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84화 (84/220)

84.

마왕은 손을 아래로 뻗어서 이미 계속된 삽입으로 붉어졌을 내 음핵을 어루만졌다. 아주 노골적으로 매만지는 그 손길에 나는 허리를 떨었고 어금니를 물었다. 머릿속을 흩뜨려 가며 이성과 논리를 부숴 대는 그 선명한 감각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대가 흥분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은데.”

나는 가슴을 애무하는 거대한 성기와 그의 손길에 한차례 절정을 맞이한 터였다.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애액이 살짝 난감하다고 느꼈을 때, 마왕은 토끼 마족이 소리 없이 놓고 간 그릇으로 손을 뻗었다.

라즈베리처럼 작고 빨간 과일이 그릇에 담겨 있었다. 마왕은 그것을 손으로 살짝 으깨 반쯤 즙처럼 만들더니 내 입술에 뭉개 버렸다.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향이 아찔하게 번져 왔다. 마왕은 느릿한 목소리로 스며들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날 오랫동안 상대해 줘야겠어.”

마왕은 빨갛게 물들었을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딪치며 속삭였다.

“윗입술로는 과즙을 먹고, 아랫입술로는 내 선액을 먹으면서.”

“흐읏…….”

“둘 다 그대의 입맛에 잘 맞을 거라 장담하지.”

마왕은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틀어 더 깊게 입술을 맞췄다.

“아……!”

그 뒤로는 그의 말대로 쉴 틈 없이 먹어 댔다. 마왕의 성은 조용했고, 방해하는 자는 없었다. 널찍한 공간에는 오로지 우리의 교접 소리만이 난무했다. 나의 끝없는 신음과 성기와 체액이 철벅거리는 소리가 형언할 수 없이 난잡하게 어우러져 귓가를 난도질할 때, 토끼 마족이 나타났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마왕이 뭐냐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그의 커다란 두 손은 내 가슴 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의 성기를 품은 채 앉아, 그가 입에 물려 준 길쭉한 과일을 먹으면서 신음과 함께 과육을 삼켜야 했다.

입 안에는 새콤달콤한 과즙이 퍼지고, 아래에서는 그의 육중한 성기가 내 안을 쑤시는 망측한 조합에 나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세가 님의 가신들이 렉토 님의 영역을 침범하여 그 경계 지역에서 큰 전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갑작스레?”

“렉토 님의 마물들이 먼저 분란을 일으켜서라고 하는데, 세가 님의 가신들이 과하게 반응한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굳이 고위 마족들이 마물들의 씨를 말린다고 다른 영역에 쳐들어갈 이유가 있는 것인지, 제 입장에선 의아하니까요.”

“흠.”

마왕은 허리를 들썩이면서 대꾸했다. 내가 느릿하게 신음하는 가운데, 마왕은 건조한 투로 대답했다.

“이 유희가 끝나고 나면 가 보겠다.”

“하지만 급히 와 달라는 연락이…….”

마왕이 싸늘하게 쳐다보자 토끼 마족은 입을 딱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가신다고 말씀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토끼 마족은 사라졌다. 마왕은 언제 방해꾼이 있었냐는 듯이 허리를 힘껏 쳐올렸고, 나는 과일을 입에 문 채로 눈가를 완전히 일그러뜨리면서 내 안을 쑤시는 강렬한 쾌감을 느껴야 했다. 멍해진 머릿속을 채우는 건 딱히 목적 없이 떠도는 배처럼 일렁거리는 순간의 쾌락, 욕망뿐이었다.

***

“……수하들이 싸우는 거예요?”

엎드린 채로, 정사 후의 호흡을 가다듬은 나는 느린 목소리로 천천히 물었다. 그러자 마왕의 시선이 내게로 와 닿았다. 비단옷을 입고 서 있는 사내는 눈길마저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 것처럼 의미심장했다.

“그래, 내 힘이 약해졌다는 증거지.”

나는 그 말에 멈칫했다. 힘이 약해졌다. 이것은 들어 본 적 있는 말이었다. 호기심이 생겼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 하며 나는 가만히 물었다.

“마왕이 바뀔 때가 되어서요?”

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정확히 말하면, 내 힘이 예상보다 빨리 약해져서 그런 거야. 힘의 급속한 상실은 마계를 불안하게 하고 수하들의 폭력성을 키우니까.”

의문을 친절하게 풀어 준 마왕은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안다는 듯이 입가를 올렸다.

“그대에겐 좋은 일이겠지? 사제로서, 마왕이 쇠약해진다는 건 환호를 질러야 하는 일이니까.”

“……그럼 그녀가 마왕이 되는 거예요?”

나는 질색하며 묻고 말았다. 마왕은 조금 웃었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내 반응이 귀엽다는 듯이 웃은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때가 아니야. 마왕이 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 그녀의 마기가 성숙해지고, 마계가 그녀를 받아들일 시간. 뭐가 됐든 그녀가 다음 대 마왕이 되리란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어느새 다가온 마왕의 손길이 내 엉덩이에 닿았다. 희끗한 정액이 흘러나오는 둔부는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맑은 피부를 빛내고 있을 터였다. 먹음직스럽게 통통한 양감을 자랑하면서.

‘설마, 또 하진 않겠지.’

