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80화 (80/208)

# 80

80화. 영웅은 의심받는다 (3)

콰드득!

“커윽…….”

후득, 후드득.

황금 갑옷이 설탕 과자처럼 부서졌다.

비다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가슴팍에 박힌 창을 보았다.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은 함성을 내질렀고, 장내 방송도 호들갑을 떨어 댔다.

[대단합니다! 오디슨!]

[저 황금 갑옷은, 분명… 공방제 명품일 텐데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박살 냅니다! 아이고! 저게 얼맙니까!]

[적어도 10억 크로나는 하지 않을까요?]

뭐? 10억 크로나?

바닥에 나뒹구는 갑옷이 갑자기 엄청 아까워졌다.

비다르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이……! 천한 것이……!”

“할 말은 그것뿐인가? 그분의 피를 이었다는 걸 제외하면, 네가 스스로 얻어 낸 게 뭐가 있지?”

툭 내뱉은 말에 비다르의 얼굴이 더 붉어진다.

놈이 손을 뻗어 창대를 잡으려 할 때 창을 뽑았다.

비다르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으득! 쥐- 새- 끼 같은 노- 옴!”

아까보다 더 붉어진 얼굴이다.

그런다고 한들…….

“겁먹을 것 같은가!”

퍽퍽퍽!

비다르가 휘젓는 손길을 피해 창을 휘둘렀다.

강대하던 복수의 신이 엉망으로 얻어터진다. 비다르가 뭐라 소리쳤지만, 관중들의 소리에 묻혔다.

관중들이 날뛰며 소리쳤다.

“죽여! 저 새끼를 죽이라고!”

“신이 별거냐! 망할 새끼가 무슨 신이라고!”

“꺼져라, 비다르! 네깟 놈은 신도 아니다!”

와아아아!

비다르는 거의 피 칠갑이 된 듯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리 많은 피를 흘리지도 않았건만,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녀석은 눈을 부릅떴다.

“허! 그렇게 날 노려봐서 어쩔 거지?”

“네, 네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내 아버지가 바로 오딘이시다! 내 형이 토르다! 너, 너…….”

쯧, 이제는 협박인가?

이 바보는 이 결투가 오딘의 허락하에 진행됐다는 걸 까먹은 걸까?

푸욱!

“커억……! 켁켁……!”

나는 놈의 목에 창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서늘한 눈으로 말했다.

“네 배경 따위 궁금하지 않다. 그저, 너 자신을 보여라.”

그것이 결투에 나선 이가 할 일이다.

전사답지 못한 꼴로 허둥대는 걸 보고 싶은 게 아니다.

“크억… 큭!”

비다르가 몸을 뒤틀었고, 나는 창을 휘둘러 녀석의 몸을 휘청이게 했다.

마침내 창이 빠지고, 비다르가 바닥에 엎어졌다.

“끝이다!”

“끄윽, 켁… 자, 자…….”

엉거주춤 우스운 꼴로 웅크린 채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비다르.

녀석은 손바닥을 내게 보이며 멈출 것을 애원했지만, 글쎄.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던가?

“말했었지. 사과하지 마라. 빌지도 말고.”

“자, 잠끄안……!”

[오디슨! 창대를 듭니다!]

[아, 오디슨 님이라고 해야 합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창대를 들고…….]

[끝장내나요!]

푸욱!

창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비다르의 왼쪽 눈을 꿰뚫었다.

“끄으으, 아, 안 대애……!”

비다르가 입을 쩍 벌린 채 벙긋거린다.

부르르 떨던 놈이 축 늘어졌다.

이게 신의 최후인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초라하군.”

한심스러운 꼴이다.

눈살을 찌푸리고 창을 빼내려 할 때.

쩌적-!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막을 뒤흔드는 함성 속에서도 선명하게 와닿는 소리.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무수한 까마귀 사이에 고고하게 서 있는 백로처럼.

선명하게 튀었다.

“뭐지?”

