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읏, 아, 아론……!”
서로의 눈이 맞은 건 당연했다. 나는 내 가슴을 빨고 있는 성기사를 보면서 고개를 젖히고야 말았다.
그는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입술로 내 유두를 목 끝까지 빨아들일 것처럼 흡입했다. 적극적으로 음탕하게 움직이려는 사내는 방금 전까지 금욕적인 자태로 사람들의 경탄을 받고 있던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우월감을 느꼈다. 그를 가졌다는 느낌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관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재회 이후에 우리는 바로 함께할 수 없었다. 마물 소탕이 완료되면 죽은 마물의 사체를 청소해야 하고, 상관에게 자세히 보고해야 한다. 그 일정이 모두 끝나야 각자의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따라서 나는 보고가 끝나자마자 숙소로 향했다. 아론은 벌써 나와서 같은 성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제들도 삼삼오오 모여 그를 동경하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열광하는 눈빛. 그게 어떤 밀도나 농담을 지녔든 간에 그에게서 받는 느낌은 비슷한 거 같다.
그는 치명적일 정도로 매력적이고 금욕적으로 보일 정도로 반듯하다. 여자고 남자고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신분은 물론 외양과 능력에서도 절제된 고급스러움이 쏟아져 나오는 사내는 감탄을 넘어서 이런 상상마저 들게 했다.
한번 벗겨 보면 어떨까.
나는 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 뒤 내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발을 돌렸다. 온몸이 땀으로 푹 절어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목이 말라 왔다. 예상 못 한 만남으로 가슴이 설렜지만 당장은 쉬고 싶을 정도로 피로가 전신을 때려 왔다.
나는 숙소를 향해 걸었다.
황성의 훈련소와 달리 현장의 임시 막사는 금남 금녀 구역이 없었다. 때때로 지나치는 성기사들의 건장한 몸, 땀으로 젖은 육체가 시선을 끌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자꾸만 뒤처지는 발길을 재촉했다.
“……아론.”
그러나 내 숙소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왔다. 가슴이 떨려 오는 것도 잠시, 나는 그가 여기에 온 목적을 물었다.
“먼저 가셔서요.”
그 답변은 묘했다. 마치 같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떠나 버렸다는 듯한 말투였다.
피곤하지 않냐고, 적당한 대꾸하려던 나는 그의 눈에 짙게 밴 선망과 욕망의 그림자를 읽었다.
“숙소로 들어올래?”
그 질문은 색깔이 짙었다. 붉고 원색적이었다. 아론은 기쁘게 눈을 빛내며, 네. 라고 착실히 대답했다.
“……저기.”
에둘러 말할 필요가 없었다. 우린 서로를 원하고 있었다. 내겐 그동안의 굶주렸던 욕망을 채울 기회였고, 아론에겐 추억하던 선망의 상대를 품을 기회였다.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 개인 숙소였고, 전투가 끝난 후라 방문자도 없을 터였다. 그냥 서로가 서로를 정신없이 탐하면 좋은 이때에 나는 신중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난 가벼운 관계가 좋아서.”
내 말에 아론은 놀란 듯 멈칫했다. 아름답게 커진 황금빛 눈을 보면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가 동의하지 못할 거라면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이 관계에서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아론은 성기사였으니 제위를 이어받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직 젊고 한창이니 결혼이란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성기사들은 젊은 시절엔 전투와 훈련에 시간을 바치고 노후에는 충직한 기혼자가 되어 신의 업무를 돌보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에 아론도 충분히 그런 경로를 밟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연애는 그에게 가벼우리만큼 접하기 쉬운 것이었으며 제약할 사람이나 시선도 없어 마음껏 관계를 하다 질렸을 때 떠나면 그만인 그는 나만큼이나 속 편한 입장이었다.
‘무엇보다 몸과 외모 모두 내 취향이니.’
서로 만족해하며 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숙소까지 나를 찾아온 만큼 나를 원하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나는 그를 향해 더욱 짙게 발하는 음심을 느꼈다.
“진지한 걸 원하면 함께하기 어려워.”
따라서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나라는 걸, 관계를 시작하려는 눈앞의 미남자에게 밝혀야 했다.
“원치 않는다면 여기서 나가도 돼.”
나는 조금 두근거렸다. 눈앞의 남자가 나를 정말로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눈앞의 남자는 정말로 최상이었고, 함께하고 싶을 만큼 매혹이 넘쳐흘렀다.
그는 나를 빤히 주시하더니 자신의 판금 갑옷을 벗기 시작했다.
“말레드레드를 원하고 또 원해요.”
“……아론.”
“가벼운 걸 원한다면.”
그의 눈은 아까보다 훨씬 깊게 일렁였고, 짙게 요동쳤다. 숨 막힐 정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할게요.”
말은 그렇게 하나 느낌은 그렇지 않다고 할까.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전투적인 의지가 느껴졌다.
나는 내 쪽으로 가까워지는 담대한 몸을 보면서 긴장하고 말았다. 그에게서 뿜어지는 다 자란 남성의 체향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먼저 씻고 올게.”
“……말레드레드.”
원래 무장을 풀고 씻으러 갈 셈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 때문에 전투복을 입은 채 그에게 땀에 젖은 몸을 보여 줘야 할 판이었다.
“그럴 여유가 없어요.”
아론이 나를 막아섰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강렬하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저는 절대.”
