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16화 (16/220)

16.

“으읏…….”

그의 말대로였다. 나는 지금 이상한 감각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가슴이 따끔거리고 배 속이 간질거리는 이상한 감각은 내 평정심을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한여름의 열기 같은 이상한 목마름에 시달렸다. 그가 성기를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그런 느낌은 더 강렬해졌고, 마침내 목을 시원하게 하는 차가운 얼음물을 먹고 싶은 마음에 그를 보며 외치고 말았다.

“제, 제발……!”

“나를 원하나? 그대의 속살이 옴짝거리는 걸 보면 내 걸 빨아들이고 싶어 미칠 지경인 거 같은데.”

마왕은 짓궂게 놀렸다.

“이 요망한 몸을 봐. 내 것이 스칠 때마다 빨아들이려고 애를 쓰지. 이렇게 물을 질질 흘리면서.”

“아, 아…….”

성기가 음부에 마찰될 때마다 나는 소름과 같은 쾌락에 온몸을 떨었다. 그가 입구만을 간질이고 있는 것이 너무 아쉬웠고 애가 탔다. 마왕은 조소했다.

“이런 몸을 가지고 사제라 할 수 있겠나. 이렇게나 음란한데.”

“흣…….”

“그러니 속 시원히 말해 봐. 내가 그대의 억압된 욕망들을 모두 해소시켜 참된 사제로 만들어 줄 테니까.”

그가 일부러 이런 못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에 내가 어쩔 수 없이 반응해 버린다는 것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를 치료해 줬던 아론의 이야기를 섣불리 할 수 없었다. 그가 신성력이 강한 성기사이며 날 치료하기 위해 신성력을 쏟아부었다는 것은 나만의 이야기였다.

마왕을 만나는 세계와 아론을 만나는 세계가 분리되길 바라는 나는, 그의 이름을 이 공간에서 꺼내는 것도 싫었고, 더더욱 아론이 어떤 사람인지 그에게 말해 주는 것도 싫었다.

“으, 읏……!”

내가 신음만 흘리며 몸을 꿈틀거리자 그가 더욱 인상을 차갑게 굳히며 손가락을 아래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젖기 시작한 내 음부를 건드렸다. 민감한 살과 멍울을 슬쩍슬쩍 만졌다가 손을 떼는 동작을 반복하자 내 입에서 아쉬워하는 탄성이 나왔고, 그는 눈을 가늘였다.

“이런 것으론 만족이 안 되잖아.”

“흣…….”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그가 나를 더욱더 강하게 안아 주길 바라고 있었다. 나는 사제였지만 쾌락의 몸종이었으며, 욕구에 눈뜬 존재였다. 쾌락이 발로한 태고의 인간으로 마왕을 상대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를 선택했을 때, 그가 내 안의 숨겨진 욕망을 모두 달궈 주길 바랐던 만큼, 나는 그에게 어느 정도 기대하는 쾌락의 수준이 있었다.

따라서 애타게 내 음부만을 찔러대는 그의 손길이 야속했고 미웠다. 괜한 독촉을 해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때, 그가 말했다.

“어서. 이야기해야 행복할 거야. 내게 저항하면 불행할 수밖에 없어.”

그 말이 왜 설득이 아닌 협박처럼 들릴까. 내가 신성력을 많이 품고 있던 게 못마땅했던 걸까. 나는 결국 그의 독촉과 손길에 못 이기겠다는 듯이 고백하고 말았다.

“흣, 다쳐서요, 시, 신성력으로 치료를 받았어요…….”

물론 아론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마왕은 내 이야기에 음부를 자극하던 것을 멈췄다.

“다쳐?”

그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얼굴, 목, 어깨, 가슴, 복부를 세밀하게 훑던 눈이 갑자기 내 팔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누구에게 당했지?”

뜻밖에도 마왕은 다시 한번 물어왔다. 붉은 자국만 남은 상처 부위를 손가락으로 아무렇지 않게 쓰다듬는 남자는 평온한 듯 보였지만,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냉기가 있었다. 마치 이런 상황이 뜻밖이며 그래서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나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마물이요.”

“……!”

멈칫한 그가 잠시 후 미소 지었다.

“조심해야지. 사제라면 늘.”

“…….”

“마물에게 당해 마왕을 상대하지 못한다면 이야기가 우스워지잖아? 내게도 체면이란 게 있으니까.”

마왕은 이제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제발 하찮은 아랫것에게 당하지 말라고. 나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다시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빛을 뿜기 시작한 그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니 방금까지 그가 나를 독촉하며 괴롭혔던 게 꿈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완전히 꿈처럼 생각하기 전에, 그가 귓가에 현실을 쏟아부었다.

“난 또. 그대가 날 차단하려 몸에 신성력을 부어 넣은 줄 알았지.”

나는 흠칫해서 커진 눈으로 그를 보았다. 마왕은 웃고 있었다. 다정하지도 온화하지도 않았지만 뇌리에 박힐 정도로 강렬하게.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묻고 말았다.

“그럴 수도 있잖아요? 어차피 이 관계는…….”

유희인데. 차마 끝내지 못한 말에도 마왕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끝낼 수 있지. 우린 언젠간 반드시 끝날 거야. 하지만.”

마왕은 분명하게 말했다.

“그대가 끝낼 순 없어. 이 관계는 내가 질려야 해.”

영영 안 질리면 어떡하지? 나는 더럭 겁이 났다. 그가 사악하고 타락한 마왕이라는 것은 알겠다. 인간 하나에 집착할 존재가 분명 아니었지만 그가 내 생각보다 더 늦게 질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감이 치솟고 말았다.

