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84화 (184/332)

# 184

184. 혼돈의 대지(1)

「나는 그동안 너에게 전승스킬을 주지 않았어.」

아자젤은 말했다.

「그럼에도 너는 내게 단 한 번의 의문도 표하지 않았지. 내 전승스킬이 뭔지……」

세한이 아흐리만을 유도하는 동안 아자젤은 신자운을 이곳으로 인도하며 천천히 설명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되며, 그녀가 지닌 전승스킬이 어떠한 것인지.

「네가 이 스킬을 다룰 수 있을지는 몰라. 나의 전승스킬은 아주 특별하거든. 궁금하니?」

나태의 위(位)는 마계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악마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다.

그렇기에 아자젤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을 한 적이 없었다.

잠자고 숨 쉬고 뒹굴 거리는 것만으로 강해진다.

지닌바 재능도 린과 다를 것이 없지만, 그것은 재능이 아닌 그녀의 능력에서 비롯된 힘이었다.

「리미트 브레이커(limit breaker)」

말하자면 한계돌파.

그녀는 끝없이 강해질 수 있는 권능을 타고났다.

그러니 그녀는 단련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기에.

무언가를 노력해도, 자연스럽게 강해지는 게 더 크다면 굳이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나태한 것도 모두 그런 권능에서 비롯됐다.

어떤 의미로는 린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존재다.

린의 메리수에 버금가는 스킬을 아자젤은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평범한 플레이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전승스킬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아자젤은 계약자를 만들지 않았고, 하물며 전승스킬을 준 적도 없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재능의 문제가 아니란다. 그것을 견딜 수 있는가, 그런 의지의 차이. 한계돌파는 끝없이 강해지는 힘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는지는 본인의 역량에 달렸어.」

그렇게 말한 아자젤은 짝짝 박수를 쳤다.

「네가 가진 역량은 보잘 것 없으니, 오히려 육체에 부담이 덜할지도 모르지. 혹은 일시적인 버프처럼 변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

어쩐지 전부 바보같다는 것처럼 아자젤은 웃었다.

「네가 강해지고 싶다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

너의 의지가 닿는 한.

아자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건 아자젤이 신자운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신자운이 네비로스에게 조종당하고,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뿌리치는 걸 아자젤은 보았다.

네비로스는 강한 악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뿌리칠 수 있을 정도로 약한 자는 아니다.

하지만 신자운은 비탄의 가면을 쓴 상태에서 네비로스를 떨쳐냈다.

땅에 머리를 박아 가면을 부수고, 자신의 몸을 되찾았다.

우습게보았던 인간의 의지에 대해 아자젤은 감탄했고,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인간의 의지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

콰아아아아!!

당장에 그의 몸을 불태울 것처럼 날아온 보랏빛 재해는 신자운의 몸 주위를 스치며 엄청난 속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그극, 그그그극!!

신자운의 얼굴의 반쪽을 가리고 있는 비탄의 가면이 삐걱거리며 떨렸다.

감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마력을 생산하는 네비로스의 유물이지만 지금 받아내는 힘은 유물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신자운의 몸도 당장이라도 뭉개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견뎠다.

아자젤의 전승스킬은 신자운의 의지가 무너지지 않는 한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부족한 재능을 지녔기에, 스킬이 발현될 수 있는 힘은 적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스으으으!

전승스킬로 강화된 비탄의 가면에 아흐리만이 방출한 에너지와 악의를 모조리 흡수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신자운의 마력으로 전환되며 혈관을 타고 흘렀고, 뻗어지는 팔에 뭉쳐져 백색의 광체가 되었다.

“아.”

하지만 그것뿐이다.

신자운은 팔을 뻗은 후, 부서질 것 같은 육체에 무릎을 꿇었다.

주먹을 뻗은 결과가 어떤지 볼 수 없었다.

아무리 강한 스킬을 지녔어도, 신자운은 아직 그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나름 강한 의지를 지녔다고 자부했지만 한계를 돌파한 후의 의식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잘했어.”

그런 신자운의 뒤에서 세한이 어깨를 짚으며 앞으로 나섰다.

마치 바톤터치를 하는 것처럼.

쉬이이익!!

세한의 등 뒤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프라가라흐가 날아갔다.

목표는, 목이 꿰뚫린 아흐리만을 향해.

음속조차 넘은 속도로 날아가는 프라가라흐를 세한은 잡아챘다.

금색의 섬광이 보라색과, 백색으로 물들었던 하늘을 찢어발겼다.

‘인간이 강해지는 건 재능의 유무가 아니라고 했던가.’

미래의 린은 그런 말을 지수에게 전달했다.

세한은 그 사실을 알았지만 완전히 납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방금 신자운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자젤의 전승스킬을 사용한 플레이어.

솔직히 반신반의했지만 세한은 감탄했다.

