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202화 (202/208)

# 202

202화. 신의 자격 (3)

오딘을 세상을 망치는 걸 막아 내는 일은 복잡한 일이다.

막무가내로 오딘을 공격해 죽인다? 마법을 쓸 틈조차 주지 않고 오딘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들,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오디슨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후계자 발언을 끌어내기 위해 애썼지.’

비다르와의 다툼은 적당한 선에서 끊을 수도 있었다.

지금의 오디슨이라면 말이다.

찌꺼기로서 힘을 자각한 지금, 비다르가 타락하는 걸 못 막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가장 타락한 이가 오디슨이니까.

타락이라는 건 어떤 종류의 실수다. 충치와 비슷하다. 하루 세 번 삼 분씩 양치질을 시키기만 해도, 충치가 생길 확률이 확 낮아지듯.

오디슨은 비다르의 타락을 막을 지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세상을 위해? 아니다.’

오디슨은 대의명분을 내세워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된다면 오딘과 다를 게 없다. 오디슨은 스스로 죄악을 짊어졌다.

‘내 사적 복수를 위한 일이었다.’

비다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았다.

비다르와의 결투는 오딘의 후계자 발언을 이끌어 내기 위한 짓이었다. 비다르의 타락은 오디슨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위한 일이었다.

“후우.”

그렇다면 지금 벌이는 일 역시 오디슨이 감내해야 한다.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생겼고, 그 자리에 오른다면 명분 하나가 완성된다. 오딘 사후, 아스가르드를 안정적으로 이끌 명분. 그 외에도 오딘의 실각 명분이 필요하다.

지금 오디슨이 하는 것은 그를 위한 일이다.

‘미안하구나, 판도라.’

그녀가 얼마나 착한 여자인지 알기에, 오디슨은 죄책감을 덜 수가 없었다.

“꺄아아악!”

막을 수 있는 그녀의 불행을 막지 않았다.

동굴 속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을 듣고, 토르손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게 무슨…….”

“가자.”

오디슨의 말에 토르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보자면 불쌍하게 핍박받는 이를 위해 나서는 일일 뿐이다.

선한 가면으로 추악한 계산 속을 감췄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흐느끼는 여자의 목소리. 그리고 낄낄거리며 음담패설을 내뱉는 사내들.

토르손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저, 저……!”

으드득, 토르손이 이를 악물었다.

오디슨은 그저 마음속으로 사과를 하며 창을 집어 들었다.

“불의를 참을 게냐?”

“물론 아니지.”

토르손이 대검을 꺼내 들었다.

다이스에서 파는 싸구려 대검이지만, 사람을 죽이기엔 충분한 물건.

토르손이 대검을 휘두르자, 낄낄거리며 판도라를 희롱하던 사내의 목이 뚝 떨어졌다.

“어?”

촤아악, 붉은 피가 튀었다.

사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 무슨!”

“개소리를 듣고 싶진 않다.”

오디슨이 창을 내질렀고, 머리를 꿰뚫었다.

순식간에 둘이 죽어 나자빠지자, 저항하는 판도라의 손을 치우고 그녀의 옷가지를 찢으려던 사내가 입을 쩍 벌렸다.

“사, 사제님!”

사내들과 동행한 제우스 신전의 사제가 크흠-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무도한 작자들아! 나는 제우스를 모시는… 컥!”

사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우스의 사제라고 하면 소국의 왕들조차도 고개를 조아리는 신분이건만, 눈앞의 괴한은 창을 멈추지 않았다.

은빛 스테인리스 창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사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 감히…….”

“…대장, 괜찮은 거야?”

제우스라는 이름을 알아들은 토르손이 조심스레 물었다.

오디슨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올림포스의 왕좌를 차지한 자가 이런 악업을 두고 보실 리가 없다. 신을 사칭하는 사기꾼아,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허, 헛소리……! 나는 분명 제우스의 명으로…….”

더듬거리며 말을 주워섬기지만, 오디슨은 들어줄 생각이 없다.

“지하세계로 가, 네 죗값을 치러라.”

“커억!”

창을 비틀자, 상처가 벌어졌다.

심장이 완전히 찢어졌고, 사제는 그대로 꼬꾸라졌다.

남은 것은 사내 하나뿐.

그가 입을 벙긋거렸다.

“이, 이 사악한 마녀를 두, 두둔하는 게요!”

오디슨이 피식 웃었다.

“사악한 자에게 사악한 짓을 하는 건 정의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신의… 케엑!”

