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 귀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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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귀환(2)
2022.06.28.
귀환 후, 일주일.
나와 지수의 시간은 무척 빠르게 지나갔다.
우선 나의 귀환을 사실을 주변에 알려야 했으며, 지수와 함께 결혼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다 보니 여간 바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날짜는 언제가 좋을까요? 다음 달? 아니면 역시 이번 달에 바로 할까요?”
내 옆에 앉아 달력을 바라보는 지수의 말에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전에도 한번 들었던 말이었지만, 지수의 행동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가족이라.’
설마 내게 그런 게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내게 있어 가족이란 솔직히 미지의 것이었다.
부모님은 어린 시절 돌아가셨고, 사촌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컸으니까.
그들에게 있어 나는 언제나 애물단지였고, 그렇기에 언제나 밖으로 나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하교 후 PC방에 다니는 게 유일한 낙이었을 정도니까.
아마 내가 게임에 빠진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고 딱히 불행했냐면 그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고등학교 졸업까진 제대로 돌봐주었고, 이후엔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떻게든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친구들을 사귈 시간은 없던 터라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냈으며, 대학의 컴퓨터실을 이용하게 된 이후엔 돈을 더 아낄 수 있었지.
본격적으로 지수와 만난 것도 그때고.
“무슨 생각해요?”
가만히 지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 내 시선을 느꼈는지 지수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냥, 너와 만나지 않았다면 정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최악까지 갔을 거라 생각해서.”
“설마요.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오빠가 혼자였던 건 저 때문이기도 해요. 은근히 제가 견제했거든요.”
말만 들으면 귀엽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지수의 성격을 생각하면 대체 어떤 식으로 견제했을지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설마 그때부터 주변 인물들을 조지고 다닌 건 아니겠지.
“후후, 상상에 맡길게요.”
생긋 웃는 지수의 미소는 참 어여뻤지만, 동시에 섬뜩하기까지 했다.
대체로 내게 숨기는 게 없는 지수지만 가끔 이런 건 말끔히 감추고는 한다.
“그러고 보니 오빠.”
“응?”
“광기의 마왕 세계에서 또 다른 저를 만났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지수에게 이 세계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내가 어째서 돌아올 수 있었으며, 어떤 방법을 사용했던 건지.
그리고 다른 세계에서 겪었던 일과, 그곳에서만 볼 수 있었던 달라진 인물들에 대해.
의외로 지수는 그 이야기들에 무척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제 딸도 있었다고 했죠?”
“응, 수진이라고 굉장히 순한 아이였어.”
어쩐지 묘한 웃음을 흘릴 때가 있었지만 아마 착각일 것이다.
하지만 지수는 그런 내 이야기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기쁘면서도 참 난감한 것 같은 얼굴이라고 할까.
“역시 제 딸이네요…….”
“뭐가?”
“후후, 나중에 알게 될 거예요. 어차피 멀지 않은 날에 태어나게 될 거잖아요?”
보통은 반드시 수진이가 태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강한 운명의 섭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민수아도 그렇게 말했었지.’
광기의 마왕에서 보았던 두 딸은, 지수와 이드라를 아내로 삼을 시 반드시 재회하게 된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말이다.
“두 딸이라…… 아.”
광기의 마왕 세계에서 보았던 두 딸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무심코 혼잣말을 내뱉고 말았다.
슬그머니 시선을 지수에게 돌리자, 의외로 지수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설마 못 들은 건가?
그렇다면야 다행이다만.
“수연이라고 했죠.”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수가 내 말을 놓칠 리가 없었다.
“이드라의 딸이라…… 아, 그러고 보니 이드라와는 요즘 어떤가요?”
의외로 지수의 어조는 지극히 평온했다.
이전처럼 ‘그 여자’라고 호칭하던 것도 상대적으로 줄은 느낌이다.
심지어 먼저 이드라의 행방에 대해 묻다니.
이전의 지수라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드라라면…….”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딱히 캥기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나도 몰라.”
나는 최근 이드라를 만나지 못했다.
바쁘거나 위치를 몰라서가 아니다.
어째선지 이드라가 나와 만나는 걸 꺼려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착각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추측은 점점 현실성을 띄기 시작했다.
이드라가 나를 피하고 있었다.
나로선 무척 생소한 일이었다. 언제나 나를 먼저 찾아오던 건 이드라 쪽이었으니까.
“그런가요.”
지수는 여전히 평온한 어조로 대답했다.
평소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 텐데도, 지수는 그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도리어 내가 당황할 정도였다.
잠시 말이 없던 지수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찾지 않으셔도 되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수는 그것도 예상한 것처럼 차분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빚이 있어요.”
“……어?”
갑작스런 지수의 말에 의아해졌다.
설마 여기서 그런 말을 꺼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 여자에게 빚지고 넘어가고 싶지는 않거든요.”
한숨을 쉬며 지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과거와 달리 지수는 ‘진심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잦았다.
아마 인간이었을 때는 익히지 못했던 감정을 도리어 악마가 되며 배워가는 것 같았다.
“그러니…….”
지수는 뒷말을 더 이상 덧붙이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입에 담지 않았던 것.