신자운의 손에서 뻗어진 라이트스트레이트는 아흐리만의 목에 구멍을 뚫었다.

두터운 마력장벽과 신격, 끝없는 악의의 벽을 넘어 핵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하늘에 열린 백색의 길.

그것을 세한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마찬가지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그런 것을 무심코 정하고 만다. 1회차에도 그런 생각 때문에 잘못된 길을 몇 번이나 가지 않았던가.

그런 마음은 대부분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남아 있었나보다.

“그윽, 그아, 그아아아악!!”

목의 아래, 숨골부위가 꿰뚫린 아흐리만의 입에서 괴성이 흘러나왔다.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

세한의 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꿰뚫린 아흐리만의 육신.

그 내부에 숨겨져 있는 핵을 찾았다.

핵을 파괴하려면 방금 신자운이 사용했던 공격 이상의 힘을 가해야만 할 것이다.

카아아아앙!!

프라가라흐가 핵과 격돌하며 붉은 불꽃을 튀기며 튕겨져 나갔다.

어검의 묘를 담은 프라가라흐조차 핵을 꿰뚫지는 못했다.

하지만 흠이 생기며 조각이 튕겨져 나왔다.

끝없는 악의에 숨겨진, 선의의 조각이.

고오오!

점차 재생하고 있는 아흐리만의 육신 내부로 세한은 뛰어들었다.

동시에 오른팔을 앞으로 뻗으며 무기를 장착했다.

파일벙커.

이드라가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의 힘을 이용해 만든, 아주 특별한 물건이다.

“초식을 꼭 검으로 펼치라는 법은 없지.”

뭐든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게 제일이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세한의 몸에 퍼져있던 마력과 신격이 나선으로 회전하며 얽혔다.

금빛으로 빛나는 신격과, 붉은 흉광(凶光).

그것은 세한이 완벽힌 유일한 초식의 묘를 따라 어깨와 팔을 타고 흘러들어갔다.

수라(修羅).

일찍이 진천백의 몸을 꿰뚫고, 혈천의 하늘을 갈랐던 힘이 파일벙커의 끝에 실렸다.

철컹!

익숙한 금속음과 함께 파일벙커가 뒤로 당겨졌다.

세한은 그것을 프라가라흐가 만들어낸 작은 흠집을 향해 겨냥했다.

핵은 마치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콰콰콰쾅!!

포탄처럼 발사된 파일벙커가 아흐리만의 핵을 파괴했다.

“그아──!!”

아흐리만의 비명이 샌프란시스코에 울려 퍼지며 무릎을 꿇었다.

핵의 부서지자 육신을 유지할 수 없어진 아흐리만은 점차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놈의 몸의 형태를 이루고 있던 끝없는 악의가 폭포처럼 지상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피, 피해!!”

플레이어들이 그것을 보며 황급히 피했지만, 그보다 검은 액체가 확산되는 속도가 빨랐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샌프란시스코 전역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나서야 흩어지리라.

실제로 1회차에서 자멸한 아흐리만은 미국 몇 개의 주를 죽음의 대지로 만들었다.

물론 세한은 그렇게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흐읍!”

세한은 지금까지 열었던 것 중 가장 거대한 허수공간을 열어 흘러나오는 악의의 파도를 흡수했다. 생명체라면 허수공간에 집어넣을 수 없지만, 육신을 잃고 한낱 악의의 파도가 된 것이라면 허수공간으로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었다.

다만, 헤일처럼 밀려오는 악의를 모조리 허수공간에 넣으려고 하니 마력이 어마어마하게 소모되고 있었다.

만약 그간의 일로 신력이 뻥튀기가 된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런 미친짓은 감히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사, 산 건가?”

플레이어들은 거대한 공간이 열리며 검은 물결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자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구멍이 뚫린 아흐리만의 목으로 날아간 금빛의 빛줄기는 이곳에 있는 모든 플레이들이 보았다. 하지만 설마 그것이 사람일 줄은 몰랐다.

‘저건…… 그때 베히모스의 목을 잘랐던 녀석 아냐?’

까마귀라고 불리던가.

이벤트 퀘스트에서 세한을 한 번 본적이 있었던 에릭은 세한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때도 강하긴 했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격이 달랐다.

“주변에 열린 검은 공간들은 전부 저놈이 만든 건가?”

아흐리만의 부서진 육신이 닿은 건물은 새까맣게 변하며 먼지로 변했다.

몇몇 플레이어들은 액체가 살짝 닿은 것만으로 비명을 질렀고, 제대로 피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검은 액체에 삼켜져 녹아 사라졌다.

만약 검은 공간이 열리며 그것을 막지 않았다면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죽고 말았으리라.

“저런 게 같은 플레이어라니, 말도 안 돼.”

