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99화 (299/332)

# 299

299. 경계 밖의 세계(2)

외우주는 말 그대로 우주 밖의 우주다.

어지간한 존재들은 감히 살아가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세계.

일반적인 신들의 규격을 한참 벗어난 외신들의 지배하는 장소다.

그리고 우주의 최심부.

외우주의 모든 걸 지켜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아자토스의 영역이었다.

“아버지는?”

인간의 형상을 한 디엔드라가 황폐한 별의 대지에 서서 말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마찬가지로 인간의 형상을 한 이디크가 서 있었다.

“힘을 회복 중이시다. 대체 놈들이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냐?!”

“쉿, 아버지가 들으면 노여워하실 터니 목소리를 줄여라.”

디엔드라의 말에 이디크는 입을 꾹 닫았다.

현재 그들은 현재 아자토스가 머물고 있는 이 별을 지키고 있었다.

참고로 이곳에 있는 건 디엔드라와 이디크만이 아니다.

다른 외신들도 몇이나 있었으며, 그레이트 올드원들을 비롯해 각종 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있는 건 처음 보는군.’

거대한 행성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이곳은 결코 평범한 행성이 아니다.

평소 아자토스가 머무는 ‘옥좌’였다.

보통이라면 니알라토텝을 제외하고 감히 어떤 외신도 발을 디딜 수 없는 장소였지만, 아자토스는 도리어 본인이 직접 다른 외신들과 그레이트 올드원들을 불러드렸다.

“왜 우리까지 인간의 모습으로 있으라 하신 건지 이해할 수 없어.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나?”

“…….”

디엔드라는 투덜거리는 이디크의 말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생각을 하게 되며 디엔드라는 아자토스의 의도를 인간의 관점으로 파악하려고 했다.

‘설마 아버지는…….’

이런 상황에서 어울리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아버지는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신을 찾아 ‘죽음’을 내리려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곳에 몸을 숨기고 다른 외신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하라고 명한 건, 아자토스 본인이 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겠지. 덕분에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외신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 다른 외신들에게도 제법 색다른 경험이었다.

“신으로선 내릴 수 없는 판단이야…….”

“그게 무슨 소리지? 디엔드라?”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너도 이곳에 있어서 나쁠 건 없을걸? 내 예상이지만 그놈들은 분명 이곳에 온다.”

“뭐?”

이디크는 디엔드라의 말에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겨우 살았는데 굳이 죽으러 올 필요가 있나? 평범한 존재가 외계에 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 텐데?”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결코 끝나지 않는 싸움일 테니.”

이디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디엔드라와 달리 이디크는 인간의 관점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고자 하지 않았으니까.

그에게 인간의 형상이란 굴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야 상관없는 일이지. 오히려 좋다. 그때의 굴욕을 갚아…….”

“아니, 너는 싸우지 마라.”

“……그게 무슨 소리지?”

“정확히는 싸우면 안 된다고 해야겠군.”

디엔드라는 당황한 이디크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마왕에게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백색의 악마에게 입은 상처가 전부 회복되지 않은 걸 안다.”

그 말에 이디크는 백색의 악마를 떠올렸다.

단 일격에 자신의 목을 갈라버린 악마의 모습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거기에 마왕에게도 자신은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당했다.

자신의 힘이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도 처참히 패배했는데 제대로 몸이 회복되지 않은 지금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다른 외신들은 몰라도 결코 너는 당하면 안 된다, 이디크. 이유는 알고 있겠지?”

“…….”

노스 이디크는 틴달로스의 왕이다.

그가 거느린 틴달로스의 사냥개는 자신이 정한 목표를 반드시 찾으며 영원히 뒤쫓는 힘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뜻을 지키기 위해선 너의 힘이 반드시 필요해.”

“……젠장!”

이디크의 힘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을 지라도 그의 휘하에 있는 틴달로스의 사냥개는 외적의 침입을 막는데 특히 효과적이었다.

‘이 일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몸에도 익숙하지 않는 다른 놈들을 믿을 순 없지.’

다른 외신들은 이곳에 누군가가 온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가장 결정적으로 현재 외신들은 하나의 감정에 먹혀 있었다.

‘인간의 방심.’

아자토스의 명에 인간의 형상을 취한 외신들은 필연적으로 그 감정에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침입자를 막기 위해선 이디크의 힘이 필요했다.

