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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91화 (190/407)

변수 (6)

"미스터 최. 갑자기 왜 그래?"

에단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최기석이 맥락 없이 손가락을 튕기니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에요.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아이디어? 무슨 아이디어?"

"그게 이야기하기 조금 곤란한 거라서."

최기석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그나저나 한시름 덜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에단의 풀 죽은 모습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거든요."

"미안. 나도 모르게 폐를 끼쳤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에단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이네요. 모건과 저는 회의 준비하러 가 보겠습니다."

"그래. 있다 보자고."

최기석은 의국에서 모건과 함께 회의 준비를 했다. 입원 환자 상태 요약, 수술 스케줄 잡기, 인쇄물 출력 등등, 루틴 잡이 순식간에 끝났다.

"시간도 남았는데 커피 한잔할까?"

"좋지."

두 사람은 의국을 나와서 복도를 걸었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위장관 외과에서 코드 블루 발생.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위장관외과에서 코드 블루!]

다급하게 울리는 방송.

타다다다닥.

최기석과 모건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복도를 질주하며 병실을 살폈다.

"미스터 최. 이쪽!"

모건이 복도 끝 병실 쪽에서 손을 흔들었다.

가운을 휘날리며 병실에 도착하자 제이스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시뻘건 핏덩어리가 뱉어져 있었으며, 조세와 데이비드가 제이스에게 응급처치 중이다.

체력: 3/10

주 증상: 무호흡 / 빈맥 / 복수 / 황달 / 토혈

아픈 부위: 간 / 심장 / 식도정맥류

진단명: 간경변증(말기) / 급성 심실빈맥 / 급성 식도정맥류 출혈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없음

가족력: 없음

주의 요소: 간이식 대기 환자입니다!

'젠장!'

최기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제이스에게 다가갔다.

"일단 제이스를 침상에 눕힙시다. 데이비드는 스테이션에서 앰부백하고 에피네프린 원 앰플, 하트만과 수액 세트 챙겨 오고 조세는 뒤로 빠져서 상황 보고해요. 처치는 나랑 모건이 할 테니까."

최기석의 지시에 세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역할 분담이 안 돼서 서로의 처치를 방해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퍽! 퍽! 퍽!

최기석은 흉부압박을 하며 스킬을 퍼부었다.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모든 처치레벨이 일시적으로 한 단계 상승합니다.]

[각성 CPR 버프를 사용하셨습니다. 특수 버프가 30분간 지속됩니다.]

- 호흡에 관련된 처치를 할 경우 환자가 호흡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30퍼센트 증가합니다.

- 흉부압박을 할 경우 혈액 순환 속도가 2배 상승하며 갈비뼈가 부러지지 않습니다.

- 제세동기를 사용할 경우 환자의 심장 회복률이 1.5배 상승합니다.

"채혈하려고 병실에 왔더니 제이스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부축해서 일으키려고 했는데 피를 토하면서 다시 쓰러지는 바람에……."

"하아…… 하아…… 하아…… 앰부백하고 에피네프린 가져왔어요."

조세의 보고가 끝나는 타이밍에 데이비드가 병실에 도착했다.

"호흡은 어때?"

"여전히 무호흡이야."

모건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맥박도 안 잡혀. 라인만 잡고 중환자실로 가자."

최기석은 순식간에 정맥 라인을 잡고 하트만 용액에 에피네프린을 믹스했다.

'대단해. 응급상황 같지 않아.'

모건은 최기석을 지켜보며 감탄했다.

환자의 생사가 오가는 급박한 상황.

그 속에서도 최기석의 처치와 지시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비롯한 조세와 데이비드는 바짝 긴장한 채 최기석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최기석이라면 환자를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조세는 복도 정리하고 데이비드는 수액걸이 들고 뛰어요. 너는 알지?"

최기석의 시선을 받은 모건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중환자실로 향하는 과정은 전쟁이었다.