그는 욕망이 불거진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움찔했지만 그의 제안을 거절할 만큼의 자제력이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가 나를 더 원한다는 느낌에 배 속이 짜릿하게 울렸을 뿐이었다.
“아읏, 읏…….”
처음은 키스였다. 아론은 서툴렀다. 나도 처음이었지만 그가 서툴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입 안을 과하게 휘젓는 게 느껴졌다.
그의 혀는 입 안쪽을 거칠게 휩쓸었다. 내 혀를 제 것으로 문대기도 하고 휘어잡기도 하는 동작이 모두 풋풋하게 느껴지면서도 묘하게 강한 설렘을 자아냈다.
둘 다 처음이라서 그런 걸까.
나는 목 안으로 웃음을 삼켰고, 눈가를 휘었다. 내 모습에 아론이 살짝 입술을 떼었다. 아론은 조금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음이 급해서…….”
“괜찮아.”
나는 민망해하는 그의 입술에 살짝 키스를 했다.
“나도 그러니까.”
그러자 미안해하던 표정이 사라졌다. 곧 사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예쁘게 웃으면서 내 옷을 벗겼다.
전투복으로 된 상의는 양쪽으로 벌리면, 가슴을 단단히 얽맨 속옷이 바로 보인다. 아론은 상기된 얼굴이었다.
“아…….”
힘 좋은 사내는 단추를 툭툭, 뜯듯이 풀어 버렸다. 억눌려 있던 가슴이 튕기듯 튀어나왔다. 나는 그것들을 보는 아론을 응시했다. 감탄했다는 듯이 보는 그의 눈은 진짜로 기뻐 보였다.
나는 조금 쑥스러웠고, 조금 뿌듯했다. 내 몸매는 나만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탄력적으로 솟은 가슴은 하얗고 보드라워서 내가 쥘 때도 좋은 감촉이 느껴졌으니까.
“읏…….”
“죄송합니다.”
아론은 저도 모르게 내 가슴을 양쪽으로 쥐던 손을 풀었다. 나는 괜찮다면서 너무 아프게만 쥐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론이 훨씬 상냥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가슴을 만지는 게 느껴졌다. 가슴의 풍성한 살결을 즐기듯이 한참을 조물거린 사내는 가슴 위쪽으로 튀어나온 유두를 살짝 붉어진 얼굴로 응시했다.
“너무 아름다워요.”
그의 수줍은 듯 솔직한 대사는 내 마음을 더 찡하게 울렸다. 음욕에 젖은 황금빛 눈동자는 그윽하게 깊어져 있어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 먹음직스럽고요.”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입으로 내 가슴을 물었다. 나는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감상하고 싶었으나 그가 주는 자극에 그럴 수가 없었다.
“아…….”
은근한 열기가 배 속을 휘감는다. 촉촉한 입술이 유두를 빨아들일 때마다 기분이 짜릿했다. 어색한 듯하지만 열정적인 그 동작에 나는 은근한 열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으읏…….”
아론도 내 변화를 느낀 모양이었다. 숨이 점차 가빠지고 달뜬 신음이 커졌다.
내가 흥분하자 아론은 가슴에서 입술을 떼고 나를 침대로 눕혔다. 나는 부드러운 침대의 감촉에 풀어지는 육체를 느꼈다. 이대로 잠들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으나, 눈앞에 멋진 사내가 있었으니 수마를 어떻게든 내리눌렀다.
그때, 그가 침대 옆 탁자의 수납공간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손에는 황성에서 제공한 발라 잎사귀가 들려 있었다. 나는 차분히 말했다.
“내가 먹을게.”
“아닙니다.”
아론은 곧 표정을 잔뜩 찡그렸다. 잎사귀가 유독 쓰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씹는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거로 보아서, 잎사귀를 처음 먹는 것처럼 보였다.
발라드라두 나무에서 자라는 작고 길쭉한 잎사귀는 먹은 이의 생식 능력을 제한해 일주일 동안 임신이 되지 않도록 한다.
성기사와 사제가 문란한 건 아니었지만 엄연히 성인들이었고, 관계가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어서 불시의 임신을 방지하기 위해 황성에서는 전투가 있을 때마다 기본적으로 잎사귀를 제공했다.
성기사와 소환사, 여자와 남자. 누가 먹어도 상관이 없었으나 쓰다는 악평이 자자했기에 좀 더 입맛에 둔감한 이가 먹곤 했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생리 통증을 제거하는 데 좋다는 말이 돌아서 먹는 이가 있었다. 나도 심할 경우에는 먹곤 했다.
“정말 고역스러운 맛이군요.”
거대한 마물을 상대할 때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았던 사내가 쓴 약초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귀여웠다.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어린 그때를 떠올리게도 했다.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했다.
“뒤쪽에 물 있어.”
그러자 아론이 내 말을 듣고 팔을 뻗었다. 단순한 동작인데도 단단한 근육질의 팔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연이어 두 컵을 마시고서야 쓴맛이 좀 가셨는지 표정이 풀어져 있었다. 그리곤 다시 나를 보았다.
뜨거운 열기가 휘도는 눈. 나는 숨이 막혀 왔다. 그의 붉은 입술에 맺힌 물방울이 지나치게 선정적이었다.
“이제 마음껏 할 수 있겠군요.”
아론이 다가오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