눈살을 구겼다.

꼭 이 세상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 * *

부들부들.

아레스가 몸을 떨었다. 그의 손에 있는 핸드폰도 덜덜 떨렸다. 떨리는 화면 속에는 복잡한 숫자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개중 가장 주목할 법한 건 하나였다.

[신성주: 비다르]

[전일비 ▼100%]

(거래 불가 항목입니다.)

(사유: 상장폐지.)

TV가 떠들어 댔다.

[이변입니다! 이변!]

[대체 누가 오디슨이 비다르를 꺾을 거라 예상했겠습니까! 애드피를 기준으로 하면 무려 22배 차이가 나는데요!]

[아! 비다르 신성이 상장폐지가 되면서, 이거… 음…….]

상장폐지로 인한 혼란은 보통이 아니었다.

특히나 분위기에 휩쓸린 신들이 비다르에게 투자를 과하게 했다. 그 덕에 비다르의 신성이 조금이나마 오른 추세였기에 훨씬 타격이 컸다.

신성 투자 소모임 게시판은 난장판이 되었다.

[쒸벌… 스틱스강으로 간다.]+22

[투기장 소모임에서 왔는데, 여기 우시장 맞죠? 흑우 파나요?]+999

[미치겠네 진짜… 위그드라실에 목매러 감 ㅂㅂ2]+8

아레스는 입을 벙긋거렸다.

“아… 으, 미친……! 이런 개……!”

부들부들 떠는 아레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에로스와 프시케가 눈치를 살피며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그도 흥- 콧방귀를 뀌는 아프로디테 앞에서는 의미 없었다.

“내 집에서 욕하지 말고, 당장 꺼져요.”

“아니, 씨… 이게…….”

“아레스?”

아프로디테가 빙긋 웃었다.

과연 미의 여신이라는 건지, 그 웃음은 심장이 덜컥 멈출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아레스가 넋을 놓을 때 아프로디테가 말을 이었다.

“당장, 나가요.”

아레스는 뭐라 대꾸도 못 하고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비다르, 이 병신 새끼…….”

터덜터덜 걸어 나가는 아레스는 전쟁의 신답지 않게 힘이 없었다. 축 늘어진 채 걸어가는 아레스의 등에 대고 아프로디테가 소리쳤다.

“병신은 당신이에요! 진짜… 어휴.”

틀린 말은 아니다.

아레스는 분명 전신(戰神)이고, 병신(兵神, 군대의 신)이니까.

아프로디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엄마, 그래서… 아빠랑 완전히 갈라서는 거야?”

슬그머니 에로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 말에 아프로디테가 에로스를 와락 껴안았다. 결혼해서 청년 신으로 성장했다지만, 여전히 아프로디테에게는 어리고 예쁜 아들일 뿐이었다.

“그럴 수야 있겠니? 그래도 같이 산 게 몇 년인데…….”

“그럼?”

“적당히 반성했다 싶으면 다시 오라 해야지. 그래도 네 아빤데.”

어휴, 아프로디테가 한숨을 푹 쉬었다.

잠깐 더 머무르며, 아프로디테를 위로한 에로스 부부는 아프로디테의 궁전을 나섰다. 오랜만에 방문한 본가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불편했으니까.

부부는 조용히 걸었다.

“저, 근데, 여보.”

“음? 왜 그래?”

프시케가 슬쩍 에로스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냈다.

“…오디슨은 왜 저렇게 셀까요?”

“음?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좀 이상하잖아요. 분명 볼바가 하나뿐인 신이라고 들었는데…….”

“볼바는 하나뿐이지만, 붉은 마왕에 대한 악명은 널리 퍼져 있잖아?”

신앙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리지 않는다.

어느 한 곳에서는 선신이고, 어느 한 곳에서는 악신인 신이 한둘일까?

그저 믿음의 크기가 신성의 크기가 된다.

“아니, 그렇다곤 해도… 이상하잖아요. 의심스러워요.”