드넓은 메이죠 클리닉에서 수많은 환자들과 스태프들을 헤쳐 나가야 했고 CPR은 잠시라도 멈출 수 없었다. 중환자실에 도착했을 때는 네 사람 모두 땀에 흠뻑 절어 있었다.

"데이비드는 병실로 돌아가도 좋아요. 조세는 환자 감시 장치 연결하고, 모건은 DF(defibrillator, 제세동기) 준비해 줘."

최기석은 지시를 끝내고 혼자서 CPR을 도맡았다.

각성 CPR의 효과를 생각하면 자신이 모든 처치에 관여하는 게 좋았다.

지이이이잉.

환자감시 장치가 연결되면서 기계음이 흘렀다.

"맥박 250회, 호흡은 분당 10회입니다. 심전도는……."

"심전도는 내가 볼게."

퍽! 퍽! 퍽! 퍽!

최기석은 흉부압박을 하며 심전도 모니터를 바라봤다. QRS 구역과 T파가 감별하기 힘들 정도로 불규칙했다.

전형적인 심실빈맥의 징후.

문제는 응급처치와 약물 투여에도 특별한 호전이 없다는 점이다.

"조세, 아트로핀 추가로 믹스해요. 모건, 제세동기는 멀었어?"

"이제 됐어."

모건이 제세동기의 충전양을 200J로 맞추고 충전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램프에 불이 들어오고 전자음이 울렸다.

이에 최기석은 손에 쥔 패들에 젤을 골고루 비볐다.

"다들 비키세요. Clear!"

쿵!

전류가 흐르면서 환자의 몸이 펄떡 뛰어올랐다.

"다시 한 번 200J!"

"Charge!"

"Clear!"

쿵!

최기석은 환자 감시 장치를 확인하고 재차 흉부압박에 나섰다.

뚝. 뚝. 뚝.

얼굴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침상으로 떨어졌다.

'조금만 더 힘내요. 제발.'

최기석은 처치하면서 간절하게 빌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입원하던 첫날 그가 술기운에 병실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것을, 딸 사진에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던 모습을, 아들의 간이식 거부에 남몰래 가슴 아파하던 것을.

하지만 최기석은 믿었다.

제이스는 간이식 수술과 정신과 치료를 잘 끝내면 다시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 그가 저 세상으로 떠나게 둘 수는 없다.

"다시 한 번 200J!"

"Charge!"

"Clear!"

쿵!

최기석은 제세동을 끝내고 조심스럽게 모니터를 확인했다.

심전도가 달라졌다.

불규칙적이고 비정상이었던 파동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

"미스터 최. 이젠 나한테 맡겨.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아. 내가 할게."

최기석은 모건의 도움을 물리치고 흉부압박과 제세동기 처치를 번갈아 시도했다.

잠시 후 힘겨운 사투가 끝났다.

제이스는 다행히 자발순환 상태로 돌아왔다.

"다들 고생했어."

최기석은 근처 기둥에 등을 기댔다.

호흡이 가쁘고 팔이 떨렸지만 제이스를 살려 냈다는 기쁨이 더 컸다.

"제일 고생한 건 미스터 최인데요, 뭐."

"역시 위장관외과 에이스답다."

조세와 모건이 다가와 미소를 지었다.

"이 환자 간이식 대기 환자 맞지?"

"맞아. 아들이 간이식 거부해서 뇌사자 대기 리스트에 올려놨어."

"이러다 이식 전에 일 터지는 거 아닌가?"

모건이 얼굴을 찌푸리며 제이스를 응시했다.

"환자 제대로 만났네."

"원래 미스터 최 환자들은 주치의를 닮아서 다들 보통이 아니잖아요. 충수 절제술로 입원했던 마이크도 그렇고, 다른 환자들도 그렇고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군."

조세의 농담에 모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어 죽겠으니까 그만 놀려. 조세, 환자 바이탈 돌아왔으니까 응급으로 검사 좀 촬영해 줘요."

