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읏―!”
입 안을 완전히 채우다 못해 볼을 부풀리는 거대한 남성이 밀려들어 오자 나는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마왕은 내 얼굴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말했다.
“천천히 코로 숨 쉬고.”
그의 목소리는 잔혹할 정도로 감미로웠다.
“부드럽게 혀로 빨아.”
나는 그의 지시를 따르려고 애썼다. 그러나 정액이 흘러나오는 성기를 누워서 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들어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나는 간신히 그의 말을 따랐고, 그의 나지막한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어설픈데, 그건 그 나름대로 좋군.”
마왕은 내가 힘들어하자 결국 입 안에서 제 성기를 빼냈다. 나는 입 안에 돌고 있는 그의 체액을 느끼고 말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의 것이 나오려는 찰나, 마왕이 내 턱을 들어 그것을 삼키도록 만들었다.
“사제께서 귀한 것을 함부로 흘리면 안 되지.”
“으, 으읏…….”
“이미 잘 알고 있을 텐데. 신품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나는 내 다리를 벌리며 들어오려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잔뜩 헤집은 탓에 움찔거리며 애액을 흘리고 있는 그곳에, 마왕은 바로 물건을 찔러 넣었다. 깊숙하게 박아 넣자 나는 허리를 들썩이면서 고통을 담은 신음을 뱉어 낼 수밖에 없었다.
“사제가 된 순간부터 배웠을 테니까.”
마왕은 나를 빠르게 탐해 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엉망으로 흐려졌다. 붉은 염료를 잔뜩 뿌려 놓고 흐트러뜨리는 듯한 기분에 나는 아찔한 탄성을 속절없이 쏟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나, 말레드레드?”
마왕은 내 두 손에 깍지를 낀 채로 허리가 부서질 것처럼 움직였다.
“아, 아!”
“대답해 봐, 어서!”
미칠 것 같은 쾌감의 연속 선상에서 침착하게 대답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입술을 간신히 벌린 채로, 잔뜩 눈가를 찡그리며 간신히 말했다.
“다, 당신은, 으읏, 나, 나의 신이 아니니까, 아흣……!”
그러니까 그 정액은 내게 신품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왕이 허리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나는 눈앞이 번쩍일 정도로 허리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강렬한 삽입에 눈앞이 하얗게 된 순간, 암흑이 내 시야를 점령했다.
“그래. 난 그대의 신이 아니지.”
검은 존재. 참혹하다 일컬어지는 남자는 아주 고요하고도 음산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먹이를 궁지로 몰아가듯 절망을 느끼게 하는 어조였다.
“하지만 나는 이 세계의 신이니까. 그대가 여기 머무르는 한.”
마왕은 저주와 같은 말을 쏟아 냈다.
“그대는 나에게 속하는 거야.”
“흣, 아흣, 그런……!”
“내가 원할 때까지, 영원히.”
“아……!”
‘영원히’라는 말이 그토록 무섭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마왕의 아래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냐고, 우리 관계는 순간의 유희가 아니겠냐고 경악에 차서 외치기 전에 마왕이 내게 입술을 부딪쳐 왔다.
어떤 반론이나 항의도 통하지 않는다는 듯이, 마왕은 엄격하게 쳐다보며 내 혀를 빨아 댔다. 아래를 들쑤시면서 위를 공략하는 그의 철저함은 내 이성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나는 절벽에서 떠밀려지고 있는 사람처럼 높은 신음을 연달아 질렀고, 곧 그의 아래에서 퍼지듯이 늘어지고 말았다.
“아직 안 돼.”
마왕은 삽입한 채로 내 몸을 뒤집으며 말했다. 나는 아래쪽에서 몰려오는 끈끈함과 뻐근함에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마왕은 그런 나를 엎드리게 만든 뒤에 엉덩이를 높게 올려서 다시 삽입을 시도했다.
“무사함을 이 정도로 확인하고 끝낼 순 없지.”
‘무사함……?’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그러나 곧 그의 굵직한 성기가 질벽을 밀고 들어오자 기겁하듯 신음을 질러야 했고, 그의 아래에서 한동안 그 상태로 벗어나지 못했다.
“아읏…….”
나는 간신히 상체를 일으켰다. 마왕은 그런 내 처연한 동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벗어나고자 하는 나를 도와주지 않는 남자. 우월한 체력을 가진 그가 언제든 손을 뻗어 나를 도울 수 있음에도 그저 누워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내 몸속에 그의 성기가 박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대는 위에서 할 때 더욱 눈썹을 일그러뜨리는군.”
마왕은 재미있다는 듯이 중얼거리고는 긴 팔을 뻗어서 내 은빛 눈썹을 매만졌다. 나는 그 작은 손길에도 몸서리쳤다.