프시케의 말에 에로스가 쯧- 혀를 찼다.

“당신, 그 의심과 호기심 때문에 큰일 날 뻔한 걸 잊었어?”

“…에이 참. 저도 알고 있어요. 사랑과 의심은 공존할 수 없다! 그래도 제 사랑은 당신뿐인 걸요?”

헤헤, 웃는 프시케를 보자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에로스도 피식 웃어 버렸다.

그가 정체를 숨기고 프시케와 함께할 때, 프시케는 혹시나 자신의 신랑이 정말 끔찍한 괴물이 아닐까- 싶어 불빛을 비춰 본 적이 있었다.

그때, 하필이면 램프에서 뜨거운 기름이 떨어져 에로스가 깨어났다.

에로스가 의심에 실망해 말을 뱉었다.

‘사랑과 의심은 공존할 수 없다.’

프시케는 에로스를 잃고 그를 되찾고자 아프로디테에게 빌었다. 그리고 시련을 겪게 되었다. 개중 마지막 시련. 명계의 왕비, 페르세포네에게 아름다움을 얻어 오라는 임무.

거의 다 완료한 임무지만, 프시케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아름다움이 담긴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상자에 든 것은 죽음의 잠.

프시케는 영면에 빠졌고, 에로스는 할아버지인 제우스에게 빌어 프시케와의 결혼을 허락받았다. 그렇게 되니 아프로디테도 마냥 프시케를 내칠 수가 없었다.

‘…흐음, 분명 의심과 호기심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지만…….’

에로스가 팔짱 낀 아내, 프시케를 보며 생각했다.

이번은 그녀의 의심이 맞을지도 모른다.

“…집에 가기 전에 일단, 엘리시움에 들러야겠네.”

“엘리시움요?”

프시케가 고개를 갸웃했다.

에로스가 빙긋 웃으며 프시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당신의 의심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소? 확실히 이상하긴 하니…….”

“정말요? 정말 제 말을 믿어 주는 거예요?”

로스가 고개를 끄덕였고, 프시케가 꺅- 소리치며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둘은 결혼한 지 한참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잉꼬부부였다.

에로스 부부가 제기한 의문이 엘리시움에 접수되었다.

-오디슨이 이상하리만치 강하다. 수사해 달라.

사실 에로스 부부만 의심한 것도 아니었다. 비다르에게 배팅했다가 알거지가 된 수많은 이들이 승부 조작을 떠올렸다.

-혹시 이전부터 문제가 많던 비다르를 쳐내기 위한 수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그럴 듯한 상황이었다.

비다르의 신성이 금 가기 시작한 것은 오디슨과 부딪히면서부터. 최근의 부적절한 발언은 그야말로 자폭이나 다름없었다. 폭탄을 떼어 내기 위해 아스가르드 상층부에서 무슨 수를 쓴 게 아닐까?

신고가 접수되고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 수사를 맡은 것은…….

“제기랄. 내가 이딴 일이나 해야 하다니.”

오디세우스였다.

* * *

비다르의 몸이 들썩였다. 팔다리가 경련했다.

“음? 아직 안 죽었나?”

깜짝 놀랐다. 창을 뽑고 뒤로 물러섰다.

놈이 신음과 함께 몸을 뒤튼다. 새우처럼 몸을 움츠린 그가 움찔거린다.

“끄윽……!”

숨통 한번 질기다. 끝장낼 생각으로 창을 고쳐 쥐었다.

하지만 비다르의 상태가 이상하다. 웅크린 그의 등이 불룩불룩 치솟았다. 살색은 시뻘겋게 변했고, 살갗이 울룩불룩 끓어오른다.

역겨운 광경이 눈살을 구겼다.

“…숨겨 둔 권능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의문을 입에 담을 때. 관중들도 웅성거렸다.

장내 방송도 저 이상한 꼴에 대해 해설하지 못했다.

[어, 숨겨 둔 권능인가요? 최후의 권능?]

