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96화 (96/407)

결정 (5)

"사…… 살인이요?"

최기석은 놀란 나머지 몸을 들썩거렸다.

보호자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전혀 뜻밖이다.

"환자분은 교통사고를 당해서 응급실에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그게 살인입니다."

박지민과 달리 박진표가 차분하게 설명을 이었다.

환자 고정옥은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십 년간 혼자 생활을 해 왔다. 그런데 육 개월 전부터 그녀보다 다섯 살 연하인 김용민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외로움이 깊었는지 고정옥은 김영민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불행은 거기서 시작됐습니다."

박진표가 한숨을 쉬었다.

"한 달 전 어머니 집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놀라운 걸 발견했습니다. 어머니 이름 앞으로 생명보험이 세 개나 가입이 되어 있었습니다."

"……."

"더 믿기 힘든 건 보험금 수령자가 저기 응급실에서 뻔뻔하게 앉아 있는 인간이라는 겁니다."

"그럼 두 분의 말씀은 김영민 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환자의 사고를 사주했다는 뜻입니까?"

최기석은 본인이 말하면서도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병원 생활을 제법 해 왔다고 생각했거늘,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것은 처음이다.

"확실합니다."

박진표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막 경찰서를 다녀왔습니다. CCTV를 확인했는데 사고를 낸 차량은 번호판을 가렸더군요. 거기다가 두 사람이 나란히 길을 걷고 있는데 차가 정확히 한 사람만 덮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최기석은 뭐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한숨만 쉬었다.

박진표의 말이 맞다면 이건 명백한 살인이다.

만약에 환자가 이대로 죽는다면 김용민이 보험금을 탈 수도 있다.

"선생님. 이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셔도 돼요. 하지만 우리 엄마는 꼭 살려 주세요. 이런 식으로 세상을 떠나는 건 정말 아니잖아요. 네?"

박지민이 간곡하게 부탁하며 가운을 붙잡았다.

"알겠습니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최기석은 무거운 마음으로 응급실에 돌아왔다.

"혹시 두 사람하고 무슨 이야기 하셨습니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김용민의 질문을 딱 잘라 끊고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기계 환기를 하고 있음에도 환자의 호흡 상태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불의의 사고가 생길지 모른다.

최기석은 그간 읽었던 논문들을 떠올리며 치료법을 고민했다.

[얼어붙은 심장 용맹 효과가 활성화 중입니다.]

[용맹: 병인을 분석하고 처치법을 떠올리는 능력이 2배로 증가합니다.]

패시브 덕분일까.

그동안의 지식이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이게 내 한계인가?'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며 콜폰을 들었다.

이젠 어쩔 수 없다.

박용일 교수에게 SOS를 청하는 수밖에…….

그런데 번호를 누르는 순간 묘안이 뇌리를 스쳤다.

등줄기에 흐르는 짜릿한 전율.

이거라면 환자를 살릴 수 있겠다 싶었다.

"교수님. 밤늦게 죄송합니다. 응급실에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왔는데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최기석은 통화를 연결하고 환자의 상태를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노티가 끝났음에도 박용일이 침묵을 지켰다.

그 역시 해결책을 쉽게 떠올리지는 못했다.

"교수님. 제가 생각해 본 게 있는데. 혹시 환자에게 에크모를 사용해도 될까요?"

[에크모?]

"네. 지금은 그게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기석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다른 말로는 체외막형 산소장치라 불리는 기기다.

에크모의 역할은 환자의 몸에서 혈액을 빼낸 뒤 산소화를 시켜서 다시 환자의 몸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흐음……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재 환자의 폐 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에크모를 이용해서 환자의 폐를 쉬게 해 준다면 자발순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크모 쓸 줄은 알아?]

"알고 있…… 아닙니다. 민 선생 콜 해서 같이 설치하겠습니다."

최기석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과거의 그는 레지 3년 차였지만 지금은 레지던트 1년 차다.