“듣고 싶지 않다. 신을 사칭하는 것들아.”

동굴에 침입한 이들은 그걸로 끝이었다.

넝마주이로 어떻게든 몸을 가리려 애쓰는 판도라가 떨리는 눈동자로 오디슨과 토르손을 바라보았다.

“이, 이들은… 정말, 신의 명을 들었을지도 몰라요. 가세요, 어서. 이대로라면 당신들에게 신벌이 떨어질 거예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당장 가라 하는 판도라.

그 말에 오디슨이 한숨을 푹 쉬었다.

“가져갈 게 있어 왔소.”

“가져갈 거요……?”

오디슨이 고개를 끄덕이고, 토르손을 바라보았다.

토르손은 오디슨의 대담한 짓에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신벌이니 뭐니 하지만 이 꼴을 보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도 명예를 아는 전사였다.

“오딘의 명으로 왔습니다. 항아리를 얻으라는…….”

“오딘이라면…….”

판도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올림포스에 속한 죄인이긴 하지만, 제우스를 제외하면 다른 신들에겐 감사함도 있었다.

그녀를 만들고 그녀에게 선물을 준 이들이니까.

어쨌거나 판도라는 ‘희망’을 내어 줄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그걸 지키라는 명이 내려진 적도 없으니까.

그저 그녀는 죄의 상징으로 괴롭힘 받을 뿐이다.

오디슨은 그 광경을 보며, ‘정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느긋하게 기다리는 건 취향이 아니니까.”

오딘이 경계하는 것은 세상에 파멸을 몰고 올 일들.

오디슨은 오딘을 배제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모순’적이지만 파멸을 인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오겠다.”

쓴웃음을 머금은 오디슨이 창을 꽉 쥐었다.

죄책감이 심장을 억눌렀지만, 죄를 짊어지기로 마음먹었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 * *

대장은 대단한 사람이다.

하계에서도 그랬다. 대장보다 힘센 사람은 많았다. 대장보다 창을 잘 쓰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대장보다 끈기 있는 전사는 없었다.

대장은 처음 전사가 되었을 때, 나보다도 하급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했고, 전공을 세우더니 베르세르크의 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발할라에 올랐다.

계속해서 노력만 하면 능력이 늘어나는 곳. 그곳에서 나는 대장과 나의 격차를 깨달았다.

“여기가 오디슨 님 단골 가게지?”

“응, 주인이 좀 험악하긴 해도 맛은 좋대.”

“혹시… 오디슨 님이 오시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내 친구는 오디슨 님을 직접 봤다던데.”

나보다 겨우 몇 달 앞서 발할라에 들어온 대장이건만, 발할라에서 수십 년을 지낸 이들보다 더 큰 명성을 얻었다. 심지어 신이 되기까지.

난 대장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대장을 질투했던 것 같다.

가게가 문을 닫고 공터에서 칼을 마구 휘둘렀다. 세흐림니르 고기와 헤이드룬 미드. 신비한 그 먹거리를 마구 해치워 힘도 체력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부족했다.

“헉헉.”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노력해도,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았다.

멍하니 가로등을 보고 있자니,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신문 한 장이 날아왔다.

<나비르(13세), “오디슨 님처럼 강한 전사가 되고 싶어.”>

두 달쯤 전 신문이다.

대장이 비다르와의 결투에서 구해 낸 아이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어떻게 해야 대장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더는 대장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다. 이끌어 줘야 하는 부하가 아니라, 믿고 맡길 수 있는 부하가 되고 싶었다.

“…대장은 날 부하로 생각하긴 할까?”

그의 뒤를 따를 수 있을까?

너무 애쓴 모양이다. 힘이 빠진 듯한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까악-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의 울음소리.

오딘께서 전사를 키우시는 요람, 발할라다. 오딘의 종복인 까마귀가 많을 수밖에.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다.

“더 강해지고 싶은가?”

늙은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흠칫 놀라 검을 쥐고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가올 정도라면, 보통 사람이 아닐 터.

그 추측은 정답이었다.

“…당신은?”

척 보기에도 보통 사람은 아닌 듯한 모습이었다. 얼굴을 가리는 후드 때문에 누군지 알아볼 수는 없지만, 감각이 찌릿찌릿 울린다.

동물적 감각. 대장은 날 더러 곰탱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내가 토끼에 가까운 사람인 걸 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 본능이 소리친다. 당장 도망치라고. 하지만 눈앞에 이 노인을 볼 때, 내 감각은 도망치라 하지 않았다.

