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006. 파티의 정석(2)
천살성이란 간단히 말해서 자질, 패시브 스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단순한 패시브 스킬이 아닌, SS랭크에 위치한 초희귀 스킬.
나도 실제로 본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은 전생에 만났던 혈마라 불리던 존재.
무공이 실존하는 세계 ‘진’이라는 곳에서 넘어온 존재였다.
당연히 퀘스트로 만나게 된 이차원의 절대강자였던 지라, 꽤나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그 혈마가 가진 스킬이 천살성이었지.’
이걸 왜 지수가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혈마의 말에 따르면 천살성을 지닌 존재는 제정신이 아니다.
광기에 잠식되어 있는 게 보통이며, 그것을 조절할 줄 알아야 온전한 힘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천살성이 있다면 고블린들이 도망친 이유도 납득이 되는군.’
천살성에는 상대에게 공포를 유발시키는 특성이 존재한다.
자신보다 강자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고블린들 정도라면 충분히 먹혀들었겠지.
‘다만, 그 외에는 천살성의 특징이 보이지 않아.’
나는 유일하게 보이지 않는 지수의 특성란을 뚫어져라 보았다.
상대가 상태창을 보는 걸 허락해도 특성만큼은 볼 수 없었다.
아마 본인이 가진 고유의 능력이기 때문이겠지.
‘혈마에게도 들은 적 없는 상태인 걸로 보아 특성란에 뭔가 있는 게 분명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의문인 점은 왜 지수에게 천살성이라는 스킬이 생겼냐는 거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지수에게 물었다.
“혹시 특성이라 적혀있는 부분에 따로 뭐라고 적혀 있지 않아?”
“네, 적혀 있긴…… 해요.”
내 말에 지수는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뭐라 적혀 있는지 알려줄 수 있어?”
“으음, 아뇨…….”
이번만큼은 지수도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뭐라고 적혀 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나는 지수를 존중하기로 했다.
이미 알려준 것 만해도 충분히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특성은 보통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근간과도 같은 것이니 말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다.
나의 ‘싱글 플레이어’처럼.
지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게 신경 쓰였는지, 내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그러세요? 꼭 말해야 한다면 말해드릴 수 있긴 한데요…….”
“아니, 괜찮아. 말할 필요 없어. 그냥 예상보다 희귀한 스킬을 네가 가지고 있어서 그랬을 뿐이야.”
“희귀한 스킬?”
나는 지수에게 천살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물론 혈마에게 들었던 광기나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은 빼고.
“아, 그래서 피를 볼수록 오히려 상태가 좋아졌던 건가요.”
“맞아. 천살성은 피를 볼수록 강해지지, 그게 자신의 피나. 혹은 상대의 피라도.”
“……흉흉한 스킬이네요.”
지수는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설마 자신에게 살인귀나 가질 법한 스킬이 발현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스킬은 그리 쉽게 발현되지 않는다.
특히 SS급 스킬인 천살성이 지수에게 발현됐다는 건, 애초에 플레이어를 각성하는 순간부터 지녔을 가능성이 높다.
간단히 말해, 지수에게는 천살성의 재능이 있다는 말이다.
‘아바타도 되지 않고, 이정도의 스킬을 지녔다는 건 굉장한 메리트야.’
수많은 고블린을 상대했음에도 지수의 피부는 자잘한 상처하나 없이 매끈했다.
아마 천살성의 능력과 내가 준 VIP 브로치 효과가 중첩되어 상처가 재생된 게 분명했다.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시너지다.
예상이지만 즉사가 아니면 사실상 지수에게 치명상이 되는 상처는 없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지수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다 이내 결심했다.
“한지수.”
“네?”
천살성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지수는 그 잠재능력도 무궁무진할 게 분명했다.
이런 지수를 그냥 동료로 두는 건 낭비였다.
“나와 계약하지 않을래?”
나는 여기서 지수를 완벽히 나의 편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답은 간단했다.
아까 보았던 ‘멀티 플레이어 패키지’가 있었으니까.
‘2만 포인트나 하는 패키지라면 적어도 포인트값은 하겠지.’