그것도 1년 차로 근무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출내기다.

에크모 사용법을 모르는 게 정상이다.

[네 말대로 에크모 연결한 다음에 지켜보자. 혹시라도 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다시 연락해.]

"네.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보호자들에게 설명했다.

에크모가 필요하다는 것과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환자를 중환자실로 이동시켰다.

에크모 작동에 필요한 세팅을 하는 도중 민주혁이 피로에 찌든 얼굴로 그의 곁에 섰다.

"권 교수님 논문 정리 아직 안 끝났죠?"

"에휴~ 이번 주면 어찌어찌 마무리될 것 같다. 근데 이 환자가 에크모 달 환자야?"

"네. 기계 환기를 하고 있는데도 저산소혈증이 와서요."

"하여간 네 손이 탄 환자치고 얌전한 환자가 없다."

민주혁이 에크모 기계 옆에 서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이 레지던트 첫 교육이네? 지금부터 에크모 사용법 알려 줄 테니까 설렁설렁 듣지 말고 머릿속에 콱 박아 둬. 알았어?"

"네."

"일단 기계를 만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회로가 막히는 것과 혈전증을 방지하기 위해 환자에게 헤파린(항응고제)를 투여하는 거지."

"미리 재 놨습니다."

최기석은 드레싱 카트 위에 있는 주사기를 가리켰다.

"제법인데? 그럼 헤파린 IV(정맥주사)로 놓고 기계 세팅하자."

"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러세요?"

"설마 이것까지 네가 다 해 놨냐?"

민주혁이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다.

최기석의 사전 세팅으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본래는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에크모 사용법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제아무리 교수들한테 인정을 받아도 최기석은 아직 레지 1년 차라는 것을, 배울 것이 까마득하게 많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기석은 이미 사전 세팅을 끝내 놨다.

"네. 선배 오기 전에 매뉴얼 보고 맞춰봤어요."

"그렇단 말이지?"

민주혁은 당황함을 감추며 세팅을 세세하게 살폈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오늘은 선배의 위엄을 챙기는 날로 정했으니까.

'이 새끼.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민주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도관의 유속과 관련된 ECMO flow, Cardiac index을 비롯한 산화기와 모니터 세팅이 그야말로 완벽했다. 심지어 단순하게 매뉴얼만 따라한 것도 아니다.

환자의 상태를 고려한 세팅이다.

"어때요? 선배?"

"흠흠. 처음치고는 잘했네. 이제 도관삽입이다."

"도관도 제가 넣어 봐도 될까요?"

"한번 해 봐."

민주혁의 허락에 최기석은 미리 챙겨 놓은 도관을 바라봤다.

에크모에 필요한 것은 seldinger 기법.

캐뉼러(도관)를 혈관 내에 삽입하고 천자침이 있는 와이어만 제거해 주는 처치다. 순환기내과에서 스텐트 삽입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스으으으윽.

최기석은 천자할 부위를 넓게 소독한 후 처치에 나섰다.

푸우우욱!

가장 먼저 우측 넓적다리정맥에 캐뉼러를 꽂은 후 하대정맥(하반신에서 오는 정맥을 우심방에 흘러 들어가게 하는 정맥)에 캐뉼러를 위치시켰다.

그 다음으로 캐뉼러를 우측 목 정맥을 통해 우심방에 위치시켰다.

포터블 엑스레이로 촬영한 결과 양쪽 캐뉼러가 전부 정상적인 자리에 위치했다.

"선배. 이제 에크모 돌려도 될 것 같은데요?"

"어? 그래. 돌리자."

드르르르륵.

펌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에크모가 가동됐다.

최기석과 민주혁은 환자와 에크모를 번갈아 응시하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크모 설치는 성공적이다.

"우와. 최 선생님 대단해요."

외과 중환자실 책임간호사 양미향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정도면 에크모 혼자서 돌린 건데. 어떻게 매뉴얼만 보고 이럴 수 있어요?"