[아뇨, 비다르 신성은 이미 상장폐지 됐습니다. 즉, 신성이 완전히 깨졌다는 이야기죠. 권능은 아시다시피, 신성에 기반하는…….]

“끄으으으……!”

비다르가 신음성을 흘리고, 그 등이 부풀어 오르다 못해 터져 버렸다.

쩌억! 번데기가 갈라지듯, 그의 등이 갈라졌다. 그리고 튀어나온 것은…….

“날개?”

신들은 사실 날개를 숨기고 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성화(聖畵)를 그릴 때 날개를 그리는 경우는 왕왕 있다. 하지만 그 날개는 모두 성스러운 흰 날개다.

저런 갈색과 검은색이 얼룩덜룩 섞인 게 아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비다르가 고개를 들었다.

헛숨을 터트렸다.

“…허.”

놈의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머리털이 빠졌고, 입이 불쑥 튀어나와 주둥이, 아니 부리가 되었다.

뚝뚝 피눈물을 흘리며 비다르가 입을 들썩였다.

“복수… 복수… 복수, 복수하겠다!”

그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경련하던 팔다리는 나뭇가지를 닮은 새의 발로 바뀌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투기장 바닥을 긁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어…….]

관중도, 장내 방송도 당황한 상태다. 나 역시 그랬다.

예전에 한번 생각해 본 바가 있었다.

‘신성을 잃은 신은 어찌 되는가?’

신성이 작을 때에는 그저 신성을 잃었을 뿐, 사람이 된다 했다.

하지만 신성이 크다면? 그리고 그 신성이 주는 힘이 크다면?

신의 힘에 익숙해진 몸은, 그 힘을 포기할까?

그 답이 눈앞에 있다.

“괴물.”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놈들이다.

“찌꺼기.”

끼에에에에엑!

거대한 대머리독수리가 된 비다르가 포효했다.

찌꺼기로 변했음에도 눈 한쪽은 복구되지 않았다. 놈이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보통 찌꺼기와 달리 상체도 동물의 형상이다.

발이 네 개 달린 대머리독수리. 크기는 대충 5미터쯤.

“복수를 외쳤던가?”

그렇다면 싸워 주지.

창을 쥐고 싸움을 준비했다. 하지만 비다르는 날 무시했다.

놈이 날개를 휘저었다.

퍼덕퍼덕퍼덕!

[어, 어어… 날아오릅니다! 날아오릅니다!]

[그쪽은 관중석이에요! 어엇! 피, 피해!]

“어, 어어… 뭐, 뭐야! 저게 뭐야!”

“찌꺼기. 찌꺼기다! 비다르가 찌꺼기가 됐다!”

“어어? 이, 이쪽으로 온다!”

빌어먹을!

비다르 놈은 완전히 정신을 놨다. 관중들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날아오른 비다르가 쏜살처럼 추락했다.

끼에에에엑!

“꺄아아아아악!”

“이, 이 괴물! 꺼, 꺼져!”

난장판이다.

관중들은 투기장을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쳤고, 개중 몇몇은 비다르와 맞서고자 제 손에 들린 것을 휘둘렀다.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끄아아아아악!”

비다르의 발톱에 한 남자가 잡혔다.

통통한 사내는 마구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비다르는 외눈으로 날 보고, 그 사내의 머리를 부리에 끼웠다.

버럭 소리쳤다.

“네놈이 그러고도 한때 신이었던 작자냐!”

바닥을 박차고, 벽을 박찼다.

연이은 도약에 비다르가 자리 잡은 투기장 외벽에 가까워졌다.

조금만 더……! 황급히 다리를 움직였다.

잡힌 사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으어… 살려 ㅈ……!”

꽈득!

사내의 머리통이 깨졌다.

늦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놈에게 덤벼들었다.

창을 내질렀다.

“비- 다- 르!”

끼에에에에엑!

콰앙! 놈의 발톱과 내 창이 교차했다.

