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204화 (204/208)

# 204

204화. 짐승의 법 (2)

오딘은 허- 헛숨을 토했다. 그건 안도의 한숨이었다.

올림포스는 이번 생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동시에 그건 어이없음이 가득 담긴 한숨이었다.

“델로스섬이 침몰한 게 우리 쪽의 수작이라고?”

티르가 긍정했다.

“신계 연맹 쪽에 이 사건을 정식으로 제소했다고…….”

“어이가 없군.”

언제나 올림포스는 그래 왔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걸로 남 탓을 해 왔다.

포세이돈의 분노로 인한 지진과 해일. 그로 인해 제국이 망가지자 포세이돈을 벌하기보다는 에인헤리를 탓하지 않았던가?

그건 역사를 뒤져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세 여신의 내기. 그 내기를 걸게 한 것이 불화의 여신, 에리스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처벌하지 않았다. 그저 심판으로 불려 왔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를 탓하기만 했다.

문득, 오딘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디세우스와 내기했던 그 에인헤리…….’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올림포스의 이름난 영웅을 내기로 이긴 에인헤리의 이름이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무언가 오딘의 촉을 툭툭 건드린다.

잡힐 듯 말 듯 한 상황, 티르가 생각을 방해했다.

“어떻게 대응해야겠소?”

“대응? 대응할 필요는 없다.”

생각을 방해받아 짜증이 난 오딘이 툭 뱉었다.

티르가 끼어든 탓에 그가 놓치고 있던 작은 단서가 무엇이었는지 깜빡했다. 유리창에 난 미세한 실금처럼, 한번 놓치면 잡기 어려운 흔적이었다.

티르가 고개를 저었다.

“대응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질 게 뻔한데도?”

이미 에기르가 올림포스 앞바다까지 힘을 쓴 게 포착되어 증거로 제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게 결정적인 증거는 될 수 없지만, 심증은 굳어질 터. 티르는 불안했다.

‘괜히 무역 제한이라도 걸린다면…….’

대체 오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딘은 피식 웃었다.

“신계 연맹이 얼마나 갈 것 같은가?”

툭 던진 말에 티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수백 년간 서로 협조해 온 연맹이다. 그 연맹의 수명? 단숨에 무너지지는 않을 터. 티르가 인상을 구겼다.

“신계 연맹이 곧 사라질 거라는 말이오?”

“그래.”

“하지만…….”

오딘이 손을 휘저었다.

“신계 연맹은 원한을 너무 많이 샀다.”

무역이나 거래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상호발전이다. Win-Win. 하지만 모두가 안다. 그 이상적인 형태는 그저 이상일 뿐이라는 것을.

지금 당장 돌아가는 모양새만 봐도 그렇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이끄는 메스트(Mest) 신계. 그곳은 지나치게 발전한 땅이지.”

신계 연맹 통신이나 TV 방송 등의 문물은 모두 그곳에서 나온 것이다. 발할라 리그 등으로 다른 신계에서 금화를 벌어들이고는 있지만, 메스트 신계의 문물을 쓴다는 이유로 그들에게도 얼마간의 수수료를 떼어 줘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금화를 벌어들이는 그들이 예뻐 보일까?

아니리라.

“…메스트 신계를 제재해야 한단 말이오?”

“그뿐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연맹 자체를 불신하는 이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브리튼 왕실이다.

그 땅을 차지한 옛 신들을 몰아내고 신정일치 사회를 구축한 그들이 신계 연맹을 좋게 볼 수 있을까? 마난난 막 리르 같은 옛 신들이 연맹에 숨어 있는데? 연맹 내부에서 황금을 끌어모아 재기를 노린다면 어찌 될까? 신도를 잃어버리고 햄버거나 팔고 있다고 한들,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으음. 그것도 그렇지만…….”

티르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예전부터 연맹 내부에서 온갖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그러고도 백 년 이상 지속되지 않았던가? 그게 이제 와서 무너진다?

넙죽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협력자라는 이름으로 토벌하기 까다로운 이들과 손잡았을 때부터, 연맹의 몰락은 예정된 바다.”

오딘은 확신하며 말했다.

그가 본 미래에서 신계 연맹이 계속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완전히 망해 버리는 일도 있었고, 연맹 소속 신계들끼리 내전을 벌이기도 했고, 그저 유명무실하게 되는 일도 있었지만… 어쨌든, 멀쩡한 경우는 없었다.

“신들은 모두가 오만하고 욕심이 많다.”

자신이 숭고한 존재라는 걸 아니까.