나는 순간적으로 긴장했지만, 그의 손길은 가만히 내 엉덩이를 훑고 허리로 올라왔을 뿐, 자극적이진 않았다. 마왕은 그렇게 내 살결을 즐기면서 말했다.

“그대는 마왕의 교체를 걱정하고 있겠지만, 사실 신경 쓸 문제는 아니야. 마왕이 바뀌는 건 그대의 육신이 썩어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난 다음일 테니까.”

마왕은 덧붙였다.

“그러니까 안심해. 에레나가 그대를 함부로 하는 일은 없을 거야. 적어도 보란 듯이 그대를 죽이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지.”

마왕은 흘러가는 투로 말했다.

“무슨 계략을 꾸밀 수는 있을 테지만.”

“…….”

“그것도 내가 막을 테니까.”

마왕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오만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의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마왕이라고 하더라도 유력한 후보인 에레나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강력한 존재이며 인간을 공격하는 마족이니까, 나를 공격하지 않아도 내 주변을 공격해 나를 괴롭히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다. 마왕도 그런 경우라면 그녀를 단속하지 못할 것이다.

‘……불안해.’

아론에게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말하던 에레나를 떠올리면, 마왕과의 관계가 더욱 불편해진다. 마치 차기 마왕에게 동조하는 세력의 일원이 된 것만 같다고 할까. 나는 다시 뒤숭숭해지는 마음을 느끼면서 마왕을 보았다.

‘끝내야 하는데, 끝내 주지 않는 남자.’

독선적인 사내의 눈길은 어느새 내 목 언저리에 닿아 있었다. 허리에서 어깨로, 이내 목으로 올라온 그의 손도 그의 눈길이 머문 곳과 같은 곳에 닿아 왔다.

나는 그가 자신이 남긴 흔적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것이 왠지 화가 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무서웠던가. 사실 그가 목을 비틀면 나는 한순간에 죽을 수 있는 허약한 생명이라는 것도 이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나는 반감이 서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의 손자국이 없어지질 않아요.”

“원래 죽이려고 쥐었던 거니까.”

나는 참담해져서 그를 보았다. 인간과 초월자. 싸움의 승자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마왕은 공포와 두려움에 크게 흔들리는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가만히 내 목을 어루만졌다.

“마왕이 다정하리라고 생각했나? 그대가 그렇게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생각 안 했는데.”

훈계하는 어조치고, 눈빛은 이상할 정도로 온화했고, 흘러나오는 기운도 평온했다. 나는 그가 나를 만지는 손길이 너무 부드럽고 상냥하다는 걸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상대에게 보일 수 없는 반응 같았다.

마왕은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나긋한 목소리로, 상냥한 협박을 계속했다.

“그러니 나를 도발하지 마. 자극하지만 않으면 그대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없을 거야.”

“읏…….”

내가 입술을 깨물며 버겁다는 표정을 짓자, 마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붉은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그래도 두렵나? 그렇다면 내게 영혼을 바치고, 완전한 내 소유가 되는 방법도 있지. 내가 그대를 해할 일이 아예 없어지는 거야.”

“뭐…….”

나는 순간적으로 얼이 빠졌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야 나는 그에게 다시 물을 수 있었다.

“뭐를 하라고요……?”

“영혼을 바치라고. 마왕에게 영혼을 바치면 그대는 영원히 내게 묶이게 된다. 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으면서.”

그게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지, 마왕은 교묘하고도 능란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 흔히 마족과의 계약은 마족이 제시한 매력적인 조건에 인간이 넋이 나가면서 이뤄지게 된다.

거절할 수 없는 매혹적인 대가, 내 영혼을 바쳐서라도 얻고자 하는 그것이 나 자신을 영원한 죽음이자 영혼의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인간은 머지않아 깨닫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늦고 만다. 계약을 맺은 육체는 부패하기 시작하고, 영혼은 어둠에 물들어 인간다움을 잃어 가니까. 서서히 죽어 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엔 마족의 식량으로서, 육체는 썩어 없어지고 영혼은 에너지가 되어 마족에게 흡수되는 것이 내가 아는 마족과의 계약이었다.

“……전 당신에게 먹히고 싶지 않아요!”

내 강한 반감에 마왕은 어리석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나는 마족이 아니야. 마왕 정도가 되면 인간의 영혼은 먹이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지. 영혼 하나를 더 먹는다고 내 힘이 강해질 거라 생각하나? 내게는 이미 마계를 다스릴 만큼의 거대한 마기가 있어. 힘의 공급이 필요한 아랫것들하고는 달리 말이야.”

마왕은 내 목을 감싸 쥐면서 말했다.

“내 말은, 내게 종속되는 걸 뜻하는 거야. 나와 생을 함께하면서, 죽음의 순간까지 나와 영원히 유희를 즐기는 것을.”

“……!”

마왕은 내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으면서 말했다.

“어때, 이것은 처음 제안보다 훨씬 매력적일 터인데.”

마왕은 웃고 있었다. 그러나 눈빛이 날카로웠다. 마치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느낌을 받고 있는지 세세하게 느끼려는 것처럼.

마침내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새, 생각해 볼게요.”

“바로 거절할 줄 알았는데.”

그러기엔 당신의 눈이 너무 무섭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가 내 목을 쥐고 있는 지금의 이 순간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단번에 대답할 제안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래, 이 작은 머리로.”

마왕은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어루만졌다.

“치열하게 고민해 보고, 생각해 보고, 답해 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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