그것을 지수가 지금 언급한 것이다.
“알겠어.”
지수가 빚을 진 대상이 누구인가.
그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그것을 설마 지금 지수가 언급할 줄은 몰랐다.
‘……좋아.’
언제까지 등을 떠밀어주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이것을 매듭지어야 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으니까.
***
“이드라?”
처음 디어사이드 길드의 건물에 도착했을 때,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게임’은 끝났기에, 기본적으로 이 건물에 드나드는 인간은 극히 소수다.
하지만 아예 없지는 않다.
어쨌든 이드라가 줄곧 지구를 관리해야 했고, ‘게임’과는 달랐으나 변한 세계를 조율할 존재들이 필요했으니까.
거기엔 인간도 있고, 신도 존재한다.
“뭐지?”
근데 뭔가 이상했다.
건물의 구조가 이상하게 달라져 있었다.
간단히 말해, 이드라가 머물던 방이 사라졌다.
더불어 내 방도.
건물 내부를 훑어보던 나는, 결국 지나가던 사원 하나를 붙잡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드라의 방은 어디로 사라진 겁니까?”
“예?”
“이드라의 방은 어디 있냐고요.”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묻자 그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이드라……라는 분이 누구시죠?”
그는 진심으로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
이번엔 인간이 아닌 신을 붙잡고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신이고 인간이고 이드라를 기억하지 못했다.
초조해진 마음에 디어사이드 건물 내부를 돌아다녔으나 이드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드라의 방도, 내가 머물던 방도 전부 사라져 있었다.
마치 현실이 조작된 것처럼.
“이드라, 너 설마.”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으나 고개를 흔들었다.
이드라는 멋대로 그런 일을 벌일 녀석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벌일 만한 다른 존재는 없다.
현재 가장 거대한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지구에 이 정도로 현실을 조작할 수 있는 자는 이드라 본인뿐이다.
‘아직 범위가 멀리 진행된 건 아니야.’
디어사이드 건물의 인근만 적용되고 있었다.
같은 사람도 일정 범위 밖으로 나가게 되면 다시 이드라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대로 둔다면…….’
그렇다고 다행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현실 조작을 일으킨 게 이드라라면 녀석이 마음먹는 순간 우주의 법칙이 달라질 것이다.
열쇠를 다룰 수 있는 지수나 린이 아닌 한 저항하는 것도 불가능할 테지.
그야 이드라의 육신은 나와 하나.
즉, 아자토스가 가졌던 힘의 편린을 다룰 수 있으니까.
하지만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일까.
이건 마치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다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 그럴 수도 있어.”
여태 내 태도를 본다면 이드라가 그런 마음을 먹는 것도 가능했다.
내가 지수와 결혼을 했으니, 이드라의 입장에선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을지도 모른다.
반드시 ‘광기의 마왕’ 엔딩처럼 둘이 함께 사는 것이 답은 아니니까.
그 이드라와, 나와 함께한 이드라는 다르다.
그러니 내리는 결론도 같을 리가 없다.
“하지만 먼저 사과할게.”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나에게 있어 이드라는 더 소중했던 모양이다.
분명 지수만큼.
지수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이드라가 없는 미래도 생각할 수 없다.
이기적인 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수, 그리고 이드라와 계속 함께하고 싶다.
나를 위해 모든 걸 걸고 희생해온 둘을, 행복하게 할 의무가 내겐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너를 놓치고 싶은 생각이 없나봐.”
눈으로 찾을 수 없다면, 근원을 찾으면 된다.
나와 이드라의 연결고리를 쫓아가면 된다.
그렇다면 느낄 수 없어도 반드시 닿을 수밖에 없다.
그녀는 나의 신이자, 나의 아바타였으니까.
***
‘어둡구나.’
이드라는 의문을 가졌다.
눈을 뜨니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나 어두운 장소에 있는 건지.
‘걱정할 텐데…….’
자신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어째선지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일까.’
그저 웅크리고, 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 고독하게 있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아플 것만 같았다.
‘아파?’
아프다니, 외신으로선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고통이란 낯설다.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다.
그건 단순히 육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마음의, 정신의 고통이 더 크다.
‘이상하구나, 나는 분명 행복했을 터인데.’
세한과 다양한 세계를 떠돈 기억을 보았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았다.
단순히 신과 아바타의 관계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도 알았다.
자신이 그에게 마음을 품은 것처럼.
‘그런데 왜…….’
행복했는데, 왜 아픈 걸까.
그와 한지수가 곧 결혼을 하기 때문인가?
하지만 광기의 마왕의 엔딩이 그러했듯, 둘이 함께 사는 미래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그럼 그것도 꽤 즐겁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은 지금 이곳에 있었다.
‘아아, 그래. 그랬지.’
이드라는 어둠 속에서 옅게 웃었다.
그만 잊고 있었지 뭔가.
자신은, 그 아이만큼이나 질투심이 심하고.
강한 독점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걸 바보같이 잊고 있었다.
‘정말, 바보, 바보로구나…….’
이드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어둠은 자신의 마음이자, 이기심의 발로다.
그가 걱정할 걸 알면서도 이 어둠 속에 숨어버린 것이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날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드라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