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52화 (251/407)

마지막 기회 (4)

시상 부위에 출혈이 심각했다.

고인 피로 인해 주변에 부종까지 생겼다.

그동안 수술 스크럽에 많이 들어갔지만, 이렇게 시상 출혈이 심한 환자는 처음 봤다.

"카테터."

최기석은 소독간호사에게 카테터를 받아 시상에 고여 있는 피를 빨아들였다.

치이이이익.

새빨간 피가 쉴 틈 없이 도관으로 빨려 들어갔다.

피를 뽑아낸 후 현미경으로 살핀 시상 곳곳에서 혈전(피가 딱딱하게 굳은 덩어리)이 발견되었다.

"미스터 최. 어떻게 할래? 혈전은 흡인 못 할 것 같은데?"

"용해제로 녹인 다음에 빨아들이자."

"알았어."

제1보조인 클레어가 혈전 용해제를 투여하자 혈전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최기석은 혈전이 녹기를 충분히 기다렸다가 피를 빨아들였다.

"휴우…… 간신히 절반까지 왔네."

"절반씩이나 온 거지.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고."

래리의 말에 최기석이 한마디 덧붙였다.

급성 경막하 출혈, 뇌실질내 치료는 끝났고, 이제 외상성 뇌수두증과 뇌탈출증에 대한 처치가 남았다.

이 두 가지에 관해서는 스크럽에 들어선 적도, 당연히 트레이닝을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최기석은 겁먹지 않고 외워 둔 매뉴얼을 되새김질했다.

그 어떤 부위라도 수술의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의진대에서 수련하던 시절 장혁필이 했던 말이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수두증은 어떻게 치료할 거야?"

클레어의 시선이 최기석을 향했다.

수두증이란 뇌의 영양분을 제공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뇌척수액이 막히거나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현상이다.

프리드의 경우 외상으로 실비우스 수도(제3뇌실과 제4뇌실을 연결하는 관)가 막혀 있었다.

서둘러 폐쇄된 뇌척수액을 순환시켜 줘야 했다.

"지금은 단락술밖에 없어. 션트하고 카테터 준비해 줘."

"……가능하겠어?"

클레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가능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무조건 성공시켜야지. 그리고 우리가 함께라면, 실패할 리 없어."

"집도의가 하자면 해야지. 별수 있나."

"그래. 미스터 최를 믿을게."

래리와 클레어가 한마디씩 하는 사이, 제3보조인 자넷이 바쁘게 단락술 준비에 나섰다.

"시작한다. 카테터."

최기석은 카테터를 손에 쥐고 뇌실을 응시했다.

푸우우우욱.

뇌실을 찌르자 카테터를 따라 맑은 뇌척수액이 흘러내렸고, 래리가 이를 곡반으로 받아 냈다.

그동안 클레어가 복강에 튜브 연결을 끝냈다.

"준비 끝났어."

"오케이."

최기석은 복강과 연결된 튜브를 뇌실에 삽입한 카테터와 연결했다.

뇌실과 복강 간 단락술이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막혀 있던 뇌척수액은 다시 뇌로 흡수될 수 있었다.

기세를 몰아 뇌탈출증에 대한 처치에 나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출혈 부위는 전부 잡았으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뇌압이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최기석은 두개골을 덮은 후 벽시계를 응시했다.

현재 시각은 새벽 한 시.

동기들과 무려 여섯 시간이라는 대장정을 함께했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달려와 도움을 준 친구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다들 고생했고, 고맙다."

"알면 됐어."

"야식은 당연히 미스터 최가 쏘는 거겠지?"

"당연하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시켜."

동기들의 말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 * *

그날 새벽.

최기석은 동기들과 야식을 먹은 후 외과 중환자실을 찾았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환자의 상태는 비응급이었지만 경과는 여전히 불량이었다. 뇌에 데미지가 워낙 심했던 탓이다.

"제인. 식사는 하셨습니까?"

대기실에 있던 프리드의 부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오매불망 중환자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 닥터 최. 죄송해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못 들었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요. 뭔가를 먹을 기분이 아니라서."

제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닥터 최. 사실 조금 전에 지인과 통화했어요. 그리고 아주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죠."

"끔찍한 이야기요?"

"네. 프리드는 넘어져서 다친 게 아니래요! 지인이 똑똑히 지켜봤대요."

제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정확히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프리드는 경찰에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맞았다고 한다. 동시에 쓰러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다고 한다.

"……경찰의 설명과는 다르군요."

"내 말이 그 말이에요. 경찰들은 남편이 잘못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사실은 완전히 반대였던 거죠."

제인이 두 주먹을 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럴 줄은 몰랐어요. 아마 남편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당한 것 같은데."

"이유를 찾자면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인 경찰들이 흑인들에게 가혹한 처사를 하는 일은 종종 매스컴을 타고는 했다.

제인의 추측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이번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남편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

"그러니까 닥터 최, 제발 우리 남편을 살려 주세요. 프리드를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 보낼 수는 없어요. 너무 억울하잖아요. 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려요."

최기석은 제인과 대화를 마치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수술이 끝난 후 프리드는 격리실에서 치료 중이다. 프리드를 내려다보는 최기석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백인 경찰들에게 구타당했다는 제인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돌이켜 보면 경찰의 설명은 미심쩍은 데가 많았다.

당시는 처치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깊게 파고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확실히…….'

