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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귀환(1) (320/332)


320. 귀환(1)
2022.06.28.


“그거 참 흥미로운 이야기로구나. 이 세계의 ‘나’는 아무래도 방구석폐인이 되어버린 모양이군?”

“이 세계의 나?”

작은 이드라의 중얼거림에 아자젤이 반응했다.

그녀는 힐끗 자신의 곁에 서있는 신자운에게 시선을 준 뒤에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는 마치 당신은 이 세계의 이드라가 아니라는 뜻으로 생각해도 되겠지?”

“흠, 그렇다. 다양한 세계를 거치며 나의 아바타이자, 신과 함께 이곳에 도착했지. 참으로 먼 여정이었도다.”

“……그거 참 이 세계의 이드라가 들으면 복잡한 말이네.”

“복잡하다니, 아아. 그렇군 나의 특성에 대해 모르니 그럴 수도 있구나.”

기가 찬 듯 말을 내뱉으며 살짝 나를 노려보는 아자젤에게 이드라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나 이드라는 꿈의 마녀이며 꿈과 환상을 다룬다. 말하자면 애초에 나는 몽환이라는 개념이 뭉쳐 만들어진 어떠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우리 아버지가 우주적 공포의 체현이라면 말이다.”

“간단히 설명해 줄래?”

“요컨대 나라는 존재는 단 하나라 특정할 수 없다는 뜻이야. 세상에는 무수한 꿈이 존재하며, 나는 그런 꿈에 권화. 이 세계의 나와 내가 만난다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거다. 나는 그런 존재니까.”

“잘 이해는 못하겠지만, 이 세계의 이드라와 하나로 합쳐진다는 뜻이지?”

“음음, 요약하자면 그렇구나. 애초에 이 세계의 ‘나’는 몽환의 세계의 내가 보내 만들어진 ‘나’이니 더더욱 합쳐져도 문제없다.”

“?”

몽상의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모르는 아자젤로선 아리송한 말이었다.

어쨌든 이 세계의 이드라가 계속 방에 틀어박혀 있다는 말을 들으니 계속 신경 쓰였다.

왜 녀석이 그래야 했는지 눈에 뻔히 보였으니까.

‘미안했구나.’

내가 지수를 잃어버렸을 때, 이드라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떠올랐다.

그때 이드라는 지수를 잊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써 나를 보지 않았다.

인간의 감정을 배운 신이란 순수하며 나약하다.

아자토스가 그러했듯, 당연히 이드라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인간에게 한없이 자비로운 그녀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자신이 대신 희생했어야 한다고 자책하며, 미안한 마음에 지수를 차마 만날 수 없었던 거다.

‘빚을 갚으라……고 했던가.’

지수와 이드라에게 진 수많은 빚.

광기의 마왕인 내가 무얼 말하고자 했는지 점점 이해가 되었다.

“김세한.”

여태 잠자코 있던 신자운의 입이 열렸다.

녀석의 태도는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훑어보며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네가 온 건 우리만 알고 있는 건가?”

“……그런데? 왜.”

“괜찮군.”

뭐가 괜찮다는 건데.

생각해 보면 이 녀석도 정상은 아니다.

하기야 정상이고서야 저 나태의 악마를 사랑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지.

“이미 들었을 테지만, 내일은 나와 아자젤의 결혼식이다.”

“……아, 그래?”

솔직히 처음 들었지만, 저런 아자젤의 복장을 보고도 모를 리가 없었다.

현재 아자젤이 입고 있는 새하얀 드레스는 누가 봐도 신부의 웨딩드레스였으니까.

“내가 자리를 마련해 주지.”

신자운은 제법 든든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너의 귀환을 가장 멋지게 환영해 주마.”

무척 든든한 말이었지만, 어쩐지 나는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

신자운이 말한 멋진 귀환이란 사실 대단한 건 아니었다.

결혼식이 끝났을 때, 부케를 지수에게 건네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부케를 받고 의아해하는 지수에게 내가 짜잔, 하고 나타나는 거였지.

‘그래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나답지 않게 깔끔한 양복을 서 있을 때, 이렇게 초조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불안했다.

과연 지수가 돌아온 나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런 불안을 애써 참으며 결혼식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나고, 지수에게 부케가 전달된 순간.

나는 예식장의 입구에 발을 내디뎠다.

“미안하다, 내가 조금, 아니 많이 늦었네.”

지수에게 있어선 3년.

내게 있어선 10년이 넘는 시간.

이루어진 꿈의 세계와 광기의 마왕 등의 세계를 거쳐 겨우 이곳에 도달했다.

최대한 나의 세계와 가까운 시간에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3년이 걸려버렸다.

이 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시간대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사정일 뿐.

지수는 그저 하염없이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세, 한 오빠.”

지수와 재회하기 전까지 느꼈던 수많은 불안은 눈물을 흘리는 지수를 보자 깔끔하게 사라졌다.

나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걸어 울고 있는 지수를 껴안았다.

“돌아올 줄 알았어요.”

지수는 내 품에 파고들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의 동요가 나타나지 않는 지수였지만, 이번만큼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으니까.

“미안해, 늦어서.”

“괜찮아요.”

지수는 내 허리춤을 꽉 끌어안았다.

