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49화 (149/332)

# 149

149. 게임 오픈(1)

“열쇠의 보관자를 정하고 싶다?”

제우스는 내 말에 아리송한 얼굴을 했고, 헤르메스는 대충 감을 잡았는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누구를 보관자로 할지는 이미 정한 모양인데?”

“예.”

내 시선은 여전히 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린을 보고 있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수많은 신들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

“하긴, 이후 올림포스의 주역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니까 말이야.”

현재 우리가 있는 장소는 12신이 모여 있는 홀이었다.

왜냐면 이번 아바돈 건으로 제우스가 성대하게 연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신들도 모여 있었지만, 이번에는 전과 같은 야유는 들리지 않았다.

이번 아바돈 건이 그만큼 컸던 거겠지.

올림포스는 강력한 세력이긴 하지만, 7대 악마는 그들조차 감히 상대하기 꺼려지는 상대였다.

마계라는 곳은 하나의 별이 아닌, 하나의 차원으로 분류되는 장소.

7대 악마쯤 되면 일반적인 별의 신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이었다.

아무리 7대 악마 중 약한 편인 아바돈이라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녀석은 태생부터 올림포스의 최상위 신인 아폴론의 신체에 아자젤의 힘을 받아 악마가 된 녀석이었으니까.

‘내가 이긴 건 어디까지나 상성빨이지만.’

상성빨에 이드라의 힘이 컸다.

만약 아바돈이 아니라 다른 악마였다면 이기는 건 무리였겠지.

물론 그랬다면 나도 따로 준비를 했겠지만 말이야.

“예, 저는 차기 정의의 여신이 될 린 테일러에게 열쇠를 맡겼으면 합니다.”

“저, 저요?”

아스트라이아는 현재 린에게 몸을 내어준 상태였다.

아니, 몸을 내어줬다는 말은 옳지 않군.

애초에 린의 몸이니까.

일반적으로 린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스트라이아는 밖으로 나올 수 없겠지. 미래의 린을 보면 정신까지 완벽히 하나가 된 것 같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았다.

“제우스 님은 어떠신지요.”

“나 역시 상관없다.”

제우스가 예상외로 흔쾌히 답하자 주변의 신들이 술렁거렸다.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일개 인간에게 준다는 말씀이십니까?”

“일개 인간? 정확히는 반신이지. 그리고 후에는 완전한 신이 될 터다. 그대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신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들의 왕이라는 자리는 내려와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가벼운 성격이긴 했지만 제우스는 분명 신들의 왕이었다.

거기에 린이 아스트라이아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도 그에겐 호감을 주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후에 린이 성장하게 되면 올림포스만이 아니라 초상계 전체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터.

그게 올림포스 출신이라고 한다면 제우스에게 나쁠 것 없는 거래였다.

“다만 이쪽도 조건을 말하지 않을 수 없군.”

예상했던 말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것인지요.”

“이 아이를 주기적으로 올림포스에서 교육했으면 한다.”

“주기적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한 달을 지상에서 보내면, 다음 한 달은 올림포스에서 보내는 것이지. 권능을 다룰 훈련도 해야 될 테니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생각한다만.”

역시 예상했던 조건이기도 했다.

나로서도 나쁠 것 없었다. 열쇠를 린이 가지게 되면 지구보단 올림포스에 있는 편이 안전하기도 했으니까.

“좋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저희에게도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까?”

“저희?”

“지구의 인간들 말이죠.”

제우스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먼저 신의를 저버린 건 우리가 아니라 인간 쪽이었다.”

“앞으론 어떻게 될지도 모르죠. 그리고 지구에 진행 중인 게임을 계속하실 생각아니십니까?”

“……그건 그렇지.”

“물론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습니다. 부탁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고요.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는 옥좌에 턱을 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주변의 신들은 그런 제우스의 답을 기다렸다. 어떤 답이 되냐에 따라서 앞으로 올림포스의 행보가 달라지게 될 테니까.

신화의 시대가 끝나고 수천 년이 지났다.

지구에 신의 간섭이 없어진지도 긴 세월이 흘렀고, 그들에게 지구란 신의를 저버린 이들이 살아가는 땅이었다.

그러니 시스템이 지구를 게임판으로 만들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별의 신이나 악마들이 인간들을 죽이고 대지를 황폐화시켜도 상관없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벽이 인간과 신 사이에 존재했지만, 이번 일로 무언가가 변할지도 몰랐다.

