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007. 탈출(1)
전생에 나는 고블린들에게서 도망치기 바빴다.
우연히 안전지대에 들어간 이후, 눈치를 보다가 홀로 도망쳐 나왔던 기억밖에 없다.
“여, 여기야.”
내 눈치를 살피며 이야기하는 종현을 무시하며, 나는 주위를 살폈다.
종현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장소는 바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강당이었다.
입구는 폐쇄하고 2층의 사다리를 내려,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부상자가 많이 보이네요.”
지수의 중얼거림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처음 습격에 대부분 당한 거겠지.”
솔직히 내심 놀랐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 부상 입은 사람들을 구조하고, 이렇게 사람들을 강당에 모았을 줄이야.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되지.’
어느 정도 사람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지 않는 이상,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을 이렇게 통제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학생회장인가.”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옆에 서 있던 종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너하고 저 여자애에게 정찰을 다녀오라고 했던 사람.”
내가 뒤를 가리키며 말하자, 뒤따라오고 있던 여성이 움찔거렸다.
전신을 고블린의 피로 적시고 있는 지수 때문인지 얼굴이 무척이나 파리했다.
“그걸 어떻게…….”
“다 아는 법이 있지.”
아직 ‘옵저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종현으로선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딱 보기에도 현재 강당에서 여러 개의 옵저버가 몰려있는 장소가 있었다.
말끔하게 생긴 인상에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고 있는 한 명의 남성.
학생회장 윤현균.
‘신들에게 노려지기 딱 좋은 위치구만.’
외모도 좋고, 능력도 좋다.
심지어 리더십도 있으니 신들의 입장에서는 ‘레어 아바타’정도로 취급받을 위치였다.
물론 전생에서는 아무것도 못 하고 홉고블린이 이끌고 온 무리에 죽었겠지만.
‘무척 신중한 성격인 모양이군.’
학교 부지를 빠져나가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신이 귀띔해 주지 않을 리가 없었다.
여기서 버티고 있다는 건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
즉, 아직 아바타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보통 튜토리얼이 끝나는 시점에서 아바타를 선택하는 게 보통이지만 저렇게 눈에 띈다면 이미 요청을 보낸 신들이 있을 거야.’
그럼에도 아직 아바타가 되지 않았다는 건 그런 ‘요청’자체를 전부 의심하고 있다는 거지.
“거기 1학년!”
그때, 잠자코 서 있는 우리를 발견한 윤현균이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내 앞에 서있는 종현과 여자애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음?”
현균은 종현의 뒤에 서있는 나와, 고블린의 피에 절어 있는 지수를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한지수?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무래도 현균은 지수를 아는 모양인지 말을 걸었다.
하지만 지수는 그런 현균의 말에 짧게 혀를 찰 뿐이었다.
“지금 제게 말을 거는 것보단, 이쪽의 보고를 듣는 게 먼저 아닐까요?”
“아, 그건 그렇지.”
지수를 살피던 현균은, 지수의 몸에 상처가 없다는 걸 깨닫고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래, 종현 씨랑 혜선 씨도 괜찮은 거 같고. 밖은 어때? 위험한 곳은 가지 않았지?”
“아, 예.”
종현은 학생회장의 말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종현의 옆에 서 있던 여성의 이름은 아무래도 혜선이라는 이름인 모양이다.
“밖에 경찰이 온 기색은 없고?”
“아, 예. 없었습니다.”
종현은 그리 말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고블린과 마주친 걸 말할지 묻는 눈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도중에 녹색 괴물들과 마주쳤지만요.”
“뭐? 그럼 어떻게…….”
광기에 가득 차 사람에게 덤벼드는 괴물들이다.
당혹감과 다치지 않고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섞인 얼굴로 현균은 종현을 바라보았다.
“조, 조금 도움을 받아서…….”
아무래도 이건 설명하기가 힘들었는지 종현이 내 눈치를 슬슬 살피며 말했다.
당연히 그 말에 현균은 당황한 눈치였다.
“그게 무슨…….”
종현의 말에 반응한 건 현균만이 아니었다.
그를 따라다니던 옵저버들의 시선도 일제히 내게 향했다.
‘적어도 첫 번째 메인 퀘스트가 끝날 때까지는 그다지 눈에 띌 생각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지.’
거기다 그냥 말하는 것뿐이니 크게 나를 주목할 일도 없을 것이다.
종현을 통해 전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불안했다.
“저 괴물들과 싸웠습니까? 그러니까 이름이…….”
“김세한입니다.”
“아, 그럼 세한 씨라고 부르죠. 세한 씨는 어떻게 저 괴물들과 싸울 수 있는 겁니까?”
난 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못 싸울 건 없죠. 신장도 성인 남성보다 작고, 근력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녀석들은 무기를 들고 있습니다. 함부로 덤빌 수 없을 텐데요?”
나는 지수에게 눈짓했다.
지수는 자신의 허리춤에 적당히 고정시켜뒀던 고블린의 녹슨 검을 들어올렸다.
“헉!”
녹색 피가 묻어있는 검의 모습에 현균이 기겁했다.
“어떻게…….”