어쩐지 그 힘에 한층 힘이 실리는 기분이 들었다 싶은 순간, 지수의 눈이 묘하게 붉은 기가 감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만.”

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지수는 천천히 나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설마 저거랑 계속 같이 계셨을 줄은 몰랐지만요.”

“…….”

지수가 말한 ‘저거’가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내 바로 뒤에 팔짱을 끼고 서있는 이드라일 테니까.

정확히는 ‘이루어진 꿈’의 세계에서부터 함께한 이드라.

“오빠.”

“응.”

“우리, 오랜만에 같이 대화 좀 해볼까요?”

물론 내게 선택지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

두 명의 이드라는, 다행히 라고 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다.

처음 이 세계에 돌아왔을 때 이드라가 했던 것과 같았다.

만약 계속 두 명으로 있었다면 지금보다 배는 지수의 시선이 매서웠을 것이다.

“으, 으음, 머리가 복잡하구나. 우선 기억을 정리하고 돌아오겠다.”

합쳐진 이드라의 얼굴은 어쩐지 붉었다.

묘한 눈으로 잠시 본 녀석은 헛기침을 하며 주춤주춤 나와 떨어져 사라졌다.

아마 갑자기 방대한 정보가 들어온 탓에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던 거겠지.

“…….”

다만 문제는, 덕분에 이 방에는 나와 지수 단둘만이 남았다는 점이다.

다른 일행들은 우리에게 둘 만의 시간을 가지라며 배려해 줬기 때문이다.

꿀꺽.

방 안에는 내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들렸다.

‘본래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어쨌든 나는 긴 시간을 이드라와 함께 있었다.

지수의 입장에선 분명 화를 낼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수는 그저 찻잔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저기…….”

“사정은 이해했어요.”

참다못한 내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운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지수가 답했다.

“결국 이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선 저 여자의 도움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그래?”

지수의 어조에 담긴 감정은 지극히 고요했다.

특별히 분노하거나, 눈이 붉게 변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하지만, 그래도 질투나네요. 변한 오빠를 계속 독차지하고 있었다는 게.”

“응?”

옅은 한숨을 쉬며 말하는 지수의 말에 내가 두 눈을 깜박였다.

예상보다 지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으니까.

“……화난 거 아니었어?”

“났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저한테 돌아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는데.”

지수는 드물게 토라진 감정을 나타내며 나를 새치름하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정말 짜증나지만, 전 저 여자를 알아요. 이드라는 언제나 절 먼저 생각해 주죠. 제가 먼저 손을 뻗지 않는다면 저쪽은 잠자코 기다릴 거예요. 오빠와 기억을 공유한 저 여자가, 제가 없다고 먼저 이상한 짓을 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예상 외였다.

지수는 생각보다 이드라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무척 싫어한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광기의 마왕 세계에선 죽이 잘 맞았지.’

의외로 상성이 괜찮은 건가?

나는 언제나 지수가 이드라를 푹푹 찌르던 것만 봤던 터라, 둘의 사이좋은 모습이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한지수.”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 지수에게 내밀었다.

이미르를 쓰러트리기 위해 지수에게 빌렸던 약혼반지였다.

지수는 그걸 받아들고는 말없이 응시했다.

“이제야 뭔가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에요.”

“나도야.”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언제나 끼고 있던 반지가 사라진 건 조금 아쉬웠지만,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갔을 뿐이다.

“그동안, 저는 모든 게 무미건조했어요.”

지수는 나를 기다리는 3년 동안 최선을 다해 일했다.

하지만 어떤 일에도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제가 느낀 건 언제나 상실감뿐이었죠.”

처음에는 부모님.

하지만 부모님은 지수를 미워했기에 놔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나.

모두를 구하기 위해 사라진 나를, 지수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저는 약해요. 아주 약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많은 걸 볼 수 없어요.”

다른 이가 듣는다면 그런 지수의 말에 의아함을 표하리라.

지수는 마왕에 걸맞은 단단한 정신과 육신을 지녔으며, 이 세계에서 대항할 자는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지수는 약하다.

모두가 강력하다고 생각하는 지수의 정신력은, 사실 아주 실낱과도 같다.

나는 그걸 알기에, 내가 없는 시간동안 자신의 의무를 져버리지 않고 충실이 이행해온 지수가 그저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힘들었겠네.”

“네. 하지만 오빠가 돌아왔을 때, 엉망이면 싫어할 것 같았거든요.”

“이제 착한 아이는 될 필요가 없다고 했잖아.”

“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요?”

싱긋 웃으며 답하는 지수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그건 잘못 된 게 아니었다.

“확실히 제 특성은 좀 비틀려 있었던 건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게 나쁜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는걸요.”

“그래, 맞아.”

“물론, 전처럼 항상 착한 아이가 될 수는 없을지도 몰라요. 가끔은 나쁜 아이가 될 때도 있겠죠.”

지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내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사뿐히 머리를 기댔다.

“그래도, 걱정 마세요.”

“…….”

“저는 항상 오빠의 곁에 있을 테니.”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뭐라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에서 울렁이며,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오빠.”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수는 맑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이제, 가족이 될까요?”

그건 우리에게 있어, 정말 많은 것이 담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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