-포기해.

본능은 확정된 죽음을 알려 왔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방금까지 흘린 땀은 이미 다 식었건만, 서늘한 밤바람이 거짓말이라는 듯 온몸에서 땀이 뻘뻘 난다.

“…누구십니까?”

덜덜 떨면서도 그에게 물었다.

노인은 끌끌 웃으며 후드를 벗었다.

낯익은 외모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당장 무릎을 꿇었다.

“높디높으신 분, 오딘을 뵙습니다!”

과연, 오딘이라면 내 감각이 미쳐 날뛰는 것도 정상이다.

무슨 수를 써도 도망칠 수 없었을 테니까.

오딘께서는 끌끌 작게 웃으셨다.

“다시 물으마. 강해지고 싶으냐?”

물론이다. 강해져서 더, 강해져서 대장을 돕고 싶다. 대장에게 기대 살아남는 건 지긋지긋하다.

고개를 조아렸다.

“그 방법을 일러 주마. 내가 내놓는 시험을 통과한다면, 너는 더 강해질 것이다. 황금의 마녀를 찾아라, 토르손.”

“황금의 마녀라면…….”

“굴베이그. 그녀가 네가 가야 할 일을 일러 주리라.”

언젠가 들은 기억이 있다.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알게 모르게 이런 쪽에 빠삭한 대장이라면 알고 있을까? 그리 생각할 때, 오딘께서 덧붙이셨다.

“이 시험에 대한 것은 비밀이다.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대장에게 물어볼 생각은 그만뒀다.

한참을 고개 숙인 채 있다, 아무런 말이 없으셔서 고개를 들었더니…….

“허… 가셨군.”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어쨌든, 나는 밤중임에도 당장 굴베이그를 찾았다.

대장과 달리 나는 여러 가지 기계에 익숙하다. 신계 연맹 통신망을 통해 굴베이그의 위치를 찾았고, 그녀에게서 시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델로스섬에 가서 어떤 항아리를 찾아오라고?

델로스섬이 어디더라? 무심코 대장의 점심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물었다.

대장은 피식 웃더니, 귓속말했다.

“시험인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어떻게……?”

“그야, 오딘께서 말씀해 주셨기 때문 아니겠느냐? 너 혼자 올림포스 영역에 있는 섬으로 갈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도와주마.”

그러고 보면, 대장은 오딘과 몇 번이나 마주쳤을 정도로 오딘께 총애받는 전사. 오딘께서 슬그머니 언질을 줬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납득하기 무섭게 대장은 이런저런 준비를 했다.

바다의 신, 에기르에게 부탁해 바다를 안전하게 건넜다. 옛이야기에서나 보던 타른카페를 구해와 들키지 않고 섬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딘께서 명하신 항아리를 손에 넣었다.

“이게 그…….”

그리 말할 때, 대장이 돌아왔다.

“챙겼나?”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은 내가 쥔 항아리를 뚫어져라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럼 가자. 곧 섬이 가라앉을 게다.”

“…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나만 들은 게 아닌지, 판도라라는 여자도 입을 쩍 벌렸다.

“섬이 무너진다고요?”

대장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유피테르의 사제가 죽었는데, 유피테르가 아무런 조사도 안 할 것 같더냐? 남은 흔적을 하나하나 지우기보다는 차라리 이러는 게 낫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외치고 싶지만, 문득 깨달았다.

대장은 이미 신이 되었다.

“…신은 전지전능하다더니, 그런 것도 할 수 있는 거야?”

“신이 뭐든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토르손.”

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신은 모든 걸 아는 게 더 중요하다.”

맞는 말이다.

수많은 신들 중 오딘께서 가장 높으신 이유가 그것 아니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는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알 따름이지만.”

궁금해졌다.

“대장이 뭘 할 수 있는데?”

“흐음, 뭔가 부수는 건 잘하지. 그게 뭐가 됐든 말이야.”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예전에는 제국군을 부쉈고, 제국의 도시를 부쉈다. 그런 양반이 신이 됐는데 섬쯤이야… 부술 수도 있지.

어깨를 으쓱였다.

* * *

그러니까 토르손.

널 이용한 오딘을 부술 게다.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다. 하지만 신은 자신을 믿는 이들을 아껴야만 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최소의 자격이다.

그렇지 않다면, 악마와 신이 다를 게 무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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