“어찌어찌 되더군요.”
“…….”
당연히 상대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굳이 자세하게 설명해 봐야 긁어 부스럼 밖에 되지 않았다.
여기선 어물쩍 넘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보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좋습니다.”
“이곳을 빠져나간다고요?”
갑작스런 내 말에 현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유가 뭡니까?”
“괴물들의 우두머리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두머리? 아, 아까 그런 알림을 들은 것 같군요.”
“네, 그러니 지금 이 타이밍을 노려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현균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아무래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보는 눈이 많으니 둘러대기도 힘들군.’
나는 힐끗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현균을 지켜보는 다수의 옵저버가 보였다.
“퀘스트창을 열어보시면 제한 시간이 있을 겁니다.”
“제한 시간?”
현균은 내 말에 퀘스트창을 열었다.
퀘스트 창의 구석에는 제한시간 ‘1일 13시간’이 표시되어있었다.
“이런 게 있었을 줄이야…….”
“알다시피 지금 상황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이죠. 마치 누군가가 저희를 대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처럼.”
“그 누군가가 대체 누굽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들은 우리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벌써 사망자는 몇이나 있었다.
현균은 아마 내 말뜻을 이해했는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즉, 퀘스트 제한시간 전에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소리군요.”
“최악의 경우에는 저희들을 전부 죽이려 할지도 모르죠. 갑자기 괴물들을 풀어 논 작자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보는데요?”
“으음.”
사실 서둘러 빠져나가야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뭐냐고?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신들의 게임.’
이 게임의 주역은 우리가 아니다.
신이다.
신이 얼마나 재미있게 게임을 즐기는지가 중점이라는 거다.
홉고블린이 죽고, 우두머리를 잃은 고블린들은 흩어졌다.
플레이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지만 이 게임을 관전하는 신들의 입장에서는 더럽게 재미없는 상황이다.
위기가 없으니까.
몹이 없는 RPG게임이라고 생각해 봐라. 누가 재밌어하겠는가.
‘아직은 홉고블린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바로 조치가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잠시겠지.’
위기가 없어지면 게임이 재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분명 GM의 조치가 들어올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서둘러 괴물들을 처리하거나, 사람들을 이끌고 이곳을 빠져나가야겠군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블린들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홉고블린이 살아 있었다면 조직적으로 공격을 가했을 것이기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두머리가 죽은 지금이라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찰이나 근처 구급대도 연락이 되지 않으니 구조를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다만…… 아무래도 현재 사람들의 의견이 반반 나뉘어져 있어 어찌 설득할지가 고민이군요.”
현균은 고심에 찬 얼굴이었지만 내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나로선 솔직히 예상외였다.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면서 전생에는 대체 왜 죽었데?’
바로 순응하는 것으로 보아 본인도 어느 정도는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런 사람이 전생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죽었다고?
‘뭔가 이상해.’
자신의 기억으론 강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고블린들에게 반격을 했던 기억은 없었다.
철저하게 수비위주.
그렇게 버티다가 몰살당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현재 통솔중인 자가 겁이 많거나, 깐깐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긴급사태 때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하지만 현균은 결코 그런 성격으로 보이지 않았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현균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도 설마 이 사람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겠죠? 여기서 구조를 기다리는 게 최선의 상책입니다. 굳이 강당 밖으로 나가서 위험을 자처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 말하는 사람은 눈이 가늘게 째진 날카로운 인상의 남성이었다.
“동권아. 하지만 그건 경찰이나 구급대에 연락이 될 때야. 지금 현실은 게임처럼 변했다는 걸 너도 알잖아?”
“그래서, 지금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하겠다는 겁니까?”
동권이라 불린 남성의 말에 현균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의 말은 정론이다.
굳이 목숨을 걸고 괴물들을 뚫고 지나가기보단 군대나 경찰을 기다리는 편이 옳다.
이것이 ‘평범한 현실’이라면 말이지.
하지만 난 그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왜냐면 녀석의 얼굴을 보는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회귀한 나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아니, 여기서 박동권이?’
박쥐 박동권.
이 녀석을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왜냐면 전생에 몇 번이나 나와 마찰을 빚었던 녀석이니까.
설마 이 녀석이 나와 같은 대학 출신이었을 줄이야.
‘어쨌든 이제야 감을 잡겠군.’
나는 처음 보는 척 연기하며 입을 열었다.
“누구시죠?”
“학생회 부회장인 박동권입니다.”
“아. 들은 적 있는 것 같네요.”
나는 학교 총학생회 같은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전혀 몰랐다.
설마 그 박동권이 같은 학교이며 총학생회 소속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듣자하니 현균 형에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예. 밖에 나가 괴물들을 잡는다니, 정신 나갔습니까?”
동권의 입가가 비뚜름하게 기울어졌다. 마치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운 좋게 괴물 한 마리 정도 죽여서 꽤나 겁이 없어진 모양이군요. 저건 괴물입니다. 군대나 경찰을 도움을 기다리는 편이 최선이죠.”
사정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의견이다.
허나, 나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면 이 녀석은…….’
전생에 수많은 사람을 죽인 학살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