최기석이 턱을 쓸어내렸다.

단순한 실랑이 도중 다쳤다고 보기에 프리드의 외상은 지나치게 심각했다.

제인의 말에 훨씬 더 신빙성이 있었다.

그녀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프리드의 머리를 유심히 살폈지만 특별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측두부에 타박상이 있었지만, 그것이 폭행의 증거가 될 수는 없었다. 경찰이 프리드가 옆으로 넘어졌다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잠깐 컴퓨터 좀 쓸게요."

"네. 그러세요."

최기석은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구급대원이 작성한 응급기록지를 살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경찰과 실랑이하던 중 두부외상이 발생했다는 내용과 간단한 처치 내용이 적혔을 따름이다.

"후우우우……."

심호흡하고 초진기록지를 작성해 나갔다.

환자의 외상 원인에 따라 법적인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기에 작성에 신중을 거듭했다.

시간이 흘러 수술기록지를 비롯한 다른 차트의 기입까지 끝났다.

최기석은 격리실로 돌아가 프리드의 곁에 앉았다.

프리드가 위중한 환자인 만큼 밤새 keep 할 필요가 있었다.

비록 당직 중이지만 응급실 호출이 올 때만 내려가면 된다.

'힘내요.'

프리드를 향한 그의 시선에 애틋함이 묻어났다.

* * *

다음 날 오전.

최기석은 인수인계를 끝내고, 오전 회의와 오전 회진에 참석했다.

당직은 끝났지만,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미스터 최. 잠깐 나 좀 보지."

회진이 끝난 후 매튜가 그를 붙잡았다.

최기석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 어제의 명령 거부로 잔뜩 뿔이 나 있으리라.

"휴게실로 가시겠습니까?"

"그러지."

두 사람이 휴게실 소파에 앉아서 서로를 응시했다.

무거운 침묵이 휴게실을 짓눌렀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라도 하듯 두 사람이 침묵을 지켰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매튜다.

"자네, 제정신인가?"

"네. 아주 멀쩡합니다. 과장님께서는 제게 문제 있어 보이십니까?"

"물론. 지금 당장 신경과 진료받는 걸 추천하네."

매튜의 말투에 노기가 감돌았다.

"자네는 내가 우습나? 뇌종양외과 과장이 만만하게 보여?"

"아닙니다."

"그럼 어제 보여 준 행동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봐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자네 때문에 내가 우스워진 걸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건가?"

"과장님께서는 개인적인 용무로 수술대기 중인 써전들을 부르셨습니다. 누가 봐도 과장님의 명백한 실수죠."

최기석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수술을 지연시킨 건 그 실수를 덮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저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까?"

"……."

최기석의 질문에 매튜가 이를 갈았다.

"과장님께 묻고 싶은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혹시 조금 전에 제가 말했던 두 가지 이유가 환자의 목숨보다 중요합니까?"

"이 자식!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려!"

매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면 왜 수술지연을 지시하셨습니까? 정당한 이유를 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시에 어떤 이유가 있었든지 수술할 써전이 없었던 건 사실이야. 그렇다면 당연히 대기하는 게 맞지. 절차를 어긴 건 오히려 자네라고."

"환자는 뇌혈관 질환을 앓았고, 저는 루카스 과장님께 사전에 집도허락을 받았습니다. 절차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럼 신규 레지던트가 뇌혈관 수술 집도하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나?"

"레온이 뇌동맥류 집도하는 건 괜찮고, 저는 안 되는 겁니까? 과장님의 잣대는 이중적입니다."

"지금 나랑 말싸움하자, 이건가?"

매튜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건 말싸움이 아니라 과장님과 제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지금 순간을 그저 말싸움으로 치부하고 계셨다니 유감입니다."

"미스터 최. 자네 수술이 제대로 됐다고 생각해?"

매튜가 화제를 돌렸다.

"환자는 아직까지 의식불명이더군. 수술이 제대로 끝났다면 제대로 회복됐어야 해!"

"집도 자체를 문제 삼고 싶으신 거군요. 그렇다면 수술기록지와 수술 전후의 뇌 CT를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집도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

"외상으로 인한 데미지가 심해서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것뿐이죠."

최기석의 말에 매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노기 띤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지금 실수한 거야.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린 거라고. 뇌종양외과 과장이라는 자리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막강해."

"……."

"자네는 어제 수술을 해선 안 됐어."

"아직까지 환자가 살아 있는 게 불만이십니까?"

최기석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직접 가서 환자를 다시 죽이시죠. 그편이 깔끔하겠습니다."

"끝까지 나불거리는구나. 그래, 언제까지 까불 수 있는지 지켜보지."

쾅!

매튜가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고 나갔다.

최기석은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지켜보다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매튜의 으름장은 두렵지 않았다.

그가 두려워하는 건 오로지 환자가 죽는 것과 보호자의 눈물뿐이니까.

한숨을 돌리기 위해 TV를 켰다.

[KCC 뉴스 줄리안입니다. 어제저녁 7시경 클리프 스트리트에 있는 주택가에서 한 흑인 남성과 백인 경찰들이 말다툼하던 도중 흑인 남성이 머리를 다치는 사고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우발적인 사고로 주장하고 있으며, 피해자 가족은 경찰에 의한 가혹한 폭행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양쪽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최기석은 뉴스를 지켜보다가 이마를 문질렀다.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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