트가 아까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선은 지금 당장 좀 포근하게 생활하고 싶었다.

게다가 매일매일 이 정도씩 포인트가 모여만 준다면 크게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우선 바닥부터.”

그가 바닥에 포인트를 투자하려 했다. 갑자기 지금껏 못 봤던 메시지가 뜬 건 그때였다.

[누적된 포인트를 돈으로 환전하시겠습니까?]

“……네?”

강지한은 멀뚱거리며 메시지를 몇 번이고 곱씹어 읽었다.

“그러니까…… 내가 얻은 포인트를 돈으로 환전해 준다는 거야? 캐쉬?”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강지한은 침을 꿀꺽 삼키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환전할게.”

[얼마를 환전하시겠습니까?]

[1포인트당 1,000원입니다.]

“1포인트 당 천 원? 그럼 274포인트면…… 27만 4천 원?!”

오늘 하루 종일 강지한이 번 것 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일단…… 100포인트만 환전할게.”

[100포인트 받았습니다. 환전 금액을 보내드립니다.]

메시지가 사라지자 허공에서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 나타나 너풀거리며 떨어졌다.

강지한이 지폐 두 장을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피고 만져봤다.

진짜 돈이었다.

강지한이 그렇게도 간절히 원했던 돈이었다.

“그렇구나. 이게 퀘스트의 보상. 포인트 환전……!”

한 손에 지폐를 꽉 쥔 강지한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의 앞날이 한층 더 밝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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