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6)
보통 CABG는 가슴을 가르고 흉골을 절개한 후 수술을 펼친다. 하지만 MIDCAB은 왼쪽 가슴의 갈비뼈 사이를 일부만 절제한다.
수술 후 흉터가 작으며 환자의 회복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시야 확보가 어려워 수술 난이도는 한층 올라간다.
박순재가 윤지혜에게 배짱이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저는 이만 병동에 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바쁜 사람 너무 오래 붙잡았네요."
"아닙니다."
최기석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VIP실을 빠져나왔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중환자실.
가장 먼저 살핀 환자는 식도협착으로 치료 중인 이지애다.
이지애는 오늘도 생기 없는 눈동자로 최기석을 빤히 쳐다봤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까 힘들지?"
"……."
"조금만 참아. 상태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일주일 정도 있다가 일반 병동으로 보내 줄게. 그때부터는 죽 같은 것도 먹을 수 있을 거야."
최기석의 말에 이지애가 입술을 움직였다.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지애야, 뭐라고?
처음으로 보인 반응이 반가워서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신경 꺼."
희미하면서 강렬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최기석은 상처를 받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허리를 폈다.
"혼자 있고 싶다는 거지? 알았다."
이지애의 상태를 체크한 후 고정옥이 있는 침상을 찾았다.
고정옥은 에크모를 착용한 채 고이 잠들어 있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상태는 여전히 응급, 경과는 불량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PaO2(동맥혈압의 산소분압)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이 페이스만 유지해도 나흘 안에는 자발순환을 할 수 있으리라.
"선생님. 어제 면회 때 별일 없었어요?"
최기석은 스테이션으로 이동해 윤소라 간호사에게 말을 걸었다.
"말도 마세요. 눈 찢어진 사람 못 들어오게 하느라 혼났어요. 나중에는 강제로 들어오려고 해서 보안까지 불렀다고요."
윤소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피곤하겠지만 계속 신경 좀 써 주세요. 제가 나중에 야식 제대로 쏠게요."
"후후.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런데 최 선생님. 그 사람 들여보내 줘도 되지 않나요? 거의 남편 같은 사람이라고 하던데……."
"절대로 안 됩니다."
최기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윤소라가 말한 사람은 바로 김용민이다.
환자 자제들의 말에 따르면 김용민은 고정옥의 교통사고를 사주한 장본인이다.
막대한 생명보험금을 타기 위해서 말이다.
최기석도 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기에 일부러 그의 면회를 막았다. 그가 면회 도중 엄한 짓을 하고 그 결과로 환자가 죽는다면 낭패다.
최기석은 윤소라에게 한 번 더 당부하고 병동으로 향했다.
타다다다닥.
회의실로 들어가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수술 스케줄을 짜기 전에 환자 처방을 입력하는 중이다.
한참 처방을 입력하다가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최미순의 차트가 떠오른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폐암 확진은 받았지만 정확한 스테이지(진행단계)와 암 조직을 파악하기 위해 미세침 흡임검사를 할 예정이다.
부디 결과가 심각하지 않기를…….
최기석은 오더를 내리고 수술실에 전화해서 바쁘게 수술 스케줄을 잡았다.
드르르르륵.
회의실 문이 열리고 윤지혜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안녕."
윤지혜는 평소처럼 손을 들어 인사하고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슬쩍 얼굴을 훔쳐보니 평소보다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눈 밑에 다크서클도 있었다.
최기석은 혹시나 해서 그녀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스승을 집도한다는 부담감 때문일까.
체력: 3.5
외과적 처치: 6.5(-1)
체력이 썩 좋지 못했고 외과적 처치는 한 단계 떨어졌다.
"괜찮으시면 내려가서 커피라도 한 잔 드실래요? 아직 여유는 있는 것 같은데."
"그럴까?"
두 사람은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텅 비었던 엘리베이터가 매 층마다 서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저기요.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갑시다."
"우리 빨리 내려가야 돼요."
엘리베이터는 금세 아비규환이 되었다.
'하필…….'
최기석은 윤지혜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폐소 공포증의 전조증상이 나타나는 모양이다.
[폭군의 강림을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민첩성과 근력이 상승합니다.]
"교수님. 이쪽으로."
스킬을 사용한 후 윤지혜가 사각지대에 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 앞에 서서 두 팔로 엘리베이터 벽면을 힘차게 밀었다.
윤지혜가 답답하지 않게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다.
띠이이잉!
[4층입니다.]
안내음과 더불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포화상태이거늘 몸집이 커다란 중년 여성이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썼다.
"안으로 들어가 봐요. 나 바쁘단 말이에요!"
"어허. 밀지 좀 말아요."
"아주머니. 더 못 타니까 다음 거 타세요."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볼멘소리를 했지만 여성은 끝끝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해진 엘리베이터 안.
하지만 그 속에서 윤지혜만은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최기석이 괴력으로 공간을 만들었기에.
"교수님. 좀 괜찮으세요? 못 참으시겠으면 그냥 다음 층에서 내릴게요."
"괘…… 괜찮아."
윤지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수줍게 대답했다.
최기석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비록 엘리베이터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지만 두 사람만은 특별한 공간을 가진 듯했다.
"후아…… 살았다."
"오늘은 왜 이렇게 붐비는 거야?"
두 사람은 투덜거리는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1층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 보이세요."
최기석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흉부외과 스태프 중에 컨디션 좋은 사람 있어?"
"그거야 그렇지만……."
"오늘 수술,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잘할 자신 있으니까."