‘정말 꼴사납구나.’

반면 이디크는 그런 디엔드라의 생각을 알았다. 그렇기에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도 이해했다.

간단히 말해서 눈에 띄지 말고 숨어 있으라는 뜻이다.

우스운 점은 그런 디엔드라의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썩을…….’

노스 이디크는 탄생한 이후 처음으로 비참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

“아마 아버지는 혼돈의 소용돌이에 있을 게다.”

“혼돈의 소용돌이?”

이드라는 모여 있는 좌중들을 한번 눈으로 훑은 뒤,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곳에서 외우주에 대해 가장 자세히 아는 이는 바로 이드라였다.

“그래, 외우주의 중심에 존재하는 장소다. 바로 그곳에 아버지가 계신 무명의 옥좌가 존재한다.”

“무명의 옥좌는 어떤 장소지? 만약 우리가 가더라도 활동할 수는 있는 건가?”

이드라의 말에 루시퍼가 조용히 물었다.

아자토스가 있는 장소는 보통 일반적인 외신들도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고 한다.

단순히 아자토스의 눈치를 살피는 것뿐이 아니라 제대로 활동하는 것조차 힘든 장소이기 때문이다.

“본체인 아버지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인간인 아버지라면 옥좌의 안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답한 그녀는 손바닥을 펼쳐 양쪽으로 넓게 벌렸다.

그러자 손바닥 사이에서 작은 스파크가 일어나며 허공에 작은 영상이 만들어졌다.

“보다시피 혼돈의 영역은 이런 형태다.”

그것은 마치 블랙홀을 구현화한 것처럼 둥근 띠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둥근 띠 안에는 무수한 소용돌이가 움직이고 있었고, 자칫하면 그대로 삼켜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중심에 별이 하나 있다.”

“이런 장소에 별이라고?”

“평범한 별이 아니다. 바로 이 별이 아버지의 옥좌. 그리고 별의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 핵이 있어야 할 장소에 거대한 방이 존재한다.”

펼쳐진 손을 마주쳐 두어 번 박수를 치자 둥근 띠로 표현되어 있던 영상이 일그러지며 둥근 행성의 모습을 취했다.

“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장소지. 별의 내부는 물리적인 법칙을 벗어나 어떤 세계보다 넓고 크다.”

오히려 별의 면적보다도 크다고 이드라는 말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홀로그램처럼 구체화 된 둥근 별을 응시했다.

“즉, 우리는 여기에 도달해야 된다는 거군.”

“그렇다. 별의 중심으로 통하는 입구는 바로 여기.”

별의 한 구석에 붉은 점이 깜박였다.

바로 저곳이 별의 중심으로 통하는 입구인 모양이다.

“물론 들어가려면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

“용케 이런 걸 알고 있네.”

“니알라토텝에게 직접 들었지.”

니알라토텝은 아자토스의 전령이다.

아마 외신 중에서 아자토스와 가장 많이 접촉했던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로 들어가면 아자토스가 있는 방이 나오는 거냐?”

“그렇다. 이 통로를 통해 들어가게 되면 나오는 곳이…….”

가녀린 손가락이 붉은색으로 반짝이는 장소에서 행성의 중심까지 쭉 그어졌다.

손가락이 멈춘 장소가 아마 아자토스가 있는 곳이리라.

“바로 무명의 방이다.”

“무명의 방?”

특이한 이름에 나도 모르게 되묻자 이드라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명(無名)이자 무명(無明). 어떠한 것도 닿을 수 없으며 시간과 공간조차 초월한 장소.”

“거창하네.”

“거창한 게 당연하지 않느냐. 애초에 저곳에 도달한 건 아버지와 니알라토텝을 제외하면 전무하다. 이 나조차 말로만 들었을 뿐이야.”

이드라는 툴툴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떠있던 환상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충 설명은 끝이다. 질문이 있나?”

“무명의 방으로 들어가는 건 전에 말했듯이 셋뿐인가?”

손을 들고 질문한 건 신자운이었다.

그는 늘 그렇듯 무덤덤한 얼굴로 서있었다.

“아버지가 시스템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만, 그럴 확률은 적지. 시스템과 열쇠의 힘을 이용해 입구를 봉했다면 우리 셋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 세 명은 나와 지수, 그리고 린을 뜻한다.