"무슨 검사요?"

"UGI(상부 위장관 검사)요. 환자 아내에게 어제 저녁부터 먹은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 검사해도 별문제 없을 겁니다."

"UGI는 처음 입원했을 때 하지 않았나요?"

조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기억하기로 제이스의 UGI 검사결과는 정상이었다.

"아까 병실에 토혈이 있었잖아요. 간이식 수술이 늦어지면서 식도정맥류가 생긴 것 같아요."

"아…… 맞다! 토혈이 있었지. 미스터 최는 사소한 것도 안 놓치시네요."

"주치의니까요. 그럼 부탁해요."

최기석은 모건과 병동으로 돌아갔다.

오전 회의가 막 끝난 참이어서 회진부터 참여했다.

회진하는 동안 그의 시선은 환자와 대화 중인 스미스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신규 임무, '스미스의 인정을 받아라'를 획득하셨습니다.]

[임무완성 조건: 스미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을 달성해야 합니다. 재료아이템을 얻고 일부 스탯을 상승시켜야 합니다.]

[임무 완수 시 하이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으며 유니크 젬을 지급합니다.]

임무 완료에 필요한 재료 아이템 암흑 인장.

이것을 얻으려면 스미스의 디버프인 보이지 않는 손을 견뎌야 한다.

그것이 에단을 관찰하며 얻은 결과다.

'알아도 쉽지 않네.'

최기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쓸어내렸다.

디버프에 걸리려면 스미스의 앞에서 실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구실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몰랐다.

다시 한 번 벽에 부딪친 셈이다.

회진이 끝났음에도 고민은 깊어만 갔다.

* * *

그날 오전.

최기석은 수술 스크럽을 끝내고 병동으로 돌아왔다.

'역시 사기란 말이지.'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어제 저녁부터 피로를 느꼈건만 환자 바라기 덕분에 다시 체력을 회복했다.

드르르륵.

최기석은 소아 병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로라의 주치의 기석 최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제시카예요."

"너무 늦게 인사드려서 죄송합니다. 회진이 끝나고 곧바로 수술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괜찮아요. 사정이 있었겠죠."

제시카가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최기석은 제시카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로라를 살폈다.

로라는 두 살배기 여자아이로 선천성 거대결장을 앓고 있었다.

선천성 거대결장.

히르슈슈프룽 병이라고도 불리는 이 질환은 장의 운동을 담당하는 장관 신경절 세포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이다.

환자는 이 세포의 일부가 없기 때문에 음식물을 그 이하로 내려보낼 수 없다.

"우리 아이 수술 날짜는 언제로 잡혔나요?"

"대장 조영술 결과가 나와야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지만 나흘 안쪽으로 보시면 됩니다."

"수술 과정은요?"

"장관 신경세포가 있는 장과 그렇지 않은 부위를 연결한 후 나중에 장루를 만들어 주게 됩니다. 총 2단계의 수술을 거친다고 보시면 됩니다."

"……네."

제시카의 시선이 로라에게 향했다.

"며칠 전부터 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토하고 변비도 심하게 앓았어요. 혹시나 해서 데려와 봤는데 이런 큰 병일 줄 몰랐어요."

"……."

"게다가 알아봤더니 로라의 병은 선천성 질환이라고 하더라고요. 미리 신경 썼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텐데……."

"죄책감 가질 필요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증상이 늦게 발견될 수도 있어요."

최기석은 차분하게 제시카를 달랬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 제시카가 로라에게 관심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라고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편하네요. 남편은 제 탓을 하고 저도 제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남편분이 오면 제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해요."

제시카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최기석은 그녀와 대화를 마치고 병실을 나왔다.

인수인계로 받은 또 다른 환자를 살피려는데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뒤를 돌아보니 인도에서 온 라훌이 빙긋 웃고 있었다.

"미스터 최,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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