그렇기에 오딘은 연맹의 힘을 믿지 않았다. 그가 처음 회귀했을 때가 오딘이 연맹을 믿은 마지막이었다.

“자신이 가장 높지 않다는 걸 어찌 견딜까. 이만큼이나 유지되어 온 것도 당장의 닥쳐 올 멸망이 위협적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연맹을 이루며 제각기 이득을 얻었다. 이득을 얻지 못한 이들은 모두 멸망했다. 다른 신계에 모든 걸 빼앗기고서 말이다.

“티르, 연맹을 믿지 마라. 그리고 연맹의 힘을 무서워하지도 마라. 이미 우리는 연맹을 의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해졌으니.”

오딘의 말에 티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과 법을 책임진다 한들, 최고책임자는 오딘.

그의 명에 따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올림포스, “델로스섬을 침몰시킨 것으로 모자라 제국의 영역을 침범하는 아스가르드는 악의 축.”>

<오딘, “하계불가침을 어긴 바는 없으며, 델로스섬의 침몰은 올림포스의 자작극.”>

<심화되는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의 갈등.>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진실을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

신계 연맹 커뮤니티가 들끓었다.

올림포스 측과 아스가르드 측. 각 신들이 통신망을 이용해 말다툼을 벌였다. 처음에는 그저 서로가 맞다 우기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맹목적인 비난으로 가득해졌다.

커다란 신계 둘이 으르렁거리자, 가운데 낀 신계 연맹은 이도 저도 못하고 곤란하다는 태도를 보일 따름.

신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던 신계 연맹이라는 권위에 금이 갔다. 그 권위가 완벽하게 깨진 것은 한 협력자가 일으킨 사건 탓이었다.

<하르마겟돈, 발발! 협력자, 사탄. 헤이븐의 신좌를 얻어 내고자 악의 무리를 이끌다!>

<협력자 체계, 이대로 괜찮은가?>

신계 연맹에서 벌해야 할 이들을 봉사활동 등의 유익한 행위로 인도하는 정책이 바로 협력자 시스템이다. 악을 계도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계몽될 수 없는, 본질적 악을 계몽한다는 게 욕심이었다.

협력자로 일하며 알게 된 무수한 악신들이 사탄에게 협력하면서, 오히려 사탄은 홀로 악행을 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존재가 되었다.

신계 연맹의 대실패.

메스트 신계를 제외하면 가장 커다란 신계, 헤이븐이 회생하기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신계는 이제 신계 연맹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신계 연맹이 유명무실해지자, 올림포스에서 움직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말라 죽을지도 모른다!”

제우스의 외침에 12주신들이 전쟁에 찬성했다.

제국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야만인을 몰아낸다는 기치를 걸고 봉기했다. 하계불가침을 무시하고 신들이 강림하여 제국군을 이끌었다.

그에 아스가르드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토르가 소리쳤다.

“우리를 믿는 이들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전쟁은 경제와 행정을 파탄 내는 짓이지만… 그래도, 전쟁을 피할 수는 없는 단계에 이르렀소.”

티르 역시 토르의 말에 동감했다.

이미 올림포스는 아스가르드와 무역선을 다 끊어 냈다. 맞서 싸우든 아니든, 경제가 박살 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

티르는 행정부의 우두머리이기 전에 결투의 신이었고,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신도 아니었다.

수많은 신들이 올림포스에 반발했다.

오딘은 골치가 아팠다.

‘…내가 이제까지 겪어 온 전쟁은 이러한 게 아니었건만.’

오딘이 으음- 침음을 흘렸다.

그의 회색 외눈이 신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외치는 젊은 신을 바라보았다.

오디슨이었다.

* * *

가장 강력한 신을 논할 때 이제 내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발할라 리그의 챔피언 벨트가 내 허리에 걸려 번쩍였다. 토르와 펜리르 정도가 아니라면 이제 날 이길 사람은 없다는 게 중론.

물론, 신들이 워낙 많은 탓에 찾아보자면 나와 비등하게 싸울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이들은 아스가르드의 후계자 자리를 그리 바라지 않는 모양이었다.

앞으로 3개월. 그 시간을 버틴다면, 나는 오딘의 뜻에 따라 아스가르드의 후계자가 된다. 오딘이 바라는 일은 아니리라.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았다.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사로서 이 꼴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소. 가증스러운 제국 놈들에게 피의 철퇴를!”

굳게 말하자, 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펜리르도 그르릉- 울며 히죽 웃었다.