부러질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부러진 것은 비다르의 검은 발톱이었다.

콰드득!

끼에에에엑!

하지만 발톱이 부러졌다 한들, 비다르는 멈추지 않았다.

놈을 지배하는 건 야성. 어설픈 자세를 잡는 것보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게 차라리 더 효과적이었다.

퍼억!

“크억!”

숨이 턱 막혔다. 몸이 붕 떠올랐다.

부유감을 느끼기 무섭게 내 몸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쿵!

“으으윽!”

온몸이 삐걱거린다. 잠깐 정신이 나갔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사이에 투기장은 엉망이 되었다.

[관중 여러분! 질서를 지켜서 대피해 주십시오!]

[질서를! 질서를 지킵시다!]

장내 방송은 해설이 아닌 안내를 했다.

그럼에도 비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마구 출구로 몰렸고, 그 와중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악! 끄아아악!”

“젠장할! 비켜! 비키라고!”

누군가 깔려 내지르는 비명. 그리고 부모를 잃었는지 엉엉 우는 꼬마 아이. 미쳐 버린 비다르는 사람들이 몰린 곳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끼에에에엑!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비다르가 날개를 퍼덕였다. 그리고 곧장 하강했다. 사지를 쭉 뻗어 사냥감을 붙잡았다.

욕심도 많은 놈이다.

“…그거 하나는 변하지 않았군.”

체면을 따지느라 제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던 것에 비하면 저게 낫다. 가식의 가면을 벗고, 추악한 민낯이 제대로 드러났다.

“안 돼! 안 돼! 죽기 싫어어!”

“으아아아! 살려 줘! 비다르 님! 저, 저예요! 비다르 슈즈 사원인…….”

“놔! 놓으라고! 이 괴물 새끼야!”

비다르의 사지에 붙잡힌 이들이 온갖 소리를 쏟아 냈다.

나는 창을 짚고 일어섰다. 다리가 부러졌는지 욱신거렸다. 놈은 부리를 슬쩍 벌리면서도 내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쪽 눈을 박살 낸 원한을 잊지 않고 있는 겐가?

피식 웃으며 창을 들어 올렸다.

창이 닿기에 저곳은 너무 멀었다.

“아, 아아아… 제발!”

비다르의 부리가 벌어지고, 한 사람을 목표로 정했다.

비다르 밑에서 일했노라 말하던 남자였다. 그는 딱딱 턱을 떨고 있었다.

괴물은 과시하듯 입을 쩍 벌렸다.

“아, 안 돼!”

그리고 나는 부러진 다리로 바닥을 디뎠다.

지독한 통증에 등골이 달아올랐지만, 참았다.

탁탁! 바닥을 박차고, 두어 걸음.

허리를 뒤로 죽 당기고, 창을 완전히 뒤로 넘겼다.

그리고 쏜다.

“죽어라! 괴물아!”

쐐애애액!

투창이 비다르를 노리고 날아갔다.

부리를 쩍 벌린 비다르는 그를 피할 수 없으리라.

푸욱!

끼에에에에!

무기를 잃어버려 가면서 한 공격은 나름의 보람이 있었다.

비다르가 잡고 있던 이들이 풀려났고, 그놈은 마구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끼에에엑!

투창으로는 놈을 죽일 수 없었다. 비다르의 가죽조차 뚫지 못했다.

놈은 창을 뽑아 바닥에 던졌다.

“…제기랄.”

무기를 잃고 이제 어찌하랴?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날아드는 찌꺼기를 보았다.

놈이 노리던 게 이건가? 제 눈을 빼앗은 무기가 두려웠던 건가?

체면을 버리고 야성을 얻다니, 꽤 수지맞는 거래다. 하지만 그냥 맞아 줄 생각은 없다.

“말했었나? 너는 내 창을 비웃었지만…….”

나는 아까 일어나며 쟁여 둔 돌멩이를 손에 꽉 쥐었다.

