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125화 (125/220)

125.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는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는 태도였다. 누굴까. 호기심이 치민 나는 서둘러 욕조에서 나와 옷을 입고 망토를 걸친 뒤 내려갔다.

“말레드레드! 잘 잤어요?”

내려가자마자 내게 손을 흔들며 활짝 인사하는 남자가 보인다. 나는 인상을 썼다. 어제 그 가짜 성수를 팔던 사기꾼 청년이 아닌가. 내가 멈칫했을 때, 여관 주인이 그쪽이 아니라며 문을 가리켰다.

“저분이 찾고 계세요.”

“부득이하게 찾아왔습니다. 저는…….”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노트담의 경비병…….”

그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창을 한쪽으로 치운 그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내게 말했다.

“맞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요.”

“사제로서의 도움 말인가요? 그렇다면 정식으로 상부에 파견 요청을…….”

내 형식적인 대꾸에 경비병은 머뭇거렸다. 어쩐지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었기 때문에 나는 일단 이야기를 들어 보자고 여관 입구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경비병은 그쪽에 앉더니 다시 주위를 살폈다. 그 모습에 의아하다는 듯이 묻자 경비병이 서둘러 답했다.

“화장실 간다고 말하고 잠깐 빠져나온 거라서요. 상관이나 다른 경비병이 알면 안 되기 때문에…….”

“대체 무슨 일인데요?”

“마물이 나타났어요!”

“이 노트담에요?”

깜짝 놀라 심각한 어조로 묻자 경비병이 멈칫했다. 그는 고민하는 듯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솔직하게 고백해 왔다.

“사실 다른 경비들은 보지 못했고, 또 매일 지나다니는 사제단도 마기를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데, 저는 정말 봤어요. 똑똑히 두 눈으로 봤다고요! 끔찍한 외형을 가진 마물이 달아나는 것을요!”

경비병은 그 순간을 떠올린 것처럼 몸을 떨었다. 겁에 질린 얼굴에선 금방이라도 비명이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커다란 눈동자였어요! 괴기스러운 커다란 동공을 가진 채로, 온몸에서 진물이 흐르는 마물이었다고요! 인간의 형상이었어도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봤죠!”

“언제, 어디서 본 거예요?”

나는 신중해진 어조로 물었다. 경비병은 내가 관심을 갖자 반가운지 얼른 대답했다.

“어제 점심에 성문에서요! 짐 마차에 몸을 납작하게 숙이고 천으로 가려서 몰래 들어오려다가 저와 눈이 딱 마주쳤죠. 보자마자 잡았어야 했는데, 두려움에 몸이 굳는 바람에…….”

부끄럽다는 듯이 고백한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서 동료들을 모아 잡으려 했지만 진물 흔적 외에는 없더라고요. 마물이 어디로 잽싸게 숨어 버렸는지……. 어제 내내 조사했지만 성과가 없었어요. 그러자 상부에서도 그만하라고 하더군요. 단장님께서도 졸다가 잘못 본 거 아니냐고 말씀하시면서…….”

그래서 나를 찾아온 모양이었다. 사제지만 휴가를 나와 자유로운 나를. 마물 찾는 것을 도와 달라는 그를 보면서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솔직히 마기의 흔적이 없었다면 마물이 아닐 가능성이 커요.”

“사, 사제단이 열심히 조사한 건 아니어서요!”

“…….”

“아, 아니, 그러니까 그분들의 실력이야 워낙 보증된 것이겠지만 실수를 하실 수 있잖아요! 마물이 사라진 장소는 워낙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장소인걸요! 금세 흔적들이 덮어지니까 놓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나는 솔직히 거절하고 싶었다. 모처럼의 휴가가 아니던가. 무엇보다 이야기만 들어 보면 경비병이 특이한 생김새의 동물을 마물이라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내가 침묵하자 경비병이 우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 근처에는 제 동생 부부가 살고 있어요. 마물이 사라진 장소는 제 조카들이 매일 뛰어노는 곳이란 말이에요! 어제 더 잠이 안 오더라고요. 설마 내가 마물을 놓친 거면 어쩌나, 내 가족과 조카들을 위험에 빠뜨린 거면 어쩌나……. 그래서 도시 전체를 위험하게 한 거면 정말 어쩌나 하고…….”

죄책감에 두려워하는 그를 보니 왠지 가슴이 뻐근해져 온다. 그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 위로 어제의 엎드린 내 모습이 겹쳐지자 나는 못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오늘 하루 조사해 볼게요.”

“가, 감사합니다!”

경비병은 허리를 꾸벅 숙였다.

“만약 마물을 발견하시면 바로 불러 주십시오! 동료들을 모조리 이끌고 가겠습니다!”

