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19화 (318/407)

진격의 레지던트 (2)

“샘. 난 비뇨기과 수술은 잘 몰라요. 하지만 수술은 환자의 경과를 위하는 쪽으로 진행됐으면 좋겠어요.”

“환자의 경과라…… 알겠어요. 3-0 vicryl.”

샘이 고개를 끄덕이고 니들홀더를 손에 쥐었다.

현 상황에서 가장 깔끔한 처치법은 고환절제술이다.

파열된 고환을 살리려고 하면 오히려 염증 등의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기석의 말을 듣고 봉합술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고환이 찢어진 하단부를 결찰하고 백막을 복원하겠습니다. 3-0 vicryl.”

끼기기기긱.

샘의 고환 봉합술이 시작됐다.

최기석은 포셉으로 고환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해주며 때로는 석션을 통해 수술 시야를 확보해 주었다.

‘잘하는데.’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고환 수술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벌벌 떨던 샘이었다. 그런데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2년 차 레지던트 뺨 때릴 만한 솜씨를 뽐내고 있었다.

자신감이 수술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쪽 봉합술은 내가 마무리 지을게요. 미스터 최는 반대쪽 고환에 같은 처치를 해 줘요. 봉합하기 전 단계까지만요.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심호흡하고 메스를 손에 쥐었다.

그의 시선이 저스틴의 음낭에 고정되었다.

본래 호두 크기만 했을 음낭이 타박상과 혈종으로 인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비뇨기과 처치는 처음이지만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그 어떤 과라고 해도 수술의 원리는 같다.

째고 자르고 잇고 붙이고.

스으으으윽.

음낭의 표면을 절개하자 그 틈으로 걸쭉한 피가 흘러내렸다. 최기석은 석션기를 이용해 피를 흡입한 후 음낭에 고인 피를 말끔하게 빨아들였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불길하게 울리는 전자음.

황급히 환자 감시 장치로 눈을 돌리자 바이탈이 수직 낙하하고 있었다.

양쪽 고환의 처치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거늘.

왜!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저스틴을 살피고 입술을 깨물었다.

“미스터 최. 왜 그래요? 혈관이라도 건드렸어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이쪽 고환에 염전이 생긴 것 같아요. 바이탈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젠장. 미치고 팔짝 뛰겠네.”

샘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

고환 염전.

고환에 혈액을 공급하는 정삭이 꼬여 고환에 정상적으로 혈액이 전달되지 못하는 질환이다. 염전을 제때에 해결하지 못할 경우 고환은 영구적인 손상을 입거나 괴사 상태에 빠진다.

“그쪽 고환 상태는 어때요?”

샘은 고환봉합술을 계속하며 질문을 던졌다.

환자를 살려야겠다는 의지가 타오르면서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졌다.

“무슨 상태요?”

“정삭이 꼬인 방향하고 고환의 색깔을 말해 줘요.”

“정삭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꼬였고 고환과 부고환은 약간 검은빛을 띠고 있습니다.”

“일단 정삭을 도수 정복하고 고환을 음낭 밖으로 빼서 따뜻한 생리식염수를 부어 주세요. 혈류가 돌아오면 고환의 색이 바뀔 겁니다.”

“만약 색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땐 정말 방법이 없어요. 고환을 잘라 내는 수밖에.”

샘의 말에 수술실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고 최기석은 이내 결심했다는 듯 음낭 절개창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원치 않았다.

저스틴이 한쪽 고환으로 살아가는 것을.

그것은 예비 신랑에게 생지옥이다.

최기석은 엄지와 검지를 정삭 위에 얹은 후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염전이 생긴 반대방향으로 정삭을 움직여 꼬임을 풀어 주기 위해서다.

‘만만치 않네.’

급한 마음과 달리 꼬인 정삭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약 올리듯 빙글빙글 돌다가 염전 상태로 돌아갔다.

최기석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차분하게 재차 손가락으로 정삭을 회전시켰다.

다만 이번에는 전과 달리 오른손가락까지 사용했다.

오른손가락으로는 정삭이 꼬인 하단부를 고정하고 왼손가락으로는 염전을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이윽고 쳇바퀴처럼 돌던 정삭이 원위치로 돌아갔다.