"인턴 때 지방에 파견 가서 에크모 쓰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그때 메모를 잘 했죠."

"한 번 보고 배웠다고요? 대박. 그럴 수 있나?

양미향이 혀를 찼다.

"혹시 여기 있는 민 선생님이 에크모 처음 달 때 어땠는지 알아요?"

"흠흠…… 양 선생님.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는 것 같은데."

민주혁이 양미향에게 눈치를 줬다.

"혹시나 뒷이야기 듣고 싶으면 나중에 말해요."

양미향은 끝까지 장난스럽게 한마디 하고 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처치도 끝났겠다. 오랜만에 커피나 한잔 빨까?"

"네."

최기석은 민주혁과 중환자실을 나가던 도중 뒤로 돌아 T.

A 환자를 응시했다.

문득 아까 보호자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 제발 우리 어머니 좀 살려주세요. 이건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란 말이에요!]

"선배. 잠깐만요."

최기석은 스테이션에 들러 책임간호사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 * *

다음 날 아침, 아지트.

최기석은 집도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CABG(관상동맥우회술)를 복습하는 중이다. 한국흉부외과협회 부협회장 박순재의 수술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스으으윽.

메스로 조심스럽게 내흉동맥을 떼어 냈다. 그리고 떼어 낸 내흉동맥을 이용해 협착이 있다고 가정한 좌전하행동맥에 우회로를 만들어 나갔다.

계속되는 혼자만의 치열한 사투.

찰칵!

시저로 봉합사를 끊으면서 수술은 끝났다.

띠링!

[난 양손잡이야 스킬이 Lv.2로 상승했습니다. 특수효과 능수능란이 개방됩니다.]

[난 양손잡이야 Lv.2]

- 레벨이 올라갈수록 양손의 처치 속도와 정확도가 상승합니다.

- 최대 5레벨까지 성장합니다.

- 능수능란: 장기간의 처치에도 정확도 및 속도의 감소폭이 줄어듭니다. 손 떨림이 1.5배 감소합니다.

상태창을 확인한 최기석은 미소를 지으며 뒷정리를 마쳤다.

아지트를 떠나 찾은 곳은 VIP실이다.

박순재는 항상 이 시간쯤에 일어났기에 찾아가는 것이 큰 실례가 아니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부협회장님."

최기석의 인사에 박순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부터 수술 연습했어요?"

"그걸 어떻게……."

"피 냄새가 나니까요. 이른 아침부터 연습하는 걸 보니까 확실히 송 교수 제자답네요."

박순재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입을 열었다.

"주제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봐요."

"저는 아직도 부협회장님이 윤 교수에게 수술을 부탁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부협회장님이라면 윤 교수가 큰 부담을 느끼리라는 것을 충분히 아실 텐데……."

"알다마다요."

박순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떤 의사가 한때 지도교수에게 메스 대는 걸 좋아하겠습니까? 다만……."

"……."

"의사의 마음과 환자의 마음은 다른 법이에요."

"의사의 마음과 환자의 마음이요?"

"그래요. 최 선생도 이 기회에 잘 알아둬요."

박순재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의사 입장이라면 윤 교수에게 지인 수술하라는 소리는 안 할 겁니다. 그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 알고 아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난 환자예요."

"……."

"환자는 실력 있는 의사에게 진료받기를 원합니다. 어쩔 수 없어요."

박순재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최기석은 뒤늦게 알 수 있었다.

박순재가 의사로서의 마음과 환자로서의 마음, 두 가지 상충된 마음속에서 큰 고민을 해 왔음을.

"수술 방법이 변경됐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들었어요. 생각보다 배짱 있는 선택을 했더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본래 박순재의 수술은 통상적인 CABG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윤지혜는 이틀 전에 수술 방법을 바꿨다.

MIDCAB(Minimal Invasive Direct Coronary Artery Bypass).

이른바 최소침습 관상동맥 우회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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