“진정한 전사는 돌멩이 하나로도 널 쳐 죽일 수 있다!”

끼에에에엑!

발톱이 날아든다. 보석으로 치장했던 검보다 훨씬 날카로운 발톱이다.

나는 그 발톱들을 하나하나 피해 냈다.

손과 발에 달린 네 갈래 발톱들. 모두 다 해서 16개다. 개중 하나는 아까 부러졌지.

팔을 휘둘렀다.

퍼억!

“크흐…….”

웃음 지었다.

내 배를 뚫고, 발톱 하나가 박혀 있다.

주르륵, 피가 흘렀다.

내가 돌멩이로 내려친 비다르의 부리가 살짝 금 갔지만 그뿐.

쿨럭, 기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아직 나도 진정한 전사는 못 된 모양이군.”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기대하지 않던 대꾸가 있었다. 그리 반갑지 않은 목소리다.

“그래도 네가 그쪽에 더 가까우리라. 진정한 전사는 관중을 습격하거나 하지 않지.”

“…티르?”

뒤를 돌아보니, 싸늘한 얼굴을 한 티르가 서 있었다.

그가 쥔 칼은 티와즈 루 룬을 새긴 평범한 칼. 다이스에서 쉽게 살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모습이었다.

티르가 말했다.

“결투법을 어긴 너에게, 나 판결 내리니.”

그가 칼을 들어 올렸다.

나는 입을 벙긋했다. 그를 말릴 셈이었다.

티르는 결투의 신이다. 하지만 그리 강인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는 펜리르에게 손목이 잘리고, 가름과 동귀어진했다.

“이놈은…….”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를 읽을 법한 샌님에게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법과 질서, 그리고 결투를 관장하는 데는 큰 힘이 필요치 않았다.

그렇기에 난 그를 모셨다. 공명정대한 신이라 여겼으니까.

옛이야기다.

“그런 걸로는 무리요!”

“걱정하지 마라, 오디슨.”

담담하게 대꾸한 티르가 비다르를 보며 선언했다.

“사형이다.”

무모했다. 내 창조차도 제대로 박히지 않던 놈이다.

그런데 저런 허술하기 그지없는 칼로 베어 내겠다고?

끼에에엑!

비다르가 비웃듯 포효했다. 티르에게 달려들어 발톱을 뻗었다.

붙잡히는 순간 갈기갈기 찢어질 괴력이 담긴 공격이다.

깜짝 놀라 소리쳤다.

“티르!”

“평화에 젖은 놈이 동물 탈을 썼다고, 날 붙잡겠다? 우스운 일이다.”

티르는 방어할 생각도 없는지 발톱을 무시했다.

그는 무심하게 칼을 휘둘렀다.

—.

소리 없는 공격이었다. 거기에는 괴력이 없었다. 거기에는 신속이 없었다. 거기에는 위력이 없었다. 하지만 난 소름 돋았다.

칼질에 담긴 기술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키엑……?

찌꺼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베어냈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툭, 툭툭, 툭툭툭!

흉측한 대머리독수리의 머리가 떨어졌고, 티르를 덮치던 팔이 잘렸다. 그 이후는 후두두- 그 몸이 산산조각 났다.

비다르가 순식간에 다진 고기가 됐다.

“…허.”

입을 쩍 벌릴 때, 티르가 쥔 칼이 가루가 되어 쏟아졌다.

“싸구려 칼로는 이게 한계인가.”

중얼거리는 티르.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티르가 말했다.

“아직은 오디슨,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신성의 활용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봤소.”

“음?”

티르가 눈썹을 찌푸렸다.

좀 춥군.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달달 떨리는 턱으로 말을 이었다.

“신성이 마치 세상을 설득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더군. 허공에 가득한 법칙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인가?”

“…어떻게?”

티르가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예전 메르키가 짓던 표정과 똑같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내 눈이 좀 좋은 모양이오.”

허- 티르가 헛숨을 내쉬었지만,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서 있을 힘이 없다.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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