윤지혜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겠지만 최기석은 달랐다.
윤지혜가 억지로 센 척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저도 교수님 믿어요. 오죽하면 한국흉부외과협회 부협회장님이 수술을 받으러 왔겠어요."
최기석은 말을 하며 스킬을 사용했다.
[격려 스킬을 사용합니다. 대상의 면역력, 저항력, 재생력, 자신감이 대폭 상승합니다. 믿음의 사슬 관계를 가진 대상에게 특수효과 기백이 부여됩니다.]
[기백: 처치 속도와 처치 정확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알림을 확인한 최기석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윤지혜와 카페를 찾은 보람이 있었다.
기백이라면 지금 한 단계 떨어진 그녀의 외과적 처치를 보완해 줄 수 있으리라.
지이이잉.
때마침 진동벨이 울렸다.
최기석은 커피와 토스트를 챙겨서 자리로 돌아왔다.
"이것도 같이 드세요. 아침 안 드시고 나왔죠?"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배곯는 소리 들었거든요."
최기석의 말에 윤지혜의 볼이 잘 익은 복숭아 빛으로 물들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수술도 잘하죠."
"……고마워."
윤지혜는 식사를 끝낸 후 최기석을 빤히 쳐다봤다.
기분이 묘했다.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수술에 대한 부담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녀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최근 들어 최기석에게 기대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갔다.
그 사람을 잃은 후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꿋꿋이 혼자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는데…….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 아니. 그냥."
윤지혜는 최기석의 시선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근데 넌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 줘?"
"……."
"의국 스태프 중에 나한테 신경 쓰는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
"아…… 그거요?"
최기석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 윤지혜를 보고 있으면 과거 의국에서 방황하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졌다.
철저한 외톨이.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았기에 윤지혜를 가만 둘 수 없었다.
"사실은요……."
"사실은?"
"윤 교수님이 제 첫사랑을 닮았거든요."
최기석이 장난스럽게 말을 지어내자 윤지혜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진심이야?"
"네."
"첫사랑하고는 잘 안 됐나 봐?"
"짝사랑으로 끝났죠. 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아. 맺어지는 건 더더욱 어렵고."
윤지혜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갈까?"
"네."
두 사람은 대화를 마치고 병동으로 돌아왔다.
이어지는 흉부외과 아침 회의.
입원환자 보고와 수술환자 브리핑, 이영호의 케이스 발표를 끝으로 회의는 무탈하게 끝났다.
"회진 돌기 전에 몇 가지 할 말이 있어요."
조지환이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분위기를 잡았다.
"먼저 윤 교수."
"네, 과장님."
"오늘 부협회장님에게 MIDCAB 하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어제 저녁에 한국흉부외과에서 연락이 왔어요. 몇몇 임원들이 수술 참관을 하고 싶다는군요."
"참관이요?"
윤지혜가 놀라서 되물었다.
"그래요. 이 기회에 윤 교수의 대동맥 수술 실력을 마음껏 뽐내 봐요. 하지만……."
"……."
"만약에라도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자랑과 망신은 한 끗 차이니까요."
조지환이 윤지혜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앞서 한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 이것은 명백한 협박이자 압력이다.
"그리고…… 최 선생."
"네."
"어제 호흡부전으로 온 환자에게 에크모를 썼죠?"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기계 환기로 호흡이 돌아오지 않아서 박 교수에게 콜 한 후에 에크모를 달았습니다."
"혹시 에크모를 사용할 때 주의사항이 뭔지 알아요?"
"중추신경계나 폐에 부담이 갈 수 있기에 세심하게 환자를 살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니, 아니. 그런 거 말고."
조지환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에크모를 쓸 때 주의 사항은 바로 수가에요."
"수가라면……."
"에크모를 쓰고 환자가 죽으면 공단에서 보험 수가를 삭감합니다. 그러니까 환자를 잘.
보.
고. 썼으면 좋겠군요."
조지환이 몇 마디에 힘을 실었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럼 회의는 이걸로 마치고 회진 갑시다."
조지환이 회의실을 떠나고 스태프들이 뒤를 따랐다.
* * *
"이제 살 것 같네."
최기석은 혼자 중얼거리며 휴게실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커피로 목을 축이며 벽걸이 시계를 응시했다.
현재 시각 오후 1시.
앞으로 두 시간 후에 박순재의 MIDCAB 수술이 있다.
"재수도 없지."
최기석의 미간이 구겨졌다.
하필이면 한국흉부외과 협회원들이 참관을 오기로 했다.
이로써 윤지혜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말았다.
부디 별 탈 없이 수술이 끝나야 할 텐데…….
지이이잉.
콜폰이 상념을 방해했다.
[선생님. 여기 응급실인데요. 지금 바로 별관 옥상으로 가 보세요.]
"옥상이요?"
[십 분 정도 있다가 닥터 헬기 와요. 아무래도 흉부외과에서 먼저 봐야 할 환자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서둘러 별관 옥상으로 달렸다.
옥상에 도착하니 응급실 인원과 스트레쳐카를 비롯한 처치 도구가 대기 중이다.
최기석은 헬기를 기다리며 평소답지 않게 다리를 떨었다.
초조했다.
만약 이송 온 환자에게 응급수술을 한다면 그가 보조로 들어갈 확률이 농후하다. 그 말인즉 윤지혜의 MIDCAB 수술 보조는 물 건너간다는 뜻이다.
"저기예요!"
한 스태프가 하늘을 가리켰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헬기가 굉음을 뿌리며 날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