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18화 (317/407)

진격의 레지던트 (1)

타다다다닥.

최기석은 곧바로 현장으로 달렸다.

레스토랑 한쪽 면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는데 하나같이 발을 구르고 있었다.

사람들을 헤치자 바닥에 뒹굴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으아아아아악!"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얼굴에서는 비 오듯 땀이 흘렀으며 처절한 비명 소리가 그의 고통을 대변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남자의 얼굴이 제법 낯익었다.

몸부림 치고 있는 사내는 바로 저스틴, 오후 검진 때 봤던 예비 신랑이었다.

"선생님! 우리 자기 좀 봐주세요."

린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고 최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스틴을 향해 몸을 굽혔다.

체력: 5/10

주 증상: 전신통증

아픈 부위: 좌우측 음낭 및 고환

진단명: 좌우 음낭혈종 / 고환파열 / 음낭의 타박상 및 부종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없음

가족력: 없음

주의 요소: 없음

저스틴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한 순간 최기석은 깨달았다.

저주받은 유람선, 그 두 번째가 고자의 저주였음을.

"린지. 2층으로 가서 비뇨기과 의사를 불러 주세요."

"네!"

바람처럼 사라지는 린지.

최기석은 저스틴에게 페인킬러 스킬을 사용했다.

휘이이이잉.

그의 몸에서 뿜어진 푸른빛이 저스틴을 감싸자 저스틴의 표정이 다소 풀렸다.

"저스틴, 어떻게 된 겁니까?"

"리…… 린지하고 이야기하던 중 넘어졌는데…… 으으으윽…… 거기에…… 뾰족한 물건이 놓여 있어서."

"외상이었군요.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최기석은 거침없이 저스틴의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외상으로 인한 고환파열과 음낭혈종의 경우 잘못하면 평생 성기능에 장애가 올 수 있다.

다음 달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에게 끔찍한 비극이 찾아오는 걸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런!'

최기석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문제의 부위는 표피가 찢어진 왼쪽 음낭이다.

음낭은 일반적인 크기보다 부풀어 있었으며 퍼렇게 멍이 들었다.

더불어 찢어진 상체 부분에서 맑은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문제는 흉부외과의인 그가 저스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하이어 시스템으로 고속 진급한 탓에 비뇨기과 수련을 건너뛰고 말았다.

흉부외과에 빨리 온 대가라고 할까.

초초하게 발을 구르는데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스태프 몇몇이 현장에 도착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한 스태프가 최기석의 곁에 섰다.

그의 목에 걸린 '비뇨기과 의사 샘'이라는 명찰을 본 순간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외상성 음낭혈종 및 고환파열이 예상되는 환자입니다."

"일단 간단하게 처치하고 들 것에 실어서 검사실로 보냅시다."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샘이 음낭에 처치하는 것을 도운 후 함께 검사실로 이동했다.

응급으로 시행된 고환 초음파 검사.

샘과 샘의 보조를 맡은 간호사 일리나, 그리고 최기석은 조마조마하게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지금까지 네 차례 진행된 MHC 크루즈 유람선 관광.

이번 같은 응급환자가 발생한 건 처음이었다.

당연히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샘. 음낭혈종과 고환파열이 확진되면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쩔 수 없이 응급후송 보내야죠."

"후송이요? 간이 수술실도 있는데 여기서 처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 환자, 예비 신랑이에요. 처치가 늦으면 평생 불구가 될 수 있습니다."

최기석이 속사포처럼 말했다.

허드슨 강을 건너 육지로 도착하는 데 삼십 분.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 병원에 도착해서 실제 처치를 받는 시간까지 합치면 대략 두 시간이 날아간다.

시간이 그렇게 소요되면 저스틴의 경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건 알지만……."

샘이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전 고환파열은 수술해 본 적이 없어요. 어설프게 손대느니 병원 쪽 전문의 선생님께 맡기는 게 낫죠."

"하아…… 미치겠네."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 마침내 검사 결과가 나왔다.

최기석이 미리 꿰뚫어 봤던 대로 저스틴은 음낭혈종 및 고환파열 진단을 받았다.

판독을 확인한 샘과 일리나의 표정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이젠 답이 없어요. 응급후송 준비해야겠네요."

"샘.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요. 알잖아요. 골든타임을 넘긴 환자는 처치하기 힘들다는 거."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잖아요. 나도 좋아서 후송 보내는 건 아니라고요. 젠장!"

샘이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진정하고 우리 둘이 잘해 봐요. 힘을 합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지 몰라요. 다음 달에 결혼하는 예비 신랑이 성불구가 되는 걸 보고 있을 순 없단 말이에요."

"아…… 진짜. 돌아 버리겠네."

벌컥!

날 선 대화가 오고 가는 가운데 한 남자가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파커다.

"생식기를 다친 환자가 있다면서?"

"아. 네. 방금 초음파 검사 결과가 나와서 응급후송 보낼 예정입니다."

"진단명은?"

"음낭혈종과 고환파열입니다."

"참 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군. 검진 받으러 온 환자를 고자로 만들다니……."

파커가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눈을 번뜩였다.

그의 매서운 눈빛을 받은 샘이 몸을 움츠렸다.

"왜…… 왜 그러십니까?"

"방금 응급후송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만……."

"후송 보내도 되는 거 맞아? 병원까지 도착하는 데 족히 두 시간은 걸리지 않나?"

"제가 고환파열 수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송을 결정했습니다."