500 포인트에 불과한 스타터 패키지도 굉장히 유용했으니 2만 포인트인 멀티 플레이어 패키지는 어느 정도일지 내심 궁금했다.
“계약이요?”
“말하자면 파티를 맺는 거야.”
나는 지수에게 계약에 관해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아, 그러고 보면 게임에서 파티 사냥 같은 걸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일반적으로 RPG라면 그게 정석이니까.”
“그렇군요.”
설명을 들은 지수는 잠시 고민하다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요. 저도 세한 오빠를 따라가려면 명확한 계약이 되어있는 편이 좋으니까요.”
지수는 제법 비장한 얼굴이었다.
‘그럼 됐어. 마지막으로 패키지를 확실히 확인하자.’
나는 DLC 상점을 열고 재차 멀티 플레이 패키지에 대한 설명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멀티 플레이 패키지에는 여러 혜택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단연 눈에 띄는 건 이거였다.
‘스킬 공유.’
대략 파티원마다 한 가지 스킬을 공유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파티원도 내게서 스킬을 받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공유된 스킬은 본신의 능력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크게 상관없었다.
‘앞으로 저 스킬이 필요할 곳이 많아.’
당장 이번 메인 퀘스트만 해도 이 스킬을 가진다면 편하게 돌파가 가능했다.
‘거기다 받을 수 있는 파티원의 숫자가 다섯 명이라면.’
그 다섯 명의 스킬중 주요 스킬을 내가 가져올 수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몇몇의 인물들을 선정했다.
그들의 스킬을 가져올 수 있다면, 나는 전생보다도 훨씬 강해질 수 있으리라.
띠링!
[멀티 플레이 패키지를 구매하셨습니다!]
[이제부터 파티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파티의 인원은 최대 다섯 명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스킬 공유, 스킬 숙련도 증가. 파티원에 대한 능력치 보너스를 줄 수 있습니다.]
나는 메시지를 들은 뒤, 곧바로 지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파티 신청.”
“아, 이거 갑자기 이상한 알림이 떴는데 승낙하면 되는 거죠?”
“어, 특별히 해가 되는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눌러.”
“네, 알겠어요. 믿을게요.”
지수의 검지가 허공을 훑었다.
[첫 번째 파티원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스킬을 공유하시겠습니까?]
“그래.”
알림창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보유한 스킬이 없습니다. 해당 파티원과 스킬을 공유할 수 없습니다.]
내가 공유할 스킬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건가?
내가 하나의 스킬을 지수에게 공유하면, 그걸 지수의 스킬과 교환하는 방식인 모양이다.
‘아무 스킬이나 얻어서 주는 건 일도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도 양심이 있었다.
지수는 천살성을 내게 공유했는데, 나는 아무 잡스킬을 공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대한 지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을 공유하는 게 좋겠지.’
마치 RPG에서 동료 파티원을 육성하는 것처럼, 나는 지수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을 선별했다.
‘그렇다면 그게 가장 좋겠어.’
다행히도 나는 지수에게 가장 어울리는 스킬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도 습득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우선 스킬 공유는 뒤로 미뤄야겠군.’
당장 내게 천살성이 필요할 일은 없다.
있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첫 번째 메인 퀘스트는 사실상 이제 거의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포로롱.
그때, 허공에서 둥근 눈동자가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바로 옵저버였다.
‘아슬아슬했군.’
이곳에서 지수가 고블린들을 도살했으니 눈에 띄지 않는 게 이상했다.
“끄응.”
거기다 기절해 있던 이종현과 여자 하나가 깨어날 낌새가 보였다.
“오빠, 어떡하죠?”
“우선은 흩어진 고블린들을 잡아야겠지.”
홉고블린을 죽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다.
몰살 루트를 피했을 뿐이지.
지금 사방으로 흩어진 고블린들도 이곳의 사람들에겐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으으, 어? 히이익?!”
그때, 이종현이 깨어나더니 지수를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하, 한지수. 너 대체!!”
언제나 지수에게 추근거리던 주제에 지금은 꽤나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차라리 이 편이 낫네요. 음흉한 눈으로 보는 것보단.”
지수는 그런 종현의 반응이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포로롱.
옵저버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은지 허공해서 맴돌았다.