처음 해 본 비뇨기과 처치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최기석은 뿌듯해할 여유도 없이 고환과 부고환을 음낭 바깥으로 꺼냈다. 그리고 따뜻한 생리식염수로 적신 거즈로 고환과 부고환을 감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 셈이다.

“미스터 최. 처치 끝났어요? 고환 색깔은요?”

“피가 서서히 도는 것 같아요. 아까보다 분홍빛을 띠고 있어요.”

“잘했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이쪽은 봉합술을 막 끝냈고 고환 고정만 하면 되니까.”

“바이탈이 아직 정상수치가 아니에요. 이건 어떻게 하죠?”

“우선 클라피닌만 IV로 투여합시다. 염전이 해결됐으니까 바이탈은 차차 정상으로 돌아올 거예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샘의 지시를 따른 후 저스틴의 고환을 지켜보았다.

죽음의 검은빛을 띠던 고환, 그것이 금방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좌측 고환 처치 끝났어요. 이제 우측 고환만 처치하면 됩니다.”

샘과 최기석이 자리를 바꿔 수술을 이어갔다.

이윽고 우측 고환에 시행된 고환봉합술과 고환고정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저스틴의 바이탈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양쪽 고환은 무사히 생환했다.

고자가 될 뻔한 예비 신랑을 천신만고 끝에 구출한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휴우……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수술 실패했으면 부병원장님한테 찍히는 거였잖아요.”

최기석과 샘, 일리니가 서로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세 사람의 얼굴에 한결 여유가 감돌았다.

“총 수술시간이 두 시간이네요. 일리나까지 포함해서 세 명, 그것도 레지던트끼리 한 수술 치고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이에요. 세상에 이런 기적이 벌어질 줄이야.”

샘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환자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것이 일 분 전처럼 생생하건만 수술은 이미 성공적으로 끝났다.

의술의 신이 굽어살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지이이잉.

최기석과 샘이 나란히 간이 수술실을 나왔다.

“거 봐요.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죠?”

“고마워요. 미스터 최. 덕분에 용기 내서 처치할 수 있었어요. 미스터 최가 없었다면 벌벌 떨다가 수술을 망쳐 버렸을 거예요. 거기다가 환자는…….”

샘은 끔찍한 상상에 말을 잇지 못했다.

“샘 같은 상황을 겪으면 누구라도 두려운 게 당연해요. 하지만 두려움에 맞서야만 하는 때가 있다는 것도 명백하죠. 이번 일이 샘에게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맞아요. 아주 큰 도움이 됐죠.”

“출출한데 간식이라도 할까요?”

“안 될 이유가 있겠습니까?”

두 사람은 후련한 발걸음으로 휴게실을 찾았다.

* * *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캄캄한 밤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객실에 머물며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갑판에 서서 허드슨 강의 경치를 만끽했다.

오늘 있는 MHC의 검진 스케줄은 모두 끝났다.

환자들과 스태프들에게 모처럼 평화가 찾아왔다.

최기석은 객실 침대에 누워서 트레이닝 룸에 접속했다. 그리고 김두진과의 레슨 동영상을 선택한 후 피아노 연습에 나섰다.

오늘 같은 때가 아니면 언제 연주에 집중할 수 있을까.

훗날 감동받을 정설화를 생각하며 피아노 연습을 다섯 차례 연속으로 끝냈다.

“휴우…… 힘들다.”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정면의 벽을 바라보았다.

저스틴의 수술을 끝내고 여유가 찾아왔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주받은 유람선의 세 번째 임무인 리베라맨의 저주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다면 진정한 의미의 평화는 있을 수 없었다.

‘리베라맨의 저주라…… 이건 뭘 말하는 거지?’

최기석은 상태창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임무의 난이도가 점점 올라간다는 걸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문제인 건 분명한데 말이다.

이런저런 고민 중에 객실을 나와 갑판 위에 섰다.

유람선은 허드슨 강을 유유하게 헤쳐 나가고 있었다.

하늘에 뜬 넉넉한 보름달, 배가 전진하면서 생기는 잔잔한 강의 파동.

거기에 선상에서 흐르는 클래식 음악이 운치를 더했다.

