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300화 (300/332)

# 300

300. 경계 밖의 세계(3)

혼돈이 소용돌이치는 외우주의 중심.

그곳에 존재하는 아자토스의 옥좌는 감히 어떤 존재의 침입도 불허하는 비경이었다.

정확히는 ‘비경이었었다.’라는 말이 옳겠군.

“외신의 기척이 한둘이 아닌데?”

보라색과 남색의 빛이 섞여 아지랑이처럼 하늘이 흔들렸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은 굳이 집중할 필요도 없이 수많은 외신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정도면 거의 외신 특가세일이구만.”

그 사나운 벨제부브조차 팔짱을 끼고 헛웃음을 지을 정도.

이런 상황에서 태연한 건 오직 루시퍼와 지수뿐이었다.

그리고 가장 얼어 있는 이라고 한다면 단연 린이었다.

게이트를 통과하여 이곳에 도착했던 시점부터 린은 줄곧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네?”

“아자토스를 쓰러트리면 더 이상 이런 놈들과 싸울 일은 없을 거다.”

문득 로키가 했던 ‘옵저버와 같은 장치는 필요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분명 시스템을 부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 린이 싸울 만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네!”

“좋아.”

내가 씩 웃자, 린도 그런 내 웃음을 따라서 웃었다.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나쁘지 않았다.

“그럼 이드라, 이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면 되지?”

“쉿.”

내 어깨 위로 작은 인형과 같은 크기의 이드라가 둥실 떠올랐다.

게이트를 여는 동시와 나와 합신을 한 것이다.

그녀는 입술에 검지를 살며시 가져다대며 주변을 침묵시켰다.

“이 기척은 그로스다.”

“그로스?”

“붉은 외눈을 가진 아우터갓이지. 녀석의 눈에 비치는 존재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이상 반드시 파멸하게 되는 힘을 지녔다. 인간과 같은 생명체에겐 천적이나 마찬가지지. 다만…….”

이드라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이상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놈의 본체는 분명 하나의 행성인 터라, 이 땅에 발을 디딜 수 없을 터인데 이상하구나.”

확실히 묘한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혼돈의 옥좌가 거대한 별이라지만, 외신의 본체는 그 정도 크기를 가진 놈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느껴지는 외신의 기척은 하나나 둘이 아니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네요.”

무덤덤한 지수가 어느 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이들도 그쪽을 바라보자, 붉은 빛이 어른거리며 흔들렸다.

얼핏 보이기는 했지만 저것이 인간의 형상인지는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다.

주변에는 짙은 남색의 독연이 가득 깔려있는 터라 한치 앞도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독연도 지수에게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상태이상 면역 개사기.’

저게 열쇠의 힘인지, 아니면 마왕의 능력인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지수가 가진 능력인지는 모르지만 저게 내 생각에 지수가 가진 최강의 사기 능력이었다.

아무튼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라……. 혹시 다른 외신들도 그런 건가?

스르륵.

나의 그림자에서 작은 까마귀들이 퐁퐁퐁 솟아나며 주변으로 날아갔다.

물론, 그 위에 짙은 환상을 덮어 은폐시킨 건 당연했다.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뭔가 희끄무레한 인영들이 걸어다니는 건 분명해.’

별을 뒤덮은 가공할 신격 탓에 까마귀의 눈으로도 명확히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마 코앞까지 가지 않는 이상 육안으로는 그들을 볼 수 없으리라.

그래도 몇몇의 외신들을 확인한 결과, 죄다 인간의 크기로 줄어든 건 분명해보였다.

그 이유는 대략 짐작할 수는 있었다.

저들에게 인간의 형상을 취하게 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이젠 정말 마음까지 어린애가 된 건가?”

“그게 무슨 소리냐?”

내 혼잣말을 들은 이드라가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무래도 이드라는 본래의 아자토스를 아는 만큼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아주 간단한 이유지. 이건 그냥 단순한 화풀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화풀이라고? 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잖느냐.”

“보통의 아자토스라면 그렇지. 근데 놈은 이제 인간이 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어.”

인간으로 치면 녀석은 지금 갓난아이에 불과했다.

자신의 감정조차 주체 못하는 아이.

현재 놈이 취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 딱 어울리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자기가 본체로 돌아갈 수 없으니, 이곳에 불러 모은 외신들도 인간의 형상으로 만든 것이다.”

“설마, 그런 어이없는 말이…….”

“그렇지 않고서야 외신들이 굳이 익숙하지도 않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행성에 있을 리가 없잖아? 정 별의 크기에 맞도록 사이즈를 줄였다고 해도 그냥 본체의 모습 그대로 하는 편이 낫지, 굳이 인간이 될 필요는 없어.”

“으음.”

