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
나는 불편한 숨을 삼키며 천막을 나왔다. 지휘관들은 계속 이야기를 나눌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괴생명체에 대해서 말을 나누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음식이나 물을 찾다니, 혹시 진짜 인간이 아닐까요?”
“하지만 저 정도 수가 갑자기 없어졌다면 실종 신고가 들어왔을 겁니다.”
“역시 마족이 보낸 걸까요? 마기가 없는 공격력이 높은 짐승을 소환해서요, 우리 인간계를 더럽힐 방법으로 말이죠!”
“뭐가 됐든 이들이 퍼지기 전에 모조리 찾아내 죽여야 합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걸음을 옮겼다. 귓가에는 죽고 싶지 않다고 외치던 그것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는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이 아닌 채 울부짖던 그가.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걸음을 옮겼다.
숙소는 빠르게 재배정되었다. 아론의 숙소 바로 옆자리였다. 나는 아주 가깝게 설치된 천막을 보면서 인상을 썼다. 부지휘관이라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밤에 작전을 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찌 됐든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 더 가타부타 떠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하여 내 역할이 크게 달라질 건 아니니까. 난 여전히 소환사 말레드레드였고 마물을 잡는 데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레베카는 그렇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그녀는 아론의 숙소로 찾아와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나는 들고 있던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장님께서 명하셨어요. 부지휘관이 되어서 지휘관을 보조해 달라고.”
“그러니까 어떻게 당신이 그 부지휘관이 되냐고요? 아, 아론나이드 경의!”
원래 그 자리는 그녀의 것이었다. 못 참겠다는 듯이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항의하고 싶다면 대장님을 찾아가서 말하세요.”
“내가 못할 줄 알아요?”
그녀는 차갑게 쏘아붙이고는 몸을 홱 돌려 나갔다. 그녀를 도발할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항의로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좋을 일이다. 그러나 오후가 될 때까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나는 보고를 위해 카란의 천막으로 갔다. 카란은 나를 보자마자 입술을 씰룩였다.
“이게 누구야. 본대의 부지휘관님 아니신가.”
“감사합니다.”
“아직 축하한다고는 안 했어.”
카란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해 주실 거잖아요.”
“자네가 미리 선수를 치니 할 맘이 더 나지 않는군.”
투덜거렸지만 그가 실제로 따뜻하게 받아 주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내 미소가 그다지 밝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카란이 어깨를 으쓱였다.
“남들이 다 가지고 싶어하는 지위에 올랐는데 자네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군.”
“부담감이 커질 거 같아서요.”
“부담감이 커진다는 건 자네가 능력 있는 소환사라는 거야.”
“전 그다지 능력 있지 않은데요.”
카란이 미소 지었다.
“겸손한 건 별로 재미없군. 차라리 방금처럼 축하받을 거라고 자신 있게 생각해. 그게 더 자네다우니까.”
나는 가만히 입술을 다물었다. 나다운 것. 그게 무엇일까. 성기사와 마왕 사이에 껴 있는 내가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무얼지 문득 생각이 깊어졌다. 지금처럼 아론과 마왕 사이를 위험하게 줄다리기하며 균형을 잡는 것이 나의 역할일까. 내가 침묵하는 사이, 카란의 목소리가 정적을 뚫고 들어왔다.
“다행이군. 레베카가 엉엉 울면서 대장님께 위로받았다는 말이 파다하던데. 자네가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어서 말이야.”
“…….”
바보 같은 공녀. 결국 실패하고 만 건가. 나는 쓰리게 웃고는 분위기를 바꿔서 말했다.
“마차는 잘 썼어요. 근데 거기서, 이상한 만남이 있었어요.”
“괴생명체 말이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대장님께서도 고민이 많으셔. 자꾸만 출몰하는 숫자와 소란을 피우는 횟수가 잦아져서.”
카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물이라면 상대하기도 쉽지, 인간 같은 그것들에겐 검을 들어 목을 치기도 어렵단 말이야. 물론 성기사단장은 망설임 없이 한 번에 내리치지만 말이야.”
“……사람처럼 행동하더라고요. 그런 자들이 갑자기 어디서 쏟아졌을까요?”
“글쎄. 그걸 알아내려고 대장님께서 조사를 나가신 거니까.”
본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카란은 이 일이 더 커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물과 마족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지칠 만큼 지쳤으니까.”
“…….”
“그건 그렇고. 왜 나를 찾아온 거지?”
“네?”
“자네는 부지휘관이잖아. 이제 날 찾아올 필요 없어.”
카란은 내 상관이 아론나이드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나는 멈칫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랑하려고 왔어요.”
결국 내가 생각한 답변은 그 정도였다. 카란은 조금 웃었다. 그 말이 무척 재미있다는 듯이. 그리고 애정이 느껴지는 어조로 충고했다.
“마물과 마족의 공세가 강해지고 있어. 그 와중에 이상한 존재까지 출몰하고 있지. 느낌이 좋지 않아. 금방이라도 무언가 터질 거 같으니까 조심하게.”