참고로 이드라와 나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니 하나로 친다고 보면 된다.

“운이 좋다면 우리는 그냥 구경만 하다 와도 된다는 거군.”

“그러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적겠지.”

그런 이드라의 말에는 나 역시 공감했다.

처음으로 죽음을 느낀 아자토스라면 수많은 외신들을 자신의 옥좌로 불러 모았을 가능성이 컸다.

“다른 것보다 틴달로스의 사냥개가 문제다. 노스 이디크도 회복을 했을 터이니 틴달로스의 군주들도 부활했을 터. 그들이 다루는 사냥개를 피해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른 외신들의 눈을 피하는 것보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를 뿌리치는 게 어려웠다.

그건 존재를 한번 인식하는 순간 영원히 따라붙는 괴물이었으니까.

“……그럼 이건 어때?”

잠자코 듣고 있던 벨제부브가 말했다.

“그 틴달로스인가 하는 놈의 우두머리를 우리가 먼저 족치면 되잖아?”

“뭐?”

“그 개새끼들을 내가 먹으면 놈이 있는 위치를 알 수 있을 테니.”

벨제부브는 호쾌하게 웃으며 입을 쩍 벌렸다.

폭식의 능력을 사용해 틴달로스 사냥개의 능력을 흡수한 이후, 노스 이디크를 추적한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하나씩 따로 상대하는 것보단 우르르 몰려가서 패버리면 끝이지.”

너무나 당연한 말에 나와 이드라는 시선을 교환한 이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경보기가 문제라면 경보기부터 때려 부수는 게 답이었다.

***

대략적인 브리핑이 끝난 이후, 우리는 곧바로 장소를 이동했다.

함부로 이곳에서 외우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가는 난리가 날 게 분명했으니까.

그다지 눈에 띄지 않으며 조금 큰 힘이 느껴져도 그러려니 할 만한 장소는 내가 알기로 여기뿐이었다.

바로 몽상의 신전.

“뒷산에 이런 곳이 있었네요.”

린은 백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신전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른 악마들은 대체로 심드렁한 눈치였지만, 지수는 조금 그리운 것을 보는 얼굴이었다.

“예전에는 백설이랑 왔었는데.”

“그리고 나 몰래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를 가져갔었지.”

“하지만 덕분에 다 일이 잘 풀렸잖아요?”

싱긋 웃는 지수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나로선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봐, 김세한.”

그때 벨제부브가 나를 불렀다.

“왜?”

“저건 뭐지? 저것도 함께 가는 건가?”

녀석이 턱짓으로 가리킨 장소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무언가 거적때기를 모아둔 것 같은 곳이 있었다. 대체 왜 저런 게 여기에 있나 싶어 유심히 보자, 둥근 머리가 거적때기 틈에서 쑥 삐져나왔다.

“……?”

누더기를 뒤집어쓴 한 여성이 있었다.

그 여성은 누더기 속에서 머리만을 빼꼼 내밀고 반쯤 감긴 눈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어쩐지 나는 그 여성의 얼굴이 익숙했다.

아니, 익숙한 게 당연했다.

“……엘리제.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나.”

퍼블리셔와의 전투가 끝난 이후, 어디론가 사라졌나 했더니 설마 이곳에 있었을 줄이야.

도시에서 보이지 않을 때 눈치를 챘어야만 했는데.

내가 멍하니 엘리제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그런 내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갈 곳이…… 없어.”

어눌했지만 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말투였다.

하지만 누더기를 뒤집어쓴 탓인지 묘하게 처량하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불쌍해요…….”

정의의 여신님께서는 그런 엘리제의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 보였던 모양이다.

누더기를 입에 물고 오징어마냥 냠냠 거리며 씹고 있으니 불쌍하다 못해 더 없이 비참해 보였다.

“이용할 대로 이용하고 이런데 버려뒀을지는 몰랐네요.”

더불어 지수는 무척 덤덤하게 상황을 이야기해서 묘하게 양심을 찔리게 만들었다.

특별히 비꼬며 말한 건 아니었지만, 그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백설아.”

결국 나는 백설이를 불러 엘리제를 길드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심 외우주로 가는 김에 데려갈까 생각했지만, 엘리제가 내 생각대로 움직여준다는 보장이 없으니 포기했다.

뒷일은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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