이드라는 침통한 얼굴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아버지는…… 아무래도 정말 인간이 되어버린 모양이군.”

그것도 최악의 형태로 말이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아자토스는 단순한 화풀이라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른다.

본체로 돌아갈 필요도 없이, 본래 가지고 있던 힘의 일부만 회복하더라도 대재앙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대화는 거기까지 하죠.”

나지막한 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수의 눈동자는 이미 붉은색의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왔나.’

틴달로스의 사냥개가.

“모서리를 주시해.”

틴달로스의 사냥개는 별것 아닌 괴물 같지만 실제로는 정말 성가신 놈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불사에다가 어떤 시공으로 도망쳐도 반드시 추적해 온다.

녀석들이 가장 기본적인 권능은 ‘모서리로 이동하는 것’.

인간의 시간을 벗어난 장소에서 습격하는 게 놈들의 장기다.

그러니 놈들을 부르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곡선이 아닌 각이진 구석이 필요했다.

바로 그곳이 놈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이며 거주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자토스의 옥좌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이 장소를 은폐한 이후, 몇 개의 기둥을 세워 인공적인 모서리를 만들었다.

“정말 이런 게 통하는 건가?”

신자운은 손에 검은 장갑을 끼며 영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하긴 단순히 외형만 보자면 이런 게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

하지만 이드라의 말에 따르면 틴달로스의 사냥개는 반드시 모서리로 모여든다.

“이 별에는 놈들이 모여들 모서리의 수가 적으니 모서리를 타고 이동하던 놈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을 지나칠 거다.”

그리고 지수의 모습을 볼 때, 이미 몇 마리의 사냥개가 이곳을 지나친 게 분명했다.

우리는 잠자코 이곳에 준비된 열 개의 모서리를 응시했다.

“지금이다!”

이드라가 날카롭게 소리치며 기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모서리가 둥글게 변하며 기둥이 일제히 하늘로 뽑혔다.

“키에에에엑!!”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기괴한 형상의 물체가 튀어나왔다.

반쯤 잘려진 인간의 상체와 같은 형상을 한 괴생명체, 저것이 바로 틴달로스의 사냥개다.

놈들이 사냥개라 불리는 건 개의 형상을 해서가 아니라 사냥개마냥 한번 목표로 한 사냥감을 끈질기게 쫓기 때문이다.

‘하나, 둘, 셋, 넷…… 숫자는 여덟인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우리는 저놈들 중 한 마리만 잡아도 충분했다.

“놈들의 시각에 마주치면, 모든 틴달로스의 사냥개가 이쪽으로 움직일 거다!”

사냥개들이 움직이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외신들도 눈치챌 터.

나는 오른팔을 수평으로 한 사냥개의 눈을 베었고, 린의 검이 머리를 꿰뚫었다.

다른 악마들도 저마다 눈앞에 보이는 사냥개들의 머리를 분쇄하며 제압했다.

“키엑! 키에에엑!!”

하지만 놈들은 머리가 부서지고 눈이 베인다고 멈추는 족속이 아니다.

상처를 단숨에 회복하고 기척이 느껴지는 장소로 시선을 돌리려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지수가 놈들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사라져.”

지수의 머리 위에 있는 검은 왕관이 빛을 발하며 손에 잡힌 사냥개가 가루가 되며 부스러진다. 아무리 틴달로스의 사냥개라고 해도 온전한 열쇠를 지닌 마왕의 힘에는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캬아아아!!”

갑작스럽게 벌어진 동료들의 죽음에 다른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이 기겁하며 다른 모서리로 이동하려했지만 그걸 두고 볼 지수가 아니었다.

여덟 마리 중 일곱 마리의 사냥개가 잿더미로 변하는 것은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음, 그다지 맛은 없군.”

남은 한 마리는 계획대로 벨제부브의 입속으로 깔끔하게 사라졌다.

벨제부브는 썩 좋지 않은 얼굴로 입가에서 바둥거리는 틴달로스 사냥개의 다리를 아드득 씹어 삼켰다.

보기만 해도 솔직히 넘어올 것 같은 모습인지라 린의 얼굴은 단번에 파랗게 질릴 정도였다.

“……어때? 다른 외신들에게서 이상한 기색이 있어?”

“다행히 우리가 움직인 걸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아자토스도?”

“그래.”

확실히 주변에서 특별한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다.

틴달로스 사냥개들에게 일어난 이변을 알았다면 곧바로 움직였을 테니까.

“아무래도 아버지의 힘은 우리 생각보다 더 약해진 모양이구나.”

“우리에겐 좋은 일이지.”

아직까지는 계획대로였다.

“벨제부브, 소화는 다 했나?”

모든 건 벨제부브가 틴달로스 사냥개의 능력을 흡수해 이디크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다. 만약 이걸로 이디크의 위치를 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한 걸음 나아가는 것도 온갖 신경을 기울여야 하리라.