“과연, 후계자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야. 우리는 신이고, 신은 인간을 지켜야지! 우리의 숭고함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

“흐흐, 내 매형 될 사람이라면 그래야지!”

둘을 필두로 신들이 하나같이 올림포스를 무찌르자 소리치기 시작했다.

델로스섬을 침몰시킬 때는 그저 올림포스의 속을 긁어놓을 셈이었지만, 내 생각보다 잘 통했다. 아마, 오딘이 그들의 항의에 콧방귀를 뀌었기 때문이리라.

오딘으로서는 내가 했다는 걸 모르니, 자작극이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이 오해는 내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오딘을 바라보았다. 그 회색 외눈에는 읽어 내기 힘든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개중에는 분명, 나에 대해 껄끄러움도 있을 터.

나는 흐뭇하게 웃고 싶었지만, 참아 냈다.

오딘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딘이시여! 가장 높으신 분이시여. 하계에 있는 우리 동포가 간악한 제국 놈들에게 도륙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디슨… 지금은 때가 좋지 않다.”

때가 좋지 않겠지.

오딘이 세워 뒀던 계획들은 모조리 뒤틀렸으니까.

수많은 회귀로 만들어 둔 계획이 엉망이 되었을 때, 오딘은 어찌 움직일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늘 좋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늘 좋을 수는 없다, 라…….”

오딘이 내 말을 곱씹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좋은 때만 기다리며 웅크리다간 결국 모든 걸 다 잃고 말라 죽을 겁니다. 도망을 반복하다 보면, 도망에 익숙해지는 법. 우리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습니다.”

내 말에 티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디슨의 말이 맞소. 올림포스가 하계에 개입하면서 신도들의 이탈이 굉장히 빨라졌다. 오딘, 더 두고 보다가는 아스가르드가 붕괴한다.”

“…신앙을 저버렸다고……?”

오딘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언가 짐작 가는 게 있으리라.

오딘의 회색 눈이 좌중을 훑는다. 그리고 미약하게 떨렸다.

…알아챘구나.

오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나를 똑똑히 바라본다.

일부러 드러낸 내 신성을 훑는 시선이 느껴진다.

“…도망칠 수 없다고?”

홀로 중얼거리는 것 같지만, 난 그 말에 담긴 뉘앙스를 알아챘다.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게임을 다시 시작한들, ‘혼자서’만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니까요. 내가 익숙해지는 만큼, 상대도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오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눈동자가 떨리는 건 이제 미약하다 말할 수준을 넘어섰다. 표정을 관리하고 있지만, 경악한 게 느껴진다.

날카롭게 갈아온 이빨을 드러낼 때가 왔다.

자! 어쩔 테냐, 오딘.

내 눈빛에 담긴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터. 다음 수는 어디에 둘 테냐?

나와 오딘이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때, 토르가 끼어들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우리가 피할수록 우리를 쫓는 올림포스의 추적도 능숙해질 거란 말입니다.”

“아,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지.”

토르가 고개를 주억였다.

다른 신들 역시 선문답이 아닌 명확한 설명에 그럴 법하다며 수긍했다.

오딘의 얼굴이 한층 더 딱딱해졌다.

이 자리에 모인 신들이 알게 모르게 날 따른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로키스 패밀리로 분류되는 파벌은 나와 헬의 관계를 알자마자 가족이나 다름없이 날 감쌌다.

토르를 따르는 정의파 역시 마찬가지. 그들이 좋아하는 정의나 수호를 가장 눈에 띄게 실천하는 게 나다. 내 본성이 그들과 닮았으니 가장 편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에기르를 비롯한 거인 출신 신들도 날 좋아했다. 로키의 사위라는 입장 덕도 있다. 로키 역시 거인 출신 신이니까. 그 외에도 나는 평소에 거인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휴전 상황인 거인 왕국의 수뇌부와도 꽤 친밀했으며, 거인 왕국 내에서의 내 인기도 상당한 편.

거인 남성들은 강한 전사를 좋아한다. 거인 여성들은 내 외모를 좋아했다.

나와 별로 친밀하지 않은 파벌은 딱 하나뿐.

바니르 신족 출신인 뇨르드와 프레이야, 프레이 등이 있는 파벌. 프레이야의 접근을 차단한 탓에 어색한 관계다.

오딘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방해할 수는 있다.

“오딘이시여!”

결정을 촉구했다.

오딘이 눈을 떴다. 회색 외눈은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고, 그 눈동자에 담긴 은근한 분노는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허락하노라. 오디슨, 네가 책임지고 올림포스의 침공을 막아 내라.”

끝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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