이미 몇 차례나 그의 아래에서 절정을 맞이한 터였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몸은 그의 아주 작은 허릿짓이나 자극에도 금세 반응했고, 나는 눈가를 찡그린 채로 괴로울 만큼 강한 전율을 느껴야 했다.
“이대로 더 하고 싶지만.”
마왕은 내가 쓰러질 듯 흐려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내 허리를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대가 너무 지친 듯하니 다음을 기약해야겠군.”
나는 그제야 안도했다는 듯이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 물컹한 가슴이 그의 단단한 살결에 비벼져 짓눌리는 것을 느꼈지만 당장은 손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마왕은 그렇게 제 가슴 위에 기대 숨을 헐떡이고 있는 나를 손으로 매만졌다. 등뼈를 따라 날갯죽지를 쓸기도 하고, 잘록한 허리를 매만지기도 하고, 암팡진 둔부의 살을 주무르기도 하고. 마치 내 신체 부위가 어떻게 생겼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려는 이처럼 그렇게 내 온몸을 매만진 사내는 내 귀에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그대의 몸은 만질 데가 많단 말이야. 어디 한 군데 빼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는 그의 가슴에 엎드린 채로 그가 내 몸을 만지는 합리적인 이유에 대해서 들었다.
“등을 만지고 있으면 허리가 생각나고, 허리를 만지고 있으면 엉덩이가 생각나. 어디 그뿐인가. 그대의 다리나 내 성기를 받아들이는 은밀한 입구까지 모두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지. 그대가 사제란 게 정말 아까울 정도야.”
“…….”
나는 숨죽였다. 그가 아무리 아쉬워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사제란 건 기정사실이었고, 바꿀 수 없는 현실이었다. 마왕은 깊이 숨을 들이켜 내 체향을 모두 빨아들일 것처럼 호흡했다.
“모든 게 맘에 들어.”
“…….”
“온전하게 내 품에 안겨서 정말 다행이야.”
나는 기어이 얼굴을 들 수밖에 없었다. 벗은 상태로, 아직도 몸에 그의 성기를 꽂은 채로, 그의 얼굴을 봐야 한다는 것이 편치 않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그가 던지는 대사들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아까부터 멀쩡하다든지, 무사하다든지, 혹은 온전해서 다행이라든지. 대체 무슨 말이죠?”
“그대가 아무 탈 없이 내 곁으로 왔다는 의미지.”
마왕은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허나 아무리 삭막한 표정을 짓더라도 이미 눈빛에선 나에 대한 호감이 드러난 터였다.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의 것을 머금었던 입술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는 사내에게 나는 냉혹함이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를 향한 욕망과 애정만을 느꼈을 뿐이다.
“지난번의 만남에서, 그대는 큰 싸움을 앞두고 있었잖아? 다쳐서 올까 봐 걱정했지.”
“……우리의 유희가 끝날까 봐요?”
“그대가 이곳에 오는 걸 꺼리게 될까 봐.”
마왕은 유희의 문제가 아니란 듯이 대답했다. 나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지금 그는 이런 육체관계의 종말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변화까지도 신경 쓴다고 말한 셈이었다. 이 관계가 단순히 계약이나 습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즐겨서 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내 기분 따윈 신경도 안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마음이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어쩌면 그가 생각처럼 아주 참혹하고 잔인한 존재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판단이 스칠 때, 어떤 의문이 들었다.
“혹시 마물 군단을 지휘하는 수하에게 뭐라고 한 거예요?”
“왜 그걸 묻지?”
마왕은 도리어 물어왔다.
“그게……. 우리를 공격한 마물의 수가 예상보다 적어서요. 당신이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내가 왜 그대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 거라 생각하나.”
그건 비난 섞인 어조가 아니었다. 마치 내가 스스로 깨우치도록 만드는, 선생님 같은 어조의 물음이었다. 나는 움찔해서 대답했다.
“우리의 유희를 지키기 위해서…….”
마왕은 가만히 미소 지었다. 나는 그 미소의 의미를 알기가 어려웠다. 설마 그가 정말 이 욕망을 발산하는 행위 하나를 위해서 수하에게 마물의 수를 줄이라고 했을 리 없다. 마족이란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님을, 마왕이란 제 종족의 존재 목적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리란 것을 확신하면서 내 생각과 반대되는 질문을 한 것이다.
마왕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그대가 여길 오는 게 좋아.”
어느새 그의 손에 휘감긴 마기가 나를 덮어 간다. 나는 그의 성기를 여전히 느끼고 있는 채였다.
“그러니까 그걸 막는 존재가 있다면 누가 됐든 용서하지 않을 거야.”
마왕의 마지막 말은 내 귓가에 꽂혔다.
내가 다시 눈을 깜박였을 때, 나는 어느새 내 작은 숙소의 침대 위였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마왕의 선액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침대 위로 떨어지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거렸지만 목욕을 마치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을 때는 어느새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