“진짜 마물이라면 사제단에 연락해야 해요.”

나는 호기롭게 외치는 그에게 멋쩍게 말하고 조사를 위해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마물을 마지막으로 봤던 곳과 마물의 크기에 대해서. 경비병은 마을 중앙에서 흔적을 놓쳤다고 말하면서 마물 외형은 성인 남성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잠깐.”

내가 나가려 하자 한쪽 구석에 있던 청년이 대뜸 나섰다. 그는 방금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었다고 뻔뻔하게 고백하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도와줄 테니, 저랑 친구해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싫어요.”

“정말요? 하지만 이 도시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제가 여기 골목골목에서 사기를 쳐 봐서 잘 아는데, 아니, 장사를 해 봐서 잘 아는데,”

청년은 얼른 말을 정정했다.

“여긴 숨겨진 공간도 많고, 골목 사이에 집도 존재해서 처음인 사람이 조사하기 어려워요. 반드시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죠.”

나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도와주려는 거죠?”

“친구…….”

“친구가 되고 싶다는 어쭙잖은 말 말고요.”

“어쭙잖다뇨. 상냥한 목소리로 생각보다 냉정하게 말하네.”

청년은 상처 입었다는 듯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가 진실을 말할 때까지 무반응으로 기다렸다. 이내 청년은 내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솔직히, 친해지면 아주 좋을 거 같아서요. 어제 건건 풀로 꽤 돈을 벌었거든요. 진짜 사제를 알게 되니까, 합법적으로 돈이 생긴 거예요!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전 여태 사기 쳐서 벌 생각만 했거든요. 이런 일은 처음이라 너무 기뻐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당신을 더 잘 알고 싶어졌어요!”

청년은 평범한 여자라면 호감을 느꼈을 만한 환한 미소로 웃었다.

“그럼 제 인생의 의미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상상력이 좋군요.”

나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당신이 제게서 찾을 수 있는 건 사기죄로 고발할까 말까 하는 모습뿐일 거 같은데.”

청년이 흠칫했다.

“너, 너무해요…….”

“잘 가요, 그럼.”

나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그를 지나쳐 문으로 나왔다. 곧장 경비병이 말한 장소로 향하면서.

‘노트담은 오전이 더욱 활기차구나.’

상인들의 도시이기 때문일까. 거리마다 왕래하는 짐 마차며, 수레가 눈과 귀를 요란하게 채운다. 커다란 바퀴가 포장된 길을 덜컹거리며 미끄러지는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던 나는, 경비병의 말대로 흔적이 남아 있어도 오래 유지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기라면 어찌 됐든 땅을 부식시킬 텐데.’

그런 흔적이 없다. 나는 경비병이 말했던 곳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무슨 소리에 뒤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이 편을 나눠서 싸우고 있었다.

“내가 봤다니까?”

“거짓말! 밤 괴물이 어떻게 낮에 돌아다녀?”

“진짜야! 거짓말 아니라니까! 밤 괴물이 우물에서 물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단 말이야!”

“거짓말쟁이!”

그러자 밤 괴물을 봤다는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나는 공용 우물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고, 지나가던 상인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공용 우물? 저 뒤편으로 돌아가면 있어요. 근데 물맛이 별로라 사람들은 잘 안 먹어요. 맛있는 물은 돈을 내고 길어 먹는 우물에서 푸니까.”

거기도 알려 줄까 하는 질문에 나는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고맙다고 말한 뒤 공용 우물로 향하는데 누가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자 인영은 휙 사라지고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차갑게 충고했다.

“따라오지 말아요. 진짜 마물이면 큰일 날 수 있으니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증명해 보일게요!”

모습을 숨겼던 청년이 비쭉 머리를 내밀더니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증명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설사 그가 진짜 도움이 된다고 해도, 그와 친구가 된다거나 동료가 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나는 그를 개의치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이왕이면 빠르게 조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온전하게 쉬고 싶었다. 그러나 우물 근처로 가자 이리저리 짓밟힌 풀들이 보였고 조금 더 걸어가자 우물로 내려가는 두레박 손잡이에 진액이 묻어 있는 게 보였다.

“으윽, 더러워라.”

청년은 몸을 숨기는 걸 포기했는지 내 옆으로 다가와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마물이 있나 봐요? 그죠?”

갑자기 무서워졌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청년이었다. 나는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혹시나 해서 신성력을 뿜어 보았다. 하얀 빛이 어른거리는 손을 진액 부분에 대어 보았지만 진액이 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마기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역시 동물일까?’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동물이라면 흐르는 물에 입을 대지, 이토록 인간처럼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 먹지 않을 테니까. 내가 생각에 잠겼을 때, 청년이 외쳤다.

“어, 저쪽에 자국이 이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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