저 옵저버의 눈으로 GM 아카터스와 신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야.”
나는 종현을 불렀다.
그제야 나를 발견한 종현이 시선을 돌렸다.
“어, 너, 너는 게임폐인 아냐?”
“그래. 너 왜 이곳에 있었던 거지?”
“이, 이 새끼가 네가 뭔…….”
녀석은 말을 더듬으며 내게 윽박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끊으며 지수가 말했다.
“세한 오빠의 말에 제대로 답해요.”
지수는 고블린의 피로 젖어 있는 녹슨 검을 종현의 목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녀석은 감전된 벌레마냥 바르작 떨었다.
“으, 으으! 알겠어! 알겠으니까 칼 좀 치워!”
그런 그의 모습에 지수가 싱긋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나 잘했죠?’라는 눈치다.
‘……설마 이게 본 성격이었던 건 아니겠지.’
덕분에 말을 하긴 편해졌다.
나는 재차 종현에게 물었다.
“다시 묻지. 너 왜 이곳에 있었던 거지? 제대로 설명해.”
“그, 그게.”
종현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려 내 옆의 지수를 보며 떠듬떠듬 말했다.
“정찰…… 하기 위해서.”
“정찰? 이 여자랑?”
“맞아. 혹시 둘 중 하나가 잘못되면 다른 한 명이 도망가야 하니까.”
평소 나를 무시하던 녀석치고 고분고분한 대답이었다.
아마 내 옆에 있는 지수가 무서운 모양인지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정찰하러 왔다면서 지수가 싸우는 모습에 졸도하다니.’
천살성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참 심약한 녀석이다.
내가 전생에 이 녀석을 껄끄러워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렇다면 누군가 너에게 지시를 하고 있는 자가 있다는 거군. 네가 자발적으로 정찰을 맡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 새끼……,”
비꼬는 내 말에 종현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지수의 칼이 목에 다가오자 광대처럼 웃었다.
“그, 그렇지. 하하. 내가 혼자 자발적으로 정찰을 했을 리가 있나. 하필 시발, 제비뽑기에 져버려서.”
“과연.”
나는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사람들을 끌어 모아 고블린들과 대항하고 있는 자가 있구나.’
이렇게 빠르게 사람들을 통솔할 수 있는 자라면, 어느 정도 직급이 있는 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에 리더십도 있는 거겠지.
‘덕분에 전생에는 싹 쓸려 버렸지만.’
방어선을 구축하고 고블린을 막아내는 건 좋았지만, 퀘스트의 내용은 ‘대학교를 탈출하라’라는 거다.
후에 등장한 홉고블린과 고블린 대군에 의해 다 죽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홉고블린은 죽었다.
그리고 내가 아직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았다.
“이종현.”
“또, 또 왜 불러?”
“지금 사람들을 모으고 통솔하고 있는 사람에게 안내해 줘.”
“어째서?”
이번만큼은 녀석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감돌았다.
녀석의 입장에서 나는 고작 게임폐인에 불과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이 자식이 진짜 미쳤나. 제대로 말 안 할…….”
종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캬아악!”
지수가 죽인 고블린들의 시체 틈에서 살아있던 고블린 한 마리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이곳저곳 검상이 있어 오래 살기는 힘들어 보였지만, 그래서 더 끔찍한 외형이었다.
“히이이익?!”
간신히 몸을 일으켰던 종현이 뒷걸음질 치다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크륵, 크륵.”
고블린은 그런 종현이 제일 약자라고 판단했는지, 반쯤 부러진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캬아아악! 칵?!”
물론, 난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달려들던 고블린의 발을 걸어 넘어트린 후, 그대로 발을 치켜들어 고블린의 머리를 짓밟았다.
콰작!
고블린의 머리가 과자처럼 부서지며 녹색 피가 종현의 얼굴을 향해 후드득 튀었다.
“흐, 흐으.”
종현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싶은 눈으로, 나와 고블린의 시체를 번갈아 보았다.
대체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담긴 눈이었다.
물론, 나는 녀석의 의문에 답해줄 생각이 없었다.
“빨리 안내해.”
당연히 종현의 머리는 군말 없이 끄덕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