“……좋다.”

“감사합니다.”

예상외로 흔쾌히 답하는 제우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열쇠를 린 테일러에게 계승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허공에 허수공간을 열고 그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을 천천히 빼자 그 위에는 아바돈에게서 빼앗았던 열쇠의 파편이 쥐어져 있었다.

“린.”

“네…….”

린은 긴장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운 눈치였지만 지금은 마음을 다잡은 눈치였다.

나는 그런 린에게 미안했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린에게 너무나 큰 짐을 지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린이 열쇠를 가지고 그것을 완성했을 때, 반드시 길이 열리게 되리라 생각한다.

웅웅웅.

열쇠의 파편은 린이 가까이 다가가자 마치 주인을 알아본 것처럼 옅은 파동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천천히 린의 가슴팍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것을 확인한 제우스는 황금 옥좌에서 몸을 일으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올림포스의 모든 신을 들어라!”

전신에서 막대한 신격이 방출되기 시작하자, 모든 올림포스의 신들이 무릎을 꿇었다.

신들의 왕, 제우스의 외침이 올림포스 전역에 울려퍼졌다.

“새로운 열쇠의 보관자는 차기 정의의 여신인 린 테일러다! 올림포스의 모든 신은 이 아이를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지켜야 하며 나와 동등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를 어길 시, 나의 분노를 받게 되리라.”

“예, 우리의 왕이시여!”

제우스는 고개를 숙인 모든 신들을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나를 보았다.

유일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는 나를.

“그리고 까마귀, 김세한이여. 아바돈을 쓰러트린 영웅으로서 그리고 우리를 구한 인간으로서 올림포스의 친구로 명하마.”

“감사합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예상보다 호탕한 제우스의 성격 탓에 일이 쉽게 풀려서 다행이었다.

“후우, 대충 끝났군.”

제우스의 선언이 있은 후, 연회는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나는 딱히 연회를 즐길 생각이 없었기에 홀 밖으로 나왔다.

아바돈조차 쓰러트린 나지만 신들의 틈에 있는 건 그다지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린도 데리고 나오고 싶었지만.’

연회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린을 데리고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던 금발의 소녀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훌륭해.”

그런 내게, 헤르메스는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역시 너는 대단해, 까마귀. 결국 우리는 전부 네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건가?”

“설마요. 관대하신 제우스 신 덕분입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애초에 린 테일러를 열쇠의 보관자로 정한 시점에서 우리는 네 말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본디 제우스가 가지고 있던 열쇠다.

내가 얻어간 시점에서 나의 것이 되었으니 올림포스의 입장에서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그걸 내가 린에게 돌려준다고 했으니 제우스의 입장에서는 내 말을 무조건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열쇠를 가진 게 린 테일러이니 우리는 그 아이를 전력으로 도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단한 아이지만 지금은 약하니 사방에서 그 아이를 노리겠지.”

“올림포스의 위세를 업고 있으니 큰 걱정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하! 물론이다. 그 아이의 안전은 반드시 보장하마. 우리의 명예도 걸려있으니 올림포스의 전력이 그 아이의 뒤에 있다고 봐도 좋다.”

그거 참 든든한 소리다.

다만 내가 아니라 린의 뒤에 있다는 거겠지만.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할 테냐? 열쇠의 반쪽을 얻었으니 나머지 반쪽을 얻기 위해 거인왕과 싸울 생각인가?”

“미쳤습니까?”

이 신은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지?

이미르랑 지금 싸우게 되면 나만 죽는 게 아니라 행성채로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짜식, 정색하기는. 그래도 생각해 둔 게 있을 거 아니냐?”

“있긴 합니다.”

“거봐라. 역시 열쇠관련이냐?”

“비밀입니다.”

단호하게 입을 다무는 내 모습에 헤르메스는 그저 옅은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나머지 열쇠를 노리고 있다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 이미르가 가진 게 아닌 다른 열쇠를 찾아야 해.’

또 하나의 열쇠.

1회차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정보다.

추측되는 곳이 없는 건 아니다. 아마 나머지 열쇠는 분명 그곳에 있을 것이다.

바로, 마계에.

***

[정직한삶님이 채팅방에 입장하셨습니다.]