“걱정 마. 금세 질릴 테니까.”

마왕은 내 불안을 읽었는지 안심하라고 말해 왔다.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고, 그는 내 목을 양손으로 감싸왔다. 목이 조이는 듯한 답답함에 그를 절망적인 눈으로 보자, 참혹한 존재의 냉담한 위로가 따라온다.

“그대는 수많은 인간 중에 아주 조금 특별한 인간일 뿐이니까.”

그리고 입술이 덮쳐 왔다. 아주 조금 특별한 존재에게 하기엔 지나치게 열정적인 입맞춤이.

나는 그 뒤 그와 진한 정사를 나누었다. 회복된 몸으로 나눈 정사는 요란할 정도로 질척거렸고 비할 데 없이 끈적거렸다. 그의 아래에서 나는 절정을 맞이했고, 더 이상 못 하겠다고 소리쳐서야 내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숙소에서 눈을 뜬 나는 어느덧 아침 훈련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씻고 훈련복으로 갈아입던 나는 아까 마왕이 문질렀던 상처를 떠올렸다. 고개를 내리자 희미한 붉은 기만 남아 있는 피부가 보인다.

‘대체 얼마나 신성력을 쏟아부은 거야?’

나는 쓰게 웃고 말았다. 마왕이 왜 그리 내 몸에 신성력이 많이 돌고 있냐고 추궁한 것도 이해가 갔다.

공격에 적합한 성기사의 신성력은 보통 치료에는 그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즉 아무리 많은 양의 신성력을 쏟아부어도 회복되는 상처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기사라면 자신의 신성력을 치료하는 데 쓰지 않았다. 차라리 전투에서 마물을 한 마리라도 더 죽이는 게 승률을 더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처를 아물게 할 정도의 신성력이라니.’

아론이 얼마나 많은 신성력을 내게 쏟아부은 건지. 나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 행위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난감했다. 내가 요구한 것은 아니더라도 그가 자신의 힘을 소진해 나를 덜 아프게 했다는 것이,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을 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제 많이 피곤했을 텐데.’

얼핏 아론이 밤새 전투를 했었다고 말한 게 떠오른다. 그렇다면 체력 소모는 물론 신성력의 소모도 컸을 것이다. 나는 그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훈련소로 향했다.

아침의 훈련소는 여느 때보다 더 인파로 북적거렸다. 소환사와 성기사들은 훈련소 입구에 붙은 거대한 종이를 보며 끼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쪽으로 가까이 가자 얼굴이 익은 소환사 몇이 아는 척을 해 온다. 나는 가볍게 목례하고 종이를 바라보았다.

글씨가 빼곡히 적힌 종이에는 누가 누구와 팀을 이룰 것인지 적혀 있었다. 나는 내 이름을 찾았다.

성기사 펠, 소환사 에일. 그 사이에 소환사 말레드레드가 있다. 나는 고개를 돌리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에일을 발견했다.

그의 갈색 눈동자가 묘하게 와 닿는 걸 느끼면서 다시 시선을 옮기자 레너드의 발랄한 얼굴이 보인다. 그는 종이를 쳐다보았다가 나를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같은 팀이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요.”

그는 아쉽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번 일로 나를 좋게 본 건지 그는 호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와 협동할 소환사의 이름을 찾아보고 말했다.

“같은 팀에 자크가 있네요. 그는 매우 노련한 소환사예요. 오랫동안 소탕 작전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함께 일하면 배울 점이 무척 많을 거예요.”

“오, 그래요?”

내 말에 귀가 솔깃해진 그는 눈을 맞춰 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함께할 소환사들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주었다. 굳이 과장할 필요도 없었다. 신참인 그를 고려했다는 듯이 그와 함께 팀으로 일할 자들은 경험이 많고 마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레너드는 안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다행이에요. 잘 모르는 사람들하고 짝이 된다고 해서 걱정했거든요. 내심 말레드레드와 같은 팀이 되길 바랐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지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다 원하는 사람과 일할 수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는 더더욱 민망해했다.

“무,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일적인 면에서요! 친한 사람과 생사를 같이하면 좋잖아요.”

너무나 감상적인 생각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레너드와 친하다는 여부를 따져 보기 전에, 친한 이들과 생사를 같이하며 싸운다는 것 자체가 일의 효율적인 수행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친한 이들과 일하게 되면, 일보다 그들의 감정에 마음을 더 많이 쓰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을 할 때가 잦아진다. 일도 신경 써야 하지만 그들의 감정에도 반응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능률적으로 일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었다. 친한 정도도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감정을 신경 써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테니까. 따라서 레너드의 생각에 딱히 트집을 잡지 않으며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훈련을 해야 한다며 떠나는 나를, 레너드는 잽싸게 따라왔다. 돌아보자 그 역시 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많은 인원이 훈련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레너드는 내게 친근하게 더 말을 붙여 보려 했지만 곧 같은 팀이 되는 소환사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어, 어? 특별 훈련이요? 제가요?”

“그래. 아주 강도 높은.”

“우리가 신참인 널 위해 준비했어.”

레너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는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전 오늘 구경만 하고 내일부터 하겠, 어어…….”

후배 기사가 도망치려는 기색을 보이자 그들은 아주 능숙하게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억지로 끌려가는 듯한 레너드의 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다. 나도 첫 전투에 저런 겁먹은 초식 동물 같은 얼굴이었을까, 떠올려 보고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가했다.

“한 팀이 될 줄이야. 우연이지만 참 운이 좋네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어느새 에일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한 손에 여유롭게 쥔 채로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잘해 봐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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