이 자리에 정설화와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문득 그런 아쉬움이 들었다.

“여기 있었나?”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파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있었습니다.”

“고환파열 환자 이야기는 샘에게 들었어. 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네. 검진 스케줄이 끝난 후 외래만 몇 번 들르면 성기능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잘했어.”

파커가 곁에 서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크루즈 검진을 받으러 온 환자가 고자가 됐다면 대체 어느 누가 우리 검진을 이용하겠나? 하마터면 대재앙이 일어날 뻔했지.”

“…….”

“그건 그렇고 비뇨기과 쪽에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걸?”

“제가 한 일은 많지 않습니다. 샘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하하하. 겸손하기는…… 동양인은 자기를 내세울 줄 모른다니까.”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운을 뗐다.

“부병원장님. 혹시 튜터를 보셨습니까?”

“안 그래도 방금 전까지 튜터와 대화하던 참이었어. 그 친구 갑자기 엄청난 결심을 했더군.”

“…….”

“다라프레이트의 가격을 절반으로 내리겠다는 거야.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지.”

“정말 파격적인 결정이군요. 그 사람이 그럴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최기석은 자못 놀란 척 연기했다.

튜터의 결정에 영향을 끼친 건 그 누구보다 자신의 영향이 컸지만 그걸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찰스가 좋아하겠네.’

다라프레이트 사건으로 울분을 토하던 찰스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그의 분노가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안내방송 드립니다. 지금 지하 1층 객실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지금 지하 1층 객실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일반 승객께서는 차분하게 갑판으로 이동하시고 구급 스태프들과 의료 스태프들은 당장 지하 1층 객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지금 지하 1층 객실에서.]

예기치 못한 방송에 최기석과 파커의 눈썹이 하늘 높은 줄 모르기 치솟았다.

유람선 내 화제라면 역대급 대형사고가 아닌가.

“저는 현장으로 가 보겠습니다.”

최기석은 가운을 휘날리며 자리를 떠났다.

저주 받은 유람선 임무, 그 마지막 장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

* * *

지하 1층 객실 복도는 아수라장이었다.

승객들은 서로를 밀치며 앞다투어 복도를 질주했으며 비명과 고함이 난무했다.

달려가는 승객들 뒤로는 잿빛 연기와 뜨거운 화마가 일렁거렸다.

쏴아아아아.

천장에 달린 스프링클러가 물을 뿌려 댔지만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아…… 하아…….”

현장에 도착한 제니는 발을 동동 굴렀다.

자고 있는 딸을 두고 잠시 갑판에서 여유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이게 웬걸?

청천벽력처럼 화재가 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제니는 다급하게 객실을 빠져나온 승객들을 훑었다.

불행하게도 그중에 딸 제인의 모습은 없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기요. 제 딸이 아직 저 안에 있어요.”

“구조대원들이 진압 준비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기다리라는 소리가 나와요?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죄송합니다만 기다려 달라는 말씀밖에 해 드릴 수 없습니다.”

“됐어요. 당신들한테 손 안 벌릴 테니까 들어가게만 해주세요.”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해요!”

완력을 행사하는 진행요원 때문에 제니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연기가 짙어지면서 그녀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한 남자가 현장에 도착해 요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흉부외과 진료를 봤던 최기석이다.

“선생님. 우리 제인이 객실에서 못 빠져나온 것 같아요. 제발 우리 제인 좀 살려 주세요.”

제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기석에게 매달렸다. 이에 최기석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알겠습니다. 제인은 제게 맡겨 주세요. 객실 번호는 몇 번입니까?”

“120번이에요.”

“지금 가 보겠습니다.”

“닥터 최!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구급요원 투입 준비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것도 해선 안 돼요. 섣불리 행동했다간 더 큰 사고가 납니다.”

최기석은 현장요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온몸에 물을 끼얹은 후 손수건에 물을 적셨다.

현장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닥터 최! 제 말 안 들립니까? 화재 현장에 뛰어드는 건 자살행위라고요!”

현장요원이 입구를 막아섰지만 최기석은 완력으로 요원을 밀치고 연기로 가득 찬 복도를 질주했다.

뒤늦게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제 걱정 마세요. 전 안 죽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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