센티넬 학살자?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아무리 강한 센티넬이라도 저 검은 물결에 닿게 되면 순식간에 사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저 남자는 완벽히 막아냈다.

[긴급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잠시 후, 참여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무너진 아흐리만의 육신이 모조리 허수공간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자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에 경쾌한 알림이 떠올랐다.

“까마귀는?”

에릭은 황급히 방금 전까지 하늘에 떠서 이상한 검은 공간을 열고 있던 세한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그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

“수고했어, 까마귀. 뒤처리도 깔끔하네.”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농담은.”

아자젤은 피식 웃었지만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 많은 악의를 허수공간에 눌러 담느라 지금 마력은 사실상 바닥에 가까웠다.

허수공간 내부의 영역을 확장하며 허공에 거대한 구멍을 열어두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여태 만들어서 쌓아둔 몇몇 물건들은 미처 공간을 분리시키지 못한 탓에 아흐리만의 악의에 침식되어 녹아 사라졌다.

이래저래 상당히 피해가 컸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악의의 파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잘만 이용하면 좋은 무기가 되겠어.’

특히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인 액체다.

아스모데우스도 집어삼켰던 걸 생각하면 악마에게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강한 무기였다.

단순한 질량병기가 아닌 화학(?) 병기까지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거기다.’

나는 인벤토리에 넣어둔 작은 조각을 떠올렸다.

아흐리만의 몸을 이루던 핵. 그 속에 있던 선의의 파편도 손에 넣었다.

상위 신격을 담고 있던 그릇이었지만 조각나 남아 있는 힘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파편이 신격 자체를 담을 수 있는 물건이라는 점이다.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적당히 일은 해결됐네. 마몬은 원래 그런 녀석이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마계로 돌아가 처리할 생각은 없냐?”

“귀찮아. 어차피 후에 기회가 오게 되겠지.”

기회라. 나는 그런 아자젤을 조용히 응시했다.

가끔 난 아자젤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지 궁금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린과 마찬가지로, 아자젤도 뭘 하든 납득이 되는 존재였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사실 나는 미래도 볼 수 있다!

라고 외쳐도 아자젤이니 그러려니 할 정도다.

물론, 지금까지 보인 모습을 보면 미래를 보는 것처럼 세계의 법칙을 아우르는 일은 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미국의 일은 다 해결됐으니 돌아가야겠지. 넌 미국에 남을 건가?”

“기왕 왔는데 좀 더 구경하려고. 어차피 우리 계약자가 깨어나려면 시간도 좀 있으니까.”

아자젤은 쓰러져 있는 신자운을 가리켰다.

곤히 잠든 것처럼 쓰러져 있는 녀석은 아무래도 아자젤의 전승스킬을 사용한 반동이 온 것 같았다.

그래도 사용한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아자젤의 리미트 브레이커는 평범한 플레이어가 사용하면 생명 자체가 깎여버리는 스킬이니까.

아마 신자운은 생명이나 수명을 자신의 의지나 마력으로 대체했을 것이다.

또한 아흐리만의 힘을 이용해 그것을 견뎌낸 거겠지.

‘카운터’를 이용한 신자운 만의 방법이었다.

“너도 다음에 봐, 귀여운 정의의 여신님.”

“아, 네, 네에. 전 어차피 또 올림포스로 가야겠지만요.”

린은 아자젤이 어려운지 계속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올림포스는 린이 신격을 완전히 통제하기 전까지 지상으로 내려 보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이번에야 사태가 사태니 어쩔 수 없이 보내준 거겠지만.

‘그나저나.’

나는 린의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지수를 보았다.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조용했다.

신경 쓰이는 점은 지수가 아자젤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다가 멈췄다는 것이다.

고개를 붕붕 흔들고는 조용히 침묵을 일관했다.

지수가 최근 아자젤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알았지만 직접 말을 걸려고 할 정도라니 조금 의외였다.

“아무튼, 그럼 우리도 이만 헤어지도록 하지.”

“좋아. 그럼 이번에 도와줘서 고마웠어, 까마귀. 빚으로 남겨둬도 좋아.”

아자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빚이라는 건 후에 열릴 마계의 연회에서 사용할 좋은 카드가 될 것이다.

“그래, 그럼 우리도 이만 가도록…….”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드드드드.

갑자기 땅이 울리며 흔들리기 시작하자 주변의 건물의 벽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 지진인 것 같아요!”

깜짝 놀란 린이 소리쳤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벌써?’

이건 먼 곳에서부터 시작된 지축의 변동이다.

도리어 이 정도 지진으로 끝난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다.

땅은 여전히 울리고 건물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재해로 발전할 위협은 없어보였다.

“오빠, 이건.”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지수가 내게 황급히 말을 걸었다.

내 기억을 읽었던 지수이니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눈치챈 것이리라.

‘벌써 나타난 건가?’

르뤼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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