"안 돼. 이송은 절대 안 돼."

파커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병원장님. 제 능력을 벗어나는 처치나 수술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람 잡는 건 선무당뿐만이 아닙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에요."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아. 이송으로 골든타임을 허비할 바엔 차라리 유람선 안에서 처치하는 게 백번 옳지. 안 그런가? 미스터 최?"

파커의 시선이 최기석을 향했고 최기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난생처음 파커의 의견에 백퍼센트 동조하고 있었다.

다만 파커가 현장 수술을 감행하는 이유는 검진의 평판이 깎일까 봐 걱정하는 것이고, 최기석은 순전히 환자를 걱정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부병원장님 한 번만 더 재고를……."

"이 상황에서 더 말이 필요한가?"

파커의 검지가 간이 수술실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대신 수술에 대한 책임은 부병원장님이 경감해 주시는 걸로 믿고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지?"

"네? 저는 부병원장님 지시로 수술을 하겠다고 한 건데……."

샘이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거렸다.

"바보 같은 소리를……. 수술의 책임은 항상 집도의에게 있는 거라고. 집. 도. 의."

파커가 또박또박 단어를 강조하자 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부병원장의 명령을 거스르면 수련의 생활이 평생 괴로워진다. 그렇다고 그의 말에 따라서 수술을 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에 따른 결과를 자신이 져야 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샘. 시간 없어요. 빨리."

최기석은 넋 나간 샘의 팔을 끌고 간이 수술실로 이동했다.

벅. 벅. 벅. 벅.

스크럽에 나선 최기석과 샘, 그리고 일리나.

세 사람 사이에 납덩이 같은 침묵이 흘렀다.

"아…… 이래서 오기 싫었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에요. 난처한 상황은 이해하지만 이젠 우리 손으로 끝을 보는 수밖에 없어요."

"난 미스터 최 같은 강심장이 아니에요. 외과 로테이션 중에 샴쌍둥이 수술에 들어갈 만큼 솜씨가 좋은 것도 아니고요. 모든 사람이 미스터 최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최기석의 시선이 샘에게 고정되었다.

"써전은 스스로를 믿을 필요가 있어요. 샘이 샘 자신을 믿지 않으면 대체 누가 샘을 믿어 줍니까? 그리고 그렇게 믿음 없는 수술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

"일단 집도를 맡았으면 본인이 왕이라고 생각하세요."

"말은 쉽지만……."

"오늘은 안심해도 되요. 저와 함께 있으니까."

최기석이 씽긋 미소 지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은은하게 흐르는 하늘색 기운이 샘과 일리나를 휘감았다.

얼어붙은 심장 스킬의 특수효과 혹한이 발동된 것이다.

[혹한: 자신뿐 아니라 힘께 처치하는 동료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며 능력치가 감소하지 않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죠. 안 그래요?"

"맞아요. 될 대로 될 겁니다. 환자 수술이 무사히 끝나는 쪽으로."

"이제 갑시다."

샘이 당당하게 앞장서고 그 뒤를 최기석과 일리나가 따랐다.

"으으으윽."

저스틴은 수술대에 누워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페인킬러와 진통제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아픔을 이겨 내는 게 벅차 보였다.

"선생님.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남자구실도 못하고 이대로 이혼당하는 건가요?"

저스틴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럴 일 없습니다. 그럴 일 없게 만들 거니까요."

"정말이죠? 선생님. 저는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네. 한숨 푹 주무시고 나면 이 악몽도 끝날 겁니다."

저스틴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마취의가 수술실에 들어와 전신마취에 나섰다.

일리나는 환자에게 환자 감시 장치를 연결하고 수술 도구를 준비했으며 최기석과 샘은 앞으로 진행될 수술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전신마취 끝났습니다."

마취의의 보고에 샘이 알았다는 듯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상하네. 내가 왜 이러지?'

스크럽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손은 부르르 떨렸으며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비었다. 그런데 최기석과 함께 수술실에 들어오면서 그를 괴롭혔던 긴장감, 부담감 등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처음 해 보는 수술이지만 별 탈 없이 끝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마저 들었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해 보자.'

샘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지금부터 음낭혈종 및 고환파열에 대한 수술을 시작합니다."

"네."

최기석은 기다렸다는 듯 소독과 제모를 동시에 진행했다. 음모가 있을 경우 수술 후 감염의 위험이 컸다.

넓게 펼친 방포를 수술 부위에 덮는 것으로 수술 준비가 끝났다.

샘은 일리나에게 받은 메스로 음낭에 절개창을 냈다.

스으으으윽.

주름진 음낭이 갈라지며 내부가 드러났다.

"혈종 때문에 시야 확보가 잘 안 돼요. 고환 초막(고환을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막)을 중심으로 석션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절개창에 흡입기를 밀어 넣은 후 피를 빨아들였다. 처치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도중에 파열된 고환이나 정맥을 건드리면 골치 아파진다.

사소한 처치도 조심스럽게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흡입이 끝나자 수술 시야가 한결 넓어진 시야.

"고환은 어때요?"

"애매한데요?"

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환파열이 발생했을 경우 처치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수술 없이 보존적 치료를 하는 것.

두 번째는 고환절제술을 펼치는 것.

세 번째는 고환봉합술을 펼치는 것이다.

저스틴의 경우 두 번째와 세 번째 케이스가 겹쳐 있었다.

"흐음…… 어쩐다?"

샘의 신음이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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