카란의 천막을 나왔다. 내가 향한 곳은 당연히 숙소였다. 숙소 일대는 아름다운 흰 빛에 휩싸여 있었다. 어두운 밤, 풀꽃 위로 빛나는 환한 빛들이 마치 영혼을 안내해 다른 세계로 이끌고 간다는 유그라프스의 등불 같아서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서 넋 놓고 바라보아야 했다. 내가 가진 힘이 이토록 신비로운 빛깔이었나.
새삼스럽게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있노라니 성기사들이 땅에 신성력을 뿌려 넣는 작업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나 역시 그제야 엉덩이를 떼어 숙소로 돌아왔다.
“늦었네요.”
아론은 숙소 입구에 서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입술을 떼었다가,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우리를 보고 있는 것에 재빨리 숙소로 들어오라고 했다.
“이편이 더 오해를 받을 텐데요.”
“이미 오해를 사게 다 행동해 놓고 이제 와서 따지는 거야?”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리고 냉랭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내일 작전에 있어서 소환사들을 어디로 배치하면 좋을지 물으러 왔어요.”
“아…….”
쌀쌀맞게 그를 대한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어떤 위치인지 떠올랐다. 재빨리 자세를 바꾸면서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잠깐이지만 아론이 반쯤 눈을 감고 내 향기를 마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왜, 왜?”
“아뇨. 향기가 나서요.”
“뭐.”
“향긋한 풀꽃 냄새가.”
그래, 너 멍멍이 같다. 나는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말았다. 내 몸에서 나는 향을 민감하게 읽어 버리는 그 때문에 민감한 것도 잠시, 아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무적인 얼굴로 작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마계로 가는 일 없이 평화롭게 잠들고 일어난 아침은 분주했다. 마족이 마물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때마침 에스더 경이 수도의 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성기사단장이 대장을 호위한다며 사제들 상당수를 끌고 나가 버린 터라 작전을 수행할 사제가 많지 않았다. 아론은 남아 있는 인원을 세 군단으로 나눠서 마족과 마물을 동시 공격할 것을 주장했다.
“말레드레드는 소환사들을 이끌어서 소환 영역을 준비해 주세요. 마족과 마물, 모두 보내 버릴 겁니다.”
아론은 나와 눈을 부딪쳤다. 그 눈빛에는 신뢰가 반짝였다. 걱정스러운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도 느껴졌으나 그것들은 금세 어둠에 삼켜졌다. 아론이 품고 있는 집요한 마음에.
나는 고개를 돌리며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모조리 죽어라, 인간 녀석들!”
마족은 전형적인 타입이었다. 그는 열정이 넘치는 충혈된 눈동자로 마기를 끌어모아 마물을 조정했다. 크게 소리치며 날개를 파닥거리지만 실제로 그에게서 뿜어지는 마기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마물들도 덩치만 컸지 동작이 굼떠서 아론은 금세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너무 쉽게 잡히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 새롭게 열린 차원의 문으로 마족 하나가 더 나타났다. 그는 말수가 없고 냉랭한 타입이었다. 그는 자신의 양팔을 갑자기 벌리면서 무언가를 뿌렸다.
“고, 공 마물이다!”
그러자 작은 공들이 뛰어다니며 땅으로 스며들었다. 마물이 완전히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은 마물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자 사제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한 곳으로 몰아넣어요!”
그때 아론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의 손에는 여명처럼 빛나는 광휘의 검이 들려 있었다. 대검을 꽉 채운 흰 빛. 사제들은 그 빛에 구원이라도 받은 것처럼, 덩달아 신성력을 뿜어냈다. 그들은 아론을 따라서 마족과 마물을 몰아가고 있었다. 나는 소환의 영역이 거의 완성되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뒤로 빠졌고, 다른 소환사들에게도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건방진 소환사들!”
그때 전형적인 마족이 우리를 발견했다. 그는 곧장 내게로 달려왔다. 그가 마기를 뿜으려는 찰나 다른 마족이 그의 손을 튕겨 버렸다.
“잘못 공격했어.”
그는 내 쪽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나는 가까운 거리에 있던 터라 그의 대화를 듣고 말았다. 그는 분명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를 보면서 잘못 공격한 거라고.
“왕의 명령을 잊은 거야? 우리 상대는 저들이야.”
말수 없는 마족은 손에서 마기를 폭사시켰다. 그러자 손이 향하고 있던 방향의 성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그것은 아론이 이쪽을 주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크학!”
아론은 무척 빨랐다. 순식간에 도약한 그는 날아오르는 전형적인 마족의 날개를 자르고, 그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동작이었다. 마족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낙하하자, 함께 날아오르던 말수 없는 마족에게서 검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 형제를 죽인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마족이 빠른 속도로 하강했다. 아론의 눈이 어둡게 빛났다. 마족이 하나의 커다란 화살처럼 그를 내리찍으려는 순간, 아론의 몸에서 흰 빛이 폭발했다. 검은 마족을 완전히 덮어 버리는 압도적인 신성력이.
“아, 아…….”
소환사 하나가 말을 잇지 못하고 감탄을 터트렸다. 나는 빛이 잦아들고, 그 자리에 아론이 마족의 목을 베어 버린 채로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론은 미동도 없었다. 그가 천천히 검을 아래로 떨어뜨렸을 때, 그제야 마족을 죽였다는 것을 인지한 기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론은 그 환호 속에서도 내게 눈을 돌렸고, 나의 떨림을 느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