정직한삶: 나 오늘 올림포스에서 까마귀 봄ㅋㅋ

어릿광대: 구라 ㄴㄴ

정직한삶: 진짜야 ㅋㅋㅋ 까마귀 실제로 보니 제법 괜찮음. 아바돈도 잡더라, 어카지, 한번 대쉬해 볼까?

어릿광대: 아바돈? 질투의 악마?

정직한삶: 눼. 어캐 잡은지는 모름ㅋㅋ

불금: 아니 이 병신이. 가장 중요한 걸 모르면 어떡해?

어릿광대: 개소리ㅋㅋ

그리스대장: 야 아파테. 올림포스 정상으로 와라.

정직한삶: 잉?? 왜 여기 계신 건가용?

그리스대장: 하여간 주둥이가 가벼운 녀석은 이래서 문제야. 다섯 셀 때까지 와라.

[정직한삶님이 채팅방에서 나가셨습니다.]

불금: 진짠가 본데?

어릿광대: 아씨, 게임이 오픈해야 까마귀한테 말이라도 걸어보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커뮤니티에서 불금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여신, 이슈타르는 커뮤니티 화면을 뚫어져라보며 중얼거렸다.

불금이라는 닉네임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불금은 불타는 금성의 약자.

금성을 상징하는 여신이니 그렇게 지었을 뿐이었다.

“어릿광대도 관심이 있는 거 같고…….”

닉네임으로 부르지만 누구인지는 안다.

애초에 신들은 닉네임만 봐도 누구인지 대충 감이 오는 게 대부분이다.

태생이 관종인 신들답게 자신이 누군지 티를 내지 못해서 안달이니까.

“근데 진짜 게임 오픈 언제하지.”

자신의 아바타가 슬슬 그리워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게임을 꽤 열심히 했던 모양이다.

별생각 없이 커뮤니티를 서칭하던 이슈타르는 늘 확인하던 게임 ‘지구’의 공식사이트에 새로운 공지사항이 올라온 것을 확인했다.

[3일 후 새로운 공지사항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새로운 공지사항에선 새롭게 바뀐 ‘지구’에 대한 안내가 있을 예정입니다.]

“오.”

드디어 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외우주의 신인 꿈의 마녀가 게임을 샀다고 하던가.

드림위치로 활동하고 있는 이드라는 신들 사이에서도 최근 유명인이었다.

몇몇 신들은 이드라의 행적을 보며 자기도 게임 하나를 사볼까? 하는 신들도 생길 정도였다.

대부분은 이미르와 대립하게 될까 봐 눈치만 보고 있지만 말이다.

“기대되네.”

게임도, 그리고 까마귀도.

이슈타르는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

“이제 오픈까지 열흘 남았군.”

올림포스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드라가 그런 소리를 했다.

참고로 린은 올림포스에 남았다.

열쇠의 보관자로서 받아야할 교육이 있었고, 차기 정의의 신으로서 배워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광고는 어떻게 됐지?”

“우선 기본적인 건 내 갓튜브로 하고 있다만, 제대로 커뮤니티 배너에도 걸어둘 생각이다. 역시 포인트가 든다만…….”

이드라는 심히 우울한 얼굴이었다.

아마 여태 이쪽 우주에서 모은 포인트가 죄다 날아갔기 때문일 거다.

아무리 나라도 그런 이드라에게는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의심병 때문에 한낱 인간에 아바타가 된 것에 모자라 모아둔 포인트도 죄다 털리고 있으니 양심이 있다면 이드라 앞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우주에 있는 포인트라도 가져올 수 있다면 사정이 달랐겠지만, 이드라의 말로는 외우주에는 포인트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한다.

“아무튼 3일 후에 새로운 공지사항을 올린다고 했지?”

“그렇다. 근데 너무 촉박한 것 아니냐?”

“아냐, 준비는 대충 끝났어.”

“새로운 과금모델 말이냐? 근데 좀 무리수가 아닌 게냐?”

“어떤 거?”

이드라는 이번에 추가되는 새로운 과금 요소를 떠올리는지 조금 걱정되는 눈치였다.

새롭게 추가 되는 요소 중,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과금 요소가 있었으니까.

“랜덤박스 말이다.”

“그건 걱정 마. 거기서 나오는 건 그냥 ‘룩’ 템이니까.”

“그래서 말하는 거다. 플레이어가 전혀 강해지지 않는데 누가 지르겠느냐.”

이드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저 웃었다.

자고로 대부분 게임의 마지막은 룩템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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