내 걱정스런 우려가 담긴 질문에 벨제부브는 자신만만하게 팔짱을 꼈다.

“흐흐흐, 나를 뭐로 보는 거냐.”

희열에 찬 그 웃음은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이었다.

***

‘제기랄.’

노스 이디크는 욕설을 내뱉으며 어둠으로 뒤덮인 공간 속에 앉아 있었다.

이디크의 장기는 시공간을 다루는 능력에서 파생된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이 가진 능력도 그런 이디크가 가진 힘의 편린에서 나오는 것.

오직 모서리를 통해서 이동할 수 있는 틴달로스의 사냥개들과 달리, 이디크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숨어 있어야 한다니.’

이래서야 다른 틴달로스의 군주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구에 있던 그놈들을 공간과 함께 접고 접어 소멸시키고 싶었지만 지금의 그로선 요원한 일이다.

힘이 회복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마왕이라는 계집을 이길 수단이 없었다.

‘대체 그 힘은 뭐지? 열쇠에서 나오는 힘인가? 악마 따위가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나?’

끝없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알 필요도 없다. 아버지의 힘이 회복되는 대로 전부 사라질 테니.’

그 기간은 길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누구보다도 위대한 아자토스다. 지금 잠시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금방 예전의 위상으로 돌이가리라 생각했다.

“그래, 분명…….”

“뭐가 분명한데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으면 귓가에 생생히 들려오던 여성의 목소리.

설마, 그럴 리가. 어떻게, 여기에?

소리가 들린 건 머리 위에였다. 이디크는 머리를 삐걱삐걱 움직여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곳에는 작게 공간의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새빨간 눈동자가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어.”

왜 저게 여기에 있지?

콱!!

이디크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동시에 작게 찢어진 공간의 틈에서 여성의 팔이 뻗어졌다.

그것은 이디크가 피할 틈도 없이 목을 잡아채 그대로 쑥 잡아당겼다.

“크악!!”

이디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자신이 숨어 있는 공간을 찾았단 말인가.

‘위험하다!’

그는 현재 자신이 있는 장소가 방금 전까지 숨어 있던 공간이 아닌 아자토스의 옥좌임을 알아차렸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도 엄연히 외신.

우선 자신의 목을 잡고 있던 상대의 팔에 손가락을 댔다.

보통 때라면 공간을 열어 그대로 삼켜 버렸겠지만, 이 팔의 주인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디크는 손가락에 신격을 극도로 응집시켜 절삭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리곤 손가락을 움직여 자신의 목을 잡고 있는 팔을 베어냈다.

서걱!

아니, 베어 내려했다.

하지만 베어진 건 도리어 자신의 손가락이었다.

번쩍이는 금빛이 스쳐지나가는 동시에 이디크의 손가락이 잘려진 것이다.

‘이건 그 정의의 여신……!’

갑자기 나타나 악마와 싸우던 디엔드라를 토막내 버렸던 바로 그 빛이었다.

이디크는 상황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욱 최악이라는 걸 깨달았다.

마왕에 이어 정의의 여신이라니.

‘이대로라면 당한다.’

극한 상황에 몰린 순간, 이디크는 자신이 낼 수 있는 한계 이상의 힘을 냈다.

그것은 인간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몰렸을 때 낼 수 있다는 힘과 비슷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간의 강점을 하나 얻었다.

콰아아앙!!

이디크의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뒤틀렸고, 일정공간을 완벽하게 분쇄시켰다.

덕분에 자신의 목을 잡고 있던 마왕의 손도 떨어지는 걸 느꼈다.

“허억, 허억.”

됐다. 바로 이틈에 피해야 해.

그렇게 생각하며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자,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공간이 안 열려.’

주변에 이상한 결계라도 쳐진 것처럼 일정 범위 밖으로 공간을 열 수 없었다.

아무리 힘이 약해졌다고 해도 이디크는 외신.

그의 능력에 간섭할 수 있는 존재라면 그와 동등하거나 이상의 존재뿐이었다.

“이런 씹…….”

그제야 이디크는 현재 자신의 주변에 마왕과 정의의 여신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둘은 강력한 무력을 지녔을지언정 이런 결계를 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짓을 한 당사자는 바로 이디크의 앞에 씩 웃고 있었다.

“어딜 가려고?”

외신 이드라와 합신한 인간. 아마 그가 이디크의 힘을 간섭하는 결계를 친 장본일 것이다.

거기에 7대 악마 중 넷이 그의 뒤에 서있었다.

그중 하나는 심지어 자신보다 상위의 외신인 슈브니구라스도 어쩌지 못했던 악마였다.

“…….”

이디크는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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